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0 <-- 신입 던전 마스터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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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에게서 도플갱어의 관을 회수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내가 서큐버스가 된 지는 이제 1년이 되었고, 던전 코어를 밖고 난 뒤로부터는 9개월 째.
던전의 상황부터 살펴보면, DMP는 던전에 드나들면서 목재를 수급하는 인간들과, 도전하는 모험가들로 인해 일당 4만~5만 선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목재 건물로 지어진 위에 레드 드래곤이 와서 전부 불타버린 탓에 복구작업에도 수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뛰어난 모험가들은 건물을 복구하는데 쓰이고 있고, 그나마도 마력석을 뽑아가기 위해 겨우 들어와서 사냥할 뿐이다.
인간들이야 어떻게든 되든 상관없다지만, 그들을 부활시키는 르테아 언니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언니……”
“아, 응…… 괜찮아요.”
“언니, 좀 쉬어요. 며칠째 마력 부족이에요?”
르테아 언니의 안색이 좋지 못하다.
벌써 저런 모습만 한 달째다. 언니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눕힌다.
“아, 으응…… 나는 괜찮으니까요. 인간들을 되살려야지요.”
“언니! 몬스터가 인간을 살리고 죽는다니 대체 무슨 소리에요.”
“하하, 그건 그렇네요. 세이나님.”
언니의 몸은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쓰는 마법,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인 빛으로 좀먹히고 있다.
아무래도 부활 마법은 빛 계열로 쓰는 부활과 어둠 계열로 쓰는 부활이 있는데, 인간들에겐 아무래도 빛 계열이 맞다 보니 언니의 상태가 저렇게 되었다.
다크 프리스트에게 인간을 부활하라는 건 무리가 가는 작업이다.
진짜 엘타리스에게 말해서 인간들에게서 대대적으로 치유사를 기르라는 명령이라도 내려야겠다.
“언니, 쉬라고요! 명령이에요.”
“아, 알았어요……”
언니를 눕히고, 이마에 찬 수건을 덧씌운다.
르테아 언니를 아프게 하는 인간들이 밉지만, 그들은 DMP를 벌어들이는 가축이기 때문에 어쩔 수도 없다. 사실 어쩌고 싶기는 하다.
오늘은 리림의 습격이 예정된 날이다. 아무래도 리림에게 앞으로 내 던전에 올 때는 인간들을 불태우지 말라고 해야겠다.
DMP의 획득 양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막 자라나는 나의 던전에는 크나큰 피해를 줬다.
“세이나님, 저는 가지 않으면 인간들을…… 크흣.”
“쉬라고요. [깊은 잠]”
마법으로 어떻게든 르테아 언니를 잠재운다.
분홍색 구름이 나와 르테아 언니의 숨결에 빨려 들어가고, 르테아 언니는 억지로 눈을 꽉 뜨려고 하다가 눈을 뜬 상태로 새근새근 잔다.
손으로 눈을 감겨드리고, 편안한 자리에 눕힌다.
아마 바깥이었으면 성녀를 잠재운 벌로 인간들에게 나는 토벌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르테아 언니는 정말 인간들의 정신적 지주까지 되고 있었다.
대체 어디 몬스터가 인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느냐고 싶지만, 내 던전 위의 인간들은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이자 중추라는 사실을 모른다.
엘타리스는 자신의 부하들을 권속으로 만들고, 부린다. 타락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인간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그 속에 흐르는 피는 몬스터의 것이다.
이들은 운동도 잘하게 되고, 마력도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몬스터적인 특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마스터인 나를 보면 섬기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런 타락 방식을 생각해낸 엘타리스는 대체 뭘까? 오히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인간의 충성심이 늘어났다고 내 앞에서 자랑을 한껏 한 적도 있다.
“하아…… 언니.”
쿨쿨, 깊은 잠에 든 언니를 안전한 곳에 뉘이고, 꼬리를 살짝 들고 일어나 벽면에 있는 도플갱어를 바라본다.
이 도플갱어의 관은 별다른 변화 없이 내 모습과 똑같은 인형이 들어있다.
하지만 인형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내 본체와는 달리 무지무지 적다.
F급 몬스터나 인간이 있다면 이 인형의 가진 마력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꼬리를 건드릴 때 말고는 반응이 없어, 그저 관상용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내 모습을 관상용으로 쓴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타피나 시엘은 이곳에 오면 자신들의 욕망을 마구마구 쏟아붓는다. 진짜를 두고도 가작에게 달려가는 아이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리파도 가끔 와서는 처음엔 싸늘한 얼굴로 ‘기분 나빠’라고 했으면서, 내가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자기 꼬리를 저 도플갱어에 덮고 있었다.
어째서 도플갱어가 나를 대신하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리파는 더더욱 나쁘다. 일부러 애정을 다른 이들에게만 주고 있다.
잠깐,
도플갱어에 마력을 불어넣고, 나 대신 활동하게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마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오히려 손해인 것 같다. 감각 공유를 도플갱어에게 넣어보려고 해도 인형이기에 걸리지 않는다.
애초에 저 도플갱어의 관의 소유권은 내가 아니라 타피다.
그리고 오늘은 타피와 시엘이 와서 자기 레벨이 얼마나 되었는지 확인하는 날이다.
레벨 100 이후에는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그 이전과 차이 난다.
만들어질 때부터 100이 넘는 몬스터들은 그렇게 소환될 뿐이지만, 직접 네임드나 마스터가 레벨을 올리는 건 힘든 것 같다.
“주인니이이임~”
“마스터, 왔어!”
“그래, 일루 오렴~”
시엘과 타피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에게 달려와 안긴다.
또 넘어질 뻔했지만, 마력으로 다리를 강화해 버텼다. 두 아이는 나와 무게가 비슷해서 그냥 있었다간 달려든 아이들의 무게에 뒤로 넘어진다.
세 명이 껴안은 채로 한참 있다가, 시엘이 먼저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끊었다.
“우리 모인 일은 이게 아니잖아요, 주인님.”
“그래, 두 명 다 내 앞으로 와.”
““네!””
내 앞, 한 5걸음 떨어진 자리에 왼쪽에는 시엘, 오른쪽에는 타피가 각각 선다.
둘 다 긴장한 듯 동공은 줄어들고, 침을 꼴깍 삼키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정보 창을 열어 두 네임드의 상태를 확인한다.
먼저, 타피.
이름: 타피
종족: 시간의 뱀파이어
레벨: 105
특수 스킬: 빛 내성, 시간 감속, 시간 가속, 시간 정지, 혈액 조종, 어둠의 권능, 죽음의 구름
“타피 105레벨, 100레벨 이후엔 올리기 어려운데 벌써 3이나 올렸네?”
“헤헤, 주인님, 저 한 달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그리고 시엘.”
시엘은 내 눈을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눈으로 바라본다.
이름: 시엘
종족: 시간의 엘프
레벨: 103
특수 스킬: 시간의 새싹, 바람의 전문가, 계산
“시엘은 103, 2레벨 올렸네. 그러면 승자는 타피지?”
“예에에에에!”
“아아……”
타피는 신나서 폴짝폴짝 뛴다. 그리고 자신의 괴력으로 도플갱어의 관을 든다.
시엘은 시무룩한 채로 그 관을 바라본다. 설마 자기 필드로 가져갈 생각이었던 걸까?
“패배를 인정할게요.”
“마스터, 나 집에 갔다 올게!”
“그래, 타피, 빨리 오렴. 오늘 모임이야.”
“맞다, 주인님~”
시간의 엘프 시엘이 갑자기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주변의 시간이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면서…… 아니 정말 느려졌다. 세피아 색으로 주변 공간이 물들었다.
그대로 나에게 달려와 키스한다.
입술끼리 살짝 맞닿자 따스한 기운이 전해져 오며, 나는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으응? 시엘!’
“헤헤, 주인님 1살이 된 걸 축하드려요!”
“뭐어어! 시엘, 나도 주인님께 할 거야!”
이 장면을, 도플갱어의 관을 이고 순간이동기로 가려던 타피가 뒤돌아본다.
역시 타피는 민감하다. 그 붉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는, 얼굴을 붉힌다.
“타피는 괜찮아. 하지 마.”
“그러면 주인님께 영양을 드릴게요!”
“그것도 싫어.”
“그러면 주인님의 피를!”
도플갱어의 관은 어느새 뉘어져 있고, 날아온 타피에게 나는 목덜미를 물려 피를 빨렸다.
아프지는 않지만, 이상할 정도로 목덜미가 저릿한 기분이 든다. 아니 정말 찌릿찌릿 피가 안 통해서 저린 느낌이……
“안돼! 나 이러다 빈혈로 죽어……!”
“흐흥, 마스터, 그러니까 영양도 드릴게요.”
“시러어어!”
이젠 목덜미에서 뭔가 자꾸 밀려온다.
타피를 때놓으려다가 타피의 힘이 워낙 강해 이기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온몸이 피가 안 통하는 듯 저리다. 마치 책상에서 자고 난 뒤 팔이 저린 느낌이다.
“아아……”
“마스터, 오랜만에 기분 좋았어요.”
그래, 타피는 뱀파이어였다. 잊고 있었지만 피를 빨아먹는 일족이다.
어쩐지 요즘 피를 안 빤다 싶었더니, 마스터인 나에게서 대량으로 빨아갔다. 입을 쓱 닦는 타피의 모습이 얄밉다.
게다가 시엘은 미묘하게 삐진 채라 도와주지도 않았다.
나는 쓰러진 채로 마력으로 혈관을 억지로 강화시키고, 피를 만드는 기관을 강화시켜 피를 뿜어내고 일어난다.
그러자, 밖에서 리림이 온다는 신호가 들렸다. 또다시 인간들을 살리느라 괴로울 르테아 언니에게 작은 애도를 표하며, 순간이동 장치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