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4 <-- 던전 마스터 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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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림의 무릎 위에 인형처럼 놓였다.
그저 리림이 나를 귀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나는 코어를 만든 뒤 힘이 약해진 상태라 저항 한 번 제대로 못 해볼 뿐이다.
괴력녀 리림은 무서우면서도 아이 같은 분위기가 있다. 과연 어른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던전 마스터인지도 헷갈릴 정도다.
이런 아이를 달래는 데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리림이 화가 나면 간단히 터치 당하는 것만으로 내가 사라질 위협이 있지만, 리림은 화내러 오거나 나를 혼내러 온 게 아니라 정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와 놀려고 온 것이다.
만약 리림이 진심으로 움직였다간 나는 최소 죽음, 그리고 보통은 소멸.
“이게 DMP로 주문한 피자와 햄버거. 그리고 이건 콜라야.”
메뉴에서 주문한 피자와 햄버거를 늘어놓고 리림에게 설명해 주었다.
리림은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기다리는 개처럼 내 음식을 바라본다.
그리고 곧바로 달려든다. 나는 피자 한 조각을 떼어 설명해 주려고 했다.
“흐흥, 이게 맛있는 세나의 음식이라는 거구나, 근데 너무 징그럽게 생긴걸?”
“피자야, 이렇게 뜯어 먹는 거거든.”
“앗, 징그러워!”
리림이 손을 젓자, 치즈가 쭉 늘어난 맛있는 피자 조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팔도 리림의 손짓에서 부는 바람에 떨어질 뻔했다. 바로 피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으엑, 징그러워! 이런 걸 먹는다는 거야? 대체 언니는 왜 이런 걸 먹어?”
“리림, 먹어 봐, 생긴 것보다는 맛있어.”
“싫어! 뭐야 이런 거 안 먹어.”
아무래도 듣지 않는다.
리림은 정말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나는 햄버거 껍질을 까서 주었다.
“에헤헤, 이건 뭐야? 그래! 이게 언니가 말한 그 음식이구나? 아-음!”
리림은 한 번에 햄버거를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볼이 잔뜩 쌓인 음식물로 툭 튀어나와 볼록하고, 정말 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정신연령으로 치면 소멜과 비슷하거나 소멜보다 어린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와하하! 맛있어, 이게 언니가 말한 음식이구나! 그럼 저 징그러운 음식도 맛있어?”
“응, 맛있으니까 먹어 봐.”
리림은 활짝 웃으며 피자 한 판, 한 조각은 없는 한 판을 통째로 들어 입안에 집어넣는다.
대체 저 작은 입에 어떻게 저런 음식이 들어가는 줄은 모르겠지만, 다람쥐처럼 볼살을 잔뜩 부풀리고 음식물을 오물오물 씹어먹는 모습에 아이들의 모습이 비쳐 보여 귀엽다.
“죠금- 더 줘~”
“알았어, 리림.”
나는 리림이 보채자 계속해서 주문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리림은 대식가인 듯 여, 많은 양을 주문한다.
[40 DMP로 피자 4판을 주문합니다.]
[30 DMP로 햄버거 3개를 주문합니다.]
[50 DMP로 치킨 5마리를 주문합니다.]
물론 세트라는 말이 생략되어있고, 콜라도 함께 오기에 옆에 콜라가 쌓여나가기 시작한다.
리림은 저 시킨 음식들을 홀로 다 먹어 치우고, 콜라를 바라본다.
“이건 뭐야? 어떻게 먹는 거야?”
“리림, 그렇게 먹는 건 아니야.”
리림은 콜라 병째로 들고는 으적으적 씹어먹으려다가, 뾰족한 용의 송곳니가 박힌 곳에서 콜라병이 터져 액이 사방으로 팍 터졌다.
그 콜라가 리림의 얼굴에 잔뜩 뿌려지고, 탄산이 톡톡 튀며 부드러운 리림의 얼굴에서 끈적한 콜라액이 뚝뚝 떨어진다.
“으으……”
그 모습을 보자, 리림이 콜라병이 자신을 해치려고 했던 건 아닌지 화낼까 봐 두려웠다.
리림은 지금까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온몸을 강화시킬 수 있다. 마력량도 엄청나다.
“아하하, 이건 이렇게 먹는 거구나.”
“아니, 리림, 그렇게 먹는 거 아니……”
리림은 다른 콜라병을 병째로 집어 입에 넣고는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콜라병이 흉측하게 리림의 입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콜라병의 명복을 빈다.
용은 페트병을 먹어도 되는 걸까부터, 과연 저게 어떤 맛이 날지까지,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리림은 활짝 웃고는 콜라 페트병을 씹어 꿀꺽 삼킨다.
“드어어어어억!”
그리고 콜라를 먹은 탓인지 공중을 향해 용트림, 아니, 드래곤 브레스를 쏘았다. 해변 필드 위쪽 공간이 뻥 뚫리며 천장이 높아졌다.
그 말도 안 되는 마력과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리림의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을 졸인다. 가슴은 살점도 심장도 없지만 말이다.
나는 재빨리 콜라병을 따서 리림에게 건네준다. 리림은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입에서 브레스의 흔적인지 연기가 스윽스윽 나오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리림,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
“응? 진작 말해주지, 아하하, 이거 재미있어!”
나는 병을 따고 먹는 시늉을 냈다. 콜라는 내 민감한 고양이 혀에 위험한 물건이니까.
정작 좋아하는 건 르테아 언니와 시엘인데, 아무도 리림의 곁에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리림이 내뿜는 기운을 낮춰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상당히 요원한 일이다.
“그어어어어억!”
리림이 또 공중을 바라보고 용트림…… 브레스를 쏜다.
진짜 용이 탄산을 먹으면 저렇게 되는지, 리림은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콜라병도 모두 비웠다.
그리고 그때, 운디르나 선배님이 해변 필드로 돌아왔다.
선배님을 보자 너무 기쁘고, 리림의 곁에서 긴장한 탓에 땀이 흐르는 몸을 그대로 선배님께 던졌다.
“운디르나 선배님~”
“세이나, 대규모 정화를 했으니까 이제 인간들 사이에서 괴소문은 돌지 않을 거란다? 앞으로는 조심하렴.”
“네, 알겠어요……”
“아하하하, 언니~ 세나는 귀엽고 맛있어요!”
“리림, 이 아이의 이름은 세나가 아니라 세이나야.”
“이나! 이나가 만든 음식 맛있어요!”
아무래도 나는 리림을 먹을 걸로 산 것 같다.
아이는 먹을 것으로 달래는 게 좋은 일이다. 리림의 성격이 내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글생글 웃는 운디르나 선배님도 배가 고픈지, 다가와서 나에게 뭔가 바라는 눈치를 보내신다.
선배님께도 내 음식을 드린 적이 있다. 피자를 비롯한 패스트푸드는 여러 몬스터의 입맛에 맞는 것 같다.
오랜만에 운디르나 선배님과 만났지만, 운디르나 선배님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소개해주기 위해 온 건지, 던전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리림은 정말 내가 좋은 것 같아서 나를 놓치지 않는다.
나는 멀리서 운디르나 선배님이 아리에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밖에 지켜볼 수 없었다.
“에헤헤, 세이나! 세이나!”
“응, 내 이름이야.”
“세이나! 내 친구야 친구!”
“응, 친구야, 리림은 친구,”
리림은 친구가 없었던 건지,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으며 나와 꼬리를 얽는다.
레드 드래곤이라 그런지 꼬리가 붉고 굵은 편이고, 피부 곳곳에 난 까슬까슬한 비늘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반들반들하다.
내가 몇 개 비늘을 만져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목 밑에 난 역으로 난 비늘은 만지려고 하자 포식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다.
리림은 드래곤, 그러니까 용의 역린은 건드리면 안 된다.
“그 모습은 변신이야?”
“응! 변신! 내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니?”
“으응……. 나중에 보여줘.”
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용이라는 이미지는 최소 키 20m 이상의 흉악한 서양용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리림이라면 그보다 더 어린 용처럼 변할 것 같긴 하지만, 던전이 무너질까 봐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맞아! 세이나! 코어 보여줘!”
“응……?”
운디르나 선배님을 바라보니, 고개를 살짝 젓는다.
리림도 운디르나 선배님을 보고 보채는 건지, 약간은 약이 올라 역정을 낸다.
“아니, 왜! 나도 세이나의 코어를 보고 싶다고!”
“안 돼, 세이나는 서큐버스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언니는 봤잖아!”
리림이 진심으로 화를 내려고 하자 그녀의 온몸에 엄청난 마력의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한다.
그저 마력일 뿐이다. 마력 덩어리를 몸에 두를 뿐이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그 마력 풍에 저항하려는 순간, 운디르나 언니가 호호 웃는 소리가 들리며 리림의 파워가 단번에 낮아진다.
“응응, 리림, 어디서 언니한테 까불려고 그러니?”
운디르나 언니의 목소리에,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것 같았다.
운디르나 언니는 무섭다. 내가 처음부터 느낀 거지만, 진심을 내는 운디르나 언니는 아마 이 세상의 아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리림은 곧바로 침울해졌고, 나를 다시 바라본다.
“그러면 코어 주변이라도 구경시켜 줘, 맵을 보고 싶어.”
“응, 그건 괜찮단다, 세이나.”
“아아……. 네.”
운디르나 선배의 허락에, 나는 리림을 데리고 2층으로 내려갔다.
과연 리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리림은 내 옆에서 꼬리를 얽으며 생글생글 웃고 발을 맞춰주고 있다.
========== 작품 후기 ==========
리림의 아명은 릴리도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