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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73화 (7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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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밤인데 나가지 않을래?”

“하아…… 매혹당한 내가 무슨 낯으로 밖으로 나가?”

내 종족이 아무리 서큐버스, 그러니까 여자밖에 없는 종족이 되었다지만, 남자에게 [매혹]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서 절망 중이다.

굳이 내 사랑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나와 비슷한 생명체다. 던전 온라인을 플레이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와서는 그저 이 아바타와 이 몸처럼 생긴 이들을 좋아할 뿐이다.

“마스터, 그 인큐버스. 자신이 매혹한다는 개념도 없었어. 그냥 자연스레 매혹하고 있었을 뿐이야.”

“후…… 그래도 나가기 싫어.”

“다른 마스터도 알아야지,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영원히 선배바라기로 남고 싶어?”

선배바라기라는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별로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이렇게 낯선 장소에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의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타피를 바라보니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시간이 밤이어서 그렇다.

그에 반해 시엘은 완전히 잠들었다. 이 방은 안전하다고 들었으니 푹 쉬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타피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일어났다.

타피 말대로 적과 아군은 구별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내 주변에 어떤 마스터들이 있는지도 알면 좋다.

“그런데 리림도 와 있는데, 7대 마스터가 아닌 다른 마스터들도 와 있는 걸까?”

“내 감각으로는 그래, 지금도 밖에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네.”

“타피, 감각 공유될까?”

사실 내가 묻는 것보다는 동의 없이 감각 공유를 거는 게 맞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타피에겐 동의를 구하고 싶었다. 타피가 나보다 더 커 보인다.

타피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하지만……

“끄아아아앗!”

“마스터, 괜찮아?”

“아아, 머리 아파……!”

선배님께 들었던 내용을 벌써 까먹었다.

여기선 마법이나 힘이 제한된다고, 용과 몽마, 그리고 정령 족은 전부 엿듣는 데는 귀가 그렇게까지 밝지 않은 종족들이다. 다른 네임드 출신의 마스터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귀가 좋은 종족은 없어 보였다.

이 능력의 제한은 파티장에서 난투가 벌어지는 일을 막고 펼쳐지는 검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게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렇게 방안에만 있다가 누군가에게 내 장소가 알려지고, 움직이지 않는 내가 검은 함정에 빠져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아…….”

“마스터, 머리는 어때? 열은 안 나는데……”

같이 이마를 맞대며 온도를 재어주는 타피의 이마가 따스하다.

뱀파이어인데 차갑지 않고 따뜻한 타피는 언제나 좋다. 게다가 서로의 붉은 눈이 붉은 눈망울에 상으로 맺힌다.

“타피, 가자, 밖에 나가고 싶어.”

“마스터, 쉬는 게 낫지 않겠어? 왜 마음이 갑자기 바뀐 거야?”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날 지켜줘, 타피.”

“알겠어, 마스터.”

타피가 방긋 웃는다. 그런 타피의 얼굴이 귀여워 무심코 껴안았다.

타피는 싫지 않은 듯 팔을 내 등으로 휘감았다.

“참, 마스터. 내가 파티라고 해서 마스터를 위해 만든 옷이 있는데……”

“타피는 파티가 뭔지 알고 있어? 무슨 옷을?”

“나는 몬스터라고?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지식은 있네?”

“아아, 미안. 그랬지.”

“아무튼, 마스터를 위해 준비한 옷이 있어. 안 입겠다고 해도 입힐 거니까.”

“……?”

타피가 [블러드 박스]를 허공에서 꺼낸다. 피가 쏟아지고 상자 형태가 나타난다.

어째서 저 마법은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마법과 능력은 다른 건지? 아니면 나에게서 피를 빨아간 게 원인일까?

블러드 박스에서 나온 옷은 내 몸에 딱 맞는 크기의 검은 드레스.

보자마자 나는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 아니…… 그건 좀.”

“마스터랑 어울릴 거야! 마스터 사이즈로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그건……”

타피가 입은 옷은 검은 정장, 내가 저 옷을 입으면 타피와 커플복이 된다.

그보다, 나는 원피스는 편해서 입지만…… 다른 옷을, 그것도 여성용 드레스를 입으라는 건 머리가 아픈 것보다도 싫다.

하지만 타피는 실실 웃으며 다가와 나에게 억지로 입혔다.

……

어째서인지 타피는 나보다 더 많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밤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 나도 따지고 보면 밤의 종족인데 타피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지금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발목까지 내려오는 드레스를 입고 걷고 있다.

그것도 타피의 손을 잡고서……

어리숙한 소녀마냥 파티장을 돌아다니니 내가 대체 왜 여기 왔는지 궁금하다. 부끄러움을 겪으라고 온 건가?

“저기, 저 아이 선배바라기 아니야?”

“에이, 설마. 그 애는 원피스를 입었다고.”

옆에서 나를 향해 까르륵 웃는 소리가 들린다. 흘긋 흘겨보면 정령과 용으로 보였다.

타피는 그들을 무시하고 늠름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타피가 가는 곳을 따라갈 뿐이다.

리림이 중앙에서 고성방가하며 노래 부르는 장소를 지나친다. 주변에 있는 마스터들은 다들 리림을 피하고 있다.

밤이라 그런지 몽마 마스터들이 특히 많아 보인다. 정령들도 많고, 다들 삼삼오오 모여있다.

그 와중에도 시끄러운 사람도 있고, 조용히 술 같은 것을 홀짝이는 사람들도 있다.

“타피, 어디 가는 거야?”

“이쪽으로 와, 마스터. 보고 싶은 게 있어.”

“알았으니까……”

발걸음에 신경 쓰고, 타피와 함께 어느 발코니로 나왔다.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간. 밤의 별과 달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정원에는 별빛과 같은 푸른 빛이 가득하다.

“이걸 보고 싶다는 거지? 굉장하네.”

“응, 마스터.”

타피가 다시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런 타피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타피는 네임드인 걸……

이상하게 낭만이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타피가 훅하고 내 귓가에 입을 가져온다. 나는 놀랐지만, 갑자기 달려든 타피에게 등골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스터, 저기 있는 저 드라고니안, 네임드 출신의 마스터, 15번 라크라스. 저 드라고니안은 마스터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던전을 가진 녀석이야. 인간으로 치면 같은 프란시아 왕국령에 속해있고, 마스터를 괴롭히기 쉬운 녀석이지.”

“타피…… 그건 어떻게.”

타피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니 술같이 생긴 붉은 정수를 들이키고 거나하게 취해 쓰러진 드라고니안이 보인다.

드라고니안은 용은 아니고, 도마뱀 인간 같은 녀석들이다. 크로커다일과 드래곤과는 사촌 관계인지 정확히는 늪지대 필드를 만들지 않아 모른다.

뱃살이 늘어져 있고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다. 문득 보았을 땐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그 뱃속에 검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쉿- 조용히 해 마스터. 그리고 저쪽, 투트리스 정령. 냉기의 정령 보이지? 저 녀석은 마스터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야. 당장 이번에 마스터가 날갯짓하며 내려올 때부터 마스터를 죽이려고 했어.”

“그건 어떻…….”

“쉿!”

타피가 내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자. 억울한 일이 있는 가녀린 소녀처럼 입을 다물었다.

딱히 소녀인 척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타피가 말하는 건 이 파티의 즐거운 분위기와 너무 상반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투트리스는 120번, 마스터로부터는 꽤 멀리 있는 녀석이지만, 네임드를 이용해 선배를 무력화시키고 코어를 탈취할 생각인 것 같네. 마스터의 힘은 알려지지 않지만, 코어를 탈취하려는 녀석들은 어디에든 많아. 게다가 네임드들도 조심해. 나처럼 여기서 힘을 얻으면 힘을 쓸 수 있는 것 같으니까.”

“…….”

타피는 그럼 나에게서 피를 빨아갔던 게 의도였던 건가?

귀가 밝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지독하게 알고 있지만, 괴로워서 타피와 감각 공유를 거의 하지 않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타피의 놀라운 말에 그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마스터. 차라리 그런 연약한 모습을 연기하는 게 나아. 왜냐면 저쪽에 있는 고고하게 서 있는 서큐버스. 7대 마스터인 아스타로른. 저 여자, 로리콘이야.”

“뭐?”

“조용 하랬잖아. 들었을 뿐이라고.”

“으…….”

“마스터가 지금 여기서 힘을 드러내면 위험한 건 이 정도, 물론 마스터들을 노리는 네임드들도 있지만, 그런 녀석들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 경계하고 있는 녀석들은 있으니까. 그리고 7대 마스터들은 능력을 그대로 쓸 수 있는듯하고 그 사람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그래…….”

갑자기 긴장된 전장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타피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만, 입술을 덥석덥석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마스터, 사…… 아니, 선배바라기라는 인상은 지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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