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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72화 (7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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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디르나 선배한테 매달려 어느 빈방에 안내되었다.

여기가 내 방이라고…… 상당히 화려하고 고급진 방이라 내가 쉬이 마음 놓을 수 있는 방은 아니다.

한 주 동안 여기서 파티를 연다고 하는데, 이런 파티를 여는 건 친목 목적이 다분하다. 하지만 게임과 현실은 천지차이다.

“주인님, 밖에 나가자!”

“마스터, 나도 밖에 나가서 다른 마스터들의 힘을 이겨낼 수 있어!”

시엘과 타피는 내 옆에서 칭얼거리며 밖에 나가길 원한다.

하지만 나는 별로 나가고 싶지 않다.

게임속이라면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마을, 뭐 그런 곳에는 NPC들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 열리는 파티는 으레 배경 대신 그려진 인간이나 몬스터, 뭐 그런 종류들이 그려져 있고 ‘파티가 열렸다!’ 정도로 넘어가는 이벤트이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용, 몽마, 정령, 그리고 네임드에서 약한 마스터를 흡수하고 스스로 마스터가 된 이들.

그들을 보면 떨리고 무섭다. 특히 네임드에서 마스터가 된 경우는 더더욱 무섭다. 눈에 불길을 켜고 움직이는 크로커다일을 만났을 땐 정말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파티는 밤낮 할 것 없이 열린다. 포x몬처럼 네임드들을 이용해 싸우는 일도 정원에서 벌어진다. 나는 그 정도밖에 보지 못했고, 나가기 싫었다.

운디르나 선배님은 울면서 쓰러진 나를 이 방으로 데려다주셨다. 나는 그 때문에 ‘선배바라기’라는 별명을 얻은 것 같다.

어감은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마마보이’와 비슷한 의미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다.

“마스터, 밖에 나가면 맛있는 혈액도 있다면서!”

“주인님, 저도 바람의 정수를 들이켜고 싶어요.”

“그래도 안 나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상태로 한숨을 내쉰다. 내 팔은 네임드들이 하나씩 잡고 이끈다.

이 건물에는 전체적으로 마력과 힘을 억제하는 장이 펼쳐져 있어 다들 힘이 제한된다.

나는 뭐, 보이는 대로의 힘밖에 못 쓴다. 그리고 생활 마법 약간?

청결 마법으로 온몸을 씻어낼 수 없다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다. 알몸을 남들에게, 그리고 스스로도 본다는 건 거부감이 아직까지도 든다. 르테아 언니가 쓰는 모험가용 샴푸로 함께 멱감는 건 즐겁긴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싫어어어!”

“주인님…….”

“마스터…….”

결국 두 아이가 포기한 듯 침대에 걸터앉은 내 옆에 다가와 앉는다.

푸근한 두 아이의 체온이 느껴져 기분 좋다. 하지만 별로 내색하지는 않는다.

“시엘, 알았지?”

“타피, 그래.”

잠깐, 너희들 뭐 하는 것?

갑자기 내 몸이 들린다. 언제 내 허리에 손을 얽고 일으킨 거지?

“아야야야야! 싫어, 나 여기서 뒹굴뒹굴할 거야!”

“주인님, 여기까지 와서 다른 마스터들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죠.”

“맞아 맞아, 마스터는 다른 마스터들보다 강하다고요.”

“……. 알았어! 나갈 테니까 너희들 절대로 약한 척해야 한다!”

““네!””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두 아이가 밉다. 저 많은 마스터들 사이로 나아가야 한다니.

정말 가기 싫은 다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 원형 복도가 보인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3층이며 바깥으로 향하는 창문은 없고, 복도에서 바로 라운지를 바라볼 수 있다. 라운지는 메인 파티가 진행 중인 장소이다.

내가 받은 번호는 163번, 정말 의외인 건 내가 막내가 아니었다.

저쪽 라운지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마스터, 용족으로 용인 형태를 띤 누나 같은 이미지의 마스터이다. 저분이 가장 나이 어린 마스터라고 한다. 번호는 166번.

아마 막 혼절 된 상태에서 깨어난 참에 이 파티에 초대되었을 것이다. 던전을 구성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초짜다.

“나오셨습니까? 세이나 마스터님.”

“아, 아, 예…….”

복도에서 밖을 바라보는 동안, 옆으로 잘 생긴 남자가 다가왔다.

인간으로 치면 나이는 18세에서 23세 사이로 보인다. 턱수염이 매력적인 몽마, 인큐버스.

나와 같은 스페이드 모양의 꼬리가 있고, 몽마이니만큼 상당한 미형에 은발 적안.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근육질, 목소리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여자라면 참 좋아할 법한 꽃미남 스타일이다.

“파티는 어떻습니까?”

“아니, 그, 저……”

“주인님은 오자마자 방콕 중이었다고요!”

“마스터님과 만나면 좋겠네요~ 두 분. 어울려요.”

아니, 타피,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 몽마는 정말 어떤 의미를 지니고 나에게 접근한 것 같다. 게다가 내 이름도 안다.

가슴팍에 있는 이름표를 대신하는 번호를 보면 31번이 적혀있다.

“당신, 이름은 뭔가요?”

“타세리안입니다. 세이나 마스터님.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다녀도 되겠습니까?”

“그……. 타세리안님, 당신의 네임드는 어디 있나요?”

이상하다, 나도 내 곁에 경계하는 시엘과, 머릿속에서 맘껏 망상을 펼치는 타피가 있는데 이 사람은 없다.

가슴이 쿵쿵 떨리는 착각이 느껴질 만큼, 이상할 정도로 같은 몽마여서 그런지 긴장된다.

딱히 인간 시절에는 남자였어서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기분이 든다.

“아, 제 네임드들은 방안에서 휴식 중입니다. 저는 제 몸은 지킬 수 있거든요.”

씨익 웃는 타세리안 씨, 그는 과시하듯 허리춤에 있는 레이피어를 드러내고, 반짝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미안하지만, 저는 그런 모습에 마음을 주는 사람은 아니어서요.

“우와아악!”

멀리, 라운지에 리림이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용인이라 그런지 본래 힘이 강해서 이것저것 깨트리며 망탕거리고, 뭔가를 마시며 논다.

저쪽에 끼는 것보다는, 그래도 매너 있는 척은 하는 이 사람 곁이 나을까?

어차피 친목주의로 온 곳이고, 몬스터는 남녀관계가 희미하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마스터끼리는 더더욱 그렇다.

“마스터, 어서 같이 놀러 다니자!”

“주인님, 저는 주인님 맘을 따를게요.”

그러니까 오해할 만한 말 좀 하지 마라, 너희들.

타세리안 씨는 손을 내밀고, 나는 왠지 잡는 분위기가 든다.

나는 과연 이 화려한 공간에 있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아이 같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고, 이 인큐버스는 멋들어진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고 있다.

나도 된다면 차라리 저런 사람이 되는 게 나았을는지?

“꼭 그 손을 잡아야 하나요?”

“아니, 이건……. 죄송합니다, 레이디. 아니 세이나 마스터님. 저는 전생의 기억과 헷갈려서…… 마스터끼리는 이렇지는 않지요.”

“전생이라…….”

어쩌면 마스터는 죽고 나서 되살아난 그런 존재일까?

나도 어렴풋이 벼락에 맞은 컴퓨터가 꺼지지 않는 환상 끝에 운디르나 선배님의 던전 안에서 생성되었지만, 나는 그때 벼락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니 전생? 인간 시절에 대한 미련이 옅어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혹시 전생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잘하면 게임 세상에 대한 이야기나, 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터다.

그리고 다른 마스터들에 대한 의문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하, 제 전생은 말이죠……”

젠장, 나는 투 머치 토커와 함께한 것 같다.

이 사람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의 자기 기억을 읊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자신은 어떤 왕국의 백작가 아들로 시작해 큰 공을 세우고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을 읊었던 것 같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만하라고 해도, 이 사람, 아니 인큐버스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 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꺼리시거든요.”

“아,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죠.”

타세리안 씨는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나는 이 인큐버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지쳤다.

대체 몽마들은 어떤 종족인지, 이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몸이 전율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나쁘지만 은근히 편안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뭐, 그냥 목소리만 듣다가 잠들 뻔하기도 했다.

뒤에 있던 나의 두 네임드는 코까지 골면서 잔다. 그래도 이 타세리안 씨와 함께라면 네임드들을 쉬게 해도 되겠다며 [수납]했다.

“던전은 어디 있으십니까? 저는 7대 마스터이자 서큐버스인 아스타로른 선배님의 남동쪽 35km 부근에 있답니다.”

“아, 저는 운디르나 선배님의 북북서 30km 부근입니다.”

“흠, 꽤 먼 곳이로군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턱수염을 잡고 허공을 바라본다.

나도 그쪽을 보다가, 뒤에서 나를 향해 ‘선배바라기’라고 말하는 한 마스터 무리가 지나갔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 너무 많이 잡았나요? 다른 곳은 구경하셨습니까?”

“아아, 아니에요, 방에 들어갈래요.”

“푹 쉬세요, 파티에는 익숙하시지 않은 듯하니. 이 파티는 1년에 한 번씩 열린답니다. 저는 8년 차이지요.”

“예……. 감사합니다. 저는 몸이 아파서 방에 가볼게요.”

“푹 쉬세요.”

왠지 이 인큐버스와 함께라면 계속해서 얽혀붙을 것 같아서 끊어버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환상이지만, 심장이 쿵쿵 뛴다. 머릿속이 그 인큐버스로 가득 차는 듯하다. 얼굴이 너무 붉고 열이 올라 온몸을 기는 듯하다. 마치 열감기에 걸린 것 같다.

방으로 돌아와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네임드들을 다시 불러내고 침대에 눕혔다. 밖은 슬슬 어두워진다.

그래서인지 타피가 일어났다. 눈을 뜨고 그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스터, 피를.”

“그래…….”

타피가 피를 빨면 이 열도 해소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맡겼다.

그리고 타피가 피를 빨고 영양을 공급해주자 머릿속이 깨끗하게 겐다.

“마스터, [매혹]에 걸리고 있었어.”

“응? 내가?”

“조심해, 마스터. 나도 걸렸었으니까. 방으로 돌아와서 다행이야.”

“……. 고마워 타피.”

“천만에.”

타피가 웃자 피가 살짝 묻은 송곳니가 달빛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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