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 전쟁을 멈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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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눈앞에 있는 환자, 다리를 잃고 고통에 신음하는 자가 끙끙거리며 누워있다.
감각 공유는 르테아 언니의 시선, 나보다 훨씬 높은 시선에서 바라보는 땅은 이전처럼 멀었다.
르테아 언니의 키는 165cm 정도인데, 옛날 내 키가 173cm이었으니 대략 조금 낮은 정도.
하지만 인간 시절의 감각은 벌써 희미하게 잊어버리고 시선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후……”
아무도 없는 코어 방에서 한숨을 쉬고, 허공을 바라본다.
다시 르테아 언니의 감각에 집중한다. 키는 언젠가는 크겠지.
언니의 앞에 있는 환자, 그 환자의 옆에는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DMP를 흡수하고 있다.
“생각보다 DMP 회수가 좋은데.”
“타피! 그런 말 대놓고 하면 안 되지.”
“아아, 아프겠네요. 열은 어떤가요?”
르테아 언니가 보는 환자는 딱 보기에도 근육질에, 아픈 건 어금니를 깨물어 삼킬 듯한 건장한 인간이다.
대놓고 하기 싫은 마음이 느껴지는 걸 보니, 르테아 언니도 몬스터의 악한 마음에 물든 게 아닐까 싶은 정도. 뭐 인간을 싫어하는 건 몬스터의 공통된 마음이니까 그렇긴 하다.
“[회복]. 앞으로 많이 다치진 마세요.”
“아아……. 고통은 없는데, 다리는 나지 않습니까?”
“그건, 수도에 가서 돈 내고 하세요. 여기는 야전병원입니다. 그런 고수준의 프리스트는 없어요!”
르테아 언니는 딱 잘라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르테아 언니의 마력으로는 완전 회복까지 가능하다.
물론 빛 속성 몬스터를 제외한 기준, 이전의 빛 속성 마력이 지금은 대부분 어둠 속성 마력으로 대체되었기에 공용 수준의 마법을 제외하면 쓸 수 없다.
“힝, 재미없어. 왜 여긴 전쟁 마법사가 없는 거야.”
“타피, 인내심을 갖고 있어야지. 어차피 역병이 시작되면 모두 죽어버릴 테니까 말이야.”
“그래도…… 먹을 거에 독이라도 탈까?”
어린 아이들이 이상한 말을 대놓고 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한다.
말을 하고는 시엘이 그때그때마다 시간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 마법의 잔향이 남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자기방어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시간 마법은 특수 스킬로도 분류되지만, 극상의 마법이기도 하다.
레벨로 치면 150 이상의 마법사나 몬스터들이 와서 확인하지 않으면 그저 ‘어떤 마법이 사용되었구나’ 정도의 잔향만 느낄 수 있고, 그런 수준의 마법은 치유 막사에는 수십 번도 넘게 활용되고 있다.
“자, 다음 분!”
“여기, 여기도 일손이 부족해요, 프리스트 선생!”
“예! 가겠습니다.”
르테아 언니는 인간 시절에는 이런 느낌의 열혈 간호사 같은 느낌이었을까?
물론 간단한 치유로 마력을 아끼면서, 역병을 퍼트릴 보균자를 찾기 위한 사악한 움직임이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비실비실해 보이는 이의 앞에 오게 되었다.
“언니, 이 사람이야?”
르테아 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타피도 그 멀대같이 생기고 비실비실한 마법사를 바라본다.
확실히 용병이나 병사에 비하면 근육량이 부족하고, 아픔에 신음하는 정도도 크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DMP의 양은 상당하다. 실력자라는 이야기고 레벨로 치면 르테아 언니만큼은 될 것이다. 모험가라면 D급은 될 것이다.
모험가 등급에 대해서도 언니에게 들은 거지만, 레벨에 따라 분류하면 거의 맞다고 한다.
1레벨은 F등급
10레벨은 E등급
40레벨은 D등급
80레벨은 C등급
120레벨은 B등급
160레벨은 A등급
더 위가 있냐고 물었지만, 사실상 인간이나 아인종 수명으로는 160레벨 근처가 한계라고 한다.
그만큼 위로 올라갈수록 경험치의 필요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140레벨 이상 되는 레벨을 가진 사람들은 경험치 캡슐이라는 걸 이용해 올린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그 캡슐을 이용할 만큼 금수저들만 높은 레벨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수명이 짧은 편인 드워프나 인간들은 전성기 때 경험치 보정을 받아 다른 종족에 비해 레벨업이 빠른 편이고, 출세도 빠르고 빨리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 레벨업이 그렇게 더딘 걸지도 모른다.
물론 던전 마스터를 네임드나 인간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건 아리에타 언니에게 들은 것이지만, 애초에 던전 마스터 자체가 전 세계에 300명도 안 된다고 한다.
표본이 워낙 적고, 각자의 삶을 살아 비밀의 존재로 숨겨지는 일이 많기에 조사해서 통계를 낼 수도 없다.
딴소리가 길어졌지만, 르테아 언니의 감각 공유에 집중하니 마법사에게 [어둠의 치유]를 걸고 있었다.
공통마법인 [회복], [치유]가 아닌 [어둠의 치유]. 어둠 속성에 익숙지 않은 인간이라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 공격이 되는 마법이다.
예전 세계로 치면,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 암세포가 생성된다는 느낌의 마법이다.
“끄아아아악!”
“날뛰지 마세요! 손가락이 없으면 마법을 쓰기 힘들죠? 손가락을 다시 나게 하는 마법이랍니다?”
“으흐으읏, 으흐그그 으하아아악!”
전쟁 마법사는 누운 자리에서 날뛴다.
견습 프리스트로 분장한 아이들이 마법은 쓰지 못하고 팔다리를 누른다.
전쟁 마법사는 아이들의 힘에도 눌릴 정도로 약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네임드라서 엄청나게 강하기에 눌린 채로 있을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가락은 부작용 없이 낫게 되었다.
“다, 다다, 당신, 다크 프리스트지! 모두에게 말하겠어!”
“어머, 후후, 무슨 소리 신가요? 당신의 손가락. 나았잖아요?”
“무, 무무 뭐야…… 이건 내 손가락이 아니야!”
전쟁 마법사가 소리 질렀지만, 그 정도로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는 다른 회복 직업군에서도 치유할 때 나오는 법이다.
남자의 잘린 검지가 다시 자라난 것도 전쟁터에 올 법한 고수준의 프리스트라면 가능한 수준. 전쟁 마법사는 손가락 때문에 온 건 아니지만 자기 손가락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감사한다.
하지만 검지의 크기가 너무 작아 아기 손가락처럼 난 건 조금 무섭게 보일 정도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아파서……”
“다시 누우세요, 당신, 열병 때문에 온 거잖아요. 쉬어야 낫는답니다. [회복]”
“으읏…….”
르테아 언니의 옆에 빛이 가득한 착각이 느껴지고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함께한다.
그러자 전쟁 마법사는 르테아 언니를 바라보고 영원한 안식을 얻은 듯, 표정이 밝아진다.
분명히 르테아 언니의 시점으로 보고 있을 텐데, 르테아 언니의 기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타피, 약을 놔 드리렴.”
“네, 언니.”
르테아 언니의 옆에 있던 빛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을까,
타피도 방긋방긋 웃으며, 어둠으로 약을 만들어 전쟁 마법사의 입으로 삼키게 한다.
딱 보기에도 불길한 물건이지만, 전쟁 마법사는 르테아 언니를 보며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했다.
“자, 다음 환자요.”
“프리스트 선생은 실력이 좋구만, 견습들도 얌전하고…… 애송이들일 줄 알았는데 잘못 봤어.”
“선생님, 여기도……!”
르테아 언니는 다른 의미로 금세 야전 병원에서 유명해진 것 같다.
분명히 어둠 마법과 꿈 마법 슬쩍슬쩍 드러날 텐데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전쟁 마법사도 있을 텐데, 그보다 더 강한 용병 마법사들도 있을 텐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르테아 언니를 천사나 신이 내린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지만, 몬스터가 인간들의 사이에서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건 신기하기까지 하다.
뭐 다크 프리스트라 반인반마, 그런 존재로 봐도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언니는 여러 병사를 치유하고 다녔고, 그날 저녁 고급 숙소를 배정받아 쉬게 되었다.
일이 끝나는 시점에는 엄청난 마력 부족이 느껴졌다. 나까지 마력 갈증이 느껴질 듯해서 타피의 시점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미야아…… 언니, 마력은 괜찮아요?”
“[오라] 마법을 계속 쓰고 계셨잖아요, 푹 쉬세요.”
역시 그런 마법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르테아 언니는 고개를 젓는다. 밝게 웃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많은 마력을 쓴 탓인지 눈 밑에 그늘이 보일 정도다.
소멜은 인간형을 오래 유지한지라 메로우 폼으로 변신해 르테아 언니에게 안긴다.
마력을 회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음의 안정을 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으하하, 인간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내가 만든 역병약을 먹었어.”
“타피, 잘했어~”
“으으, 시엘…….”
시엘은 타피를 꼭 껴안고 뺨을 서로 맞대고 문질문질한다.
두 소녀의 맨들맨들, 보드라운 뺨이 서로 맞닿아 기분이 좋다.
마치 내 뺨 같은 느낌…… 지금 만져도 말랑말랑한 반죽처럼 부드럽다.
타피는 처음에는 싫어하는 듯 떼어내려다가 머리카락 냄새를 맡고 안정을 취한다.
첫날의 잠입, 그리고 역병을 퍼트리는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인간들은 사실 악마가 왔는지도 모른 채, 치유 받은 이들은 모두 성녀나 천사가 왔다 갔다고 기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