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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78화 (78/95)

00078 <-- 움직이는 검은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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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한숨을 내쉬는 아스타로른 씨의 숨결이 이마에 와 닿는다.

무섭지만 손을 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벗어나자니 벗어나는 방법도 모른다.

그저 연한 분홍색 머리카락과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며 떼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 이거야……! 내 마력이 빨리는 느낌. 세이나, 너라면 내 마력을 전부 다 줄 수 있어.”

“놔 주세요.”

“세이나, 너도 내 마력이 맛있지 않니?”

아스타로른 씨의 마력이 몸으로 흘러들어오며, 이 건물에 들어오며 제한당한 마력이 풀리는 느낌이다.

여기에서 얻은 마력은 쓸 수 있다는 제한이었는지, 타피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스타로른 씨의 마력이 흘러들어오면서 이상한 기운이 자꾸만 느껴진다.

“그래…… 나도 언니라고 불러 줘.”

“싫어요!”

“왜? 내가 싫은 거니?”

“그, 아니……”

아스타로른 씨의 손이 드디어 벗어났다. 숨을 하아하아 내쉬며 흐르는 침을 닦는 모습은 정말 무서워 보인다.

내 앞에 있는 서큐버스가 인간 기준으로 중학생 정도 나이대가 아니었다면, 분명 저 얼굴은 범죄자의 것으로 잡혀갔을지도 모른다.

“흐흐, 내 마력은 어땠니?”

손이 저릿하고, 마력이 들어왔던 통로라고 해야 할지, 혈관을 따라 저릿하고 마비되는 강렬한 마력이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정수를 내어도 평소보다 수 배는 낼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이 장소는 정수를 혼합해 네임드를 만드는 친목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도 있고.

“어때? 괜찮았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참, 그래. 눈이 있는 위치는 아시나요?”

“그런 것 같다니! 분명 너에게 나의 정수만 넘겼는데? 왜?”

다시 아스타로른 씨가 나에게 다가와 벽으로 밀치고, 손을 잡는다.

손가락들이 연체동물처럼 움직이며 서로 얽히고, 아스타로른 씨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다가온다.

“흐읏……”

“괜찮아, 나도 세이나의 마력을 받아갈 테니까.”

“안 돼요!”

시간의 정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마스터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이 증상은 타세리안 씨에게 [매혹]에 걸렸을 때와 같다. 나는 끝까지 숨겨야 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스타로른 씨가 전쟁을 걸고 찾아오면? 나는 코어고 뭐고 모든 걸 털려버린다.

“아냐, 조금만, 조금만 받아 갈게.”

아스타로른 씨의 입술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면서 머릿속이 아스타로른 씨로 채워져 간다.

부드러운 입술이 이마에 닿고, 조금 전 빨아들였던 마력이 그대로 뽑혀나가는 기분이 든다.

넘쳐나는 힘이 빨려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쓰러졌다.

“흐흐, 그래, 맛있다. 역시 세이나는 마력도 아름답네. 그런데 이건 뭘까?”

“아……”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입이 저려서 잘 돌지 않는다. 마력이 통째로 빨려 나간 기분이다.

곧바로 세피아 색으로 물들어가는 공간에,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고유 스킬이 들켰다. 아스타로른 마스터는 나를 죽이고 코어를 빨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시간의 정수라……. 그래서 운디르나 마스터가 그렇게 널 숨겼구나.”

“역시, 저는 이제 죽는…… 거죠?”

“아니! 누가 너같이 귀여운 마스터를 죽이겠어, 어서 크렴! 물론 키는 절대로 크면 안 돼.”

뒤쪽 말은 마치 운디르나 선배님이 다른 말을 할 때처럼 섬뜩했다.

일어나려고 하나 관절에 힘이 하나도 붙지 않는다.

“맞아, 아까 하던 말을 할까?”

“네……”

“나도 루나가 아쉽기는 하거든. 던전이 아기자기해서 나랑 취미가 비슷했는데 말이지. 세이나, 네가 살릴 수 있을까?”

무리다. 지금까지 어떤 마력을 써도 1시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걸 제외하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스타로른 마스터의 말을 들으면 왠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력이 부족하다고? 괜찮아. 자, 이 손을 잡아봐.”

“네……”

“그대로 오른손으로 내 마력을 빼앗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왼손으로는 내가 마력을 빼앗을 거고.”

“…… 그럼 똑같은 거 아니에요?”

“전부 시간의 마력으로 변환시켜라, 세이나.”

“넵.”

싸늘해진 아스타로른 씨의 말에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또다시 눈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워지고, 맞잡은 손에서 마력을 빨아들인다.

왼손으로는 빨리면서, 오른손으론 빨아들이고, 시계방향으로 도는 와중에 모든 마력을 시간의 마력으로 변환시킨다.

“세이나, 이젠 역방향으로, 알겠지?”

“네……”

얼마간 변화가 완료된 후, 갑자기 마력의 흐름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바뀐다.

우리가 맞잡은 손 가운데에서 시간의 마력이 모이고, 주변 공간을 몇 시간 이전으로 되돌리기 시작한다.

아스타로른 마스터의 수많은 마력을 모두 변화시키려니 점점 피부가 돌처럼 쩍쩍 갈라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지만, 주변 공간은 확실히 뒤로 역행하고 있다.

“세이나, 조금만 더.”

“므으으……!”

어금니를 깨물고 마력을 변환시키다가 버티지 못해 손을 놓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주변 공간은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바깥은 또다시 어둠에 잠겼고, 밖에는 막 뜨기 시작한 달빛이 방안을 비추고 있다.

“세이나, 시간이 없으니까 말할게. 일단 이거 입고 따라오기만 하면 돼.”

“이러면…… 사건이 변화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괜찮아, 이전에도 7대 마스터가 모여서 폭주한 한 마스터의 일을 한 번 저지한 적이 있었거든, 아 그때는 일주일이었어.”

“……?”

“그러니까 이 세상은 적어도 세이나의 시간 마법을 수용할 정도로 튼튼하다는 말이지.”

아스타로른 마스터가 생글생글 웃는다.

의외로 저 마스터도 괜찮을지도? 이건 내가 [매혹]에 걸려서가 아니고, 동족이라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아스타로른 마스터의 손을 잡고 일어날 수 있었지만, 내 팔을 보니 수없이 많이 깨져있었다.

깨져있는 걸 보니 더 아프게 보인다. 팔에서 오는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마나 과잉 현상이네.”

“무, 뭐 하시는 거예요!”

아스타로른 마스터가 손에 침을 발라 팔에 발라준다.

미지근한 침이 묻어 기화되며, 차가워지는 기분에 눈을 꼭 감았다.

지나간 공간에서 곧바로 아픈 것이 순간적으로 날아가며 갈라진 틈새가 메워진다.

“이거 쓰고, 가자. 범죄자를 잡아 죽여야지.”

“그러면…… 타피는 제게 돌아오는 거죠?”

아스타로른 마스터는 내 팔을 치유하는 데 집중했다.

그 방법이 침을 바르는 거라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지나간 곳이 메워지며 편안한 기분이 든다.

“세이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네? 나랑 맞을지도?”

“아니거든요!”

“하하, 농담이야. 친구들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 세이나는 분명히 네임드들에게 사랑받는 마스터일 것 같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건 언니라고 부르면 대답해 줄게.”

“……”

팔이 다 낫자, 아스타로른 마스터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 후 검은 로브를 씌워주며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뭐, 굳이 거의 만나지도 않을 것 같은 아스타로른 마스터인데, 언니라고 불러주는 게 어디 덧나는가?

사실 계속해서 누나라고 불러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그런 건 아리에타 언니 때부터 꺾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었다.

“부를게요, 아스타로른 언니.”

“우와아앗! 나 죽어, 심장마비로 죽을 거야……!”

“언니, 심장 없잖아요? 심장 마사지라도 해 드려요?”

“흐읏, 나는 정말 죽을 거야! 얇은 땀을 배인 상태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동생이라니.”

안 되겠다. 이 로리콘은 어떻게든 피하는 게 답이었다.

정말 계속해서 언니라고 불렀으면 행복사 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부활] 마법은 쓸 줄 모른다. 게다가 방금 전은 아스타로른 마스터의 마력이었지, 내 마력을 쓴 건 아니다.

그래도 상황이 심각해서인지, 곧바로 아스타로른 언니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맞겠지……?

“하아하아, 그래, 지금은 루나를 구하러 가야 하니까.”

“알겠으니까, 빨리 가요.”

“시간, 이제 3분 후면 완벽하게 12시 전이 된다. 3분 이내에 도착해야 해.”

“늦었잖아요!”

“아니, 세이나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왜 내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로리콘 언니가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고, 멋있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매혹]은 아니다.

그리고 배경으로 보이는 시계가 째깍째깍 울린다.

이 시각은, 정확히 내가 타피와 함께 2층 발코니로 가서 악의 섞인 다른 마스터들에 대해 귓속말로 듣던 시각.

타피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놓이며 한숨을 쉬었다.

곧바로 나는 선배님의 팔에 잡혀 방을 나가고, 1층으로 시원스럽게 떨어졌다.

날갯짓을 파닥파닥 하긴 했지만, 그럴 필요 없이 그저 아스타로른 마스터에게 시원하게 공주님 안기 포즈로 안겨버렸다.

부끄러움도 잠시뿐, 흥청망청 마시는 야간의 파티가 지속되는 시간에, 루나 마스터가 어느 네임드가 건네는 잔을 받아 들 때, 우리는 달려갔다.

“너를 마스터 살해죄로 체포한다.”

“그 잔, 마시면 안 됩니다.”

나는 잔을 쳐서 액체를 떨어트렸고, 아스타로른 언니는 범죄자를 잡았다.

잔에서 떨어진 검은 액체는 정수가 아니었다. 그대로 떨어진 액체가 바닥을 녹이며 방울 자국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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