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9 <-- 던전 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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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가 사는 곳은 꿈의 필드.
꿈의 필드는 운디르나 선배님이 아리에타 언니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고, 권한도 아리에타 언니에게 있다.
이 공간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높이도 2칸, 가로 8칸, 세로 12칸 정도의 크기다.
하지만 내가 만들려면 꿈 필드는 칸당 10000, 384000 DMP나 드는 필드다. 다시 한번 선배님이 나에게 해준 필드의 가격에 대해 놀란다.
역시 부동산은 비싸다.
아무튼, 타피는 이 꿈의 필드에 검은 돌로 지어진 작은 집, 전체 필드의 1/4를 자치하는 곳에 살고 있다.
이전부터 옷을 만드는 취미는 있었지만, 시엘에 비해 레벨업 속도가 늦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막무가내로 그 집에 들어가려 했다.
“마스터, 거긴 안 돼!”
“왜, 꿈의 필드는 내 필드이기도 하거든?”
“그, 그치만…… 비밀이 있단 말야! 마스터에게 못 보여줘.”
타피가 내 팔을 잡으며 거부한다.
그러자 시엘이 타피를 은근슬쩍 떠보는 듯 말한다.
“호오- 타피, 너 설마 주인님에게 말 못 할 비밀이라도 있니?”
“시엘, 빨리 마스터를 말려 줘!”
“싫어, 나도 갈래!”
타피는 나와 시엘을 막으려 했지만, 우리 셋은 이제 레벨도 비슷하다.
레벨이 같고, 마스터 개체는 네임드 개체보다 훨씬 강하다. 타피는 결국 나를 막지 못하고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는 안쪽에 들어와서 내 눈을 의심했다.
“타피……”
“그래서 마스터한테 못 보여준다고 했잖아!”
“타피……?”
시엘도 뒤늦게 들어와 타피의 이름을 멍하니 부른다.
타피가 내 머리카락을 몰래 뽑아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떤 검은 관 속에 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이 있었다.
최근에 타피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일 테다.
필드 사용 권한도 주지 않았고, DMP 사용 권한도 주지 않았는데도 타피는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타피같이 말괄량이인 아이가 반항하지 않았다는 걸 의심하긴 해야 했다.
내 앞에 새근새근 자고 있는 관 속에 든 나…… 그러니까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인형?
실제로 살아있으니 인형은 아니고, 은은한 서큐버스의 향이 난다.
“타피, 이건 대체……?”
“마스터,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 잘못을…….”
“아니, 타피,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든 거야?”
“흑…… 흡…… 저는 마스터와 함께하고 싶어서……”
“울지 말고, 뚝. 타피.”
내 옷자락을 잡고 우는 타피의 등을 두들기며 달랜다. 하는 김에 안아주었다.
타피와 나, 시엘은 키가 비슷해서 어깨에 얼굴이 올라오게 폭 안긴다.
나는 저 인형을 보고 놀랐다기보다는 저 인형이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다.
이건 또 나르시즘인지…… 아바타의 몸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바타의 몸으로 1년간 생활하다 보니 이 몸도 내 몸처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서서히 다가서서 손끝을 몸에 갖다 대었다.
따뜻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엘은 드디어 얼어붙은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잖아. 타피는 DMP를 사용할 권한이 없었는데?”
“응? 도플갱어? 이 아이도 살아있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인형술사 중에 있는 스킬인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인형술사와 꿈 마법의 사이에 있는 스킬입니다. 주인님.”
“도플갱어 아니야, 시엘.”
“그러면 저 기분 나쁜 게 뭔데? 어째서 주인님이랑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든 거야!”
“시엘은 주인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모르잖아!”
큰일이다. 타피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었는데, 최근에는 워낙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다.
시엘이 나를 더 많이 원했으니까, 저 인형은 몬스터들에게도 기분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쁘다. 그래, 나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 아이가 입은 검은 드레스는 너무 아름답다.
“아냐, 타피, 그럴 수도 있지.”
“주인님, 이건 기분 나쁜 인형이잖아요, 빨리 없애버려야 해요.”
“타피가 날 위해서 만들어 준 거잖아.”
“……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주인님.”
그래, 관 속에 든 소녀 모습의 인형, 게다가 따뜻해서 진짜 살아있는 것 같은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지만 기분 나쁜 걸지도 모른다.
타피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뭐, 저런 것도 만들 수 있지 않아?
“시엘, 타피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 나는 괜찮으니까.”
“주인님…… 이렇게 기분 나쁜 물건을 만든 타피를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용서랄 게 있니? 그래도 이건 압수. 타피가 요즘 이걸 만드느라 레벨이 안 올랐었던 거지?”
“흡…… 그건 안 돼요!”
타피가 눈망울이 떨어지는 울먹이는 얼굴로 나에게 항의한다.
하지만, 타피가 이걸 만드느라 레벨이 안 올랐던 건 사실이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타피를 다그친다.
“타피, 너는 이걸 만드느라 레벨업을 등한시했지? 이제 신입 던전 마스터 모임은 한 달이야. 한 달 동안 타피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겠지?”
“마스터……!”
“안 돼. 타피. 이건 내가 가져갈 거야.”
사실 이 인형을 분석해 보고 싶기도 하다.
당장 정보 창을 열어 보자, 알 수 없는 문자들로 오류가 나오기도 했다.
어차피 나는 항상 잠을 자지 않으니까, 이 인형 같은 게 숨을 쉬고 있으니, 내 방에 가져다 두면 일어날 법도 해서 기다리려고 한다.
오랜만에 [수납]을 통해 수납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지만, 정말로 수납되지 않는 걸 봐서 몬스터는 아닌 듯하다.
“흠…… 이걸 어떻게 가지고 가지?”
“주인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건 어떤가요?”
“아냐, 타피가 날 위해 만든 거라니까? 시엘, 자꾸 그러면 널 혼낼 거야?”
“…… 알았어요. 바람 정령을 불러 데려갈게요.”
“그리고 타피, 너는 우리들의 스위트룸으로 가자, 밥 먹고 놀란 마음 다스리렴.”
타피는 얼굴이 울상인 상태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었던 걸 들킨 탓인지, 분노인지 울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감정도 느껴진다. 뭐, 감각 공유를 하면 알겠지만, 타피와는 감각 공유도 최근엔 별로 하지 않은 듯하다.
시엘은 내 인형이 든 관을 아니꼬운 듯 바람 마법으로 들어 올리고, 우리는 순간 이동기를 통해 코어 바로 위쪽에 있는 우리들의 석굴로 돌아왔다.
돌아오면 밤이었는지, 석굴에 꾸며놓은 시계가 하얀 달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을 대략적으로 알려주는 시계. 이 물건은 외부의 공기를 분석하여 쓰는 마법이 걸려 있어 바깥이 밤인지 낮인지 쉽게 알려준다.
돌아오고, 시엘을 시켜 내 인형이 든 관을 바닥에 눕힌다.
타피는 구석으로 가서 무릎을 안고 고개를 숙인다.
“타피, 괜찮으니까, 한 달 동안 시엘과 시합해서 이기면 돌려줄게.”
“…… 그럼 주인님, 제가 이기면요? 저 흉측한 인형은 치우는 거예요?”
나와 똑같이 생겼는데, 시엘이 자꾸 흉측한 인형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가 싶어 다시 만져보니, 피부의 촉감이 나와 똑같이 말랑거린다. 이게 흉측할 리가 없다. 하지만 시엘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못하다.
축 처진 타피는 온종일 어르고 달래야 했다. 시엘은 훈련을 한다며 다시 자연 필드로 올라갔고, 타피는 뒤늦게 힘을 내며 저 인형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두 네임드를 보내고 나면, 이 방에는 인형과 나만 남게 되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 보송보송하고 풍성한 흰 곱슬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트리고, 다소 병약하게 보이는 모습.
그리고 나는 이 인형의 꼬리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으응……”
“어라?”
부들부들한 꼬리 볼살이 느껴지자, 인형이 신음한다.
정말 이 인형이 [도플갱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매일같이 정보 창을 열려고 해도 뭔가 액세스가 거부된 듯 열리지 않았다.
외부에서 이런 마법을 부리는 몬스터가 올 길도 없고, 그저 신비해서 이 인형의 주변을 살펴보았다. 역시 관 안쪽에 특이한 옥색 돌이 보였다.
바로 정보 창을 열어보았다.
도플갱어의 관
효과: 머리카락을 붙이면 도플갱어가 관 속에 형성된다. 실제 살아있는 생명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움직이지는 않고 약한 반응은 하지만 항상 잠을 잠. 크기 차이가 많이 날 경우 형성되지 않음.
“이거구나…….”
약한 반응이라는 건, 이 도플갱어 인형이 하는 행동은 내가 의식이 없을 때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궁금해서 꼬리를 계속 건드리니, 인형은 기분 좋은 듯 살짝 미소를 짓는다.
내가 저런 미소를 짓는 건지,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 빠져들 것 같다.
“아니지……”
입가에 늘어진 침을 닦는다.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귀엽고 아름답다.
이런 아이가 시엘과 타피와 함께 걷는다. 나는 거울에는 몸이 비치지 않고, 겨우 반투명한 유리 같은 곳에서나 모습이 살짝 비치는 정도이기에 내 모습을 살펴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보면서 만질 수 있는 내 몸이란 게 신기했다.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이 인형에 미약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오늘은 4개만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