00030 <-- 타피의 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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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 서큐버스를 받아들일 수 없어!”
코어 바로 위쪽에 있는 우리들의 스위트 룸, 그리고 휘장이 깔린 공간에 타피가 달려와 소리 지른다.
나는 코어가 있는 유리바닥 위에 축 늘어진 채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었다. 시엘은 내 뒤에서 등을 두들겨주고, 아리에타 씨는 가져 온 다기들을 석굴에 정리하고 있었다.
“서큐버스가 싫다니, 주인님이 싫다는 거야?”
내 뒤에서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던 시엘이 타피에게 다그친다. 타피는 분노한 듯 얼굴이 울긋불긋, 머리에 열이 나고 특징적인 붉은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있다.
마치 사춘기의 남자아이처럼 심술궂은 성격이 오늘따라 더 심술궂게 보인다.
“마스터님 말고! 저 이상한 서큐버스 여자 있잖아!”
아리에타 언니는 취미이기도 한 다기를 찻장에 정리해 두고, 나에게 차를 끓여 내주고 있다.
이 몸에는 커피가 안 맞는다 하여 달콤한 밀크티를 내어주시는데, 따스한 잔이 내 앞에 놓이자 마음도 놓일 정도로 편안해진다.
뭐, 아리에타 언니가 이상하다면 옷뿐일까, 검고 반딱이는 인조가죽 같은 천으로 가릴 곳만 가린 옷. 다소 야하다고 할 수 있을 평범한 서큐버스의 복장을 하고 계신다.
소녀다움이 물씬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은 우리와는 달리, 밤의 여왕님 같은 옷을 입은 아리에타 언니의 모습은 이질적이기는 하다.
“아리에타…… 언니? 그 옷 갈아입으면 안 될까요?”
“세이나 마스터님의 뜻이라면, 어떤 옷이 좋으십니까?”
“그, 잠시……”
아리에타 언니가 보여주는 옷들은 결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서큐버스들은 다들 저런 옷을 입는 거구나, DMP 메뉴에서 보긴 했지만 더 적나라하니 무서울 정도다.
나는 시엘의 눈을 가렸고, 타피는 계속 찡찡거리면서 소리 지르기에 보지 못한 것 같다.
소멜은 물 필드에서 오랜만에 수분을 충전하느라 위에 있다.
“이왕이면 면적 넓은 거로 입어주세요.”
“이 옷이면 될까요?”
“그…… 네…… 그거요.”
아리에타 언니는 의외로 평범한 빅토리아풍의 메이드 옷을 꺼내 입으신다.
그 옷을 입으니, 분위기 자체가 매혹적인 서큐버스에서, 그저 날개와 꼬리가 있는 차분한 메이드로 바뀌어버린다.
게다가 금테 달린 안경까지 쓰신다. 너무 완벽히 차분한 메이드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세이나 마스터님.”
“고마워요, 언니!”
“음…… 언니보다는 제 이름으로 불러주십시오. 이제는 저의 마스터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입에 붙은 말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정말 그때의 언니는 무서웠으니까, 누나라고 불렀다가 차라리 지옥이 낫지 않을까 싶었던 꿈에서 고통받았던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옥 훈련은 정말 지옥에서 하는 훈련 같았다.
“그냥 저 편한 데로 부를게요, 언니.”
“그게 마스터의 뜻이라면.”
“마스터님 그 이상한 서큐버스좀 치우라고요오오오!”
타피는 또다시 울부짖는다. 시엘이 차분히 일어나 어느새 타피를 달랜다.
타피가 비뚤어지지 않게 가서 토닥여주고 싶지만, 나는 조금 전에 힘을 써서 일어난 탓인지 코어 위쪽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다.
아리에타 언니가 내어준 밀크티를 마신다. 활력이 도는 느낌이 나서 보니 살짝 우윳빛이 돈다.
밀크티가 당연히 우윳빛이지만, 아무래도 활력이 도니까 덜컥 겁이 난다. 나는 서큐버스니까……
“언니, 여기 뭐 섞으신 거예요?”
“고래의 젖입니다. 주인님.”
“…….”
뭐 향이 상당히 좋기는 하지만, 서큐버스가 먹는다고 생각되는 그런 종류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고래라고 하니 텔레르나 씨가 생각나서 공중에 뿜어버렸다.
아리에타 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차분하게 내 옷과 바닥을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그리고 울부짖는 타피를 바라보았다.
“타피, 이쪽으로 오렴.”
“싫어! 마스터가 그 이상한 서큐버스를 버리기 전까지는 갈 수 없어.”
“타피, 무슨 말버릇이니. 마스터로서 명령한다. 이쪽으로 와.”
“흐극……. 흡……”
타피는 울부짖으면서도 나에게 다가온다.
네임드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는다는 경우도 있었지만, 타피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잘 알고 있다.
타피는 사랑이 부족한 아이다. 그래서 나를 지키려고 했고 폭주한 걸 잘 알고 있다.
아리에타 언니는 나를 훈련시킨 만큼, 운디르나 선배님의 눈으로 보기에 타피를 잘 훈련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신 것이다.
나는 훌쩍이는 타피를 안았다.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항상 나에게 해 주신 이 행동은 마음속까지 따뜻해졌었다.
비록 지금은 코어 위에서 충전 중인 배터리 나간 핸드폰 신세지만, 훌쩍거리며 부들부들 떠는 타피를 안으니 점점 안정되는 모습이다.
“마스터님, 정말 저 서큐버스랑 살 거야?”
“아리에타 언니야. 타피도 더 강한 인간들이 오기 전에 저 언니에게 배울 게 많지 않겠니?”
“그, 그래도 싫어!”
“뚝, 뚝 그치렴.”
타피의 등을 토닥인다. 언제 내가 이런 애들을 보는 처지가 된 건지.
그래도 폭주했던 타피가 그나마 마음을 안정시킨 것 같아 다행이다.
분명히 아리에타 언니는 타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이야기를 꺼내셨을 테다. 하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처럼 어떤 말이든 설득시킬 능력은 나에게 없다.
“아리에타 언니, 타피의 차도 부탁……”
“싫어! 싫어싫어시러시러!”
“타피! 떼쓰지 말고. 나를 지키고 싶으면 강해져야 하지 않겠어?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지?”
“……. 마스터님.”
뭐, 사실 DMP를 마음껏 쓸 수 있고, 이제는 코어에서 에너지를 받는 편이라면 내 쪽이 더 강하긴 하다만……
강함은 힘의 크기만으로 비교할 수 없다. 물론 힘이 큰 쪽이 유리하긴 하지만 기술이나 경험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언니 쪽이 더 강하다.
“아니야, 아픈 나보다는 언니가 더 쌔겠지?”
“언니언니 하지 마! 마스터!”
“흐음…….”
내 품에 안긴 채로 떼쓰는 타피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아리에타 씨가 내주는 또 다른 홍차를 바라본다.
핏빛 홍차의 모습은 타피의 눈으로 보기엔 정말 탐스럽게 보일 정도이지만, 타피는 그 홍차 잔을 받지 않고 손으로 탁 쳐낸다.
“타피!”
“싫어! 다가오지 마, 이 더러운 서큐버스.”
“타피, 나도 서큐버스거든!”
“싫어! 마스터는 저 서큐버스가 더 강해서 내가 필요 없는 거지! 그래, 난 떠날 거니까 여기서 알아서 해!”
결국, 타피가 터졌다. 비뚤어졌다.
그것도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지금은 심장이 없지만 심장이 꽉 죄는 느낌이 든다.
타피는 삐진 채로 뛰쳐나간다. 시엘이 그 뒤를 뒤쫓는다.
아리에타 언니는 내 긴 머리카락을 빗겨주며 놀란 마음을 안정시켜주신다. 더불어 언니가 해 주는 날개뼈 부근과 꼬리뼈 부근의 마사지는 뭉친 근육을 풀어주어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하지만, 타피가 저렇게 나가고 나니, 그저 한숨이 나온다.
당분간 네임드를 만들 수 없는, 그러니까 만들 수는 있지만, 마력 문제상 만들지 않는 게 낫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에게 타피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아니, 그런 단순한 소환 문제가 아니라 타피는 그보다 더 소중한 존재……
“마스터, 타피를 쫓을까요?”
“…… 아리에타 언니,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십시오. 세이나 마스터는 당분간 이 코어에서 휴식하는 게 좋습니다. 감각 공유로 네임드들을 통해 던전을 관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럼, 인간들은 언제 올까요?”
“빨라도 한 달은 걸리겠지요. 인간들이 많이 사는 지역까지 도망치고, 거기서 준비하고 이 던전으로 오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립니다. 텔레르나 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니까요.”
“그러면 한 달 동안, 타피를 여기 오지 못하도록 막고 훈련을 부탁드립니다.”
“수발은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시엘이 있으니까.”
아리에타 언니는 내 말을 듣고 검은 날개를 쫙 펼친다.
가로세로높이 2m의 던전 한 칸의 축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듯한 날개의 거대한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요염하게 움직이는 꼬리를 흔들고 내가 있는 2층의 방에서 계단을 통해 날아서 타피를 쫓는다.
“휴으……”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타피는 잠깐 삐진 것뿐이고, 비뚤어지지 않을 아이니까.
감각 공유로 타피의 모습을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당분간 타피는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대신 시엘 쪽으로 감각 공유를 건다.
그리고 나는 우는 타피를 달래주는 시엘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