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8 <-- 던전 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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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엘프들의 생활은 다소 원시적이다.
이 자연 필드는 온대 기후의 식생이 자라는데 습지대도 있고 수풀이 우거져 있다.
정글이라고 부를 정도로 깊은 숲속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야생 엘프들은 여기에 살며, 수풀로 몸을 가린 옷을 입고 있다.
시엘도 타피가 만들어준 네임드들이 입는 깔끔한 옷을 입지 않았다면, 이들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다들 외모는 뛰어나다.
대부분 금발에 하얀 피부. 그리고 푸른 눈동자.
대체적으론 서양인처럼 생긴 외모인데, 가끔은 검은 머리카락이나 붉은 머리카락도 보이고, 중동 사람처럼 생긴 엘프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수렵 생활을 하는 듯하다.
“주인님, 이거 드세요.”
“응? 이건 뭐야?”
“여기서 딴 산딸기 주스에요. 주인님의 요리에 비해선 별로지만…… 맛있어요!”
“고마워~ 시엘.”
“헤헤-“
시엘이 준 산딸기 주스를 마시며 야생 엘프들의 마을을 둘러본다. 자연 필드라고 몬스터들만 있는 건 아니다.
흙 필드에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던전 요소로 거미나 동굴 벌레들이 살고 있고, 이 자연 필드에도 동물들은 살고 있다. 그 동물들의 가죽 따위가 집 곳곳에 부적처럼 널려있다.
흙 필드를 넘어올 수 있는 모험가들이라면 이런 동물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별다른 위협이 되는 생물들은 아니다. 뭐 적당히 생각하면 그저 자연 발생한다는 느낌인지.
인공 태양이 항상 하늘에 붉은 원형을 그리며 떠 있기에 여기에 있는 몬스터와 자연은 모두 그 축복을 받고 있다.
아마 야생 엘프들만 있었다면 태양을 섬기는 종교가 있었겠지만, 이들이 섬기는 건 마스터인 나이다.
그런데 왜 네임드인 시엘을 더 좋아하는지, 그저 단지 시엘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나는 겉으로 보기엔 볼품없는 흰 머리 서큐버스일 뿐이다.
“마스터님, 이것도 드셔 보시지요.”
“응, 아아, 고마워.”
구운 감자 요리다. 간은 하나도 안 되어있다.
나무를 잘라 만든 접시에 쌓인 흙과 검댕 묻은 감자, 톡톡 까보니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들어있다.
한 입 베어먹어 보니 텁텁하긴 하지만 맛있다. 하지만 너무 뜨거워서 고양이 혀와 비교될 정도로 민감한 내 혀가 아프다.
혀를 내밀고 식히는 동안, 시엘이 조심스레 다가와 내 곁에 앉는다.
지금 앉아있는 곳은 흙바닥이 아니라 나뭇동이를 잘라 만든 바닥이다.
“주인님, 저 사람이 이 야생 엘프 촌락의 촌장이에요.”
“촌장 엘프라……”
그 사람이 나에게 구운 감자 접시를 준 건가.
뒷모습을 보이는 촌장의 정보 창을 열어본다.
등급: B
종족: 야생 엘프 촌장
레벨: 110
특수 스킬: 자연 교감, 바람 다스리기, 생명의 원천
“정말 촌장이네, 이름은 없겠지?”
“저들은 던전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이름을 얻을 순 없잖아요. 이름이 있으면 네임드니까.”
“그러네…… 후, 신입 마스터 모임은 정말 가기 싫다.”
“주인님 너무 방에 콕 박혀있기만 하잖아요. 물론 회복기지만, 이제 슬슬 나셔도 된다고요.”
“싫어……”
애초에 나는 게임 하다가 이 세상에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상할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 되고, 막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마법과 신비한 것들을 계속해서 보게 되면 그 신비함도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말이 근 1년이지, 낮밤 할 것 없이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2년쯤 지난 것 같다. 그만큼 내 본성도 이 몸과 어우러져 코어 방이 너무 편하고 나가기 싫어지게 된 것이다.
“자, 일어나요. 촌장이 보여주고 싶은 게 있나 봐요.”
“알았어……”
멀리서 촌장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기에, 나는 시엘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정말로 몸이 피로하거나 그런 건 없는 편이고, 오히려 가볍다. 에너지가 넘쳐나기는 한다.
인간 시절엔 움직이는 것조차 몸이 무거워서 할 수 없었다면 지금은 다르니까, 무엇보다 몸에 에너지가 넘쳐나는 게 좋긴 하다.
“이걸 봐 주십시오. 마스터님.”
“어, 이게 뭐야?”
나무조각, 섬세하고 신비한 힘이 깃든 것처럼 보이는 나무조각이 보인다.
마치 부적처럼 보이는 그 물건은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 정보 창을 열어보았다.
야생 엘프의 부적
효과: 행운을 올려준다. 당신의 앞길에 희망이 있기를.
“음……”
“마음에 드신다면 드리겠습니다.”
“이걸 계속 만들 수는 없을까?”
“주인님, 이거 만들기 매우 어려워요. 이 야생 엘프 촌장은 자연 필드에 처음 소환한 야생 엘프 중 한 명이고, 한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물건이랍니다.”
“그럼 이걸 나한테 줘도 되는 거야?”
“괜찮습니다. 마스터님. 받아주신다면 저희 가문의 영광입니다.”
아니, 이름도 없는데 갑자기 가문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조금 난감하다.
일단 그걸 받아 들고, 목에 걸어 보았다. 왠지 매력이 증가한 기분이 든다.
세부 스텟은 게임처럼 살펴볼 수 없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마스터님.”
야생 엘프 촌장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개를 숙인다.
나는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몬스터들이 나를 생각하는 방식은 정말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흠흠, 그럼 시엘, 타피를 만나러 가자.”
“네! 주인님!”
“촌장, 자네는 이 자연 필드를 지금처럼 지켜주게나?”
“알겠습니다. 마스터님.”
스켈레톤 킹과는 글로 소통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마 이 야생 엘프 촌장도 이 필드의 보스가 되겠지?
나는 시엘과 함께 자연 필드를 바람을 타고 날면서, 순간 이동기까지 날아왔다.
“해변 필드로 가는 계단보단 이쪽이 더 빠르다고요.”
“하긴…… 자연 필드가 커지긴 했지.”
무려 초기의 72칸을 포함한 1600칸 정도의 공간이다.
높이는 4칸으로 치면 넓이는 대략 800m², 한 방으로 치면 가로세로 28m의 공간이지만, 사실상 암벽 등으로 막아서 보이지 않는 곳은 칸수로 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략 평균 높이 2칸의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넓이는 1600m²이고, 군데군데 빈 공간도 포함하고 보면 가로 세로 100m쯤 되는 공간을 자연 필드로 활용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던전용 눈속임이고, 시엘과 함께 왔을 때는 전경만 보고 갔으니까 나는 그저 엄청 큰 필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운디르나 선배님의 던전에서 본 것처럼 큰 자연 필드를 위해서라면 엄청난 DMP를 다시 쏟아부어야 한다.
원래 자연 필드에 투자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날다가 자꾸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고 나니 생각이 바뀐다.
“아…… 머리아파……”
“주인님, 너무 부딪히셨어요. 제가 드린 설계도는 머릿속에 있는 거 맞죠?”
“응……”
그리고 순간 이동기를 통해 꿈 필드로 내려온다.
시엘은 이전에는 꿈 필드에 오는 걸 싫어했지만, 레벨이 오른 탓인지 상당히 편안하게 활보한다.
“시엘, 여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
“뭐, 여전히 으스스하긴 하지만 주인님의 곁이라면 상관없는걸요? 이전처럼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요.”
“……”
“마스터어어어! 왔어?”
타피가 안개 속에서 달려와 맞아준다.
타피가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달려와 주니 나도 덩달아 기뻐진다.
바로 안기자마자 머리카락 냄새를 맡으려 킁킁거리는 모습은…….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풍경이다.
“타피, 너랑 내가 마스터와 함께 신입 마스터 모임에 가게 되었어.”
“응? 정말? 가서 싹 쓸어버리면 되는 거야?”
“그래!”
“아니야아아아!”
내가 소리치자 둘 다 귀를 막는다. 엘프는 귀가 뾰족하고, 뱀파이어는 귀가 민감하니 소리 지르면 고통스럽다는 것도 잘 안다.
“내가 언제 그랬니, 시엘. 가서 우리는 모른 척, 다른 마스터들을 살펴볼 거야. 우리가 강한 척하면 싹을 잘라내려고 하는 다른 마스터들도 있을 거라고.”
“헤헤, 그렇다고 해, 타피.”
“그런데 왜 굳이? 생각해보면 다들 코어는 던전에 있을 테고 모이는 이유가 없잖아. 이렇게 바쁠 텐데.”
타피의 의외의 지적에 나도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굳이 신입이라고 해서 모습을 보일 이유는 없다. 단지 초대한 게 리림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리림이 참여하라고 해서……”
“흐이잇……”
타피가 무서운지 내 등을 꼭 잡는다. 잠깐, 거긴 날개…… 앗……
시엘이 타피를 떼어주지 않았다면 날개가 쥐어뜯길 뻔했다.
“타피…… 그래서 네가 갈 수 있냐는 거야.”
“시엘은 같이 간다고 했는데요?”
“아아, 그래 시엘. 시엘이 타피에게 뭐라고 말했더라?”
“음- 그런 건 기억 안 나는 데요?”
시엘이 먼바다의 수평선을 보고 휘파람을 분다.
시엘이 내뱉은 말이 타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기에 그렇다.
타피는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피의 수준은 오랫동안 살펴보지 않아 다시 확인해 본다.
이름: 타피
종족: 시간의 뱀파이어
레벨: 102
특수 스킬: 빛 내성, 시간 감속, 시간 가속, 시간 정지, 혈액 조종, 어둠의 권능, 죽음의 구름
“응? 타피, 너 요즘 레벨 올리는 훈련 하고 있지 않았니?”
“읏…… 그런데요! 주인님!”
이상하다, 타피의 레벨이 시엘과 1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이전에 60레벨 때는 타피가 역전했었는데, 아무래도 시엘은 동기를 얻은 것 같고, 타피는 동기를 잃은 듯하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타피가 나 몰래 뭔가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고, 홀로그램 상으로도 뭉개져 보여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타피, 아무튼 우리 셋이 신입 마스터 모임에 가니까 기억해 둬, 알겠지”?
“알겠습니다……!’
타피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타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타피가 살고 있는 공간에 가보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