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4 <-- 용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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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단의 후퇴는 굉장히 빠르게, 각자의 업무를 나누어 척척 진행된다.
부상당한 이들이 중상당한 이들을 엎고 후퇴하며, 한 명은 뒤쪽을 경계한다. 중상병들을 업고 있는 쪽에서 횃불을 든다.
아리에타 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지만, 올 때부터 초췌한 얼굴로 왔던 이들은 상당히 괴로워 보인다. 던전의 흉악함이 그들에게 심한 벌을 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DMP가 필요한 법, 입구 방에 다시 스켈레톤 3기를 소환해 절망감을 더한다.
[300 DMP로 스켈레톤 3기를 소환합니다.]
“젠장, 저게 뭐야?”
“왜 죽였던 놈들이 살아나……?”
정확히 말하면 죽였던 놈들은 아니지만, 스켈레톤이니까 죽었던 뼈는 맞나?
소환된 지 얼마 안 되어 스켈레톤 킹의 휘하에 있지는 않은 녀석들이 오합지졸이지만, 죽였던 놈들이 살아났다는 착각만으로도 용병단의 마음을 꺾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
“무슨 소리냐, 빨리 방패와 검을 들어!”
“하앗……”
중상 입은 세 명의 용병은 뉘어두고, 부상당한 네 명이 전열을 이룬다.
그대로 아까처럼 돌진하지만, 스켈레톤들은 어떤 명령도 받지 않고 그저 본능대로 인간들을 공격한다. 전략을 배울 때도 배웠지만, 이렇게 본능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켈레톤과, 죽음을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며 부상까지 입은 용병들의 차이는 아무리 큰 힘의 차이도 근소한 차이로 보인다.
뭐, 실제로 저들이 전멸하는 것보다는 돌아가서 인간들을 불러오는 게 좋기는 하지만.
“너라도 살아라……”
팔이 하나 잘린 중상 입은 이가 달려들어 스켈레톤 한 기를 넘어트려 무력화시킨다.
부상 입은 이가, 빈틈을 노려 스켈레톤을 찍는다. 스켈레톤 한 기는 쓰러졌고, 다른 용병이 달려들어 확인사살 한다.
“뒤 조심해!”
다른 스켈레톤이 한기에 달려드는 걸 무시하고 있을 리 없고, 뼈 곤봉을 휘둘러 부상병 하나의 머리를 찍어 기절시킨다.
또 다른 스켈레톤도 중상에다가 스켈레톤을 무너트리며 남은 힘을 쓴, 처음에 달려든 용병에게 녹슨 검으로 등을 찍어 꿰뚫는다.
“커헉……”
“도망가! 이거 들고! 여기는 내가 지킨다.”
“미안하다…… 너희들을 두고 가서!”
부상병 둘은 중상병 둘을 업고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깥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끝까지 여기 남아 지키던 부상병 하나는, 스켈레톤 두 기에게 그저 유린되어 죽임을 당할 뿐이었다.
‘귀여운 마스터, 벌써 끝났네요.’
‘귀, 귀엽다는 말 하지 말라 그랬죠? 자, 이게 제 실력이랍니다.’
‘후훗,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딱 세이나님 같네요. 확실히 좋은 던전 마스터가 될 거예요.’
‘……’
다시금 생각나는 거지만 죽임을 당해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으면 그 사람은 부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죽음 상태는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DMP를 뽑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부활 대기 시간 동안은 던전의 회복성에 의해 시체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시체 치우지 마세요.’
‘응? 설마 미끼로 삼으려고 그러나요? 어차피 저들은 아무것도 모를 텐데 말이죠.’
‘그래도 있는 쪽이 더 절망감을 주기 좋지 않겠어요? 좀비를 만든다거나.’
인간을 타락시키는 데는 종류가 많다.
죽인 후에 타락시키면 좀비, 뼈를 발라내면 스켈레톤, 살은 살덩이 골렘 등.
생전에 동료였던 자들이 좀비로 살아나 자신들과 대적하는 건, 엄청난 절망감과 죄책감을 뿜어내어 DMP를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굉장히 무서운 던전의 면면이지만, 한편으론 우리 네임드들은 너무 귀여워서 던전의 낙차가 너무 큰 게 아닐까 싶다.
‘귀여운 마스터님은 그런 거 못할 줄 알았는데…… 제가 만들까요?’
‘자꾸 귀엽다는 말 섞으면 가서 때릴 거에요?”
‘아아, 알았어요, 이건 서비스로 만들어 드리죠. 후후’
아리에타 언니는 왜 자꾸 날 놀리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마스터인데…… 읏?
“시엘!”
“네?”
“소멜이지? 누가 내 꼬리 만지랬어?”
“미야앗? 아닌데요?”
누군가 내 꼬리를 만지기에 감각 공유를 끊고 뒤를 노려본다.
분명이 저 둘 중 하나일 텐데, 아주 시치미를 뚝 떼는 게 나쁘다.
“아아, 죄송해요, 세이나님. 그게 세이나님 꼬리였나요?”
“아……”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입을 가리면서도, 그 뒤에서 쿡쿡 웃는 르테아 언니……
그리고 그 뒤에서 모른 척 하면서 생글생글 웃는 두 아이들.
장난이 심해지기 전에 혼내야겠다. 그건 내가 잠시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 코어로 내려갈래.”
“세이나님! 세이나님, 죄송해요, 잘못했어요오오!”
“주인님!”
“마스터님~”
시간 마법으로 유리 바닥을 여는 동안 뒤에서 날 부르지만, 벌도 달게 받아야 한다.
계단을 내려오며 생각하는 거지만, 아무리 좋고 귀엽고, 친한 사이라지만 적당한 거리도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이놈의 석굴에서 빨리 네임드들을 위한 구역을 만들어야겠다.
2층의 석굴과는 달리 코어 방은 휴식처라기 보다는 조금 더 밀실 같은 분위기가 난다.
마치 어렸을 적에 숨어들던 옷장처럼, 정말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만 오는 곳이지, 내 방이라는 느낌은 잘 안 든다.
구역을 만들어주려면 DMP를 얻어야 하고, 인간들이 찾아와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 용병도 그렇고, 너무 이벤트성으로 찾아온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무리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던전이라지만, 게다가 전쟁터라지만……
그래, 전쟁을 끝내야 한다.
지금 석굴에는 없는 타피에게, 에크렌스 왕국의 마법사들을 몰살하라고 하면 편할 것이다.
DMP 획득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타피가 죽는다면, 오히려 내쪽이 손해가 아닐까?
상대를 잘 알고 보내야겠지만, 괜히 벌리지 않는 DMP를 바라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으아아, 모르겠다……”
코어 방의 흙바닥에 누워 천장의 유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시엘 등은 혼나도 되니까, 아무래도 항상 내 마음을 치유해주던 르테아 언니까지 시엘의 장난에 어울렸을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야.
분명히 시엘에게 매수당해서 그런 거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코어 방의 아늑한 흙이 머리카락에 묻는 걸 느낀다.
묻으라지, 털면 되니까. 긴 머리카락은 이럴 때면 괜히 걸리적거린다.
그런데 내 머리카락 정말 희다.
손을 들어보면 손가락도 작고 희다.
꼬리는 검고 윤기나고, 살랑살랑 움직인다. 정말 나라도 다른 이였다면 만지고 건드리며 갖고 놀았을 것 같다.
“후……”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걸자, 타피가 멈칫하다가 받는다.
타피는 꿈 필드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당황한 마음이 느껴지고 뭔가 숨긴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타피와 연락하는 일이 적고 만나는 일도 적어서 마음이 멀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 숨긴 게 뭘지 궁금하면서도 일부러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 생활은 중요한 법이니까.
‘타피, 뭐 하는지 안 물어보고, 안 혼낼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
‘그, 그그래요. 마스터님. 무엇을 원하시나요?’
‘인간 마법사들, 암살할 수 있을까?’
‘음…… 제가 할 수 있는 한 하고 올게요!’
타피의 확신이지만, 정말 전쟁 마법사들의 사이에 집어 던져도 괜찮을 지 의심된다.
르테아 언니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래도 당분간 이 방에서 나가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다시 타피에게 내리려던 명령을 그만둔다.
‘아니, 잠깐 생각만 해 두렴.’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
다시 타피와의 감각 공유를 끊고, 코어의 온기를 느끼며 잠시 정신을 놓는다.
DMP 메뉴를 열어보니, 10491 DMP가 푸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있다.
던전 구역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인간을 죽여서 만들어낸 DMP의 양은 상당하다.
그래도 살아있는 자를 타락시키며 뿜어져 나오는 5000 DMP와 모험가들을 극한으로 괴롭혀 뽑아낸 DMP를 포함한 1만쯤 얻었던 저번과는 다르지만, 용병들도 상당한 절망을 안고 갔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대충 용병 한 명을 죽였을 경우엔 2000 DMP쯤 되지 않을까? 용병들이 생각보다 실력자라고 했던 만큼 꽤나 가산치를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타락시켜 좀비로 만드는 쪽에서는 DMP가 생성되지 않는다.
메뉴를 열며 옆에 던전 홀로그렘 지도를 켜자, 아리에타 언니가 있는 쪽에 있던 붉은 점 세 개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점이 푸른 색으로 변해간다.
역시 그 과정에서 DMP는 형성되지 않는다.
“벌써 좀비가 완성된 건가?”
뭐, 확인하는 방법은 지도를 보는 것도 있겠지만, 직접 보는 방법도 있다.
바로 감각 공유를 아리에타 언니에게 건다.
‘언니, 벌써 끝난 거예요?’
‘그래, 한번 확인해 볼래?’
‘아니, 별로 입맛 없을 것 같아요.’
‘그 입맛 없는 건 내가 만들었는데?’
‘미안해요, 언니.’
그래도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홀로그램으로 보면 충분하다.
누운 상태로 반짝반짝 보랏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코어를 배경으로 홀로그램을 바라보면서, 위쪽에 나를 놀린 세 명이 후회할 때까지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