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 또 다른 공략자들이 올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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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시키다가 정화될 뻔했던 사건으로부터 한 주 후.
그 사건은 그저 내가 마력을 한계까지 뽑아내던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어쨌든 죽음을 경험했으니, 또다시 부활 마법으로 살아났다.
그 부활 마법을 시전해준 게 르테아 언니……다.
그날부터 DMP 음식은 적당히 섭취하고 있고, 나는 타피에게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이래선 정말 병약 포지션이잖아!
하지만 정수를 낸 탓에 체력까지도 깎였던 듯, 나는 죽은 듯이 움직이기 힘들었다.
손발이 내 말을 안 듣는 건, 의식이 어둠에 잠기던 시절 이후 처음이다.
“세이나님 아~”
“아~”
그래도 지금은 이유식인지 죽인지 하는 걸 먹고 있다.
르테아 언니, 굳이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리에타 씨가 절대로 ‘누나’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고, 이상하게 ‘누나’ 포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뭐 흉부 장갑이 다소 크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분위기 자체가 마치 만물을 품을듯한 성녀 분위기를 풍긴다.
인간 세상의 지식도 있었고, 인간들의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그런지 최근에는 우리 음식도 DMP 위주의 식단보다는 인간들의 것도 섞어서 먹고 있다.
재료는 물론 모험가들의 음식에서 가져온다.
“르테아 언니, 재료는 이제 거의 없는 거 아니에요?”
“음, 아니. 있으니까 걱정 말고 먹으세요.”
“아니, 저 뒤쪽에 있는 모험가 장비들이 줄어들고 있는데…….”
“주인님, 또 약탈하면 되니까 걱정 말고 드세요.”
시엘은 요즘 무서워졌다. 르테아 언니에게 내 지분을 빼앗기고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인지 신체접촉도 많아지고, 지금도 뒤에서 앉아있는 나를 꼭 껴안고 있다.
그래도 정말 죽기 전까지 정수를 뽑았던 건 아니라 몸은 괜찮다. 이제 움직일 만하다.
최근에는 타피가 지상으로 나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있다.
던전 자체도 이제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지만, 그래도 해양 식단만 있는 것보다는 가끔은 육식도 하고 싶을 뿐.
DMP 메뉴에서 육식하면 되지만, 다 만들어진 음식들보단 가끔은 직접 굽는 고기를 먹고 싶기도 하다.
‘마스터, 그런 동물은 안 보이는데요?’
‘음, 황색에 다리 네 개로 서 있고, 꼬리는 끝에 털처럼 갈라져 있고, 파리 같은 녀석들을 툭툭 치려다가 등을 치는 그런 동물이 없다고? 밭을 가는 동물은 없니?’
지금 먹고 싶은 건 소고기 바비큐.
‘하, 찾긴 했는데 다리가 여섯 개예요.’
‘그거라도 좋으니까 잡아 와, 근데 어디 있니?’
‘네~ 여기요.’
타피가 보는 시야는 내가 타피의 시야로 보는 것보다 더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만큼 타피는 자신의 감각에 예민하고 정보량이 많다. 나처럼 단순한 서큐버스의 뇌로는 분석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참, 타피와 감각 공유를 하며 생각난 거지만 도망간 사람들 셋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도망갔다.
그래도 DMP를 극한까지 뽑아냈으니,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려고 모험가가 되었으니, 불만은 없지 않을까?
DMP는 최근 23145까지 치솟았다.
르테아 언니를 타락? 시키며 5천에 가까운 DMP를 뽑아냈고, 나머지는 모험가 셋에게서 극한으로 뽑아낸 DMP다.
르테아 언니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착하다. 정말 착하다는 성격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인간 시절과 성격이 많이 바뀐 건 없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어린 타피를 싫어하신다.
그래서! 오늘은 바비큐 파티를 열면서 다들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네임드들 간의 관계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다들 나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미묘한 경쟁심이라던가, 파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리에타 언니는 대여지만, 적어도 내 손에서 태어난 네임드들은 친했으면 좋겠다.
‘마스터, 마스터님? 똑똑, 이거 맞죠?’
‘어…… 비슷한 것 같네. 그거 맞아.’
‘알겠어요, 그런데 이 녀석 조금 무겁긴 하네요.’
소 한 마리에 500kg쯤 되니까, 이 세상의 소라고 생각되는 저 가축도 무거운 것 같다.
타피가 잡아서 던전으로 돌아온다. 밖은 밤이고, 우리가 활동할 시간이다.
시엘은 굳이 낮에 생활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점점 시간이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과 맞춰져 가고 있다. 나는 잠이 없으니까 모두를 보살필 수 있지만 말이다.
“다들 1층으로 가자, 타피가 돌아와.”
“으으……”
르테아 언니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타피를 이상하게 무서워한다. 뭐,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된 건 어쩔 수 없다.
아리에타 언니는 최근에는 타피와 상당히 많이 친해져서 꿈 필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애초에 네임드들을 관리하는 의미에서 만든 꿈과 물 필드이고, 최근에는 소멜에게 자신이 돌아갔을 때 물 필드를 관리하는 방법을 하나둘씩 가르치고 있다.
“자, 소멜 여기 이 물은 하루에 한 번, 물대포 마법을 써서 갈아주어야 한단다.”
“네! 히야앗? 이게 대체 뭐예요?”
“괜찮아,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나나 타피의 훈련 방법과는 또 다른 아리에타 언니의 의외의 모습.
하지만 르테아 언니의 분위기에는 따를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세이나님 여기에서 쉴까요? 타피는…… 곧 오겠지요?”
“네, 언니!”
활짝 웃고 르테아 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한다.
타피는 곧 날아와 다리 여섯 개짜리 소를 내려놓는다.
“이건…… 모험가들이 주로 먹는 동물이네요.”
“마스터, 이걸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
뭐, 정말 소를 가져온 채로 먹을 수는 없을 테니까, 해체해야 하긴 할 것이다.
르테아 언니가 그 방법을 잘 알 텐데, 타피가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저 르테아 언니가 과연 정말 소를 해체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는 한다.
“르테아 언니에게 맡기고, 타피는 이쪽으로. 여기 앉아.”
“마, 마스터님……?”
“주인님! 나도!”
“그래, 시엘도 여기 앉으렴.”
갓 의식을 회복했던 날처럼 왼쪽에는 금발의 시엘, 오른쪽에는 적발의 타피가 앉아서 나에게 기댄다.
이럴 때면 기분이 좋아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마음이 충족되는 기분이 든다.
뒤에서 배우던 소멜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 빠르게 꼬리를 말았다.
“소멜, 절대로 주지 않는다고-”
“우우-”
소멜이 볼을 잔뜩 부풀리고 나를 노려본다.
그리고 도축이 시작된다. 생명 하나 죽이지 못할 것 같은 르테아 언니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도축을 해낸다.
수도원 생활 시절에 많은 일을 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집안일이라던가, 생활력이 좋다.
“[홀리 라이트], 아니 [다크 라이트], 어머, 더러워졌잖아. [퓨리피케이션]”
그런데 정말 신을 섬기면서, 생명 하나 소중히 여겼다는 르테아 언니가 저렇게 도축을 잘 해도 되는 걸까?
운디르나 선배님처럼 갑자기 검은 속을 드러내고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정도의 포스는 아니지만, 르테아 언니에게서 그런 의외의 면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축은 빠르게 끝났고 르테아 언니는 핏기 다 빠진 고기를 가져와 던전에 장식용으로 만든 파라솔 아래 상에 올려놓는다.
“DMP는 편하네, 바비큐 만드는 장비까지 만들 수 있다니.”
“주인님, 이건 뭐야? 처음 보는 건데.”
“그러게요, 세이나님은 처음 보는 물건들을 자꾸만 만드시네요.”
“좋았어, 그럼 내가 구울 테니까 잘 지켜보기나 해”
괜히 생색을 내고 싶어진다.
불판 위에 잘린 고깃덩이를 올리면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장면을 지켜본다.
“모험가들은 이렇게 안 먹었어?”
“그야, 보통은 조합에서 잘라서 나오니까요. 저는 수도원에서 대충 배우기는 했지만……”
“마스터, 이건 뭐야? 이렇게 먹으면 피자보다 맛있어?”
“히이이잇…….”
르테아 언니는 경기를 일으키며, 갑자기 나타난 타피를 경계한다.
타피는 이상한 눈으로 한번 쓱 흘겨보더니 다시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다.
“응, 그런데 르테아 언니, 이제 타피는 같은 동료잖아. 왜 그렇게 놀라는거야?”
“그, 그그, 그야 무서우니까……”
“캬아아아!”
타피는 일부러 손톱을 드러내며 고양이과 맹수가 하는 것처럼 위협한다.
그러자 르테아 언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주저앉는다.
“타피, 그런다고 DMP 안 나오거든?”
“헤헤, 저 언니는 놀리는 게 제일 재미있어.”
“흐읏, 흡…… 흐아앙…… 울면 안 되는데……”
“타피!”
타피는 내가 언성을 올리자 입술을 우물거린다.
송곳니가 우물거릴 때마다 드러나서 귀엽다. 무심코 손을 뻗어 만질 뻔했지만, 그러면 내 꼬리가 잡히기에 하지는 않는다.
“마스터…… 내가 싫은 거지? 그렇지?”
“아니야. 르테아 언니랑 친해져야지 계속 만날 때마다 위협할 거야?”
“그, 그치만…… 재미있는걸……”
타피도 울먹이려고 한다. 하지만 타피는 분명히 악어의 눈물이라는 걸 잘 알기에 다그친다.
그러다 정말 울먹이려고 하기에 다시 안아주었다.
그날 바비큐 파티에서는 그래도 소 비슷한 동물을 성공적으로 다 먹어 치울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7번째 선작 100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