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6 <-- 던전 마스터 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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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너무 하얘진 가운데 나는 새로 태어난 네임드 불여우에게 어떤 이름도 지을 수 없었다.
리림은 나를 계속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며, 나와 맞잡은 손가락을 꾸물거린다.
그리고 불여우도 옆에서 어색해하는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무슨 이름을 지어줄지 기다린다.
“그런데 내 주인은……?”
“불여우, 여기가 네 주인이야! 하하”
“아, 으으……. 이름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도는 다양한 글자들, 그리고 떠오르는 하나의 글자.
과연 이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염과 같은 여우귀를 가지고, 꼬리도 불타는 듯한 모습의 불여우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리파, 네 이름은 리파야.”
“리파? 아름다운 이름이네. 마음에 들어 주인.”
불여우는 어색하게 씨익 웃고 나를 뻔하니 바라본다.
아까의 그 매혹적인 미소는 어디 갔는지, 설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하지만 리파는 다시 나를 향해 다가온다.
여태까지 네임드들은 태어나자마자 나에게 달려와 열정적으로 안겼는데, 이 불여우 리파는 이상하게도 살짝 안기고는 그만둔다.
몸이 뜨거운 걸 느꼈는데, 정말 불여우라서 그런지 체온이 높다.
그런데 성격이 불같은 불 정수를 가진 리림과는 달리, 리파는 상당히 쿨하다.
정말 주재료? 가 불의 정수인 혼합액에서 만들어진 아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다.
“주인, 옷은 없어?”
“아, 아아. 그래 옷 말이지.”
나는 손아귀에 있던 옷장 대용 스켈레톤을 꺼냈다.
내가 입는 옷에서 골라 입힌다. 자주 입던 푸른 계열의 원피스를 입혔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든 듯 실실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무표정이 된다.
“기쁜 건 아니야, 주인.”
“리파아아~ 리파가 이 던전 불 지역의 담당이야!”
어째서 내 던전의 담당을 리림이 정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리파 말고는 불 필드를 지킬 아이들은 없다.
시엘은 바람과 자연, 소멜은 물, 르테아 언니는 어둠과 빛?. 타피는 꿈과 어둠.
“주인, 비밀 있지?”
“어, 어어, 그그……”
“무슨 비밀! 어어? 세이나가 비밀이 있어?”
“그, 그그래…… 사실 귀 뒤쪽에 점이 있어.”
리파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는 그게 아니라는 눈치를 리림에게 보낸다.
리림도 리파의 주인쯤 되는 사람이라서 말한 것 같지만, 리림은 알아채지 못하고 깔깔 웃는다.
정말 배를 뒤집고 웃는다. 뭐, 정말 인간 시절에 있었었지만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허리춤까지 오는 풍성한 흰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모르겠다.
“주인, 나중에 보자.”
“그래…… 리파……”
리파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아이 같다. 나중에 친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차가운 아이가 가끔은 멍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까…… 조금 많이 쿨하기는 하지만.
리림은 깔깔 웃다가, 손아귀에서 엄청난 몬스터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용암 정령, 화염 개, 화염 게, 화염 드워프, 심지어 화염 브레스를 내뿜는 레드 드래곤까지.
레드 드래곤은 리림 그 차제가 아닌가 싶지만 몬스터 레드 드래곤과 마스터 레드 드래곤의 차이는 아마 마스터 서큐버스와 서큐버스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쟤 이름은 용용이야, 나와 같은 레드 드래곤이지.”
“음…… 대체 무슨 차이야?”
“봐, 나는 마스터 레드 드래곤이고, 저 아이는 용용이야.”
“모르겠어……”
나는 메뉴를 열어 리림이 하는 말이 대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불 필드 메뉴에서 만드는 몬스터 중에는 분명 레드 드래곤이라는 이름이 없다.
“저 아이는 네임드가 아니야?”
“응! 저 아이는 용용이일 뿐이야. 용용아, 브레스!”
용용이……라는 이름의 레드 드래곤이 공중을 향해 화염 브레스를 분사한다.
그리고 리림이 나온 몬스터 100기를 향해 박수를 딱딱 치더니, 목청을 지금보다 크게 해서 외친다.
“각자 자기 위치로! 너희 마스터는 이제부터 세이나다. 여기 있는 귀여운 서큐버스니까 잘 지키도록.”
“”꾸워어어””
몬스터들이 제각각 동의하듯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각자 해산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정말 저 용용이라는 이름이 맞는지, 내 휘하에 들어온 용용이의 정보를 몰래 열어보았다.
등급: A
종족: 용용이 레드 드래곤
레벨: 155
특수 스킬: 강한 힘, 용의 분노, 용의 숨결, 용의 눈
분명히 저 용용이라는 이름은 ‘쁘띠’처럼 뭔가 보정을 받는 종족명이라고 생각된다.
리림이라면 자기 맘대로 할 테니까, 저렇게 강하면 종족명까지도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게임 내에서의 트롤링처럼 생각되지만, 저 용용이는 용용이라는 명칭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된 걸까?
“아하하, 내 선물은 어때? 만들어준 필드는 좋지?”
“응, 고마워.”
사실 던전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당장 인간들의 수준이 확 올라갈 걸 예상하기에 이번 선물은 생각지도 못했던 성과다.
하지만 리림은 뭔가 원하는 듯, 우물쭈물하듯 나를 바라본다.
“세이나.”
“응?”
“다음에도 오면 맛있는 거 많이 줘야 해?”
“알았어.”
“주인님, 리림 마스터님께선 지금 가시는 겁니까?”
“응, 피라! 나 먼저 가.”
벌써 리파의 이름을 잊은 건지, 리림은 네임드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활짝 웃으며 다시 해변 필드로 나오자, 운디르나 선배님께서 일어나 기다리고 계셨다.
“둘 다 친해졌니?”
“네! 언니~”
“그…… 뭐, 그렇지요.”
“응응, 세이나라면 친해질 줄 알았어.”
운디르나 선배님 특유의 말투에 한시름 놓았다.
나의 네임드들도 텔레르나 씨나, 아마 리림의 네임드라고 생각되는 림흘과 많은 대화를 나눈 건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리림은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내뿜고 있다.
“리림, 그 기운 좀 거둘 수 있을까?”
“그래! 친구 이야기라면 들어 줄게.”
리림이 드디어 그 붉은 기운을 거두자, 나의 네임드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눌려있었던 표정이 다시 평소처럼 밝아졌지만, 역시 리림의 곁으로 쉽사리 다가오지는 못한다.
우리를 뒤따라온 리파가 모두에게 인사했다.
“안녕, 나는 리파. 주인 세이나님의 새로운 네임드.”
“”뭐라고요……?””
시엘과 타피가 동시에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아리에타 언니나 운디르나 선배님은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미 리림에게 에너지를 받아 네임드를 만들어낼 걸 예상하셨던 것 같다.
운디르나 선배님의 계산은 정말 무서울 정도고, 가끔씩 보이는 속마음은 정말 두려울 정도다.
그러니까 왜 리림을 내 친구가 되게 했는지 알고 싶다.
리림의 곁에 있으면 근심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나도 단순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럼, 우리는 먼저 가 볼게, 리림은 아마 계속 찾아올걸?”
“선배님께선 다음에 언제 오시나요?”
“오게 되면 아리에타에게 연락할 게. 하도 일이 바빠서 말이지. 후후, 아마 다음에 올 때는 세이나의 던전 위에 기생충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
기생충들이란 말은 이른 시일 내에 내 던전 위에 인간들의 마을이 생긴다는 말이다.
물론 그 이른 시일이라는 건, 2천 년을 넘게 산 운디르나 선배의 기준이다.
내가 저지른 일, 게다가 역병이 돌았던 저주받은 땅에 과연 올 인간들이 당분간 있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는 말은 아리에타 언니를 몇 년 안에 보기 쉽지 않으리란 말과 같다.
“후……”
“언니, 세이나 귀여웠어, 다음에도 맛있는 거 만들어 준데!”
“응응, 그래 리림. 다음에도 세이나에게 오렴.”
운디르나 선배님을 떠나 보내며 하는 말을 들어보면, 분명히 리림을 나에게 붙이기 위해 이쪽으로 데려오신 것 같다.
리림은 어쩌면 던전 마스터로서 외로운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소설을 쓰느니 차라리 다른 말을 믿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바깥으로 나오자, 리림은 20m 높이는 되는 레드 드래곤으로 변신한다. 용용이의 두 배쯤 되는 키에 놀랐다.
그리고 운디르나 선배님은, 리림의 키의 절반쯤 되는 높이, 물론 길이는 리림에 비하면 더 긴 텔레르나 씨에게 타오른다.
“세이나, 다음에 봐!”
“세이나, 다음에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줘야 해!”
나도 손을 흔들고 그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남겨진 건, 화끈한 필드와 네임드 리파.
리파는 싸늘한 호박빛 눈으로 다른 이들을 반겨주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파, 새로 태어난 걸 진심으로 환영해.”
“주인, 나는……”
리림의 앞에선 부끄러워서 못 했지만, 리파를 다른 아이들처럼 꼭 껴안았다.
리파의 뜨거운 몸, 그리고 정말 불처럼 생긴 귀와 꼬리는 생각보다 뜨겁지는 않고 부들부들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시엘과 타피도 뒤늦게 달려와 덩어리처럼 안긴다.
“주인님…… 무겁습니다.”
“리파라고 했지? 머리카락에서 불 냄새가 나.”
“와, 꼬리가 너무 부들부들해.”
“미야아앗……”
오로지 싫어하는 건 소멜 뿐이다. 리파도 소멜을 정말 싫어하는 듯 썩은 표정을 짓는다.
물과 불은 섞일 수 없는 법이지만, 어쩌면 운디르나 선배님과 리림처럼 친해지지 않을까?
“주인, 비밀을 알려줘.”
“아…… 알겠어.”
그리고 나는 리파에게, 내 시간 마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리파는 순간순간 표정관리를 못 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시간의 정수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 작품 후기 ==========
쿨계 불여우 소녀 리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