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2 <-- 타피의 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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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바로 위쪽에서 뒹굴뒹굴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에선 어땠는가, 게임에서도 NPC는 꾸준히 찾아왔지만, 첫 유저가 찾아오기까지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첫 번째 유저가 남긴 방명록을 보고 나는 현실에서 울부짖었을 정도로 기뻤었다.
왜냐면 게임에서는 NPC보다 유저가 찾아오는 게 더 많이 버니까 말이다.
게임 기준으로는 얼마나 던전이 공략이 재미있는가, 얼마나 보상이 좋은가, 얼마나 보상 곡선이 제대로 만들어져있는가가 중요 포인트였다.
게임을 하면서 얻은 수많은 데이터를 적용해 보면, 지금의 내 던전은 그렇게 좋은 구조는 아니다.
일단 내가 죽기 싫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하고, 적은 사람들이라도 DMP를 뽑아내기 쉬운 구조로 만들어 놨다.
보상은 나라도 오기 싫을 정도이며, 오히려 선배님이 만든 필드 쪽 보상이 훨씬 좋을 정도다.
스켈레톤 킹은 등급 D, 아마 등급 D 이상의 모험가가 던전에 와야 뚫릴 테지만, 그전까지는 스켈레톤의 마력석 말고는 보상이 없다는 이야기다.
뭐, 그만큼 현실적으로 목숨이 걸린 일에는 철저하게 자기방어적이 된다.
게임에서는 리젠 포인트라는 게 있었는데, 이 세상은 리젠 포인트가 아니라 네임드에게 맡기고 알아서 개체 수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되어있는 것 같다.
당분간은 내가 조정해야 하고, 선배님께서 만들어주신 필드 쪽은 몬스터의 단가가 높기에 공략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품고 뒹굴뒹굴하던 중에 시엘과 소멜이 자러 들어온다.
아리에타 언니와 타피는 훈련하고 있을 테고, 소멜은 나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메로우 특유의 푸른 눈망울이 방울방울 빛나 아름답다.
“소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미야아!”
소멜은 시엘의 품에서 나에게 날아온다.
그대로 내 품에 꼭 들어온다. 푸근하고 미끈거리는 메로우의 피부가 느껴진다.
고민이 확 날아간 듯, 기분이 좋아진다.
“미야아!”
하지만 나에게 안긴 소멜이 갑자기 주변 시간을 멈춘다.
세피아 색으로 물들어가고, 소멜을 중심으로 시간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한다.
얼마쯤 굳었을까, 나는 확인밖에 하지 못했지만, 소멜의 몸이 하얀빛으로 빛이 나기 시작한다.
“소멜……?”
나는 메로우가 진화한다거나,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다. 뭐 그런 건 스켈레톤 따위들이나 할 줄 알았지, 네임드가 진화하는 건…… 하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의 메로우로 진화하긴 했었구나.
그보다 이 빛은, 오히려 텔레르나 씨가 인간형으로 바뀔 때의 빛……
곧이어 소멜은 시엘이 더 어린 시절이라면 그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형태로 변신해 내 얼굴에 볼비빔을 하고 있었다.
마치 유아기를 갓 벗어난 듯한 모습이다.
“응?”
“소멜……?”
“히야아아!”
그보다 소멜은 모르는 것 같다. 평소에는 말을 해도 뜻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게 설마 전부 감탄사였을 줄이야.
소멜은 뒤늦게 알아챈 건지, 나에게서 멀어져 자기 몸을 둘러본다.
나는 재빨리 벽에 걸린 원피스를 알몸인 소멜에게 입힌다. 소멜은 우리보다 훨씬 작아서 옷이 질질 끌린다.
“마스터님! 나 마스터 님이랑 똑같이 됐어!”
너무 귀여운 아기 목소리, 소멜의 목소리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히 귀엽다고 할 정도이다.
아직까진 목 옆과 팔 아래쪽으로 지느러미가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푸른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의 어린 애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나와 시엘의 외모가 12세 정도라면, 소멜은 6세 정도.
소멜이 과도하게 순수한 아이 같은 이미지는 있었지만, 인간형조차 저렇게 변해버리니 할 말이 없다.
“그보다 내 주변에는 왜 소녀들밖에 없는 거야!”
“주인님? 나 싫어?”
“아니, 아니야……”
이왕이면 나도 다양한 네임드들이 있었으면 한다고.
아리에타 언니나, 운디르나 선배님 같은 누나 이미지도 좋아하는데, 왜 주변에 이런 소녀들밖에 꼬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운디르나 선배님도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잖아.
“히힛, 시엘 언니!”
“그래~ 소멜!”
두 아이는 자러 온 것 같은데 서로 바라보며 장난친다.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과연 던전 마스터 계약에 확인 버튼을 눌렀던 게 정말 잘 했던 일인가를 다시금 고민한다.
아이들도 좋긴 하지만, 나는 친구 같은 남자 몬스터도…… 어쩌면 친구를 바래서 이런 소녀들밖에 나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회복되고 난 뒤에 네임드를 생각할 때는 생각을 해야겠다.
두 아이들은 서로 히히 웃다가 잠이 들었다.
소멜은 눈을 감자 다시 메로우 모드로 돌아갔고, 나는 잠을 잘 수 없어 계속해서 코어 옆에서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본다.
시엘은 자면서 무슨 상상을 하는지 히히 웃고 있다. 벌써 보름째 느끼는 일이지만, 바깥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리에타 언니와 감각 공유는 어지러워서 하루에 2시간 이상 보지도 못하고, 굉장히 지루하면서도 따분한 생활만 계속되는 것 같다.
뭐 아이들이 눈을 뜨는 시각은 조금 낫지만, 꿈 필드에서 훈련하고 있을 두 네임드를 생각하며 엉덩이를 들고 일어났다.
코어에서 나와 석굴을 지나고, 천천히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른다.
아이들이 깨지 않게끔, 발소리를 죽이며 올라가면 바로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해변 필드가 나온다.
조금은 덥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해변 필드를 일직선으로 지나면 꿈 필드가 있고, 옆으로 가면 다른 방의 해변 필드가 나타난다.
이쪽은 열대 해변 같은 느낌이라면 다른 작은 방에는 다른 해변가 같은 분위기가 든다.
꿈 필드에 다다르면 주변에 허연 안개가 점점 끼기 시작한다.
분명히 인간이라면 무섭게 느껴야 할 분위기인데, 나는 점점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잠은 안 오지만, 코어 주변이 아니라서 에너지가 차는 느낌도 아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훈련 후 휴식을 취하려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녕, 오늘은 보러 왔어,”
“세이나 마스터님, 코어에서 나오시면 회복이 더딥니다.”
“흥, 난 주인님을 안 볼 거거든!”
타피는 고개를 돌려 앉는다.
어느새 두 명은 친해진 건지, 물론 타피는 계속해서 툭툭 튀기는 느낌이 들지만, 나를 위해서 저런다는 것도 잘 알기에 너무 건들지는 않는다.
“언니, 훈련은 어때?”
“타피가 잘 따라오니 문제는 없습니다.”
“마스터가 왜 언니라고 부르는 거야!”
타피는 역시 나와 언니가 이야기하는 와중에 달려와 끼어든다.
“응응, 타피. 나도 아리에타 언니한테 훈련받았거든, 타피와는 사매 관계가 되는 걸까?”
“…… 마스터는 운디르나 마스터를 닮아가는 거야?”
“하하, 그런가?”
왠지 마스터라고 하면 본 몬스터가 선배님밖에 없으니까, 네임드들 앞에선 자연스럽게 선배님처럼 행동하고 말투도 닮아가는 것 같다.
아리에타 언니도 미묘하게 그런 걸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나는 훈련을 구경하러 왔어.”
“세이나 마스터님, 보호막 마법은 가르쳐드리지 않았습니다만, 타피가 폭주하면 마스터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뭐어어! 언니, 나는 폭주하지 않는다고!”
타피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한다.
아리에타 언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에게 참관을 허락했다.
타피는 멀리 떨어져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다시 푼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앉아 두 명을 지켜본다. 굳이 감정 공유를 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어지럽기 때문이다.
두 네임드는 서로 탐색전을 벌이며 노려본다.
그 싸움 전의 분위기만큼은, 타피도 진지하고 무심코 멋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긴장감은, 타피가 먼저 달려드는 것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이야아앗!”
“말하지 말라고 그랬지? 다 들키려고 하는 거야?”
타피가 고함을 지르지만, 역시나 아리에타 언니가 훨씬 빠르게 타피의 등을 팔꿈치로 찍는다.
타피는 ‘커헉’ 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진다. 아리에타 언니는 저렇게 실수하고 난 뒤에는 엄청난 설교를 시작한다.
“돌진하기 전에 고함을 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나! 그건 약한 인간들이나 할 법한 짓이다. 겨우 그런 고함으로 용기를 얻는다면 너는 꿈의 종족 자격이 없어!”
“으읏……”
아리에타 언니는 내가 훈련을 받을 때처럼 엄격하다. 그리고 매우 강하다.
타피는 과연 어떻게 자란 건지, 정보창을 열어 확인해본다.
이름: 타피
종족: 시간의 뱀파이어
레벨: 64
특수 스킬: 빛 내성, 시간 감속, 시간 가속, 시간 정지, 혈액 조종, 불굴
겨우 2주간의 훈련인데, 시엘과 자율 훈련을 했던 한 달보다 훨씬 성장하고 있었다.
하긴, 타피도 태어난 지 3달이나 된 뱀파이어니까 그동안 성장을 안 했을 리는 없다.
계속해서 설교 당하는 불쌍한 타피를 두고는, 뒤돌아 나의 던전에 만들어진 선배님의 필드를 구경한다.
========== 작품 후기 ==========
피곤하니 글이 안 써져서 잠시 누웠다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