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1 <-- 전쟁을 멈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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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엘과 감각 공유를 하고 있다 보면, 바람이 불어오며 정보를 전해온다.
정확히는 바람을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안다’는 쪽에 가까운 감각.
머릿속에 전장의 모습이 그려지는 동안, 일어난 시엘은 소멜과 타피까지 깨운다.
성벽 밖에선 프란시아 왕국의 병사들이 하나같이 투석차에 바위를 올린다.
옆에 선 병사들이 끈을 확 당기고, 투석기 오목한 부분에 들어온 바위가 있는 곳에는 끈 하나가 버티고 있다.
끈을 확 자르자, 장력이 끝까지 당겨진 끈이 뚝 끊어지며 거대한 바위가 성벽으로 날아온다.
성벽은 자갈 따위로 만들어져 금방 부서진다. 원래 급급하게 만들고 보완한 성벽이라 그런지 연약하다.
“전쟁 마법사들이여! 상대 투석차와 발석거에 화염을 작렬하라!”
“헤에엣!”
어젯밤 돌았던 역병으로 인해, 힘이 빠진 전쟁 마법사들은 힘없는 상태에서 짜내어 대답한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확인할 수 없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색색거리는 숨소리, 그리고 거친 얼굴의 형태를 보면 상당히 고생했다는 건 알 수 있다.
마나, 즉 정신력을 고도로 써야 하는 작업에는 적당한 휴식이 중요한 법인데, 이 마법사들은 전부 하나같이 역병이 걸려 죽어가는 와중에도 병사들에 의해 끌려와서 성벽 위까지 오른다.
그냥 보기에도 초췌한 상태인데, 역병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일부러 마법진이 그려진 곳까지 끌어올린다.
전쟁 마법진, 다양한 마법사들이 미리 그려진 마법진 위에 한데 모여, 각자의 주문을 외고 자신의 모든 마력을 짜내 만드는 것으로 전장에 사용하는 거대 마법이다.
이건 르테아 언니에게 들은 것이고, 실제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마법의 조건은 무엇이고 어떤 형식으로 그리는지는 모른다.
“타피, 옷이 그게 뭐야?”
“아…… 맞다. 헤헤. 주인님이 허락한 옷이거든요.”
“아니, 빨리 견습 프리스트 정복을 입자, 갑자기 여기 들이닥칠 수 있으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그러던가, 밖에서 쿵쿵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 안에 사람 있어요? 치유사들은 야전 치유사를 제외하고 후방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입니다!”
“조용해요, 저희는 야전 치유사입니다!”
실제로는 야전 치유사가 아니라, 양측에서 DMP를 뽑아내기 위해 남는 거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은 전장에서 나타나는 마력의 흐름을 품고 있다.
전쟁 마법진은 위력이나 크기만큼이나 유니크한 몇 개의 마법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시전하는 마법사들의 마력을 전부 짜내는 만큼 매우 거대하고 엄청난 마력이 모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마력이 전부 모이지 않으면, 마법진 자체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마법진에 마력이 평소 보다 모이지 않자, 빛은 일부 지역만 빛날 뿐이고, 그 어떤 마법도 나타내지 않는다.
밤잠도 설치고, 회복도 안 된 전쟁 마법사들이 제대로 마법을 짜낼 리도 없고, 짜낸 마법사들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쓰러져 마법진 위에 쓰러진다.
“이 비실이들아! 빨리 마법진을! 벌써 저 녀석들의 투석기가!”
“으악! 빨리 돌에서 피해!”
프란시아 병사들은 이번에는 꽤나 공성 준비를 많이 한 듯 보인다.
투석기도 상당히 많고, 발석거도 꽤 많다.
분명히 숨어들어온 간첩이 있을 터고, 밤사이에 전쟁 마법사들 사이에 역병이 돈다는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타피, 혹시 네가 프란시아 왕국에 알렸니?”
“아니, 아닌데?”
“지금, 밖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어, 벌써 망루에서 인간들이 튀어나와, 에크렌스 왕국 사람들을 찌르고 있네.”
“빨리 가서 DMP를 회수하자!”
타피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백의의 견습 사제복을 입은 타피의 모습은 어제와는 달리 천사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아이들이 묵고 있던 고급 막사로 돌덩이가 하나 날아와 정면으로 박힌다.
“꺄아앗!”
“괜찮아?”
“콜록, 콜록.”
“미야아앗! [정화]!”
다행히 막사가 돌을 깎아서 만든 부분이라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먼지가 천장에서 떨어진다.
중간에 들린 소멜의 주문에, 갑자기 공기청정기라도 튼 듯 시야가 맑아지고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해진다. 소멜의 [정화]는 몬스터의 영혼 정화된다는 이름의 정화와는 달리 더러움을 정화시킨다는 의미라서 내심 다행이라고 여긴다.
곧바로 눈에 들어온 건 천장에 뚫린 구멍을 메우는 거대한 암석과, 그 암석을 중심으로 갈라진 틈이다.
“빨리 이 방에서 나가자, 다들 깔려 죽기 싫으면.”
“진짜 죽으면 [부활]할 수 있도록 가까이 붙어있어!”
“타피, 먼저 가. 그리고 시간 마법은 최대한 아끼고.”
아이들은 타피를 선두로 밖으로 대피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엘에게 바람으로 정보가 전해져 온다.
마법사들은 피를 토하며 역병을 마법진 위에 잔뜩 뿌렸고, 결국 마법진은 피로 젖어 피의 마법진이 되었다.
보통 마력을 쏟아서 만드는 마법진에 피가 가득해지자, 재물을 받은 마법진은 그대로 검은 빛을 내며 발동한다.
전장의 엄청난 혼란과 고통의 목소리가 울리며, 시시각각 하늘이 불길한 듯 검게 변한다.
“저게 뭐야……?”
“와, 완전 이쁘고 기분 좋게 보이는데?”
“피해라아아아아! 악마의 마법이다!”
옆에 있던 멀쩡한 병사가 당황하여 소리치며 달아난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는 검은 구름이 모여들면서, 엄청난 뇌우를 동반한 비바람을 쏟아낸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바위가 빗발친다. 전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엄청난 DMP가 쏟아져 나온다.
“타피, 천천히 주워, 내가 더 많이 주울 거거든!”
“뭐? 시엘, DMP 줍기 내기냐?”
“미야아앗! 나도!”
“얘들아!”
하지만 아이들에겐 행복의 시간이다.
엄청난 DMP가 우리 몬스터에겐 황금 가루의 모습으로 보이고, 아이들은 그 황금 가루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가 흡수한다.
하늘에서 빗발치는 뇌우는 피아를 식별하지 않고 마구 떨어진다.
병사들이 죽고, 대학살이 일어난다.
시엘은 이제 바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 전장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른다.
그저 혼란과 비명뿐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불길이 막사 곳곳에서 올라오고, 성벽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와아아아아!”
“마법에 의존하던 녀석들이 멸망했다! 치유사들은 회수하고 병사들은 죽여라!”
적장인지, 목청이 매우 큰 프란시아식 발음이 들린다.
나는 누구의 시점으로 봐도 DMP를 회수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아, 르테아 언니 쪽으로 연결했다.
‘아이들은…… 괜찮나요?’
‘네, 다들 강하니까 문제 없어요.’
‘납치당하지는 않겠지요? 저는 못 따라가겠어요. 다들 빨라요.’
다들 혼란 속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당황과 방황을 하는데, 이 전장 속에서 아이들을 찾는 정도로 가볍게 당황한 건 오로지 르테아 언니일 뿐이다.
주변에 날뛰던 병사들은 프란시아 사람인지, 에크렌스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붉은 피를 휘두른 휘장을 두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르테아 언니를 확 낚아챈다.
“흐흐, 이쁜이, 나와 함께 하자고.”
“무슨 변태가, [다크 라이트]”
“윽……!”
‘아, 기분 나빴어요.’
옷을 훌훌 터는 르테아 언니를 낚아채려던 인간은, 심장에 어둠의 창을 직격당해 쓰러진다.
주변에는 다양한 병사들이 싸우고 있다. 외침과 고동이 마구잡이로 들린다.
막사들이 가득한 이곳에 가득 찬 병사들, 그리고 피의 마법진에서 랜덤하게 떨어지는 낙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기분 나쁘게 프리스트의 정복을 적시자, 다리 피부가 살짝 드러난다.
‘세이나님, 아이들은 정말 괜찮지요?’
‘응응, 괜찮아 괜찮아. 다들 감각 공유를 한 번씩 걸어서 확인 중이니까.’
그리고 전투가 얼마간 지속한 건지 모르지만, 수십 분은 계속해서 혼란스러웠다.
어떤 장수가 소리 높여 소리 지르고, 하늘에 가득한 검은 구름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승리했다! 드디어 에크렌스 마법돼지 놈들을 물리치고 이 성벽을 되찾았다!”
““우워어어어!””
몇몇 병사들이 다들 검을 높이며 소리 지른다.
일부 병사들은 휘장을 뜯어버리고 항복하며, 또 일부는 완전히 죽은 프란시아 병사의 갑옷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끝까지 용맹하게 싸웠던 자들은 얼마 되지 않으며, 모두들 제 살길을 찾아 헤맨다.
물론 르테아 언니의 시점으로 확인하는 거지만, 용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시엘이 가장 먼저 바람을 타고 돌아와 피투성이 정복을 입고 있는 르테아 언니에게 안긴다.
“언니~ 돌아왔어~ 언니한테 주인님이 있지? 쪽-“
“읏으으?”
방금 내가 낸 소린지, 르테아 언니가 낸 소린지 모르겠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화끈거려서 나는 어떤 말도 뻥긋거릴 수 없었다. 르테아 언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엘도 부끄럽기는 한지, 얼굴에 약한 홍조기가 돌며 르테아 언니를 바라본다.
시엘의 황금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주인님! 나 오늘 13500 DMP나 모았다!”
“아아, 저는 못 모았는데……”
“괜찮아요, 르테아 언니는 우리가 이 작전을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줬으니까요.”
‘DMP를 벌러 간 게 아니라 에크렌스 왕국을 몰아내기 위해 간 거잖아요.’
“그그…… 그렇죠. 휴……”
시엘도 마찬가지로 검뎅과 피투성이가 된 흰색 정복을 입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지고 있었다.
물에 잔뜩 젖어버린 무거워 보이는 몸, 그리고 머리카락은 피부에 딱 들러붙었다.
전쟁 중에 피해당한 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굴에 미소를 지어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완화된 기분이다.
“미야아아! 언니, 더러워! 헤헤, [정화]”
“어어……?”
시엘과 르테아 언니의 옷이 깨끗해지고, 몸에 들러붙던 피투성이 정복은 다시 백의의 프리스트 정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 같은 세 자매에게 다가오는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뒤에 조심해……?’
========== 작품 후기 ==========
개인사정때매 4연참밖에 하지 못하니까 슬프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