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 던전 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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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타리스의 충성심은 약간 왜곡된 애정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꽤 뛰어난 편이다.
흙 필드를 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김에 DMP 사용 권한도 주면 좋을 테다. 물론 다음 네임드는 꼭 흙 필드에 맞는 아이를 소환할 것이기에 그때까지의 임시 권한이다.
흙 필드에서는 최대 D급 정도의 몬스터 밖에 존재할 수 없다. 만드는 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다른 몬스터는 소환하면 적응을 못 하기에 쓸 수 없다. 즉, 횡령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엘타리스에게 맡기면 나에게 이상하게 걸려있는 ‘쁘띠’보정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동안 ‘쁘띠’보정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몬스터나 네임드 따위를 소환할 때 상대방에게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보정인 것 같다.
무기물을 녹여버리는 슬라임 함정을 만들 수도 있다. 임프나 고블린, 미믹을 적당히 배치할 수도 있다.
그리고 흙 필드라고 F급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라 E급 몬스터도 있다. 오크와 두드리 등등도 이 서류에 소환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DMP도 많은 편이니 예산안을 보면 총 10만에서 15만 DMP 사이로 사용된다. 유지비는 25000 DMP 정도이지만, 인간들이 지금의 던전도 쉽게 주파하는 상황을 살펴보면 하루 48000~54000 DMP 사이로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엘타리스에게 흙 필드의 권한을 이행할게, 맵은 어느 형태로 할까?”
“정말인가요? 그럼 이쪽으로!”
“하루 25000 DMP만 몬스터 소환만을 허용. 또 원하는 게 있을까?”
“감사합니다, 마스터, 이 정도면 인간들을 길러 우리가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엘타리스가 말하는 ‘우리’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문맥상으로는 확실히 나겠지만, 이상하게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가축을 기른다는 느낌일 뿐이야.”
“주인님…….”
옆에서 나를 시엘이 침울하게 보이지만, 시엘이 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흙 던전 개편 방안은 유용하다. 인간에게 아양 떠는 던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도 없지만 말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들, 모험가들을 길러 내가 DMP를 먹는 형태의 목장이라고 생각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만, 내가 다른 네임드를 소환하면 그 아이에게 알려주고 물려줘야 해. 너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을 관리하는 입장이니까 말이야.”
“네!”
엘타리스는 만족한 듯 주먹을 쥔다. 굴러들어온 돌에게 맡긴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저 방안은 게임 기준으로도 괜찮은 편이어서 수락했을 뿐이다.
게다가 던전 형태를 만드는 건 나다. 나만의 게임상의 오리지널 형태를 참고하여 던전 맵을 열고 구조를 변경한다. 함정의 수는 그대로. 전체적으로 넓이는 4배 이상 늘어난다.
계속해서 푸른 홀로그램 위에 높이 한 칸짜리 흙 필드를 만들다가, 방은 전부 다 높이 두 칸으로 변경한다.
위쪽으로 뚫는 공간, 2칸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보면 천장에는 끝없는 심연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서류에 쓰여있다. 이것만으로 마음을 꺾고 DMP를 얻는다는데, 과연 엘타리스는 인간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악랄한 방법들이 쓰여있다.
맵을 3D 상에 붓으로 그리듯 다 그리고 나서, 확인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지진이 일어난다.
이전에도 일어났던 지진. 내 던전은 입구 두 개에, 길고 꼬여있는 1층의 흙 필드로 구성된다.
[122100 DMP를 이용하여 흙 필드 407칸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함정 등의 위치를 이동시키며, 세세한 설정은 몬스터들에게 다루게 한다.
“몬스터는 엘타리스, 지가 나가서 소환하고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알겠습니다. 마스터.”
엘타리스는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가려다가 순간 이동기를 통해 흙 필드로 나간다. 맵을 보면 엘타리스가 돌아다니며 DMP를 이용해 소환하고 있다.
이제 나는 쉴 수 있다. 시엘과 함께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시엘을 바라보니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주인님, 어째서 저 타락한 인간 따위에게 권한을 주시는 건가요! 제가 배웠던 건 잘못된 건가요?”
“마스터, 실망.”
“마스터, 대체 왜 그런 가야? 타피는 싫어?”
“미야아아……. 졸려.”
피로에 절어 탁자 위에 쓰러진 르테아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는 먹을 것을 주문한다. 아이들이 다들 좋아하는 딸기빙수다.
[25 DMP를 이용하여 딸기빙수 1개를 주문합니다.]
“다들 이거 먹고 그만……”
“흥, 이런 걸로 주인님이 한 일이 보상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실망…… 아니, 맛있어.”
“마스터, 나빠……. 먹을 걸로 유혹하지 말라고.”
얼음을 좋아하는 리파와 타피는 걸려들었다. 관심 없고 졸린 소멜은 다시 잠들었고, 두 아이들은 딸기빙수에 달려들어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시엘은 나에게 화났다. 시엘은 요즘 달래줄 방법을 모르겠다.
꼬리는 내주기 싫지만, 꼬리를 내준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괜히 시엘의 비난의 눈길을 받으면 등골이 싸늘해지고 날개가 부들부들 떨린다.
“주인님, 말해 보세요. 지금까지 제가 보좌하기 위해 배웠던 건 다 허상이었나요? 왜 저에겐 맡기지 않냐고요?”
“그야…… 시엘에겐 흙 필드를 줄 수 없잖니.”
“그런 게 어딨어요! 저도 흙 필드 하나는 관리할 수 있다고요.”
“아니, 시엘은 자연 필드를 멋지게 만들어 줄 거야, 너한테 미약한 필드를 만들어줄 거라 생각하니?”
“그렇게 말해놓고는 저번에 만든 필드는 인간들한테 줘버리고.”
“아……”
시엘에게 준다고 말했던 필드는 지금 인간들이 절찬리에 활용 중이다.
거기서 던전의 회복성에 의해 자라난 나무들은 튼튼하고 곧아서 목재로 이용하기 편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던전 밖의 목제 건물들은 전부 던전 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말 해 봐요. 주인님.”
“미안해…… 시엘.”
나는 꼬리를 축 늘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나를 따라준 시엘에게 던전이 커 가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타피는 아리에타 언니에게 힘을, 소멜은 해변 필드를, 리파는 태어날 때부터 불 필드를 가졌지만, 시엘에게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게다가 시엘을 위한 시간도 만들지 못했다.
“다음엔 꼭 시엘을 위해 해 줄 테니까……”
“다음 다음, 몇 번째 다음이죠?”
“아……”
시엘이 다그치기에 마음이 꽉 죄는 것 같다.
시엘과 멀어질 수 없는 사이인 걸 잘 알면서도 시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괜히 나는 시엘에게 희망 고문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네?”
시엘이 쏘아붙이다가, 내 말을 이해하고는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항상 하듯 시엘을 꼭 껴안았다. 시엘은 나에게 안긴 채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린다.
DMP 자체는 12만 정도 남았다. 순간이동기를 자연 필드로 연결하고, 자연 필드 쪽 입구의 아래층으로 또 다른 자연 필드를 만든다.
[72000 DMP로 자연 필드 72칸을 형성합니다.]
[10000 DMP로 인공 태양을 형성합니다.]
[10000 DMP로 순간 이동기를 형성합니다.]
역시 여전히 나무 일곱 그루가 있는 위쪽의 방과 같은 사양의 방이다.
그리고 시엘을 안은 채로, 연결한 순간 이동기를 통해서 해가 뜬 자연 필드로 향한다.
마치 시엘이 막 태어났을 때와 같은 느낌의 방이지만 역시 가로세로 12m는 조금 좁은 느낌도 든다.
“시엘, 미안해, 너한테서 자연 필드를 빼앗아서.”
“주인님……”
“다음부터 버는 DMP는 모두 이쪽으로 돌릴게, 여기는 시엘의 땅. DMP 여유가 남으면 시엘에게도 권한을 이행할게. 엘타리스에게는 임시로 주었을 뿐이란다.”
“…….그런 것도 모르고.”
시엘은 손을 오므리고 입으로 모으며 자연 필드를 한 바퀴 뛰고 나에게 다시 달려온다.
자연풍이 어째서인지 부는 이 방에서 시엘이 미소를 짓는다.
“이 필드, 제가 키울게요.”
“글쎄, 인간들이 와야 하겠지?”
“흐음- 흙 필드에 지지 않는 공간으로 제가 설계할 거니까요. 주인님은 그저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하하, 자연 필드는 원래 큰 방으로 만드는 거 아닌……”
“아니에요, 높낮이 트릭, 그리고 숲 트릭. 저도 자연 필드에 대한 지식은 풍부하다고요.”
“그래, 그런 것도 있었지……”
던전 운영 측의 게임 용어를 쓰는 시엘에게 놀랐다.
그래도 그런 트릭까지 이해한 시엘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것 같다.
바람과 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어내고, 마찰로 나무 끝을 불태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앞으로, 이 필드는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만들어야 해요?”
“그래, 시엘.”
다행히도 시엘이 너무 비뚤어지기 전에 화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 DMP는 다시 2만 대까지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자연 필드에 대한 계산을 실수해서 전체적으로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