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속 서큐버스-83화 (83/95)

00083 <-- 폐허가 된 세이나 마을 -->

=========================================================================

르테아 언니가 나의 감각 공유를 받지 않는다.

게임으로 치면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느낌이다.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걸어보지만 공허한 대답만이 돌아온다.

“언니……?”

“마스터, 왜 그래?”

“주인님, 혹시 르테아 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어?”

“언니……가……. 감각 공유를 받지 않아……”

“뭐라고!”

나보다 더 화를 내는 아이들, 타피는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쥔다. 시엘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한다.

돌아오면 모두 있으리라고 안심한 탓이다. 던전 코어와 떨어진 마스터는 이렇게 무능하고, 어떤 정보도 받을 수 없다.

던전이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한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단 마음을 차분히 먹는다.

‘엘타리스 양, 지금 빨리 내 앞으로 나타나세요.’

‘넷…… 세이나 마스터님.’

심각성을 안 건지, 엘타리스는 내 말을 제대로 듣는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리해야만 한다.

그때, 소멜과 아리에타 언니, 그리고 리파가 돌아왔다. 다들 나를 보러 오느라 생긋생긋 웃고 있지만, 지금 내 표정은 웃을 수가 없었다.

아리에타 언니가 분위기를 읽고 밀크티를 탄다. 수저 소리가 공허하게 석굴 안을 울린다.

“주인, 미안해, 내가 지키지 못했어.”

“리파는 조용, 아리에타 언니, 고마워요.”

아리에타 언니는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얹어준다.

그 손이 너무 의지가 된다. 이 언니는 아스타로른 언니와 운디르나 선배님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했었는데 두 분의 장점만 닮은 게 아닐까?

밀크티를 마시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을 때, 엘타리스가 나타났다.

윤기 있던 분홍색 머리카락은 부스스해졌고, 얼굴에는 상처가 났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온 탓인지 인간 냄새가 짙게 난다.

그 모습으로 인간들의 사이에 있던 건지, 순간 화를 터트릴 뻔했지만 참았다. 다른 아이들이 먼저 울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어쨌어!”

“이 나쁜 녀석아, 우리 언니 돌려 내!”

“미야아아악!”

시엘은 앨타리스와 같이 르테아 언니를 인간 세상으로 올려보내는 데 일조했고, 타피는 원래 르테아 언니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런 아이들이 동시에 화내며 엘타리스에게 모습에, 그저 르테아 언니에게서 치유를 바라며 곁에 있었던 나는 오히려 더 침착할 수 있었다.

엘타리스는 고개를 숙이고, 두 아이가 내뿜는 공격 마법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휘청인다.

“죄송합니다. 인간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던전으로 끌어들인 제 죄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까?”

내 목소리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침착, 또 침착.

게임상에서도 아끼던 몬스터를 잃었던 일이 있었기에, 그런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내게 르테아 언니가 겨우 그 정도 의미는 아니었지만……

“일단, 프란시아 왕국과 에크렌스 왕국과의 전쟁이 또 발발했습니다. 에크렌스 왕국에서 먼저 선전포고하지 않고 쳐들어온 것으로……”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언니는!”

“언니 돌려내라 이 분홍 머리 인간!”

“미야아앗, 타락한 인간 싫어!”

“셋 다 조용해.”

끼어드는 세 아이들게 진지하게 말했다.

과연 내 여린 목소리에 힘이 담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내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뚝 그쳤다.

“주인, 침착해, 화났어?”

“리파, 나는 괜찮으니까. 꼬리 좀 치워줘. 엘타리스. 천천히 말해 보거라. 왜 상대가 에크렌스 왕국이라고 확정한 거지?”

나는 말을 끝마치고 심호흡을 했다. 불여우 타피는 조용히 내 위에 얹었던 자신의 주황색 꼬리를 치운다.

언니는 살아있을 것이다. 적어도 언니의 심장, 그 마력석을 남기면 부활시킬 수는 있다.

일단은 정보가 중요하다. 전쟁은 상대와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 상대가 에크렌스 왕국이 아닐 수도 있다.

“에크렌스 왕국의 인장은 마법사를 기리는 완드와 지팡이를 교차한 주황색 문장. 그 완장을 보고 저는 에크렌스 왕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그래, 인간들은 어떤 상황이지?”

“전쟁이 일어나서 프란시아 측 모험가, 그러니까 마을을 지었던 이들은 모두 나와 맞서 싸웠습니다만, 결국 상대의 수많은 병력 위에서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음…… 그래.”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다리를 꼬았다. 아래쪽에 있는 코어가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 혈류가 돌며 벅차오르는, 부르르 떨리며 긴장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 나는 고조되고 있다. 그 상대가 인간들이라면, 르테아 언니를 행방불명 시킨 죄로 단체로 학살할 생각이다.

“그래서 후퇴한 것으로…… 지금도 저희 측 인간들에 대한 인원이 파악되지 않습니다. 던전에 있던 스켈레톤들은 전부 입구에 몰아 에크렌스 왕국 병사들을 몰아내려고 애썼습니다.”

“…… 내 몬스터들을 그런 식으로, 인간들을 돕기 위해 썼다고?”

“죄,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주변에 꿈의 기운이 돈다. 내 몬스터를 인간을 지키는 데에 썼다는 데에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역린을 건드린 느낌이라 너무 화가 났다.

자색의 구름이 모여들었지만, 나는 그 기운을 달래고 마음을 다스린다.

동요하면 안 된다. 이런 건 머리로 싸우는 거지, 동요하는 건 아래쪽 병사들로 충분하다.

아이들은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기운을 알아챘는지, 벌벌 떨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렇게 무서운 서큐버스는 아닌데 말이지.

“그래, 뭐 DMP 자체는 많이 벌었으니까 말이지. 일단 그 상대가 에크렌스라고 치면, 그들은 어디로 갔지? 전선은 어느 쪽으로 형성되어있나?”

“그들은 북서쪽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던전 마스터들은 인간들의 생활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내가 전쟁터에 터를 잡은 것도, 그들의 파티에서는 어떤 이슈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고, 인간들을 타락시킨 네임드들을 바라보니 그 이슈는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인간 중에서도 너무나도 깊게 관여된 자, 엘타리스를 타락시킨 탓이다.

“그럼, 본론으로. 피난 중에 르테아 언니는 어떻게 된 거지?”

내 말이 떠나기가 무섭게, 주변에 다시 꿈의 구름이 솟아오른다. 아리에타 언니도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본다.

아스타로른 언니와 리림에게 받은 마력. 그리고 사용법은 내 마력 사용 경험을 크게 늘려주었다. 그저 의식하지 않고 감정이 바뀌는 것만으로 거대한 마력이 석굴에 가득하다.

억누르려 애쓰고, 엘타리스를 노려본다.

엘타리스는 A급 모험가 출신이다.

그만큼 경험도 많고, 깡도 넘치는 여자다.

하지만 내 마력을 보고는 그대로 졸도할 듯 얼굴이 파래진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표정을 짓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흔들리는 보랏빛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르테아 언니는 인간들에게…… 치유사이기 때문에……”

“잡혀갔다는 건가?”

“정확히는 모릅니다. 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자, 내 주변에 서리던 꿈의 마력이 사라진다.

그래도 살아 있다. 살아는 있다……

그렇다고 일주일씩이나 시간을 돌려 내 몬스터를 지휘하라는 건, 아무리 시간 마법을 고유 스킬로 가진 나여도 힘들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에크렌스 왕국일지, 그것이 자꾸만 의심된다.

배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에크렌스 왕국은 왕자가 왕으로 교체되며 한창 시끄러울 시기이다.

일주일 만에 그 혼란한 시기를 이겨내고 전쟁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적어도 그 휘하의 장수가 전쟁을 일으키거나, 배후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직접 확인하기 위해 눈 몬스터를 소환한다.

[150 DMP로 눈 1마리를 소환합니다.]

“리파, 잠시 밖에 나갈까?”

“응? 나? 내가……?”

리파가 당황하는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르테아 언니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내 던전에 인간들이 피난 오게 만든 녀석들을 전부 몰살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 정도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그리고 올라가는 와중에, 나와 대화하다가 쓰러진 엘타리스는 인간들에게 던져놓는다. 인간들은 나를 보고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 보였다. DMP를 흡수하려는 던전이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빼앗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밖으로 나오자, 시엘과 타피 등, 나의 네임드들은 아리에타 언니를 제외하고 다들 나와서 무슨 일을 할 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리파를 부른 이유는 그저 불 마법을 위해서다.

내 손에 들린 눈 몬스터는 애처로운 듯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 아이는 중요한 일을 위해 머나먼 여행을 해야 할 것이다.

“소환, [꿈 폭탄]”

“주인, 이건……”

“불태워라, 리파. [꿈의 방어]를 눈에게.”

“[화염구]……”

꿈 폭탄에 화염구가 강타 되자, [꿈의 방어] 마법이 걸린 눈 몬스터는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떠오른다.

나는 거기에 대고 [시간 되돌리기]를 이용한다. 전투가 일어났던 시각으로 눈 몬스터를 되돌린다. 저렇게 작은 생명체는 일주일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

굳이 인간들의 마을에 있던 눈을 찾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확인하려 해도, 워낙에 눈 몬스터의체력이 약해 전부 불탔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