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3 <-- 타피의 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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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의 훈련을 지켜보고, 선배님의 필드를 둘러보고 돌아온 지 한 주 째 되는 날.
그리고 내가 깨어난 지 3주째 되는 날인 오늘도 나는 뒹굴뒹굴하며 유리바닥 위에 휘장을 깔고 엎드린 채로 코어로 던전의 모습을 띄워 확인한다.
메뉴 창까지 띄워 두면 정말 재미있다. 나도 선배님처럼 일이 많았으면 할 정도로 너무 일이 없고, 그저 꿈 필드에서 싸우는 두 명을 구경할 뿐이다.
지금은 시엘과 함께 누워 던전 구조를 구경하고 있다.
소멜도 한 번 인간형이 되고는 재미가 들렸는지 자주 인간형으로 변신한다.
옆에 같이 누워 세 명이 뒹굴뒹굴하며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다.
“소멜, 요즘은 마법 연습 안 하니?”
“아! 저는 언니에게 전략과 보좌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응?”
나는 뒹굴뒹굴하다가 옆에 같이 누운 시엘을 바라보았다.
시엘은 활짝 웃으며 나에게 두꺼운 서적을 보여준다. 시엘이 요즘 뭔가 읽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런 걸 공부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곧바로 일어나 한쪽 귀로 금발을 넘기며 책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도서관의 엘프 그 자체의 수려한 모습이어서 더 놀라웠다.
“시엘……”
“헤헤, 주인님. 저도 노력하고 있다고요. 우리들에 대해서 알 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
나는 정말 이렇게 뒹굴뒹굴해도 되는 걸까?
다들 노력하고 있는데, 나 홀로 게임 지식을 활용해서 어찌 되겠지라는 마음뿐이고, 게다가 시간 마법이라는 사기 고유 스킬, 그리고 서큐버스라는 종족에다가 마스터라는 특성상 치트급 강한 마력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왠지 나만 남겨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날 정도다.
“히야아! 마스터님. 걱정하지 말아요!”
“소멜……”
“저는 주인님을 보좌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니까요! 아리에타 언니가 가고도 주인님이 던전 마스터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시엘……!”
뒹굴뒹굴하다가 일어나 기특한 시엘을 얼싸안았다.
시엘도 기분 좋은 듯 나에게 볼비빔을 한다. 이게 바로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나는 절대로 이 세상에 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엘의 눈이 고양이처럼 변하더니 내 꼬리를 확 낚아챈다. 그리고 난 바로 후회했다.
“히히, 주인님의 꼬리 잡았다.”
“흐야야아아아앗!”
등골을 따라 올라오는 저릿한 느낌, 그리고 꼬리의 볼살에 손가락이 오갈 때마다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 아파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마치 종이 치는 듯, 감전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쭉 뻗어버렸다. 물론 시엘에게서 꼬리는 확 뺏었다.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히히, 주인님 반응이 좋아요. 그리고 꼬리 부드러워요.”
“나도, 나도 만질래!”
“소멜, 너도 만지지 말라고!”
나는 꼬리를 재빨리 말아 옷 속에 집어넣는다. 이 녀석들에게 꼬리 장난을 당하면 너무 괴롭다.
한바탕 꼬리잡기를 하고 난 다음에야, 시엘과 소멜이 지쳐 먼저 나가떨어졌다. 생각보다 요즘은 기력이 잘 차는 듯한 느낌이다.
던전 1층으로 올라가려 하면, 아리에타 언니가 어떻게 안 건지 나와서 나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시전한다. 그러면 나는 그 정신공격에 휘말려 다시 내려온다.
요즘엔 정말인지 방안에서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좀이 쑤신다.
랭킹 게이머이던 시절엔 그렇게 움직이기 싫었는데, 지금은 운동도 하고 싶고, 날개도 펼치고 싶고, 마법도 써서 좀 마력도 낭비하고 싶고, 각종 욕망이 마구 샘솟는다.
그만큼 기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리지만, 이전에 갓 태어났을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몸에 축적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코어 자체가 거대해져서 일지도 모르지만, 원래 마스터는 이 정도의 마력은 가지고 있다고 언니가 말했다.
특히나 잠재능력은 운디르나 선배님보다 내가 더 좋다고 하니 기대해 볼만 하기도 하다고 한다.
“흐그읏? 야! 시엘, 만지지 말라 그랬지?”
시엘은 죽은 척을 했었다. 또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꼬리를 잡았다.
꼬리 좀 그만 잡았으면 좋겠다. 내 꼬리의 볼살을 문지를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다른 사람이 문지르면 저릿한 느낌에 나는 힘을 모두 빼앗기고 마니까 싫다.
결국, 나는 구석도 아니고, 그저 코어가 있는 층까지 내려와 흙바닥 위에 눕는다.
위쪽에서 시엘이 유리를 두들기며 뭔가 말하는 것 같지만, 유리는 시간 정지가 되어있어 진동하지 않아 음성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음……”
몸이 조금 돌아왔으니, 감정 공유로 한번 아리에타 언니에게 걸어본다.
‘마스터님, 오랜만이네요.’
‘으읏? 어떻게 알아챈 거야!’
‘그야, 마스터님은 감정 공유를 걸 때 습관이 있거든요. 약간 파직하고 신호가 울린다고 해야 할까요?’
‘……’
아리에타 씨는 앞에 누운 싸늘한 시체가 된 타피를 가르치고 있다.
또 타피는 실수한 건지, 주변엔 혈액이 흩뿌려져 있고 죽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엔 정말 죽인 다음에 부활하는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지옥 훈련이 따로 없지만, 타피는 정말 이를 악물고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그만큼 나를 생각해준다는 생각에 눈물을 삼킨다.
“일어나. 타피.”
아리에타 언니가 또다시 타피를 일으켜 입맞춤하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왜 하필 내가 있을 때만 이렇게 타피와 키스를 하는 건지! 이거 아리에타 언니가 의도한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항의하고 싶지만, 무심코 큰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입을 주먹으로 틀어막는다.
“하아, 하아…… 나 또 죽었어, 언니?”
“그래, 이번엔 혈액을 너무 많이 썼단다. 보호막을 뚫는다고 너 자신을 죽이면 안 돼. 물론 [부활]을 쓸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전투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언니의 왼쪽 팔이 욱신거리며 아픔이 느껴진다.
언니는 일부러 감추듯 손으로 가리고 빠르게 자가 치료를 걸어 회복하였지만, 상처가 조금 남았다.
일부러 타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뭐, 뭐야…… 내가 언니에게 상처를 냈다고?”
“그래, 타피.”
타피의 목소리는 조금 흔들린다. 내가 보기에도 동요하고 있고, 굉장히 기뻐 보인다.
언니는 타피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어준다. 원래 산발이었던 타피의 머리카락이 더 산발된다. 그래도 타피는 거절하지 않는다.
어느새 싸우다 보니 친해진 것 같다. 아리에타 언니에게서 깊은 유대감이 흘러들어온다.
“그럼, 조금 쉬고 있으렴, 나는 마스터가 불러서 말이지.”
“마스터…… 나는 마스터를 볼 수 있어?”
“글쎄, 마스터는 인간들이 오기 전까지 오지 말라고 했으니까. 분명 인간들에게서 DMP를 뽑아내고 오면 맛있는 식사를 주지 않을까?”
“언니…… 그 말, 사실이지? 나도 마스터를 다시 볼 수 있지?”
저번에는 싸우기도 하고, 타피 자체가 굉장히 삐진 상태여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 주째 타피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도 거부하고 있기는 하다.
타피가 조금 더 강해졌으면 하니까, 그래서 더 강하게 키우려고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언니, 훈련하자. 나는 다 쉬었어.”
“정말이지? 이번엔 시간 마법 금지.”
“무, 뭐……? 전력으로 싸우라고 할 때 다치니까 그렇지?”
아리에타 언니는 미소를 머금는다. 하지만 타피가 시간 마법을 쓰면 안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타피, 너는 다른 마스터들에게 시간 마법을 들키고 싶지는 않지?”
“그, 그래…… 마스터의 특수 스킬이 없어도 이길 수 있으니까……!”
다른 마스터들의 네임드 중에는 아리에타 같은 몬스터들이 수십 명은 더 있다.
그중 하나인 아리에타 언니도 못 꺾기 때문에, 타피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다지도 감동을 자아내는 타피의 성장 드라마를 보던 와중,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뱃속에 벌레들이 침입한 듯한 느낌. 이전에도 느꼈던 감각.
인간들이 벌써 내 던전에 침입해 첫 번째 방에 와있었다. 싸움하던 와중인 아리에타 언니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다.
타피가 혈액을 전개하고 언니에게 쏘아붙이려고 하자, 언니는 매우 강한 꿈 마법으로 전부 무효화시킨다.
타피는 그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또 아리에타 언니가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그리고 타피에겐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타피, 중지. 인간들이다.”
“……!”
타피는 놀랐지만, 곧바로 씨익 웃는다.
여태껏 타피가 보였던 표정 중에서 가장 욕심에 가득 차 있고, 또한 가장 잔혹했다.
========== 작품 후기 ==========
자꾸 하렘이라고 하시길래 태그 추가했습니다.
내일 시간 날지 안날지 모르는데 나면 운디르나 선배님 그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