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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77화 (77/95)

00077 <-- 움직이는 검은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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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 마법에 걸려 새근새근 천사 같은 얼굴로 자는 시엘과 함께 있는 방안.

나는 그 옆에 누워 천장에 있는 문양에 네모가 몇 개 있는지 확인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12시간 전이라……”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아마 타피와 함께 돌아다니며, 발코니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화려한 정원과 그 빛깔을 보고 감상하고 있었다.

그게 어째서 이런 일로 이어진 건지, 타피에게도 묻고 싶다. 타피는 정말 살해를 저지른 게 아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옆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새근새근 자느라 듣지 못하는 시엘에게 묻는다.

시엘은 눈을 감은 채, 옅은 미소만을 짓고 있다. 7대 던전 마스터가 시전한 [깊은 잠]은 얼마나 오래 갈지, 상상도 안 간다.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는 네모가 114개, 115개……

반복되는 천장의 무늬만 보며 하염없이 세다가 누운 채로 다시 세기를 반복.

너무나도 고급진 이 방은 내 것이 아닌 양 느껴지고, 괜히 내 마음만 복잡하게 만든다.

타피에게 걸린 혐의는 마스터 살해죄.

어딘가의 탐정처럼 나가서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만 들끓지만 내 두뇌가 그 정도가 될지도 모르고, 마법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알리바이를 만들기는 매우 쉬울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곧바로 문이 폭발하며, 먼지가 날리고 용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세이나! 안녕!”

“리림……?”

“히히, 세이나. 우린 친구 맞지?”

“어어, 그래…….”

리림이 출현했다. 그것도 문을 부수고 나타났다.

문에 제아무리 최상급의 마법 결계가 펼쳐져 있다고 해도, 벽과 문을 이루는 소재의 인력을 넘어서는 강한 힘이 들어오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나는 깨진 문과 주변에 있던 벽돌을 보고, 이 외계 문화의 건물 같은 것이 그래도 이해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라 안심했다.

“세이나? 밥 줘! 세이나 요리가 여기 있는 것보다 훠얼씬 맛있어!”

“응…… 주문해 줄게.”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요리 메뉴를 고르며 리림의 말을 듣자 눈가가 뜨거워진다.

별다른 표정도 짓지 않았을 텐데, 일부러 무감정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리림이 캐묻자 입술을 깨물었다,

운다고? 아니, 나는 울지 않는다. 그저 감정이 벅차올라 조금 참을 뿐이다.

리림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뭔가 생각하는 듯 보인다. 리림에게서 평소에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리림, 무슨 일 있어? 뭐라도 먹었니?”

“아니, 지금 세이나를 기쁘게 하려면…… 뭐가 있을까?”

[30 DMP로 피자 3판을 주문합니다.]

그래도 나에게 찾아와준 리림이다. 바로 메뉴에서 주문한 피자 세 판을 내밀었다.

리림은 활짝 웃고 꼬리로 바닥을 탕탕 치며 먹기 시작한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여러 생각을 한다.

“리림, 혹시 이 건물에 ‘눈’이 있어?”

“응? 그게 뭐야?”

어라, 눈 몬스터는 꽤 유명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엘타리스에게 들었던 정보인데, 나이 1200살인 리림이 모른다고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다.

던전에는 모두 눈이 있는 게 아닌가? 아니라면……

“아! 눈깔사탕 말하는구나!”

“그게 뭐야……?”

리림의 사고 구조는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리림이 곧 설명을 시작하며, 나는 그 눈깔사탕이라는 몬스터가 내가 말하는 몬스터 눈과 같은 종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면 리림의 몬스터들은 모두 종족 명이 변경되는 건지? 어쩌면 그 근처의 가호가 있을지도 모른다.

“…… 그거라면 있어! 곳곳에 말이지.”

“그러면, 다행이다. 타피가 범죄자가 아니니까.”

“응? 타피가가 누구? 아! 세이나의 아가!”

“아가 아니야!”

리림과 섞이다 보면 나까지도 리림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

정말 울뻔하다가 웃음이 나와 나도 놀랐다.

조금 전까지 짓눌린 마음이 무엇이냐는 둥 허무하게도 나았다.

그때, 열린 문으로 검은 로브를 쓴 한 명의 7대 마스터가 나타났다.

“리림 마스터…… 시설 파괴로 인한 변상은 알지요?”

“헤헷, 알다마다! 1만 DMP면 되지 않는가! 자 받아라.”

“리림…… 당신은 역시 변하지 않는군요. 세이나 마스터, 이 시설을 복구할 때까지 다른 방을 드리겠습니다. 당신 네임드의 건은 유감이지만 진실은 꼭 저희들이 밝혀냅니다.”

“예…….”

그 검은 로브의 마스터에게서 나는 위엄 있는 목소리에, 나는 평화롭게 자는 시엘을 [수납]한 뒤에 따라나섰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원피스, 오늘따라 더 많이 흔들리는 듯하다.

내 품에는 어제 타피가 준 드레스를 들고 있다. 이걸 입는 방법은 타피밖에 모르니 꼭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앞에 서서 걸어가는 검은 로브의 마스터를 따라 원래 있던 방의 2층이 아니라, 4층까지 걸어간다.

뒤따르는 리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 내가 주문한 피자를 쩝쩝거리며 먹고 있다.

“음, 쩝쩝, 세이나,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런 일은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고.”

“……”

“전생이니 뭐니 하는 것에 맛 들려서 말이지, 여기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녀석들 많아. 그때마다 언니오빠들이 나서서 슉슉 끝내버린다고.”

“하…….”

내가 걱정하는 건 정말 타피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다.

어젯밤 타피는 다소 폭주한 상태로 나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목에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막지 못한 내 죄가 더 클지도 모른다. 오자마자 1년이 딱 되는 주에 소멸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세이나, 걱정 마, 어떻게든 될 거야!”

“그래……”

어색하게나마 웃음이 나왔다.

7대 마스터는 문을 열고, 안쪽에 운디르나 선배님의 것과 같은 결계를 친다.

그 결계는 운디르나 선배님의 물색 결계가 아니라 보라색을 띤다.

“리림 마스터는 잠시 밖으로.”

“으응? 왜, 왜! 세이나는 내 친구거든!”

“피의자와 친구라니, 리림 마스터. 당신도 이 사건에 연루되고 싶습니까?”

“아…… 알았어! 버, 벌금은 싫으니까.”

리림을 내쫓고, 이 방에는 나와 검은 로브의 7대 마스터가 남았다.

마법을 쓸 수 있었으니, 네임드가 아니라 정말 7대 마스터일 것이다. 네임드는 이만큼 강렬한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왠지 익숙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이 느낌은……

“아스타로른……. 마스터님.”

“흐흐, 어떻게 안 거지?”

순식간에 돌변하고, 로브의 후드자락을 벗어 던지는 여자, 아니 서큐버스.

그녀의 얼굴에는 매혹적인 웃음이 흐르고, 나는 그녀가 [매혹]을 쓰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이 방안에 남겨지게 되었다.

“선배님은 어디 있죠?”

“어머, 선배바라기, 그건 졸업해야 하지 않겠니? 벌써 1년 차라면서.”

“아아……. 그래요, 근데 왜, 저에게……”

“서큐버스의 일을 알려주기 위해서지.”

……?

죄송합니다.

저는 알고 싶지 않은데요, 그런 거?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물론 몬스터 급 서큐버스들은 남자들의 몸 위에 타고, 흔들흔들 편안한 자세로 하얀 우유를 뒤집어쓰며 DMP를 뽑아내긴 하지만, 설마 그런 파렴치한 생각을 하는 거니?”

“아뇨!”

저분은 내 머릿속까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것 같다.

게임상에서는 묘사를 피했지만, 그래도 꽤나 아슬아슬한 묘사에 야한 옷을 입혀놓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운디르나 선배님의 밤 필드나, 아리에타 언니의 복장을 봐도 그랬다.

그런 생각을 품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분은 검은 로브 속에 아슬아슬한 복장보다는 검은 고스로리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그런 상상을 품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

아스타로른 씨의 꼬리가 요염하게 흔들리며, 점점 다가오기에 나는 벽으로 뒷걸음질 쳤다.

“세이나, 자꾸 실례되는 생각 하지 말고. 몽마는 남에게 꿈을 주고 정기를 빼앗는 종족이야.”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는 지금 전혀 그런 특질이 나타나지 않잖아. 자, 어서 내 마력을 빼앗아 봐.”

조금 곤란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나보다 머리 반 개쯤 키가 큰 아스타로른 씨가 내 눈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는다.

나는 자꾸만 얽히는 손에 집중할 수 없었다.

“모르는 거야? 아리에타에게 배우지 않았어?”

“그, 호흡 방법이나 명상법은 배웠지만, 안 배웠는데요?”

“하, 대체 뭘 가르친 거야. 그 애, 나와 운디르나 사이에서 나온 애거든.”

아리에타 언니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는지,

아니 그보다 지금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조금 두렵다.

눈이 핑핑 도는 느낌이 들며, 손에서 뭔가가 흘러들어온다.

“으응! 그래, 이거야!”

“그, 대체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아무래도 아스타로른 씨의 정기를 내가 빨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아스타로른 씨의 얼굴이 붉어지고 표정이 위험하다.

낮은 한숨을 내쉬며 아스타로른 씨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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