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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37화 (3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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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룸, 그래 봤자 석굴에다가 유리 바닥이 있는 방.

어쌔신을 죽이고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며 돌아왔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 녀석이 내뱉은 말 때문인지, 겨우 인간한테 도발 당해서 어쩌자는 건지……

게임으로 치면 NPC가 내뱉은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기계음 하나 섞이지 않은 육성으로 들어버리니 피부에 와닿는다.

‘칫, 겨우 그따위 말로 도발되어 나오는 코어라, 이 던전은 B등급밖에 안 되겠군.’

“…….”

주먹을 꽉 쥐고, 이미 소멸당한 녀석에게 뭘 하겠냐고 생각할 때쯤, 아리에타 언니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아준다.

아니, 이 손의 크기를 가진 게 아리에타 언니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언니……”

“마스터, 인간을 죽이고 왔군요? 기분은 어떤가요?”

“나…… 왜 내 던전을 얕보인 걸까?”

“……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스터의 던전은 객관적으로 인간의 기준으로 A등급이니까요.”

“……?”

아리에타 언니가 ‘객관적으로’라는 말을 하자 맴돌던 어쌔신의 도발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 어쩌면 명상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리에타 언니는 또다시 따스한 밀크티를 타서 나에게 건네준다.

시엘과 소멜이 걱정스러운 나를 안아주기까지 해서 마음이 놓인다. 이 아이들은 귀엽다.

“어쨌든 남의 던전을 폄하하는 녀석들은 많지요. 이미 소멸당한 인간에 대해 생각하진 마세요. 그리고 마스터에게 타락을 가르치고 싶은데.”

“아, 참관해야겠지?”

“코어에서 쉬고 계셔도 됩니다. 감각 공유로 봐 주셨으면 해요.”

“그래요. 일단 결산부터 하고 부탁드려요.”

나는 밀크티를 한잔하고, 코어 위에 앉아 에너지를 채우며 다소 개운해진 마음에 DMP 메뉴를 연다.

DMP는 타피가 지금 인간들을 괴롭히는 탓에 꾸준히 오르고는 있지만, 아까처럼 극적으로 오르지는 않는다.

다섯 모험가 파티, 가장 높은 어쌔신이 C등급이었으니만큼, 전체적으로 등급은 높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DMP는 꽤 많이 올랐다.

13279 DMP

확인하는 동안에도 13280 DMP가 되었다.

겨우 한 번의 전투로 1만에 가까운 DMP를 얻었다.

인간 측은 전멸에 한 명은 소멸, 게다가 한 명은 아직 타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DMP이다.

던전 운영이라는 게 과연 이렇게 잔혹한 것이었는지,

게임에서는 상당히 무서운 묘사는 피했지만, 실로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걸 겪다 보니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

나는 첫 번째 방에 스켈레톤 3기를 다시 소환하고, 전체적으로 전투 중에 망가진 복도는 새로 지우고 다시 건설했다.

그러자 1천 DMP가 날아간다.

12290 DMP

타피가 너무 심한 짓은 하지 않기를 바라며, 아리에타 언니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음, 그래, 마스터. 여기 살아있는 인간이 보이지? 클래스는 프리스트네. 제일 타락시키기 쉽고 좋은 몬스터로 변하는 녀석들이야.’

‘어떻게 변하는 거예요?’

‘일단, 심문으로 이 아이의 믿음을 꺾는 것부터 해야지요.’

“일어나렴, 착한 아이야.”

“으음……!”

아리에타 언니는 또 프리스트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맞춤한다.

일부러 언니는 내가 감각 공유를 할 때만 이러는 것 같다. 내가 키스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야릇해지니 싫은데, 언니는 씨익 웃는다.

분명 나한테 웃는 거일 거야.

“여, 여긴 어디인가요? 천국?”

“아니,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

“히잇…… 저, 저는 분명 신님을 믿었습니다. 천사님.”

‘천사라니, 지금 환혹 마법이라도 걸어두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마스터님, 자신의 모습을 상대의 믿음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환혹이지요. 마스터도 쓸 수 있답니다.’

‘으으……’

이 마법은 내가 당했던 마법이다.

내 이상형은 전에도 말했지만, 아바타…… 그러니까 내 모습이다.

언니가 이 마법으로 내 모습으로 변신해, 자꾸만 나보고 나르시즘이냐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에로스의 덩어리 같은 언니가 푹신푹신한 소녀 같은 내 모습으로 변신해 각종 서큐버스 같은 용어를 쏟아내서 정신이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서큐버스니까 그렇다. 서큐버스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언니는 그렇다.

“여긴 천국이잖아요…… 그렇죠 천사님?”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필드는 꿈 필드가 아니에요? 대체 왜 천국이냐고 믿는 거에요?’

‘그건 착각 마법이랍니다. 저 프리스트는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왔다고 믿고 있네요.’

“천사님, 천사님…… 제발 제가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다고 하기엔 프리스트님의 믿음이 부족하셨지요. 종교는 누구를 섬기지요?”

“그…… 그……”

아리에타 언니는 손가락을 툭 튀긴다.

그러자 아리에타 언니의 꿈 마법이 프리스트의 머릿속에서 신에 대한 관념을 지워버렸다.

뭐, 정말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믿음이 강했던 프리스트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관념은 강했을 것이다.

“아……”

프리스트는 눈물을 흘린다.

아리에타 언니가 다시 바라본 프리스트는 아름다웠다.

약간 처진 눈매에 큰 눈동자. 그리고 푸른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내린 머리.

전반적인 분위기는 1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옷은 수수한 사제 복장이지만, 조금은 찢어져 무릎 아래가 드러났다. 그래도 피부가 청결하고 깔끔해 마치 갓 모험가 시장에 나온 초보자다운 청초한 프리스트이다.

어딘가 고블린만 있는 던전에 떨어졌다면, 차라리 신체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정도로 보이는 순진한 사제다.

‘저 프리스트의 이름은 뭔지 물어봐 주세요.’

‘음…… 마스터는 이 아이를 네임드로 만들고 싶으신 겁니까? 타락하는 동안 그저 다크 프리스트라는 클래스로 만들어버리고 이름을 잊혀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

‘알고 싶어요.’

타락에 대해서는 그저 그런 게 있다고만 알고 있었고, 네임드에 대한 관념은 이 세상에 와서 처음 알았으니만큼 처음 타락한 인간은 네임드로 만들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는 약합니다만…… 뭐 마스터가 바라니 어쩔 수 없지요.’

“네 이름은 뭐지?”

아리에타 씨의 질문은 너무나도 싸늘했다.

언니를 천사인 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 프리스트 씨를 압박 면접 하는 듯한 느낌으로 말했다.

“그, 그그, 르테아입니다.”

‘마스터, 이 이름으로 괜찮겠습니까?’

‘그래요.’

이상한 이름이었다면 내가 가서 뜯어고쳤을 것 같다.

아리에타 언니는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멈칫하다가 르테아 씨를 바라본다.

“그래, 당신은 원래 신을 섬기는 사자, 프리스트입니다. 하지만 누구를 섬기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셨지요?”

“아, 그…… 그게……”

르테아 씨는 꿈 마법에 의해 지워진 신에 대한 관념을 다시금 깨닫는다.

프리스트는 꽤 믿음이 독실한 자들이기 때문에 회복 마법 등을 쓸 수 있다고,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는 설정이 게임상에선 있었던 것 같다.

뭐 그건 다른 게임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많겠지만, 잠시나마 신에 대해 망각한 건 매우 큰 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르테아 씨의 눈이 급격하게 짙은 푸른색으로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천사님……!”

“설마 당신은 악마를 섬기는 겁니까? 그렇다면 악몽 속으로, 절망 속으로 빠져버리시길. 어째서 프리스트가 신에 대한 믿음을 잠시나마 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지. 참으로 가관이군요.”

“아아…….”

르테아 씨가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뺨에서 떨어트린다.

여자가 우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내 마음이 약해지지만, 아리에타 씨는 다그치듯 르테아 씨를 자극한다.

마법을 통해 조금의 틈을 만들고, 그 벌어진 사이로 르테아 씨의 마음에 침범하는 언니의 실력은 누가 봐도 일품이다.

“울부짖는다고 그 죄가 사죄 되리라고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없답니다.”

“속죄하겠……”

“아뇨, 당신의 영혼은 절대로 천국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르테아 씨는 절망에 빠져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을 바라본다.

곧바로 아리에타 언니가 마법으로 주변 공기를 바꿔버린다. 르테아 씨는 주변의 바뀐 환경을 알아채고는 아리에타 언니를 바라본다.

‘꿈 마법으로, 프리스트의 머릿속을 조작해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뭐 이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꺾어버리고 틈을 만들어 벌리면 쉽게 타락시킬 수 있답니다. 일단 마음을 꺾고 난 다음엔, 정수를 먹이는 것이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아리에타 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르테아 씨가 입을 열었다.

너무나도 무거워 보이고, 죄를 짊어진 듯한 모습.

마치 희망을 전부 다 잃은 듯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이 들 정도이다.

“르테아, 당신의 구원자이지요.”

아리에타 언니가 날개를 쫙 펼친다.

아마 꿈 필드는 평소처럼 보일 테고, 르테아 씨의 주변에 걸린 꿈 마법의 흔적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면 르테아 씨는 아리에타 언니를 보는 그대로 보고 있을 테다.

언니는 무릎을 꿇고 르테아 씨와 눈을 맞춘다. 그리고 손을 오므리고 자신의 꿈 정수를 담는다.

‘이왕이면, 마스터가 회복하고 난 다음에 마스터의 정수를 한 번 더 먹이세요.’

‘네, 알겠어요.’

“구원이라니……”

“이걸 마시면 됩니다. 당신은 신에게 버림받은 자,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 복수하면 됩니다.”

“복수…… 싫어요, 안 됩니다!”

“당신은 파티에서도 버려졌지요. 이 정수를 마시지 않으면 정말로 지옥에 떨어질 거랍니다. 차라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르테아 씨는 이미 마음이 꺾인 상태에서 유혹을 거는 듯한 보랏빛 정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얼굴을 천천히 가져온다. 아리레타 언니의 손에 담긴 보랏빛 정수에 입술을 갖다 대고, 천천히 입술을 내밀고 들이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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