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 신입 던전 마스터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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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와 외출했던 밤은 너무나도 편안히 지나갔다.
뭐, 리림이 깽판 치는 일은 언제나 있는 일이니 그렇다 치고, 다른 마스터들도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어떤 마스터가 준 잔을 받아 들었지만, 안쪽엔 불의 정수가 있어 먹을 수 없었다는 점? 그 마스터의 번호는 내 바로 뒤인 164번 불의 정령이어서 나에게 모르고 줬다는 점?
타피에게 돌아다니며 계속 듣기로는 역시 신입 마스터 모임이라는 명목인지, 다들 레벨이 낮다고 한다.
나이순으로 매겨진 순번, 163번인 내 위치는 이 마스터 모임에서도 상위 5%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 말에 놀라기도 했고 마음 놓기도 했다. 다들 엘리트 던전 마스터들만 모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피,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까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설렁설렁 돌아다니다가 여러 마스터들을 만났다.
만날 때마다 나보고 선배바라기라는 말을 하지만, 애써 무시했다.
타피는 나를 지켜주느라 힘들었는지, 방에 돌아오자마자 죽은 듯이 잠들었다.
타피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잠이 든다. 일어나고 난 뒤 낮에는 비몽사몽 간에 제대로 힘을 못 쓰지만, 밤에는 쌩쌩하다. 그리고 시엘이 이 시간이면 일어난다.
“주인님! 저 일어났어요!”
“응, 시엘, 밥 먹으러 가자.”
“네? 주인님의 요리 먹고 싶은걸요?”
“하하, 그럴까……”
여기 와서는 여기서 주는 음식만 먹었었다.
마찬가지로 DMP로 만든 요리인지, 꽤 맛도 좋고 배도 잘 찬다.
메뉴를 열어 보니, 푸른 동그라미 안에 수치가 156854 DMP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43586 DMP였는데, 하루 안에 어떻게 11만이 증가했는지 이상하다. 내 던전의 상황이 급한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하지만, 감각 공유는 걸리지 않으니 초조한 마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 뭐, 리림이 온 탓에 DMP가 쭉 내려온 이유도 있겠지.
“그래, 주문하자.”
[10 DMP로 피자 한 판을 주문합니다.]
오늘도 나타난 피자 한 판을 침대 위에서 나눠 먹는다.
시엘이 만족한 듯이 먹는, 천사 같은 모습을 보면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시엘은 자연의 맛이 난다는 콜라를 들이켜고, 손을 깨끗하게 마법으로 닦는다.
우리 둘 다 다시 할 일이 사라졌다.
“주인님, 같이 밖에 나가자!”
“그래, 이번에는 마스터들을 더 알아가야지.”
그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 순간, 라운지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궁금해서 달려가 바라보았다.
떠들썩하던 실내의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싸해진다.
“아스토니안 마스터, 이 자리에서 결투를 신청한다.”
“뭐, 지금 나에게 모욕을 준 건 그쪽이네, 류트 마스터.”
둘 다 용인 모습을 한 용족 마스터들이다.
한쪽은 레드 드래곤, 다른 쪽은 블루 드래곤, 꼬리의 색상으로 알 수 있고, 그들의 사이에 튀는 불꽃이 보일 정도다.
그들의 사이로, 어느 두건을 눌러 쓴 마스터가 나타난다.
“정원으로, 결투를 허락하고 그 대가는 너희들이 정하지.”
“대가는 코어. 아스토니안, 네 모욕은 목숨으로 갚아라.”
“시끄러운 자식, 류트 마스터, 이젠 마스터라는 호칭도 쓰지 않지? 그래서 네가 안 된다는 거야. 그렇죠 선배님?”
“시끄럽다. 아스토니안. 난 너를 그런 녀석으로 기른 적이 없다네!”
두건을 벗자, 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정말 위엄 있는 어떤 나라의 왕 같은 모습. 장년의 남성에 꼬리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용의 것.
뿔은 그의 위대한 힘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우람하지만, 너무 거대하지는 않다.
그의 손에 두 용인 모습의 마스터는 밖으로 나간다.
내 귀가 밝은 편은 아니지만, 라운지 어디에선가 저 사람이 7대 마스터라는 말이 나온다.
그 거대한 위엄, 자신의 힘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금방이라도 싸우려고 하는 두 마스터를 말리고 정원으로 데려가는 모습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나도 시엘의 손을 잡고 무심코 따라가, 어제 타피와 함께 왔던 발코니로 나왔다.
“두 마스터의 제한은 없이, 죽이는 자가 상대 던전의 코어를 가져간다. 결투는 무제한. 네임드는 사용할 텐가?”
“그런 녀석들은 필요 없습니다.”
“나도 필요 없어, 선배님.”
소리 높여 말하는 그 금빛 용인의 말에, 두 용인은 대답하고는 서로를 노려보며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변신하다.
레드 드래곤 쪽은 거대한 발톱을 드러낸 드래곤, 꼬리로 땅을 탕 치며 상대를 위협하고 크기는 10m쯤 되는 것 같다.
블루 드래곤 쪽은…… 귀여워!
조금 전에 그 늠름한 남성 용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키는 1m는 될지, 아기용 같은 모습이 나타나 무심코 코피를 쏟을 뻔해서 코를 막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힘이 외모로 드러나는 건 아니다. 물론 마력을 하나도 안 썼을 때의 물리적인 힘은 육체의 크기나 근육의 양에 비례하겠지만, 이 세상은 마나가 있다.
“주인님, 계속 구경할 거야?”
“응, 마스터들의 힘도 알고 싶고 말이지.”
사실 싸움 구경은 재미있어서다. 남자라면 피가 끓는 저런 용 두 마리의 전투는 꼭 보고 싶은 거다.
“흐음, 그럼 나는 주인님의 곁으로 오는 잔챙이들을 볼게. 바람이 자꾸 불온한 눈빛이 주인님께 향하고 있다고 알려주네.”
“뒤를 부탁해, 시엘.”
두 드래곤은 서로를 노려본다. 거대한 레드 드래곤은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는 듯하고, 블루 드래곤은 엄청난 마력의 파장이 흘러나온다.
그들이 싸우는 공간을 표시하는지, 반투명한 금빛 결계가 만들어진다. 금빛 용인, 저 마스터가 쓰는 고유 스킬인 듯한데, 그 어떤 공격도 막을 법한 마력이 담겨있는 게 느껴진다.
“쿠오오오오- 가소롭군, 네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
“키만 큰 멀대 같은 녀석이.”
블루 드래곤, 아스토니안 씨는 목소리도 귀엽다. 분명히 용인 모습으로 변하는 건 저런 모습을 숨기고 싶어서일 것이다.
멀리서 봐도 나보다 더 작아 보이는 블루 드래곤이 먼저 [얼음 숨결]을 사용한다.
아기용 같은 귀여운 용의 입에서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티틱 울리며 일직선으로 레드 드래곤에게 날아가고, 레드 드래곤도 [화염 숨결]로 대치한다.
하지만, 그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몸집에서 나오는 브래스는 리림의 것을 상상했으나, 작은 블루 드래곤에 비해서도 약하다. 선공이 블루 드래곤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너무 미약해 보여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블루 드래곤에게서 나오는 브래스의 크기와는 비슷한 정도. 크기가 무조건 위력을 담는 건 아니지만, 양쪽 드래곤 전부 얼굴이 파래질 때까지 브래스를 쏘며 대치한다.
따분한 싸움에 나는 메뉴를 열어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음, 이게 좋을까? 시엘, 팝콘은 어때?”
“주인님, 조심하세요.”
“하, 그래…… 나는 노려지고 있지? 저런 약한 마스터들만 있으면 몰래 약하고 방심하는 척이라도 할까?”
하품이 나올 듯한 브래스 힘 싸움에 멍하니 바라보다가, 차라리 누군가에게 습격당하는 쪽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주의를 돌리고 나를 공격한다는 녀석이겠지.
“…….주인님의 뜻이 그러시다면요.”
“그놈이다 싶으면 내 꼬리를 만져.”
“그, 그래도 되는 거죠?”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돼.”
나는 방심한 척, 드래곤들의 싸움을 보는 척, 메뉴를 열어 팝콘을 주문한다.
[30 DMP로 팝콘을 주문합니다.]
어째서 피자보다 팝콘이 세 배나 더 비싼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원래 이런 시스템이다.
“비싸네, 팝콘.”
“우왕- 이거 너무 맛있어요! 달콤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게!”
나는 버터 맛이 느껴지는 팝콘을 한 줌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 씹히는 식감이 좋기는 하지만 영화관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팝콘이라는 느낌이다.
단지 혀가 조금 민감해진 탓에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맛이 조금 더 느껴지는 정도, 팝콘이 잘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식감이 괜찮기는 하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도 느껴지는 습격할 만한 존재의 느낌이 느껴진다.
일부러 무방비한 척을 하고 뻣뻣하게 굳은 꼬리를 흔들었다.
“쿠와오우우우!”
용들의 싸움은 점점 진행되고 있지만, 서로 대치한 채로 브래스만 쏴서 그런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서로 치고박고 싸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또다시 하품이 나올 듯하던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꼬리를 만지작거리는 느낌에 뒤돌아봤다. 시엘이 보고 있었다는 그 무언가다.
“호호, 안녕하십니까, 마스터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아하…… 당신이시군요.”
가슴팍에 붙은 숫자 15번. 드라고니안, 라크라스 씨.
어젯밤 타피가 말한 뱃살 나온 도마뱀 수인이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던전이 있는 마스터다.
31번인 인큐버스, 타세리안 씨가 8년 차니 이 사람은 더 나이가 많고 10살보다는 적다는 소리다.
“호호, 그래요. 우리 서로 안면이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나는 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그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손에 든 팝콘은 시엘에게 주었다.
시엘은 콜라를 쪽쪽 마시며 상대를 노려본다. 상대는 네임드 둘을 데리고 있다.
한쪽은 비슷한 드라고니안으로 보이고, 한쪽은 고스트 계열로 보인다.
“호호, 제가 뭐 잘못했나요? 당신은 그 세 종족이라, 나 같은 잡종과는 말도 섞기 싫으시겠다?”
“아뇨, 아닙니다.”
이런 자리에선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시비 걸러 왔다면, 당당하게 맞부딪히는 게 낫다.
========== 작품 후기 ==========
다음 소환할 캐릭 (흙 필드 담당) 시안이 옛저녁에 나왔는데 스토리가 쭉쭉 안 나가네요
이번 장면도 꽤 중요한 장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