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 용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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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코어가 있는 방에서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올라가면, 다들 반쯤 울먹인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길래 꼬리 만지지 말랬잖아!”
“다시는 안 만질게요…… 주인님……”
너무 침울해 보이는 시엘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잠이라도 자면 실컷 만질 텐데, 잠을 안 자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런데 던전 코어의 주인이 잔다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도망간 용병들이 어떻게 행동할 지 궁금하다.
악마의 눈이라던가, 그런 게 있었다면 붙여서 확인이라도 할 텐데 그런 기능은 지원하지 않ㄴ는다.
분명히 동료 관계가 좋았던 만큼 다시 돌아올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다.
전멸하지 않고 휴식하면, 이 세상에는 포션 따위가 있으니 완전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회복을 할 수 있을 터다.
“세이나님……”
“왜요, 언니?”
“죄송해요, 만지는 거 싫어하실 줄은 몰랐어요.”
“뭐……”
꽤 시간이 지났는데 르테아 언니는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시엘은 사과를 받아주자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소멜과 장난 중이다.
약간 씁쓸함이 남기는 하지만, 용병들에게 DMP도 상당량 벌었으니 일단은 파티다.
“다들 해변 필드로 올라가자.”
“”네!””
르테아 언니도 조금 움찔거리다가 방긋 웃는다.
그 파티에 있었을 때는 항상 침울하고, 뭔가 억눌려있는 듯 불안해 보였는데 우리 던전에 오게 되어 밝아졌다.
잠시나마 보라색 피부의 다크 프리스트가 되었을 땐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지만, 이전 기억도 남아서 인간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1층으로 가는 계단으로는 소멜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시엘은 내 옆에 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는다.
여리고 말랑말랑한 피부끼리 맞닿으니 이보다 기분이 더 좋을 수가 없다.
“하아…… 이게 바로 천국이야.”
“주인님~ 꼬리 안 만질 테니까 오늘은 코어로 내려가지 마세요?”
“응, 절대 만지면 안 돼.”
소멜도 앞에 있고, 르테아 언니는 다시는 안 할 테니 다시 꼬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꿈 필드에서 지내던 타피도 우리가 나온 걸 확인하고는 해변 필드로 나왔다. 활짝 웃으며 달려와서는 나를 뒤에서 안으며 머리카락 냄새를 맡는다.
코어의 흙바닥에 누워있어서 그런지 먼지가 날려 콜록거린다.
다행히도 해변 필드는 우리 모두가 나와도 크게 문제 없는 필드다. 뱀파이어도 낮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타피는 그저 둔해질 뿐이고, 해변 필드의 태양은 인공 태양이라 문제도 없다.
몬스터들에게 기분 좋은 인공 햇볕이 드는 가운데, 나는 DMP 메뉴를 열어 음식을 주문한다.
[30 DMP를 소비해 피자 3판을 주문합니다.]
[20 DMP를 소비해 치킨 2마리를 주문합니다.]
DMP 메뉴 주문은 세트라서 콜라가 같이 온다. 인간 시절에는 콜라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지금은 입안과 혀가 민감해져서 그런지 콜라가 너무 자극적이다.
타피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콜라를 싫어하지만, 르테아 언니와 시엘이 좋아한다.
자연의 맛이 난다나 뭐라나.
아리에타 언니는 좀비를 만들고 난 참인지 옷과 몸이 더러워져서 바다 속에 몸을 담근다.
왜 바다에서 몸을 씻느냐면, 실제로 여기 물은 바다라기보단 맹물에 가까운 물이다.
제작 가능한 필드 중에는 바다 필드도 있지만, 여기는 해변 분위기만 나는 물 필드니까 그렇다.
아리에타 언니가 목욕이 끝난 다음에는 제발 면적이 넓은 옷을 입어주었으면 좋겠다.
“미야아! 언니! 청소 할게요!”
“소멜, 이쪽으로!”
인간형의 소멜도 달려들어 풍덩 빠진다.
몸을 씻어내는 아리에타 언니와 함께 물놀이를 한다.
실제로 물의 서큐버스이기도 한 아리에타 언니는 물보라를 현란한 방식으로 일으킨다.
소멜도 마찬가로 다양한 물보라를 일으킨다. 어디서 본 건지 용모양 물보라를 일으키는 건 장난이 아니라 다소 진심으로 보이긴 한다.
해변에서 피자를 뜯으며 원래 해변에선 이거 말고 다른 것도 먹었었지 하며 떠올린다.
인간 시절에는 물회나 대게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과메기도 먹고 싶다.
하지만 기호 식품으로 분류되는 이것들은 음식 주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야 있다. 간식도 마찬가지다.
메뉴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격 순으로 진열된다. 즉 비싸니까 주문하기 아깝다는 이야기.
“타피, 너무 오래 붙어있는 거 아니니?”
“스읍, 흐으~ 마스터의 향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싶어요.”
“하아…… 시엘도 그러면서 슬슬 다가오고 말이지?”
“주인님은 제 거라고요!”
나는 또 이 두 아이들에게 피부접촉을 한 채로 널려있다.
어떤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접촉이지만, 내 종족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인간 시절에 남자였어서가 아니라, 아무하고나 붙어있어도 가끔은 충동이라고 할지, 그런 게 올라와 몸이 살짝 더워진다.
외모가 어린 서큐버스가 아니었다면 필히 범죄적인 분위기가 났을 것이다.
거울이라도 있었다면 눈이 배로 행복했을 텐데, 뭐 뒤와 옆에 부들부들한 아이들이 있으니 기분은 좋다.
르테아 언니도 피자와 치킨을 뜯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맛있게 먹는다.
타피만큼은 아니지만 르테아 언니도 참 많이 먹는다. 이걸 주문하고도 다 먹고 나면 또다시 4인분은 더 주문해야 한다.
여자는 간식 배가 있다고 하던가, 배부른 상황에서도 들어가는 달콤한 간식들은 불가사의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게 나한테도 적용되지만, 음, 아무튼 배부른 속에 들어간다는 게 신기하다.
타피도 앞에서 계속 쩝쩝거리며 먹다 보니, 배가 고픈지 내 등뒤에서 나와 피자를 집어 올려 먹는다.
“으……”
“캬아아!”
“으흐으읏?”
“르테아 언니도 타피랑 친해질 때가 됐잖아요?”
타피가 한번 더 위협하자 르테아 언니는 땅이라도 파고 숨어들 듯이 도망친다.
한숨을 쉬고는 다시 먹는다. 두 명은 같은 꿈 정수에서 나왔는데, 꿈 필드도 두 개로 갈라야 할 것이다.
다 씻고 물장난을 치고 나온 건지 두 명이 물에서 나와 몸을 닦는다.
휘장을 수건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아무리 봐도 명답이었던 것 같다.
“아리에타 언니, 조금 더 가리는 옷으로 입으면 안 될까요?”
“아, 응, 알았어!”
“미야아아?”
소멜은 물장난을 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쓴 건지, 다시 메로우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대로 공중을 날아와 시엘이 건네주는 치킨을 뜯어먹는다.
메로우는 초식 아니었을까?
DMP 포인트를 오랜만에 낭비하며 파티를 벌이자, 시엘의 눈치가 점점 심해진다.
다들 즐기는 분위기인데, 시엘은 아무래도 내가 너무 낭비하는 게 아닌지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마스터인 내 볼살을 집어 당길 필요는 없잖아…… 아야.
“주인님, 잠깐 이야기좀 해요.”
“이거 놓고 이야기하던가! 아파!”
“알았으니까요.”
시엘에게 손목을 잡힌 채로, 잠깐 무리와 떨어졌다.
역시나 시엘은 DMP의 벌이보다 씀씀이가 크다는 역설을 하면서, 아리에타 언니처럼 엄청난 잔소리를 시전한다.
요즘엔 아리에타 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적은 거의 없는데, 시엘이 그 역할을 받아간 건지.
“주인님, 알았어요? 인간들이 기생충마냥 위쪽에 마을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낭비하면 안 되요.”
“알았어…… 그래도 용병들은 또 올 거라고.”
“진짜 아는 거죠?”
게임상에서는 네임드 기능이 없었으니만큼 호감도로 빠져나가는 DMP는 신경쓰지 않았었다.
지금 보니 벌써 200 DMP정도 낭비하고 있었고, 이는 스켈레톤 두 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일반인, 그러니까 아무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 죽을 때까지 내는 DMP의 양은 100이에요. 이것도 알고 계시죠?”
“그, 그런가……”
“후, 주인님이 지금 DMP 획득에 대해 아는 게 뭔가요?”
“그야……”
게임 속에서는 그저 점점 강력한 던전 공략 측이 왔고, 던전 운영 측은 그에 맞춰 강한 던전을 만들기만 하면 되었었다.
그래서 작은 DMP로 높은 난이도를 만드는 법에는 통달하고 있었지만, DMP획득에도 법칙이 있는 줄은 몰랐다.
“없네, 헤헤.”
“그래요, 일반인이 내는 DMP는 100, F급 모험가가 내는 DMP는 1000이에요. E급은 2000. 그 이후로는 등급 하나당 2배씩 높아져요.”
“그거 최대로 내는 거 말하는 거지?”
“그래요, 용병들은 한 명당 2000 DMP나 냈으니 E급 모험가에 비견될 정도였지요. 그렇다고 딱딱 저렇게 나눠지는 건 아니지만요.”
“시엘은 똑똑하네.”
시엘이 그 말에 만족한 듯 헤실헤실 웃으며 달려든다.
그 황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턱 밑을 살짝 긁어주었다.
마치 고양이처럼 눈까지 웃으며 행복해 하다가, 갑자기 이게 아니라는 듯 눈을 확 뜬다.
“아니잖아요! 주인님은 혼나야 할 시간인데.”
“잠시……”
순간 익숙하면서도 등골을 기는 섬뜩한 느낌이 든다.
용병들이 벌써 전열을 가다듬고 침입했다. 아니, 또다른 인간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