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2 <-- 신입 던전 마스터와 신입 모험가 조합 지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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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엘과 엘타리스는 던전 순간 이동기를 타고 입구로 올라갔다.
시엘과 감각 공유를 통해 자연스럽게 부는 외부의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정보가 읽힌다.
지금 외부는 건기인지 거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입구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간들이 넓은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순혈 인간보다는 혼혈이 많아 보인다.
“혼혈이 많아 보이네요.”
“새로 만들어진 마을의 상위 계층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일단 여기 온 것만으로 해도 자유민이 됩니다.”
“역시 몬스터의 피가 섞이면 벌레들에게는 하층민이 되는군요. 저도 저열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 사이에서도 뚫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요. 저 왕국은 천천히 바뀌고 있어요.”
엘타리스는 ‘우리 왕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저 왕국’이라는 표현을 쓴다.
단순한 단어에서부터 인간과 멀어졌다는 뜻이 드러난다. 엘타리스는 정말 완벽하게 타락하고 내 아래로 들어왔다.
“아…… 죽이고 싶다.”
“시엘님, 그런 말은…….”
시엘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엘타리스의 표정도 살짝 왜곡된다.
몬스터의 마음은 인간을 죽이고 괴롭히기 위해 있는 것, 이건 본능이다.
인간들과 섞여 살며, 피가 섞이며 몬스터의 기운이 점점 희미해진 아인종들은 모르겠지만, 던전에서 생활하는 몬스터의 피가 흐르는 한 인간을 해치고 싶어 하는 본능은 숨길 수 없다.
특히나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혼혈은 타락하고 완전한 몬스터가 된 이들과는 달리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엘타리스 씨, 당신도 느끼지 않습니까? 어렴풋이, 저 녀석들을 죽이고 싶다고요. 인간들 속에서 그런 마음을 숨기기 어려우셨을 텐데요?”
“…… 아닙니다.”
엘타리스는 명백한 거짓을 말하고 있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의 떨림, 괴로운 표정, 그리고 억지로 꽉 쥔 주먹까지,
시엘은 그런 엘타리스의 모습에 기쁨을 느낀다. 어쩌면 나도 시엘과 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던전에서 드나드는 걸 보고 싶어.’
“주인님께서 던전에 드나드는 걸 보고 싶으시답니다.”
“네…….”
두 명은 흙 필드 쪽 지상에서 자연 필드 쪽 입구로 걸어간다.
자연 필드, 시엘의 필드 쪽으로 드나드는 인간들은 많다. 던전의 회복성에 의해 자연적인 구조는 쉽게 변형되고, 나무는 잘리자마자 자라난다.
나는 자연 필드의 벽면에 일부러 귀신처럼 생긴 천을 걸어두었다. 자연 필드에는 자연풍이 불기에 천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으스스한 소리도 난다.
인간들은 밤 필드에 나타난 무서운 귀신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만, 죽일 수도 없고 그저 천일 뿐이다. 게다가 그보다 더 쉽게 나무를 캘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억지로 드나들고 있다.
인간들이 드나들면서 내뱉는 DMP의 양이 상당하다.
“안녕하세요!”
“그래,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지?”
“무, 무서운 게 있긴 하지만요……”
인부들이 엘타리스가 나타나자 인사한다. 인간 세상에서는 엘타리스는 레벨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일 테다.
하지만 입술을 살짝 실룩이며 동요를 지우지 못한다.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가 된 만큼 학살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인간들의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숨겼을 테지만 서서히 본능을 깨우쳐간다. 나는 인간들을 다스리는 엘타리스를 굳이 그런 살인귀로 변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시엘님…….”
“네? 무슨 일인가요?”
“인간들을 해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누르시나요?”
“……? 주인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내가 그런 명령을 한 적이 있던가?
물의 도시…… 그러니까 거의 8개월 전에 그런 명령을 내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시엘과 소멜, 그리고 내가 그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놀았던 기억. 시간의 마법을 마음껏 썼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즐거워진다.
내 던전 위에도 그런 도시가 세워질까? 인간들은 싫지만, 인간들의 도시는 편리하고 좋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렇다고 몬스터들의 도시를 만들자니 DMP를 꾸준히 벌 수 없다. 어떻게든 불가분의 관계는 뗄 수 없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인간들을 내 아래로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자연 필드쪽 입구로 던전에 들어와 보니, 인간들은 던전으로 드나들면서 수레를 집어넣고 나무를 베며 일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끓어오른다. 아무래도 자연 필드의 관리자인 시엘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는 건 무리였다. 시엘의 가슴이 아파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시엘, 참아. 천천히 밖으로 나와.’
‘주인님…… 이건 너무 잔혹한 게 아닌가요?’
‘미안해 시엘, 내가 생각이 없었어.’
‘……’
시엘이 눈물을 흘린다. 엘타리스에게 감각 공유를 걸어 명령해 밖으로 나오게 했다.
베어진 나무를 보는 건 그래도 조금 괜찮지만, 나무를 베는 장면을 보자 내 살을 도려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아서, 감각 공유를 끊고 바닥에 누운 채로 공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맵을 열면, 홀로그램 상으로 붉은 인간들이 푸른 나무를 베고 있다. 내가 보면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지만, 시엘의 감각 공유로는 보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보기 힘들다.
다시 시엘에게 감각 공유를 걸자, 시엘과 엘타리스는 막 건물이 지어지는 거리 사이로 나아가고 있었다.
시엘은 인간들을 보면서 장난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하다. 베어서 다듬어진 나무들을 보면 역시 마음이 가라앉고, 약간 분노와도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엘타리스는 시엘에게 마을의 구역을 걸어가면서 설명한다. 생각보다 건물을 짓는 곳에서도 순혈 인간보다는 아인종들과 혼혈이 많아 보인다.
시엘도 혼혈을 보고는 마음을 살짝 누그러트린다.
“이곳은 거주 구역, 저쪽은 상점가 거리가 될 예정입니다.”
“거주 구역이라,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요?”
“……그렇게 쉽게 짓지는 않겠지요, 시엘님.”
쭉 걸어가다가 보이는 특이한 건물들을 바라본다.
조금 큰 건물도 있고, 벽만 높은 건물도 있고, 모양이 원형으로 만들어진 건물도 있다.
‘저긴 어디?’
“저긴 어디인가요?”
“저쪽은 직업 학교입니다…… 프리스트는 없어서 못 만들지만요.”
“프리스트…… 다크 프리스트도 될까요?”
‘시엘, 무슨 소리야?’
시엘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다크 프리스트라면 여기선 한 명밖에 없고, 르테아 언니는 곁에 있으면 가장 마음이 놓이는 네임드다.
물론 다른 아이들의 곁에 가도 마음의 안정은 찾을 수 있지만, 르테아 언니는 그보다 더 다른 특유의 치유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르테아 언니를 절대로 보내지는 않을 거다. 아니, 보내는 게 맞는 걸까?
“르테아 언니 말씀인가요?”
“네, 르테아 언니를 이쪽으로 보내는 건 어떨까 해서요.”
‘둘이 뭐 하는 소리야……!’
“좋아요, 그럼 성소도 만듭시다.”
“그래요, 후후.”
어째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르테아 언니를 데려가려고 한다.
최근 시엘의 독점욕이 강해지고 있는 탓이다. 앞으로 수많은 던전 계층을 만들고, 수많은 몬스터들을 소환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네임드를 소환해야 할 텐데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뭐, 인간들을 타락시키는 데 르테아 언니를 이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러면 저 위쪽의 도시는 몬스터 도시가 되는 거다. 수많은 인간들이 타락하기 위해 와서 DMP를 내뱉고 가는 장면이 생각된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동안, 두 네임드는 거리를 쭉 통과해 간다.
거기엔 이미 거의 완성된 통나무집이 보인다. 지금까지 건물들과는 다른 분위기, 조금 더 거칠다는 느낌이 들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이다.
“여기가 모험가 조합 세이나 지부입니다.”
“……. 역시 주인님의 이름인가요? 벌레들이……”
‘뭐……?’
던전 이름에 따라 마을이나 도시의 이름이 지어지리라곤 생각했지만, 진짜 내 이름이 붙으니 부끄럽다.
게임상에서 쓰던 ID인 게 어디인가, 정말 인간 시절의 이름이 붙었으면 쥐구멍에라도 숨었을 것 같다.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럽다. 8개월 동안 이 ID를 이름처럼 쓰고 있었으니까……
다시 감각 공유를 끊고, 메뉴를 열어 내 정보를 열어본다.
이름 창에 뜬 건 인간 시절의 이름이 아니라 ID인 세이나다. 이건 이제 내 이름이다.
이름: 세이나
종족: 던전 마스터 서큐버스
레벨: 72
종족 스킬: 꿈
특수 스킬: 시간
세부 스탯 ▽
“……?”
그런데, 나. 레벨이 올랐어?
한 것이라곤 리림에게 에너지를 받아 리파를 만들고, 엘타리스를 타락시킨 것 말고는 없다.
타락시킬 때 생각보다 많은 양의 정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게 정말 레벨이 올라서였을 줄이야.
내가 안 보는 동안 시엘이 뭔가 저질렀을까 싶어 빠르게 다시 감각 공유를 걸었다.
‘주인님, 어떤가요? 르테아 언니를 이쪽으로 보내 살게 하는 건.’
‘시엘, 내가 말 못 한다고 그렇게 앞서가서 결정하기야?’
‘주인님께선 이제 곧 나오실 수 있으시잖아요. 게다가 이점이 많은 건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시엘과 마음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다음엔 시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