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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79화 (79/95)

00079 <-- 움직이는 검은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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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죠, 제가 마스터를 죽이려 했다니요?”

그 네임드는 잡아떼며 말한다. 가슴팍에 달린 번호표가 없기 때문에 네임드인 걸 알 수 있다.

네임드와 마스터를 구분할 방법은 가슴팍에 달린 번호표다.

마스터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번호표가 필요하며, 네임드 홀로는 돌아다닐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네임드는 주변에 마스터가 있다는 소리이며, 그 마스터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 몬스터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이상하게 아스타로른 언니에게 마력을 받은 탓인지 날개가 강화된 느낌이고, 쉽게 날아가 잡아낼 수 있었다. 마치 7대 마스터처럼, 나는 이 공간에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마력으로 근력강화가 된 탓인지 그 마스터는 나에게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이 범인 녀석에게 올라타자 조금 마음이 편안한 기분이 든다.

고꾸라진 마스터는 가슴팍에 58번을 달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대화한 적 없는 인큐버스였다.

“동족이라고? 참 어이가 없구나, 소브린. 당신은 마스터 살해 혐의, 그리고 동족 살해 혐의로 소멸형에 처한다.”

“무, 무슨…… 소립니까! 당신은 이 파티장을 지켜야 하는 7대 마스터……!”

아스타로른 언니의 마력은 막강하고, 범죄자에게 자비가 없었다.

언니의 손에서 보랏빛 번개 같은 것이 나와, 내가 묶어 쓰러트린 인큐버스를 잡아서 공중으로 올려 묶어낸다. 그러자 ‘끅’ 소리를 내며 그 인큐버스 마스터는 기절한다.

언니가 저지른 마력의 흐름을 느낀 건지, 다른 7대 마스터가 등장했다. 외모를 봐서는 가장 왜소해 보였다.

아스타로른 언니는 계속해서 그 마스터를 노려보았다. 네임드는 이미 새카맣게 타서 죽어있다. 네임드는 어떤 종족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간형인 것 같기는 하다.

“예로부터 죄를 증명하는 방법은 쉬웠지. 이걸 마셔라.”

“크윽…….”

“당신은 누구지?”

호리호리하면서도, 뭔가 귀찮은 듯,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다른 왜소한 던전 마스터의 눈이 하얀색으로 빛난다. 뒤쪽에 슬쩍 나오는 꼬리는 숨길 수 없는 용의 것이고, 이 달밤에도 하얀색으로 반짝인다.

아마 7대 마스터인 황금용 티엔루 씨가 아닌, 다른 용족 마스터인 것 같다.

“루티네, 오랜만이네.”

“아스타로른 마스터, 당신은 분명 저 바깥의 다른 공간에도 존재합니다만, 혹시 시간의 마법을 쓴 겁니까?”

“쉿, 모두의 기억을 지울 테니 조용히. 이 인큐버스 마스터는 루나 던전 마스터를 죽였어. 그래서 돌아왔다.”

이상하게 우리 주변으로 하얀 막이 쳐지고, 그 안에서만 목소리가 동굴에서처럼 맴도는 느낌이다.

황금빛 막처럼 생긴 티엔루씨의 마력과 같은 종류라고 생각된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쪽은 누구지요? 나는 저런 마스터를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건 비밀, 내 아이니까.”

“아이라니, 마스터의 네임드란 말이죠? 앞으로 등록된 네임드만 데려와요, 귀찮아요. 자고 싶으니까요.”

검은 후드 속에 감춰진 얼굴의 입 부분에 하얀 손을 가져가, 루티네라고 불린 알비노 드래곤이 하품을 한다. 물론 용인 모습이기에 용의 뿔과 비늘이 섞인 꼬리만 있을 것이다.

검은 후드 그림자 안에서 빛나는 하얀 눈동자도 단춧구멍처럼 얇아지고, 졸린 눈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그럼 시간의 왜곡이 나타나지 않게 잘 해결해 봐요. 나는 귀찮으니까 갈게요.”

“일단 기억을 같이 지우고, 이 녀석이 활동하게 만들어. 12시간 뒤에 해결할 테니까.”

“귀찮다니까요, 나쁜 마스터네요.”

알비노 드래곤 마스터는 또다시 하품하면서도, 그 마스터는 자신이 구성한 반구형 결계를 깨트리고 주변으로 하얀 충격파를 남긴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마스터들은 그 하얀 충격파를 맞았다. 기절한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의 기억도 지우는 거죠?”

“아, 그건 나중에. 일단 고마워, 루티네.”

루티네라고 불린 알비노 드래곤은 하품을 하며 또다시 날아간다.

아스타로른 언니는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보랏빛 구름을 내뿜었다.

그리고 나에게 서서히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세이나, 여기에서 마스터들은 힘을 쓸 수 없는 거 알지?”

“네……”

“그러니까, 지금까지 줬던 힘은 다시 빼앗을 거야. 참, 아직 휴식기라고 했었지?”

“네, 그러니까……. 조금만 남겨주시면 안 될까요?”

아스타로른 언니가 방긋 웃는다. 아름다운 서큐버스의 웃음이다.

나를 꼭 안는다. 포옹에 따스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나는 온 마력을 한번에 빼앗겨 잠들었다.

……

눈에 햇빛의 자극을 받고 일어났을 땐, 내 옆에 타피와 시엘이 나를 안은 채 자고 있었다.

시엘은 눈을 꼼짝거리며 일어날 시간이고, 타피는 이제 잠들 시간이다.

다시 12시간 뒤로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마력이 다한 탓인지 몸이 너무 나른하다.

마치 악몽을 꾼 듯한 느낌이다. 꿈을 꾼 느낌과 자고 난 뒤 개운한 느낌이 든다.

마스터의 몸이란 이런 건지, 마력만 있으면 영원히 깨어 있을 수 있을 텐데, 자주 마력을 끝까지 풀어내어 잠들고 혼절되는 일이 잦은 것 같다.

“오으응…….”

“마스터, 머리 냄새 죠아아.”

“타피, 일어났어?”

타피와 시엘은 잠꼬대를 하는 것 같다.

특히 타피는 눈은 꼭 감은 채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콧가로 가져가 비비적거린다.

어제는 죽는 줄 알았던 타피.

그게 어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죽을 줄 알았던 잠든 타피의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깨끗해지고 참을 수 없는 행복감이 벅차 오른다.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고 일어나려고 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세이나! 귀여움은 정의다. 어째서 너의 네임드들은 그렇게 귀여운 거지……? 내 마음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역시 세이나는 최고야.”

“아스타로른 언니……”

언니를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언니는 또 나를 보고 폭주한 채로 코를 쓱 닦고 있다.

뒤에는 메타리온 마스터가 등장했다. 미안한 듯 고개를 내리깔고 있다.

“죄송하다. 나를 너무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의 왜곡이 일어나는 중이다. 봉합되는 1시간 뒤까지는 쉬어주시길 바란다.”

“어차피 세이나의 모든 마력은 내 몸에 빨아들였으니까! 유녀의 마력 최고야, 너무 행복해!”

“윽…… 일어나게는 해 주세요!”

다행히 말은 할 수 있지만,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움직이지 않는다.

또 병약 속성을 주렁주렁 단 히로인이 된 듯한 느낌. 기분이 나빠 일어나고 싶고, 밖에 나가 마스터들과 뛰놀고 싶다.

아마 한 시간 전이라, 지금쯤이면 두 드래곤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싸우며 서로 노려보면서 쓰러지겠지.

그걸 생각하니, 드라고니안 라크라스와 싸웠던 기억도 떠오른다.

어제 쓴 마력은 확실히 그 드라고니안과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전쟁에서 사용될 마력의 총량을 아늑히 넘어설 만큼 많았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자, 아직도 쌩쌩한 아스타로른 언니가 두려울 정도로 보인다.

아니, 지금은 다른 의미로 두려운 것 같다.

몸 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나를 노리는 고스로리 복장의 로리콘 여중생 외모나이의 서큐버스.

응, 이거 완전히 위험하잖아. 그래도 뒤에서 메타리온 씨가 아스타로른 언니를 묶어두고 있으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와 눈을 감았다.

딱히 피곤하다는 건 아니지만, 죽은 척하는 게 나았으리라 생각했을 뿐이다.

“뭐야, 세이나! 세이나! 자는 거야? 아니, [깊은 잠]은 네임드들에게 밖에 안 걸었는데?”

“위험함, 세이나 마스터 잠. 아스타로른 밖으로.”

“싫어어어! 세이나와 이것저것 할 거야. 그래, 세이나가 자면 푹-“

“위험한 아스타로른 마스터 급속마취. 세이나 마스터, 휴식을 취하길.”

메타리온 마스터가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꺄아아악’ 하는 비명이 들린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고, 아마 루나 마스터가 아니라, 58번 누군지 모르는 인큐버스 마스터가 죽을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싶은데, 나의 네임드들도 일어나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없다.

그래도, 포근한 두 아이가 내 양옆에서 볼비빔을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주인니힘-“

“마스터어, 좋아요.”

“나도 좋아, 타피. 시엘.”

그런데 코어가 없는데, 쉰다고 마력이 회복될까?

나는 두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안돼! 시엘, 잠꼬대 하면서 내 꼬리 만지지 마!”

“헤헤, 주인님 꼬리 젤리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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