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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41화 (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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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테아 언니, 밖에 같이 나가도 될까요?”

“세이나님은 감각 공유로 밖에 나가시는 게 좋지 않겠나요? 심장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런 몸으로 밖에 나갔다간 위험합니다.”

“괜찮아요. 잠깐 나가는 건.”

정말 가슴에 뭔가 뛰는 게 없기는 하다만, 그렇게 약한 건 아니다.

애초에 병약하다고 생각하는 네임드들이 잘못되었을 뿐, 뭐 게임 폐인은 병약하다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남의 감각으로 밖에 나가는 것과, 내 감각으로 밖에 나오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뒤에 난 작은 날개. 여기에 바람이 살살 부는 건 기분이 좋다. 꼬리를 휘날리는 건 아리에타 언니의 감각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내 꼬리는 특히 민감하기 때문에 느낌 자체가 다르다.

지금 입은 건 원피스에 부츠라는 조합.

이 세상 도시의 아이들이 주로 입을만한 복장이고, 르테아 언니는 다크 프리스트의 정복이다.

검은 색조에 금빛 그림이 수 놓인 옷. 허벅지 부근에 깊은 슬릿이 있지만, 관능적이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언니의 청초한 면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양옆에 무서운 스켈레톤도 있고, 개울가를 또 가보고 싶기도 하다.

“언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세이나님. 돌아갑시다. 바깥 공기에는 몸이 상하기 쉬워요. 적어도 피부에 뭐라도 바르지 않으면.”

세이나 언니가 꼼꼼하게 손과 얼굴에 뭔가를 발라주신다.

크림처럼 생긴 물건인데, 굳이 밤에 바를 필요가 있을까 싶을지 모르겠다.

“이게 뭐예요?”

“마기 차단제에요. 이 부근에는 전쟁터라서 세찬 마법풍이 불거든요.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한데 지금은 우기가 다가오는 때라 수 속성의 마법풍이 불어요.”

“아…… 그런데 저한테는 필요 없지 않을까요?”

“세이나님은 서큐버스, 속성으로 치면 꿈 속성이니 성 속성이나 희망 속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수 속성의 마법풍도 상당히 위험해요.”

음, 게임상에서도 상대 속성이라던가, 이런 걸 이용하는 파트가 레벨이 높아질수록 중요하게 여겨지고는 했다.

물론 주로 던전 공략 측 위주의 이야기. 던전 운영 측은 그저 다양한 속성 필드를 준비해서 던전을 구성하면 될 뿐이다. 인간들에게 복잡한 문제는 우리에게는 너무 간단하게 해결된다.

어쨌든 나는 자외선 차단제 같은 크림을 피부가 드러나는 곳에 잔뜩 바르고 언니와 함께 산을 올랐다.

시엘은 자연에 가까운 엘프라 쉽게 올랐던 곳이지만, 나는 자꾸만 암벽 등을 오를 때 무서워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정말 이 날개로 날려면 마력을 집어넣는다거나 해야 하지만……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밝게 웃는 르테아 언니가 나를 안아준다. 그래서 다치지 않고 개울가에 도착했다.

“와아~ 이런 곳도 있었네요. 저는 여기가 전쟁터라서 올 때는 보지 못했거든요.”

“아이들이 발견한 곳이에요, 제가 기절해있는 동안은 시엘과 타피, 소멜만 여기를 지켜주었거든요.”

“타피……”

개울가, 나는 이전에 발을 담그던 자리에 앉아서 물장구를 친다. 해는 또다시 지고, 먼 곳에서 들리던 전장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언니는 타피의 이름을 듣자마자 얕게 떨었지만, 곧바로 다시 밝은 표정을 짓고 다가와 옆에 앉았다.

“르테아 언니는 여기 오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어요?”

“음, 주말엔 고아원에 가고 평일엔 수도원에서 일했죠. 견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코미테아 도시의 모험가 조합에서 힐러로 픽업되어 이 던전에 왔어요.”

“제 던전은 어떻게 알려졌나요?”

사실 인간들의 말을 직접 물을 수도 없었고, 코미테아 도시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근처에 던전이 있을 터고, 던전 마스터도 그 안에 있겠지.

게다가 도시라면 꽤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을 것이고, 그 마스터의 이름도 코미테아거나, 그런 식일 거다. 내 던전 옆에도 도시가 만들어지면 세이나라는 이름이 붙겠지.

부끄럽다.

“전쟁 때문이죠. 갑자기 잠깐이나마 휴전을 하게 된 게, 전쟁 중에 무서운 물의 정령이 나타나 전장을 휩쓸고, 땅을 갈랐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아……”

던전 터를 알아보기 위해 왔던 때다. 그거라면 내가 기절한 3개월을 포함해, 최소 5개월 전의 이야기이다.

도굴꾼들을 내보낸 게 한 달 전쯤이니 역시 그들이 낸 소문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된 건 후회하지 않나요? 아리에타 언니에게 들었던 거, 전부 거짓말이라고 들으셨잖아요.”

“괜찮아요, 저는 어디에 가든 버려지는 존재였으니까요. 빛의 힘도 미약하고, 믿음도 약하다고 맨날 혼났지요. 별로 복수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건 아니지만, 세이나님을 만나니 좋답니다.”

“……”

네임드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운디르나 선배님이 말한 걸 들어보면, 분명히 네임드들이 반항도 하고 정말 마스터를 죽이고 그 코어를 빼앗아 힘을 갈취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마스터에게 붙는 무슨 보정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르테아 씨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거보다 더 깊은 것 같다.

“그냥 제가 어린애처럼 보여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사실 20살도 넘는단 말이에요.”

“어머, ‘어린이’의 조건은 종족마다 다르답니다. 저희 수도원에는 150살 먹은 엘프 아이도 있었어요.”

“풋……”

상상해버렸다. 할머니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단순히 엘프의 수명이 길어서 그런 거겠지.

산속에 바람이 한 번 더 불고, 그 바람 속에는 역시 습기가 조금 느껴진다.

“곧 우기가 오겠네요, 비가 죽죽 내리고 대지를 축여주는 시간이지요. 이 부근에는 풀들이 자라나고요. 제가 태어난 마을은 이 근처였어요.”

“그럼……”

“전쟁 때문에 다 태워졌지만 말이죠. 그래서 전 여기가 더 좋아요.”

그런데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르테아 언니의 말 돌리기 실력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맴돌 것 같아 다시 직구를 던져 물어본다.

“언니는 왜 내가 좋아요?”

“……보송보송하고 귀여우니까요? 귀여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아, 지금은 몬스터지만요.”

“겨우 그런 의미에요?”

“몬스터가 되고는 다른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냥 세이나님은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거든요. 서큐버스라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저도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게 시스템 보정인지 뭔지 하는 것 같다.

자꾸만 ‘쁘띠’류 몬스터들이 소환되는 것과 연관된 것 같긴 하다.

이전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 때는 온갖 증오와 인간관계의 실패를 맛본 나로써는 지금처럼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는 이 세상이 더 즐겁고 좋다.

달빛을 그대로 받으면서, 옆에 앉아 같이 발을 담그는 르테아 언니에게 기댄다.

푹신하고, 따뜻한 언니에게 얼굴을 묻으니, 언니가 편하게 무릎베개를 해 준다.

그대로 무릎 위에 누우니, 언니가 나의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내린다.

“아프신 건 아니죠? 코어 옆으로 가야 할까요? 다들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응…… 여기 조금만 더 있을래요.”

푹신하고 따뜻한 이곳, 약간의 바람이 불어와 몸을 살짝 훑고 지나가며, 귀로는 졸졸 흐르는 개울가의 소리가 들리는 곳.

마치 인간들과의 싸움이 어땠냐는 듯, 전쟁이 뭐냐는 듯, 자연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천천히 마음을 녹여낸다.

이대로 던전 운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지낸다면 좋을 텐데.

어디선가 아무도 고통받지 않고 DMP를 쭉쭉 뽑아내고 싶지만, 인간의 희생은 있기 마련이다.

행복한 상태에서는 DMP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DMP를 뽑아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간인 적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언니는 파티원들이 어땠어요? 어쌔신은 싫었죠?”

“아, 뭐 그런 사람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신의 곁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제가 죽였어요. 언니는 제가 갖고 싶어 했고요.”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고백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르테아 언니가 인간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건 내 탓이다. 내가 욕심을 부린 탓이다.

언니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내 귓가에서 떨어지는 흰 머리카락을 쓸어낸다.

“화나는 거 아니에요? 이 위치라면 쉽게 죽일 수 있잖아요.”

“아뇨, 저는 세이나님이 어떤 잘못을 해도 괜찮다니까요. 파티원들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저는 세이나님만 있으면 되니까요.”

“르테아…… 언니.”

왈칵 뭔가가 올라와서 그대로 일어나 꼭 껴안았다.

르테아 언니를 타락시킨 건 좋은 선택이었다. 그때는 다소 욕심이 있었지만,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치유되는 몬스터도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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