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속 서큐버스-52화 (52/95)

00052 <-- 전쟁을 멈춰라 -->

=========================================================================

뒤쪽에서 나타난 우락부락한 남자의 그림자.

전장에서는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람도 많으며, 피의 마법진 때문에 그 공간에 가해지는 부의 기운은 상당히 강했다.

우리 몬스터들에겐 너무나도 편안하고 아름다운 선혈의 곡조일 뿐이었지만, 그 기운을 마신 마음 약한 인간들은 광기에 서려 주체하지 못하고 주변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기 시작한다.

검은 먹구름이 개었지만, 피의 마법진에 영향받은 이들이 한둘은 아니었다.

우리 네임드들 뒤에서 거대한 할버드로 휘두르는 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들은 단속하고,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승리를 외쳤던 프란시아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기 시작했고, 다시 전장의 소음이 간헐적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윈드 프레스]”

“언니……!”

시엘이 뒤늦게 발견하고, 휘두르는 할버드를 향해 반사적으로 바람 마법을 날렸지만, 할버드의 엄청난 무게에서 오는 관성은 바람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밀려들어 왔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마법을 쓴 시엘이 아니라, 손이 비었던 당황하는 소멜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여태껏 건 적 없었던 도발이었다. 소멜은 쉽게 받아들였고, 소멜의 푹신푹신하고 말랑한 감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마스터님?’

‘소멜, 시간 정지를 빨리, 르테아 언니를 살려야 해.’

‘미야앗! 알겠어요!’

할버드의 날 부분이 르테아 언니의 등에 닿기 직전에, 소멜이 시간 정지를 써서 주변 공간을 물들인다.

소멜의 시간 정지는 시엘처럼 정교한 건 아닌지라 자신 외에는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소멜은 낑낑거리며, 세피아 색 빛깔이 점점 사라지기 직전에 르테아 언니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시간 정지를 푼다.

역시, 익숙하지 않은 시간 정지 마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고, 간신히 르테아 언니가 할버드의 궤적을 벗어나자 바람을 가르며 바닥에 떨어져 박힌다.

“크하앗……”

“미야아앗? 언니, 괜찮아요?”

아무리 이성을 잃고 날뛰는 짐승이어도, 당장 눈앞에서 목표가 사라지면 놀라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목표가 순간이동을 해서 저 멀리 떨어져 있다면, 마법이 익숙한 이 세상의 인간들은 순간이동에 쓰이는 거대한 마력을 모르는 건 아니고, 순간적으로 짐승에게 이성이 돌아오게 만든다.

“뭐지……?”

그리고 풍압에서 오는 힘의 차이에서 오는 본능적인 위협도 느낀 것 같다.

상대는 단순한 프리스트가 아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사실까지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시엘은 르테아 언니를 죽이려 한 그 남자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다음 마법을 준비한다.

“[윈드 에로우]”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바람의 화살, 위력은 시엘의 강한 만큼이나 강하고, 주변에 날리던 파편을 전부 날려버리고 일대 30m 정도를 초토화시킨다.

그 화살을 맞은 습격한 남자는 심장이 뚫리는 것뿐만 아니라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손 일부와 발 일부를 남기고 사라진다.

할버드는 나무 부분은 완전히 찢어지고, 쇳덩이 부분이 저 멀리 날아가 벽에 꽂힌다.

“언니! 괜찮아요?”

“으응……”

시엘은 그 마법을 쓰고도 힘들지 않은 듯, 가벼운 한숨을 쉬고 르테아 언니에게 다가간다.

그 장면을 본 다른 인간들은 시엘을 괴물처럼 바라보며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시간 정지이긴 했지만, 꿈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순간이동을 했던 소멜도 눈에 띄기는 했다.

뒤늦게 타피가 먼지와 피로 더러워진 흰색 견습 사제 정복을 입고 달려온다.

그리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감지한다. 주변 공기가 심상치 않아 둘러본다.

이 시점에서, 나는 타피와 감각 공유를 했고, 타피는 주변 인간들의 심장에서 맥동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웅얼거리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으어어, 저 괴물들……”

“순간이동…… 순간이동이었지?”

“저 여자들은 대체 뭐야.”

“시엘, 무슨 일이야?”

“아아, 잔챙이 한 마리가 광기에 서려 우리를 공격해서, 반격했을 뿐이야.”

“그거 때문에 우리 정체가 들키겠는데?”

“그러면, 몰살해야지.”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에 쓸 수 있을법한 시간 되돌리기를 하기엔 한참 시간이 지나버렸다.

시간 마법을 쓰기엔 범위나 마력의 한계가 있는 아이들의 마법으로는 고작 1분 남짓한 시간을 돌리는 정도뿐이고, 나는 최대 5분까지 돌릴 수 있다.

그만큼 사건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리는 엄청난 마법이다. 나는 반대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몰살시키는 데 동의했다.

“그래, 몰살할까?”

“타피가 역병을 일으켜, 내가 바람으로 퍼트릴 테니까.”

“응, 소멜. 잠시 언니 곁에서 쉬고 있으렴.”

소멜은 인간 폼으로 벌벌 떠는 르테아 언니의 곁에서 지킨다.

타피는 검고 보랏빛이 도는, 그냥 보기에도 불길한 역병 구슬을 만들어내고, 시엘은 그 위에 바람을 넣어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트린다.

검은 역병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주변 공간을 검게 물들인다. 마치 화약이라도 터진 것처럼, 검은 역병이 빠르게 퍼져나가며 자연을 시들게 하고, 건물을 무너트리며, 인간들을 녹여버린다.

“끄아아악!”

“흐읏, 내 팔이, 내 다리가……!”

주변 상황은 아까 피의 마법진이 발동되었을 때보다 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옥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날뛰는 인간들, 하지만 시엘이 부린 바람은 인간들의 다리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나가고, 말 따위를 타도 도망칠 수 없었다.

목격자는 다 죽어버렸고, 검은 역병을 발견한 목격자들도 죽어가기 시작한다.

아마 그 역병 폭탄에 생존자는 거의 없을 것이고, 수많은 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갔을 것이다.

그 중앙에서 살아남은 네 네임드는 다시 던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2층의 석굴 안에서 많은 힘을 쓴 탓에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하…… 뭐 한방에 7만 DMP를 벌어왔니?”

눈을 감고, 말랑말랑한 볼살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고 누가 건드려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타피가 제일 많은 DMP를 벌어들였다.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DMP 회수 효율인데, 거기서 7만 DMP를 벌었다는 건 전장에서 최소 70만 DMP가 나왔다는 소리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7000명, 아마 40레벨대가 많았으니 대략 400~500명 정도가 역병 폭탄과 전염병으로 죽어 회수되었다는 의미다.

“그래도 이렇게 화려하게 하면……”

다른 마스터들이 꼬인다. 인간 세상에 개입하는 건, 주변에 밝혀지기 너무 쉬운 활동이다.

게다가 인간들도 꼬일 것이다. 최소 버티려면 70만 DMP에 해당하는 모든 DMP를 회수했어야 할 것이다. 악명이 너무 높아졌다.

적어도 목격자들을 모두 죽이거나, 여기 오는 목격자들을 전부 죽이지 않는 한 던전은 상당히 위험해진다. 그리고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지.”

새근새근 자는 시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타피는 대체 왜 이 머리카락을 좋아하는지,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봐도 소멜이 [정화]를 한 건지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들 견습사제 정복을 입고 있다!

인간들을 버겁게 막으면 어떠하리, 그저 내 앞에 누워 자는 세 명의 천사, 그리고 내 마음을 치유해주는 한 명의 대천사가 돌아와 눈앞에서 자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서큐버스처럼 이렇고 저런 일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내 성격상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만지작거리거나, 뱃살을 맨질맨질 만지는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다.

참으로 행복한 꿈을 꾸는지, 다들 얼굴이 행복하다.

자는 동안에는 감각 공유를 할 수 없어 꿈을 볼 수는 없지만,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하다.

뭐, 꿈 마법으로 강제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남의 꿈으로 들어가면 꿈의 주인은 자는 동안 휴식을 전혀 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 행복한 얼굴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이들과 르테아 언니를 바라보고 방긋방긋 웃는 동안, 이 방으로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머, 귀여운 마스터님. 같이 자는 건 어때요?”

“아앗……. 아리에타 언니.”

아리에타 언니가 들어와 찾장에서 찻잔을 꺼낸 뒤, 밀크티를 끓이기 시작한다.

자꾸만 밀크티를 보면 텔레르나 씨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오지만, 참는다.

밀크티를 다 끓이고 난 뒤엔, 던전 꾸미기 용으로 만든 원형 탁자 위에 서로 마주 보고 앉는다.

“그래, 세이나 마스터님께 전언이 왔어요. 이번 사건으로 화려하게 해버렸다죠?”

“언니……. 죄송해요.”

“아냐, 운디르나 마스터님께서 오실 거니까.”

“네……?”

아리에타 언니는 상체를 숙이고 나를 뚫어지라 바라본다.

“운디르나 마스터님께서 오신다고요, 마스터님?”

“아…… 알았어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심장이 없기는 하지만, 그 자리가 내려앉은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