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 용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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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어에서 나른하게 늘어진 채로 휴식 중이다.
DMP를 너무 소비한 탓에 3395 DMP였는데, 다들 밥을 많이 먹으니 945 DMP까지 떨어졌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르테아 언니는 밥을 많이 먹는다. 분명히 많이 먹는 밥이 흉부 장갑으로 가는 게 틀림없다.
덕분에 하루에 150 DMP씩 빠져서 지금은 벌써 세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오라는 인간들은 안 오고, 세자릿수 DMP를 보면 마치 전 세계의 내 텅장이 생각난다.
“아휴……”
메뉴를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는 모습이, 다른 네임드들에겐 기분 나쁜 행위로 보였는지, 걱정을 또 사서 시엘과 소멜이 내 주변으로 다가온다.
“그런 거 아니야.”
“주인님, DMP가 너무 낮은데요.”
“…… 시엘 보였었어?”
“그야, 저희들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주인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표정으로 다 드러나고요.”
“아……”
내가 그렇게 알기 쉬운 사람, 아니 서큐버스였는지.
거울을 보고 싶지만, 없어서 아래 있는 유리 바닥에 얼굴을 비춰보니 표정이 화려하기는 하다.
시엘처럼 보송보송한 피부의 귀여운 소녀…… 아니, 이러다가 또 나르시즘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 그만 보자.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주인님. DMP 관리 권한을 주세요.”
“시엘……”
“이러다가 또 주인님이 과소비하고 저희가 굶으면 안 되잖아요.”
“후아……”
소멜도 시엘의 곁에 서서 그 푸르고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나를 힐난하듯이 바라본다.
DMP를 공유하는 방법은 메뉴에서 권한 이행에 네임드를 선택하는 공간이 나오기에 그렇게 주면 되지만, 이걸 정말 공유해도 되는 걸까?
요즘 시엘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지라 우등생 이미지처럼 변해가고 있다.
날 위해 배우는 건 감사하지만, 내 앞길을 막는 건 원하지 않는데.
“어라?”
익숙한 신호가 느껴진다. 드디어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했다.
올 때마다 신호나 느낌 같은 게 느껴지면 기분 나쁘겠지만, 무시하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게임과는 다르게, 코어에서 지도를 연 다음에 누구누구에게 권한 이행을 하는 메뉴까지 찾을 수 있었으니까.
바로 코어를 열어 바라본다. 입구 쪽에 일곱 개의 붉은 점이 나타난다.
“또 다른 인간들이네.”
“주인님, 내가 나가서 처리할까?”
“미야앗! 나도 할 수 있어!”
“소멜은 물 필드에서 배우고 있으니까 저 사람들이 물 필드까지 오면 나가도록 하고, 시엘은 최근에 주력 마법이 시간 마법으로 변한 거 알고 있지?”
“그, 주…… 주인님이 어떻게 그걸……?”
시엘은 홀로 훈련 중일 때 내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걸까?
감각 공유도 최근에 얼마 걸고 있지 않고, 그저 코어에서 연습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 마법만으로 인간들을 농락할 수 있으니까요!”
“나도 물 마법!”
“안 돼. 이쪽은 르테아 언니에게 맡길래.”
“어? 제가요?”
르테아 언니도 2층 방에서 걸레질을 하다가 돌아본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르테아 언니는 평소에 이런 식으로 수련해야 한다면서 집안일을 열심히 하신다.
덕분에 편안하고 깨끗한 던전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다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언니도 바쁘면 안 가도 되고요.”
“저, 저도 인간들을 잡을 수 있답니다!”
“언니는 너무 착해서 안 될 거에요.”
“으읏……”
르테아 언니는 다크 프리스트이지만, 도저히 생명 하나 죽일 것 같지 않다.
지금도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는 게 보일 정도다.
“이번엔 네임드들이 아니라 던전 자체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보고 싶어. 그러니까 다들 여기서 대기.”
“주인님……”
“제 필드가 있으면 저도 인간들을 괴롭힐 수 있어요!”
“미야아……”
더불어 꿈 필드에 있는 타피도 뛰쳐나가려 하기에 감각 공유를 걸었다.
‘타피도 출전 금지.’
‘네……? 어쩐지 1층에서 나오지 않기는 했는데……’
‘아리에타 언니한테 걸어서 인간들을 지켜볼 거야. 이번에는 잔챙이들이니까 던전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확인할 거니까.’
‘알겠어요…… 그러면 마스터님 머리카락 한 줌만!’
‘…… 싫어, 10분만.’
‘알았어요!’
타피는 오히려 신난 것 같다.
요즘은 모험가들에게서 얻은, 뭐 르테아 언니만 쓰던 물건이긴 하지만 샴푸를 사용해 머리를 감고 있다.
덕분에 머릿결이 좋아지긴 했지만, 꿈 필드에 갈 때마다 타피한테 많이 시달리고는 한다.
‘언니, 이번에도 저쪽 시점에서 확인하고 싶어요.’
‘응? 세이나 마스터님, 저번에는 엄청 싫어하시지 않았나요?’
‘재미있으니까요.’라고 말할 뻔하다가 입을 막았다.
이래선 정말 인간 괴롭히기를 즐기는 평범한 몬스터 같이 보일 것 같아서, 조금 둘러서 말한다.
‘그러니까…… 그래, 그냥 인간들의 시점에서 우리 던전의 상황을 살펴보고 허점이 있으면……’
‘그래서, 재미있다는 거지요?’
‘…… 네.’
언니가 미소지으며 움직이는 얼굴 근육이 느껴진다.
언니는 서큐버스이기 때문에 감각 공유에서 가장 잘 맞는다. 물론 꼬리의 민감도나 날개의 크기에서 오는 위화감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거의 나와 비슷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감각 공유를 하기에 적당하다.
키는 무시하자, 작은 거 아니까.
“그런데 어째서 온 걸까요? 옷 입은 거 보면 용병단?”
“그러네요, 대부분 찢긴 판금 갑옷을 입고. 패잔병들일까요? 얼굴이 많이 초췌해 보이네요.”
“가만히 있어도 DMP를 뿜어낼 것 같아요, 주인님.”
다들 홀로그램에 3D, 적색으로 나타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한마디씩 한다.
르테아 언니의 의견으로는 용병단처럼 보인다는데, 이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관련이 있을지.
인간들이 너무 안 오다 보니 이렇게 인간들에게 관심이 간다. 운디르나 선배님의 던전처럼 커지면 그때쯤이야 인간들을 벌레나 기생충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감각 공유를 받으시죠?’
‘아, 아, 그래……!’
곧바로 아리에타 언니의 눈으로 인간들을 바라본다.
인간들, 아니 용병들이라고 칭하는 그들은 모두 초췌하고, 패잔병들처럼 어떻게든 뭔가를 피해 온 것 같다.
갑옷이 물에 젖어서 옷을 내려놓고, 비를 피해 온 것 같다.
“하…… 이놈의 전쟁은 언제 끝나려나.”
“에크렌스 왕국이 먼저 손을 놔야지. 저 더러운 녀석들.”
“누가 프란시아 왕국에 용병으로 가자 그랬어? 어떤 놈이야? 에크렌스 녀석들 대체 그놈의 마법은 그렇게 잘 부리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에크렌스 왕국이 손을 떼야 하는데, 마법이 너무 강해서 손을 못 떼는 것 같다. 그때 르테아 언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마 저 전쟁은 곧 끝날 거예요. 에크렌스 왕국의 왕세자가 전쟁 반대파이고, 왕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거든요.’
금방 끝날 것만 같은 전쟁인데, 이렇게까지 오래 끄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더니, 승전을 올릴 것만 같아서 그렇구나.
용병단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인간들의 일에 몬스터가 끼어드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 젠장, 또 피야. 피 좀 그만 보고 싶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저번에 물의 대정령이 홍수를 일으켰던 곳인가?”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이놈아. 그럼 여기가 던전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네, 던전입니다.
아리에타 언니는 내가 동요하지 않자 감각 공유 통로로 뭔가 툭툭 건드리신다.
원래 알고 있었던 거니까 충격먹지는 않았다. 모르니까 안 왔겠지.
“던전에는 돈이 많다잖아? 용병 짓 하는 것보다 한탕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이놈아, 우리가 모험가야? 모험가들은 던전 등급 따위를 정해놓고 주파하는 녀석들이야. 던전 등급을 모르는 우리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우린 7명이야. 아무리 던전이 강해 봤자 어떻게든 되겠지.”
투구를 벗어 던졌던 용병이 일어난다. 내 던전에서 한탕 하고 가겠다는 모습이 처량하지만, 탐욕에 찬 인간답기도 하다.
뒤이어 한 명이 더 일어난다.
“그래, 이 녀석 따라서 우리 한탕 해 보자고, 혹시 알아? 보물상자라도 있을지.”
“야, 들어가면 스켈레톤 따위가 있다고, 그 언데드들을 마법 하나 못 쓰는 우리가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마법사 말고도 근접 파티도 있다고 하더군. 어떤가 자네.”
먼저 일어난 용병이 계속해서 다른 용병들을 끌어들인다.
계속해서 부추기는 모습이 이상할 정도다.
이상해서 그 주변을 집중해서 살펴보니, 꿈 마법이 살짝 돌고 있다.
‘언니, 설마 저 녀석을 조정하고 있어요?’
‘아아, 들켰네, 우리 공주님.’
‘무, 무슨…… 왜 갑자기 저보고 공주님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리에타 언니의 기습 공격에 얼굴에 열이 화끈 올라온다.
왜 남자였던 내가 공주님이라는 단어에 이렇게도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아리에타 언니가 내가 동요한 걸 알았는지 미안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미안, 미안, 우리 귀여운 마스터님.’
‘앞으로는 그런 말 쓰지 마세요…… 그래서 저 용병들을 전부 끌어들여도 절대 용병을 건드리지는 만지지 마세요.’
‘음, 마스터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녀석들. DMP 수치가 높게 나오고 있어. 용병치고는 많은 경험이 있다는 거지.’
다행이다. 오늘 저녁은 DMP 피자다.
내 던전이 얼마나 던전을 모르는 이들에게 잘 통할지 궁금한 가운데, 나는 아리에타 언니의 감각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