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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35화 (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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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탱커이자 리더는 방에서 나아가기 전에 한 번 더 파티의 세세한 점까지 일러둔다.

어딜 가나 탱커는 저렇게 자신이 원하는 데로 파티를 이끌지 못하면 안 되는 직업병이라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잘 한다.

그 파티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건 어쌔신이며, 어쌔신은 들은 척 만 척하고 있다.

“알겠지요? 어쌔신 씨? 먼저 가셔서 함정을 제거해 주십시오.”

“알겠다.”

시크하게 대답하는 어쌔신 씨가 먼저 은신을 한 채로 걸어간다. 뒤에서 숨을 죽인 채로 모든 이들이 어쌔신을 바라본다.

분명히 한 코너 꺾은 곳에 타피가 있었을 텐데, 타피는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

어쌔신도 색적 능력이 있을 테지만, 함정 하나 설치하지 않은 던전에 오히려 한숨을 내쉰다.

“이래서 내가 활약할 시간이 있겠나? 함정 하나 없어.”

“알겠습니다. 어쌔신 씨, 모두 나아갑시다!”

나는 타피가 숨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 나타날지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다.

DMP를 최대한 뽑아내는 방법, 그러니까 자신보다 훨씬 레벨이 낮은 이들을 유린하는 방법도 아리에타 언니는 가르쳤던 것 같다. 즉 타피는 그런 행동을 할 것이다.

“라이트.”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이 정도는 기본이지”

파티는 깊숙한 복도, 어둠이 잔뜩 서린 복도에 마법사가 띄운 불빛 하나의 희미한 광원에 눈을 맡기고 나아간다.

원래 복도에는 양옆으로 횃불 같은 것이 걸려있다. 하지만 인간들이 들어오면 꺼지게 되어있고, 그래서 아리에타 씨의 시선으로 바라봐도 상당히 어두워 보이는 게 느껴질 정도다.

인간들은 어떨까, 우리 같은 서큐버스가 아니라면 어둠 속을 구별은커녕 벽이 있는 것조차도 모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일을 겪을 것이다.

“히으으읏?”

“힐러 씨, 무슨 일이라도?”

“아, 아아…… 아아…… 아닙니다!”

힐러가 본 건, 타피가 남긴 혈흔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모습.

타피는 최근에 자신의 피를 내뿜어 다루는 혈액 능력에 눈을 떠 강렬한 트라우마를 남기는 꿈 마법을 이용한다.

정확히 말해서는 꿈 마법으로 체내의 피를 복사해 만드는 피다. 하지만 직접 뿜어내 살짝 섞으면 더 강해진다고 한다. 벌써부터 피를 뽑아내 공략하려는 건지, 타피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파티원들이 천장을 바라봤을 땐,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DMP를 뽑아낸 것 같다. 의외로 프리스트 양은 강한 건지 벌써 스켈레톤 한 기 정도, 그러니까 100 DMP 정도는 벌써 흡수해버렸다.

“[홀리 라이트]!”

“힐러 씨! 공격 마법은 다소 삼가해 주세요. 저희가 싸울게요.”

“그, 그래요…… 하하.”

보통 5인 파티에서 힐러의 역할은 공격보다는 회복역에 집중될 것이다.

특히 이런 던전에서 힐러의 역할은 말이다. 그래서 마나 소모는 상당히 위험한 행위다.

아리에타 씨의 시선에서는 힐러의 발목에 타피의 피가 슬쩍 훑고 지나간 것으로 보였지만, 힐러는 느끼지 못하고 섬뜩한 무언가가 자신을 훑고 지나갔으리라고 생각했을 거다.

“히으읏……”

“힐러 씨. 그러면 저희 진행도 더뎌집니다. 잠시 휴식이라도 원하십니까?”

“그, 그그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요?”

“하, 힐러 양. 내가 있잖나. 이 베테랑 어쌔신님이 다 해치워 준다고, 이따위 신생 던전은 나 홀로 주파할 수 있으니까 발목이나 잡지 말고 회복에 힘써.”

“네……”

이따위라니, 이따위라니……

어쌔신, 너는 정말 내 손에 죽는다.

아무리 신생 던전이라지만 이 따위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고……

‘마스터님, 참으세요.’

‘으으……!’

머리가 불타오를 것 같이 열이 난다. 화가 난다.

저 녀석들을 전멸시키고, 프리스트만 잡아 타락시킬 거다.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버릴 거야.

‘침착, 침착하시고. 어차피 저 녀석들은 두 번째 방에 다다르기도 전에 전멸할 거니까요.’

“뭐야? 무슨 소리야?”

타피가 바닥재를 하나 들었다 놓자 쿵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파티원들은 모두 경계하며 사방을 노려본다.

엄청난 긴장감이 느껴지고, 힐러는 눈물에 콧물로 얼굴이 얼룩지기 시작한다.

리더는 진행 방향으로 나와 노려본다.

“아무래도 예사 던전이 아닌 것 같군요. 이렇게 사람들을 긴장시키다니, 최대 E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등급을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 나는 C등급이다. 함정 따위 없는 던전이야. D도 높게 쳐주는 거라고.”

어쌔신은 아주 지 잘난 듯이 말을 내뱉는다.

타피는 동요하지 않은 듯, 그저 그들의 절망을 천천히, 천천히 뽑아낸다.

오히려 동요하고 있는 건 나일까……

“끼야아앗! 워리어 씨, 내 엉덩이 만졌지?”

“무슨 소리야?”

“어쩐지, 쯧쯧, 시선이 글로 가더니만.”

마법사가 혀를 차며 워리어를 쓸모없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마법사의 로브가 바람에 살짝 들리자, 약간 뾰족한 귀가 나온다.

아마 하프엘프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워리어도 조금 땅딸막한 게 하프 드워프쯤 되는 걸까?

탱커는 자이언트의 핏줄을 이은 인간 같고, 유일하게 인간에 가까운 자를 뽑는다면 어쌔신과 프리스트일 것 같다.

“흐으으……”

“힐러 씨,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야? 귀중한 힐러라고 데려왔더니만, 던전 초행이었나?”

“그, 그렇소만…… 너무 힐러 씨를 몰아세우지 맙시다. 여러분. 저희는 다음 방에서 쉬고 다시 돌아가기로 해요.”

“리더, 그러니까 힐러를 제대로 구하라고! 나도 귀족이야. 함정 제거 반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아? 애송이 따위에 발목 잡히기보다 훨씬 좋은 파티에 들어갈 수 있었어.”

어쌔신은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는다.

왜 너를 상위 파티에서 데려가지 않는 걸 모르는 걸까? 싶을 정도로 성격이 쓰레기다.

마법사는 오히려 어쌔신의 의견에 동조하고, 워리어는 외면한다. 리더는 힐러를 감싸지만, 무리다. 그만큼 어쌔신, 즉 베테랑의 의견은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나이로 치면 워리어 쪽이 더 많아 보이기는 하다.

계속해서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타피는 힐러를 중심으로 장난친다.

그림자로 뒷덜미를 훑거나, 공기를 순간적으로 숨 쉬는 부분만 탁하게 만들어 숨을 막히게 한다거나.

그러면 힐러는 너무 정직한 초보자답게, 그리고 던전의 두려움에 꺅꺅 소리를 지르고, 파티원들의 짜증을 유발한다.

“흐극, 흡, 흐읏…… 저는 돌아가고…… 시퍼요……”

“힐러 씨……”

“[턴 언데드] 셔틀이나 하라고, 존나 깽깽대네.”

“힐러 씨, 제 마법에 집중을 흐트러트리지나 마십시오…… 읏?”

이젠 타피가 마법사에게 장난을 건다.

특히 마법사의 목에 꿈 마법 저주를 걸어 목소리를 바꿔버린다거나, 라이트를 유지하려 하는 캐스팅을 할 때 손발에 그림자를 그려 엉뚱한 마법이 나오게 한다거나 말이다.

지금도 마법사가 ‘[라이트]’를 외려는 순간, 타피가 목소리를 높이는 저주를 걸어, 헬륨을 마신 듯한 개미 목소리로 ‘라이트!’를 외친다.

저주 때문에 높아진 목소리에 정확히 라이트의 이미지가 재현되지 않고, 그들의 몸무게가 줄어드는 다른 라이트 마법으로 변형된다.

“마법사 씨, 대체 무슨 짓입니까! 아오, 이딴 트롤 파티에 오다니.”

“흐긋, 흡……”

“……”

워리어는 그저 외면하며 가장 후방에서 뒤를 돌아보며 간다.

라이트는 제대로 유지될 리가 없었고, 점점 빛이 밝히는 영역은 줄어만 간다.

그들은 세 칸(8m)도 나아가지 못하고 점점 발걸음을 늦춰만 간다. 다음 방까지는 막다른 길 두 개와 두 개의 갈림길을 제대로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데 말이다.

“하…… 마법사 씨, 조금만 [메디테이션]을 걸고 쉴까요? 지금 파티의 정신력이 너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무, 무슨 소리야! 내 마법이 이럴 리가 없어! 그래, 이건 다 저 초보자 힐러 때문이야!”

중간중간, 헬륨가스 마신 목소리로 변형된 마법사의 외침은 처량하기까지 할 정도로 웃겼다.

시간 마법이 아니라, 목소리 저주로 불리는 꿈 마법 계열인 것 같은데 나도 배워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이 저주라는 걸 모르는 건, 아무래도 가장 정신력이 약해진 게 사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제가 저주를 알아채지 못하니, 타피는 더 심한 저주들을 걸기 시작한다.

“흣…… 뭐야? 이 발에 채는 물컹거리는 건! 함정 제대로 못 치워 이 양반아!”

“워리어, 시끄럽다. 함정 제대로 치우고 가는 거 안 보여! 하, 아주 보자 보자 하니까 기어오르는 거 보소.”

“어쌔신 씨, 조금만 어조를 낮춰 주세요. 전방에 박쥐 떼!”

리더는 매우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낸다.

무심코 저 리더에게서 DMP를 뽑아내면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게 마스터의 감각인 건지, 그래도 점점 분열되어 가는 파티를 보니 흐뭇하고 기쁜, 약간은 소악마 같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어쌔신 씨, 사랑합니다……! 함정을 제거하지 않은 건 제가 당신의 곁에서 도망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뭐야, 질척이지 마! 이 트롤들아!”

워리어에는 참 마법이 걸려 어쌔신을 사랑하게 만든다.

선발대 모험가들, 이 파티의 꼴은 매우 우스꽝스러워졌다.

마법사는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힐러는 울먹이며, 워리어는 각종 저주에 시달리고, 어쌔신은 짜증을 내며, 리더는 점점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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