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속 서큐버스-40화 (40/95)

00040 <-- 또 다른 공략자들이 올 때까지 -->

=========================================================================

배부르게 먹고 난 뒤, 다들 편안하게 쉬고 있을 시점.

나는 은신을 걸고 빠져나와 흙 필드로 올라갔다.

여기 첫 방에는 스켈레톤 킹이 기다리고 있고, 스켈레톤 킹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인다.

뼈로 이루어져 있어 성대가 없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행동이라던가, 그런 면들을 보면 이해하기 쉽게 움직여준다.

“아냐, 원래대로 경계하고 있으렴.”

스켈레톤 킹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스켈레톤 킹이 있는 이 방에는 낡은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다.

그 위에 놓인 종이에 어떤 메모가 적혀있다. 아마 스켈레톤 킹이 쓴 거겠지.

“이거 읽어봐도 될까?”

스켈레톤 킹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메모지를 집어 들고 읽어본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세상의 인간들이 쓰는 언어를 읽을 수 있었다.

마스터 개체는 태어날 때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던데, 나는 이 세상에 넘어오면서 적당한 지식을 알게 된 것 같다.

뭐 내용은, 적당히 경계 일지 등을 작성한 메모 같다.

12월 11일.

이전에 왔던 인간들은 더는 오지 않는다.

경계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메이지와 상급 병사들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문제없음.

그러면 스켈레톤 킹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나는 메모지와 옆에 있던 깃펜을 들고 가 스켈레톤 킹에게 건넨다.

스켈레톤 킹은 당황하지만 깃펜을 받아 든다.

“혹시 인간 시절의 기억이 나나? 그 메모지에 써줘.”

스켈레톤 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지만, 내가 명령하자 그대로 종이에 문자를 적기 시작한다.

[나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스터님께서 제가 스켈레톤 킹이 될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뭐…… 나야 전략 경험을 쌓았어야 했으니까.”

[아닙니다. 저에게 생명을 주신 마스터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그래……”

스켈레톤 킹이 어디까지 자아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저 나에게 복종하는 몬스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궁금증이 아직도 남지만, 과연 상위 몬스터인 어인들은 어떨까 궁금하다.

다들 해변에서 잠이 들거나 쉬고 있을 테니, 나는 돌아가지 않고 기회를 틈타 밖으로 나간다.

“나를 호위해줄래?”

[알겠습니다. 병사를 붙일까요?]

“그래, 넌 이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스켈레톤 2기 정도만 붙여 줘.”

스켈레톤 킹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치 내가 감각 공유로 사념을 보내는 것처럼 명령을 내린다.

곧바로 내 곁에 스켈레톤 두기가 와서 나를 호위한다.

마치 왕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니, 서큐버스니까 여왕인가?

굳이 네임드들을 부르지 않고 흙 필드로 나온 건, 그저 변덕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네임드들은 해변 필드릐 큰 방 밖으로 나오는 걸 죽도록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일은 1층 던전의 흙 필드를 살펴보고는, 함정 등을 보강할까 싶어 간단한 함정들을 추가하는 일,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바깥 산책.

스켈레톤 두 기와 1층 흙 필드를 걸으며 함정을 하나하나 설치한다.

그들의 눈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으로 바라보는 정보는 전부 스켈레톤 킹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바닥에 놓인 고무줄을 밟으면 쇠뇌 화살이 튀어나오는 함정.

바닥이 갑자기 꺼지는 함정, 이건 아래쪽으로 1칸의 흙 필드를 만들어야 했다.

스위치를 누르면 벽이 돌아가는 함정. 이건 흙벽을 한 칸 만들어야 했다.

적당히 다섯 방에 놓아두고, DMP가 남아도는 만큼 인간들에게 작은 희망이나 주자고 보물상자를 만들어 놓는다.

F급 보물상자는 한 개에 1500 DMP나 소모된다.

스켈레톤이 100 DMP, 슬라임이 300 DMP, 임프가 250 DMP, 고블린이 500 DMP 등등.

F급 몬스터들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물론 F급들이 D급 스켈레톤 킹의 명령 때문에 움직이므로 전반적인 흙 필드의 난이도는 D급이 조금 안 된다고 봐도 된다.

F급 보물상자 5개 7500 DMP

F급 함정 50개 5000 DMP

흙 필드와 흙 벽 1500 DMP

전부 다 설치하고 나니, 간단한 요소들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14000 DMP가 빠져버렸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게 23145 DMP였으니, 지금은 9145 DMP.

뭐 나는 게임 세상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만, 이 정도의 함정들이라면 보통은 +수치를 얻는다.

그래서 흙 필드의 전반적인 난이도는 D급. 운디르나 선배님이 만들어주신 필드는 A급이므로 그 중간에 완충지대를 만들고 싶기는 하다.

아마 아리에타 언니가 말한 B급이라는 건, 역시 흙 필드에서 깎아 먹는 평균 던전 등급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심풀이로 가장 낮은 등급의 미믹을 찾아보니, D급 몬스터다.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케레톤 킹과 비슷하고, 가격은 5000 DMP.

하나 만들어 설치하니, 또 이상하게 쁘띠 슬라임 때처럼, 소환진이 그려져 만들어지다가 작아졌다.

역시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미믹의 정보 창을 열어본다.

등급: C

종족: 쁘띠 미믹

레벨: 35

특수 스킬: 놀래키기, 장난치기, 고 감지 능력

“……”

대체 왜 나는 비싼 녀석들을 만들 때마다 앞에 ‘쁘띠’자가 붙는 거냐고?

등급이 하나 오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쁘띠’자가 붙으면 전투력이 약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왜 쁘띠 슬라임을 해변 필드에 놔야 하는지 알려주시지도 않았고, 대체 저 미믹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한다.

“삐익?”

미믹이 튀어나와서 나를 바라본다.

상자 안에 든 검은 물체. 마치 타피의 그림자를 이용하는 물체처럼 움직인다.

그 까만 덩어리에 달린 흰 눈이 나를 바라본다.

“아……”

혹시나 해 다른 녀석들도 소환해 본다.

임프, 고블린, 제발 슬라임 때처럼 ‘쁘띠’ 자가 붙지 말라고 기도했다. 기도메타는 중요하다.

[250 DMP로 임프를 소환합니다.]

[500 DMP로 고블린을 소환합니다.]

이 녀석들은 평소대로 실사 모습. ‘쁘띠’자가 붙지 않고 제대로 F급 몬스터로 소환되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미믹을 바라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 임프, 고블린. 여기를 지켜라.”

여기는 막다른 길이지만, 딱히 스켈레톤 킹 휘하에 있는 녀석들도 아니니 미믹의 곁에서 호위하듯 기다린다.

이 녀석들은 방치해두고 스켈레톤 두 기를 데리고 던전 입구 밖으로 나온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바깥은 이전보다는 더 푹신푹신한 분위기가 돈다.

황량하지 않고, 약간의 초원이 형성된 모습에 신비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평원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기온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온화하며, 공기 중에 조금 더 습기가 있다.

“흐음-“

가끔은 진짜 던전 마스터처럼 이렇게 DMP를 소비하며 던전을 꾸미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뭐 과소비해서 지금은 3395 DMP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운동도 할 겸 몸을 움직이고 나니 괜찮아졌다.

그리고 하나 더 발견한 게 있다면, 내 눈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는 점이다.

물론 감각이 엄청나게 예민한 타피만큼은 아니지만, 꽤 먼 곳에 있는 물건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

아마 시력으로 치면 6~7 이상은 아닐는지 싶은 정도의 시력이다. 뭐 정확히 젤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그 시야로 먼 곳에서 발생하는 먼지구름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두 무리가 부딪히는 건지, 이쪽으로 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는 인간들의 전쟁터. 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모험가들이 찾아오는 것도 신기할 정도의 땅이다. 한 무리가 전쟁에 승리하고 나서 이 지방을 탈취하고, 안정된 상황이 되면 인간들이 다량으로 몰려올까?

그리고 왠지 내 던전 근처는 이제 전장으로 쓰이지 않는 것 같다.

한 지역이 전선을 밀어냈다기보단, 다른 곳에서 싸운다는 느낌이다.

이왕이면 던전 근처에서 싸워준다면, DMP를 조금이나마 흡수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물론 나는 2층에 사니까, 소음 걱정은 없고 말이지.

그리고 푸르른 뒷산을 다시 바라본 뒤, 두 진영이 싸우는 장면을 바라본다.

전장의 외침은 시끄럽게 던전 입구가 있는 언덕인 여기까지 들린다.

“세이나님.”

“네……?”

순간 뒤에서 들린 아름다운 목소리에 놀랐다.

나를 이렇게 부르는 몬스터라면…… 다크 프리스트인 르테아 언니뿐이다.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는 데, 스켈레톤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 측 네임드라서 그렇다.

“여기가 전장이라는 거 알고 계시나요? 북서쪽에는 프란시아 왕국이, 남동쪽에는 에크렌스 왕국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답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여기로 올까요? DMP가 부족한데.”

“아마 저 전쟁은 곧 끝날 거예요. 에크렌스 왕국의 왕세자가 전쟁 반대파이고, 왕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생각보다 전쟁터라서 DMP 흡수가 빠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인간들이 적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곧 끝난다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