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3 <-- 던전 마스터 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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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드들은 휴식 중,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건 나와 아리에타 언니뿐.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온다는 소식에 나는 당장 뭐부터 해야 할지,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되어 있는지, 마음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그…… 선배님이 오면 뭘 해야 할까요?”
“그야, 이번에 역병을 퍼트린 일에 대한 해명, 그리고 간단한 파티죠.”
“…….”
운디르나 선배님이 와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마치 운디르나 선배님께 혼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네임드들로 인간들을 조금만 줄이려고 했는데 상황이 안 좋았다고 말해야 할까? 나도 암묵적으로 동의했으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시간 마법도 숨겨야 할지, 복잡한 마음속에 메뉴를 열어 파란 동그라미 안에 든 수치를 본다.
83918 DMP
던전을 꾸며야 할지, 던전의 구조를 바꿔야 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리에타 언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려서 마음이 살짝 놓인다.
“왜 그래요? 제가 뭐 잘못이라도 했나요?”
“잘못한 것 같잖아요, 그러니까. 자, 밀크티 한잔 더 하시고 쉬세요. 파티도 별 것 아니고 매일 하던 데로. 그리고 마스터가 벌인 일 때문에 다른 마스터님도 올 거랍니다.”
“다른 마스터…….”
운디르나 선배님과 친한 사람일까?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독립시킨 던전 마스터는 나뿐이지만, 7대 던전 마스터라고 불리는 만큼 발은 상당히 넓을 듯하다.
나야 변방의 신입 던전 마스터이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것도 사실일 테고, 보러 와서 나를 죽이고 마력을 빼앗는다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후……”
“너무 걱정 마세요, 세이나 마스터님. 이번에 오는 건 세이나 마스터님이랑 잘 맞을 거예요.”
“왜요? 저는 무서워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요? 누구인지 아시나요?”
“아니, 하하, 보면 알 거랍니다.”
보면 안다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마음만 썩어가느니, 하고 있는 동안 던전 입구에서 경보가 울리며 내 등골을 싸늘하게 식힌다.
빠르게 던전 맵을 열어보면 두 개의 엄청 큰 푸른 점이 보인다. 적어도 적은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섬뜩하다.
“읏……”
“오셨나 보네요, 자, 마스터님. 맞이하러 갑시다.”
“으으, 알았으니까 잡아당기진 마세요.”
아리에타 언니의 손에 이끌려 1층으로 올라왔다.
어차피 나보다 훨씬 강한 운디르나 선배님이나, 다른 마스터로 보이는 몬스터가 조금만 날뛰어도 내 던전은 부서진다. 부서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저 코어까지 가루가 되어 부서질 거다.
오는 길에 함정은 전부 비활성화시켰다. 어차피 두 마스터의 앞에 인간들은 일어서지도 못할 것이고, 내 던전에서 괜히 성질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두 분, 사실 맵에서 볼 때는 큰 점이라 생각했지만, 아리에타 언니에게 업힌 채로 날아오니 두 분과 뒤에 있던 네임드 둘은 1층 던전을 신비한 듯 탐험하고 계셨다.
오랜만에 미로를 푸는 것마냥 돌아다니다가 귀여운 쁘띠 미믹을 발견하시고는 활짝 웃으시고 계셨다.
“헉, 헉……. 왔습니다, 선배님.”
“운디르나 마스터님, 오랜만입니다.”
“응응! 아리에타 이게 몇 달 만이지? 2달만인가!”
운디르나 선배님이 아리에타 언니를 안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디르나 선배님은 엄청나게 기뻐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 용 꼬리와 약간의 비늘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보인다. 나와는 달리 이마에 난 두 개의 큰 뿔이 인상적이다. 아니, 용인이라고 말하는 게 빠를까?
무서워서 슬쩍 흘겨보기는 했지만 상당히 아름다운 미모에, 소녀다운 분위기를 풍긴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용이라기보단 도마뱀 같은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몸을 바라보면 나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아! 세이나, 맞아. 여기 친구를 소개시켜줄게. 이쪽은 드레곤 리림, 여기는 세이나야.”
“안녕! 세이나.”
“아, 안녕하세요, 리림님……?”
“헤헤, 언니도 이런 귀여운 마스터를 숨기고 있었던 거야? 종족은 뭐야? 이 꼬리를 보면 서큐버스?”
“히이잇?”
리림 씨가 내 꼬리를 뿌리에서부터 슬쩍 훑으며 잡아 스페이드 부분의 볼살을 만진다.
민감한 꼬리를 만지자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라와 머리가 저릿하다. 상대는 매우 강한 던전 마스터라는 걸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화가 나서 발을 콕 밟았다.
“아야…….”
“세이나는 꼬리 만지는 거 싫어해, 리림.”
“그렇다고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해!”
“쉿쉿, 리림. 여기서 네가 브레스를 쏘면 세이나의 던전은 모두 불타버릴 거란다. 응? 알았지?”
반사적으로 내 네임드들에게 했던 행동을 한 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리림 씨는 힘이 무지 강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뻥긋뻥긋하다가 사과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운디르나 선배님을 애원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둘이 친해졌으면 좋겠어~ 아, 그래, 세이나. 아까 오면서 봤던 역병은 뭘까?”
“히으으……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다른 마스터들에게 들킬 거예요. 인간들이 너무 안 와서 어쩔 수 없었어요.”
나는 리림 씨에게 꼬리가 잡힌 채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땅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오랜만에 따뜻한 물 피부로 감싸주었다.
꼬리가 리림 씨에게 간질여지고 있는 끔찍한 상황에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냐, 혼내려고 온 거 아니야. 뭐, 인간들이 안 올 수도 있지.”
“언니, 이 아이 꼬리 부들부들해.”
“응응, 친해지렴!”
그렇다고 민감한……. 꼬리는…… 그만 만졌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부들부들한 부분을 만지다 질렸는지, 그 용 손톱이 있는 부분으로 만지지 않고 다가와 내 몸을 꼭 안는다.
나는 어떻게 이 강한 소녀 용인, 아니 순혈 드래곤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흐흐, 귀여워 귀여워.”
“세이나는 아직 코어를 만든 지 얼마 안 되었거든. 참, 리림은 레드 드레곤이자 던전 마스터, 세이나의 던전에서는 북서쪽 활화산이 있는 부분에 던전이 있단다.”
“네……”
북서쪽이라면 인간의 영토로는 프란시아 왕국이 있는 지점이다.
이렇게 활화산 같은 느낌의 리림, 그것도 힘으로 치면 압도적으로 강한 드래곤을 인간들이 어떻게 어르고 달래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 속에서 프란시아 왕국에 대한 이미지가 살짝 개선되었다.
“텔레르나, 아리에타, 림홀, 너희 셋은 해변 필드에서 기다리렴~ 나는 저쪽 밖에 나가서 잠깐 정화 좀 하고 올게~ 저 대로면 인간들이 DMP를 바치러 오지 않지 않겠니?”
“”알겠습니다. 운디르나 마스터님””
한번에 대답하는 네임드 셋, 다시금 생각하는 거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곧 떠나시고 리림과 남겨지자, 던전 마스터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던전 마스터라면 게임 세상에서도 그랬지만, 용, 몽마, 정령 세 종류만 가능하다.
그래서 레드 드래곤인 리림 씨는 순혈일 테고, 정말 용의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는, 무섭고 파괴력 높은 괴력소녀 분위기를 풍긴다.
아리에타 언니는 리림 씨를 알 아는지 조용히 앞서서 가고, 뒤쪽에서 따라오는 오랜만에 텔레르나 씨와는 이야기할 틈이 하나도 없었다.
“헤헤~ 너는 친구! 해변 필드는 뭐야?”
“그,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만들어주신 필드입니다.”
“친구끼리 이러기야? 말 놓아, 너랑 나는 1200살 차이도 안 나는걸!”
1200살이나 차이 나는 거다.
“그, 그럴까……”
“반말 하라고! 내 명령이야, 내 명령은 들어줄 수 있지? 우리 친구야!”
리림이 소리치자, 내 던전의 흙벽이 순식간에 박살 나고, 내 던전에서 가장 큰 새로운 방 하나가 생성되었다.
그저 그만한 고함이었을 뿐이다. 고함이 아니라 사자후?
듣는 것만으로 귀청이 떨어지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것 같은 느낌인데, 리림은 히죽히죽 웃으며 비늘이 뾰족뾰족 나 있는 드래곤 꼬리를 내 꼬리와 얽는다.
“아으……”
“왜 그래? 던전 재미있어. 그리고 너 귀여워.”
말하는 것만 들어선 리림은 아이 같은 느낌이지만, 1200살이다.
단순무식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순혈 드래곤 마스터와 함께 해변 필드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얽었던 꼬리를 풀고 뛰쳐나간다.
“우와~ 역시 운디르나 언니의 필드네. 부숴버릴까?”
“아니, 아니…… 괜찮아요…… 아니 괜찮아.”
“맞아! 배고파!”
워낙 리림의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웠는지, 아래층에서 일어난 나의 네임드들이 나왔다.
하지만 리림의 눈에는 나만 보이는 듯했고, 타피는 보자마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응? 빨리, 배고프니까 음식 만들어 줘!”
“아, 알았어……”
르테아 언니는 눈치를 보고 아리에타 언니에게 소곤거리고, 시엘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소멜은 메로우 폼으로 변신해 물 깊은 속으로 빠져 고개를 파묻고 숨었다.
“빨리! 운디르나 언니가 세이의 요리가 특히 맛있다고 그랬어!”
“내 이름은 세이나인데…….”
“그래! 이나!”
그래도 이 엄청 강한 드래곤을 위해 나는 DMP 메뉴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러다가 다른 마스터들의 음식점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아닐지, 아니 그저 지금 당장 살아남을 수는 있는지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운디르나 레벨: 437
리림 레벨: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