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4 <-- 폐허가 된 세이나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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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몬스터는 폭탄을 맞고 공중에 뜬 상태로 고정된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시간 마법으로 과거로 돌아가 일주일 전부터 존재해 온 저 눈은 그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다시 아래쪽으로 떨어지자, 나는 눈에게 마력을 불어넣고 영상을 공중으로 띄웠다.
“주인, 이 마력은 대체……”
리파는 내가 방금 쓴 마법에 입을 벌리고 놀란다.
화려한 마법진이나 효과가 나타난 건 아니지만, 시간 마법으로 일주일 전으로 돌리는 건 엄청난 시간 마력 잔향을 남겼다.
다른 마스터들에게 들킬 염려도 있지만, 르테아 언니를 찾는 건 그만큼 필사적이다.
“헤헤, 리파는 우리 주인님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지?”
“마스터는 이제 무적이야, 언니를 찾을 거라고.”
하지만 조금 전 저 ‘작고’ ‘고정된 위치’에서 일주일 전으로 돌리는 데만 내 마력을 다 썼다.
애써 아이들의 앞에선 태연하게 웃으며 눈이 보내는 화상을 지켜본다.
외모적으로는 나이 어린 소녀 다섯이 보는 전쟁 영상이다. 그것도 폐허 위에서……
영상은 에크렌스 군이 쳐들어온 시점부터 시작된다.
눈은 두려운 듯 인간들을 보자 영상이 떨리기도 했고, 눈에게 마법이 날아오기도 했다.
그들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60 수준, 40레벨 후반대의 전쟁 마법사치고는 상당히 높다.
군인들도 정예병이라고 할 만큼 훈련이 잘 되어있었다. 모험가 마을인 내 마을에서, 성벽도 없는 상태로 인간들이 버티기 어려웠으리라고는 예상된다.
“주인, 이건…… 일주일 전 일인데……”
“그래, 리파. 리파는 나중에 시간의 정수를 나눠 줄게.”
“저, 정말이지……?”
쿨한 불여우 리파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힌다.
그렇게 갖고 싶었나 보다. 하긴 용의 정수는 힘의 정수라고 했던가?
용 리림의 정수에서 태어난 리파는 어쩌면 힘을 갈구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주인님, 저기!”
“그래, 잠시, 멈추고 확대해 봐.”
시엘의 말을 듣고 바로 눈 몬스터에게 명령을 내렸다.
눈 몬스터는 움찔거리며 내 명령을 듣고 영상을 확대한다.
엘타리스가 있었다면 설명을 들었을 텐데, 이들의 문장은 분명히 엘크레스의 완드와 지팡이가 교차하는 모양의 완장을 차고 있지만, 거꾸로 차고 있다.
의심스러워 확대해 보니, 다른 녀석들도 그렇다.
“아니, 그거 말고 여기.”
“시엘의 말을 들어 봐.”
눈은 끄덕끄덕한다. 영상이 눈이 바라보는 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서인지 위아래로 흔들린다.
시엘이 가리킨 곳에는 분명히, 분명히 타락한 아인종 인간으로 추정되는 개체가 있었다.
타락한 인간과 그냥 인간을 구분하는 방법은 상당히 어렵지만, 그 타락한 아인종은 확실히 보랏빛 피부로 얼룩진 곳을 옷으로 숨기고 있었다.
“저열한 방법, 타락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녀석, 내가 하면 저것보다 더 잘해.”
“그러면…… 역시 그 녀석이겠지?”
리파가 타락시킬 수 있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타피의 말에 떠오르는 마스터가 하나 있다.
나에게 대놓고 항의하러 왔던 배불뚝이 잡종, 도마뱀 인간 드라고니안 라크리스.
그 녀석의 마력 수준과 예상되는 레벨을 보면 확실히 저런 저열한 수준의 타락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라크리스, 그 녀석은 북서쪽에 있다. 저들이 쳐들어온 방향은 남동쪽의 에크렌스 영토.”
“그렇다면…… 둘 다 찾아봐야 한다는 소리지, 마스터?”
“그렇지. 그러면서도 저 녀석들이 또다시 찾아와서 게릴라전을 펼칠 경우 본진을 방어하는 병력도 있어야겠지.”
“미야아앗! 그러면 르테아 언니는? 르테아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야?”
소멜의 말에 다시금 르테아 언니에게 감각 공유를 날려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감각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꽤 먼 거리에서도 감각 공유가 되었는데, 안 되는 걸 보면 르테아 언니가 소멸했거나, 죽었거나, 혹은 마법 결계 속에 있거나, 이 세 가지 상황에 해당할 것이다.
“타피, 라크라스가 과연 홀로 이 일을 진행했을까?”
“아…… 그 녀석 약하잖아.”
타피가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약한 마스터다.
라크라스도 10년 차라지만, 그 정도로 강한 힘을 쌓을 만큼의 시간도 아니다.
당장 나도 1년 만에 겨우 층당 400m²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연막일 수도 있잖아요, 쭉 돌아서 온다거나.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마법을 쓰면…… 주인님이 힘들겠죠.”
“…… 그렇지?”
시엘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 애써 센 척을 하다가 힘이 빠졌다.
확실히 시간 마법은 엄청난 마력이 들었다. 내 수준도 꽤 많이 올랐을 텐데, 마력이 벌써 바닥을 치고 있다.
“일단 인간들은 다시 올려보내고, 몬스터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걸 이용해서 같이 방어하도록 해야지.”
“주인(님)?” “마스터?”
아이들의 이상한 눈빛이 나에게 쏟아진다.
몬스터와 인간은 서로 함께 설 수 없으니까, 그런 게 알려졌다간 몬스터와 인간들 양측에서 모두 배척받기 마련이다. 그만큼 혁명적인 생각이고, 정작 같이 있어도 양쪽 어디에서도 문제가 생길 염려가 매우 크다.
그걸 알면서도, 이 일의 배후로 생각되는 라크리스는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르테아 언니도 구해야 한다.
“르테아 언니는 어디 있을까?”
“저쪽으로 끌려가고 있어. 빛의 마력을 너무 많이 써서 기절하셨네.”
“그렇게 쓰지 말라고 했는데……”
타피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정말 하얀 빛에 감싸인 르테아 언니가 인간들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폭하게 끌려간 건 아니다. 인간들에게 치유사란 부족하디 부족한 자원이다.
어떻게든 회유해서 자신들을 위해 치유하게 만드는 게 원칙, 치유사가 되기 위해 처음으로 거쳐야 할 의식이다.
“언니가 인간을 치유한다고? 싫어…….”
“저 녀석들 얼굴 기억했어. 냄새와 소리까지 알면 찾을 텐데……”
그러던 와중, 갑자기 눈이 보내는 영상이 흐려진다.
내가 마력을 너무 많이 흘린 건지, 눈은 미약하기 때문에 마력을 잘 흘려야 한다.
하지만 눈은 곧바로 움찔움찔 떨린다. 그리고 그 뒤에 작은 박쥐 날개 두 개가 생기고, 눈이 더 귀여워진다.
“에이, 설마……”
“주인님, 진화했네요.”
“미야아! 마스터, 대단해!”
설마, 저 눈도 쁘띠 아이니 뭐니 하는 건 아니길 빌며 정보 창을 연다.
등급: E
종족: 쁘띠 아이
레벨: 5
특수 스킬: 녹화, 날 수 있음
“……”
차라리 비홀더니 주시자니 뭐니 하는 그런 멋있는 이름도 있는데 왜 하필 쁘띠 아이야?
이 세상의 법칙과 나에게 내린 보이지 않는 가호에 태클 걸고 싶은 일은 많지만, 저 쁘띠 아이는 날개를 파닥파닥 휘저으며 나에게 다가오기에 그만 생각했다.
“응, 뭐?”
파닥파닥 움직이던 눈이 내 손에 올라와 눈을 감는다.
왠지 귀엽지만…… 빨리 일이나 하라고 보챈다.
쁘띠 아이는 땀을 흘리며 다시 공중으로 살짝 올라가 영상을 보여준다.
“귀여워요! 주인님, 저도 저런 눈 만들어 주실 거죠?”
“주인, 나도 저거.”
“마스터, 저도 필드가 생기면…….”
“알았으니까, 어서 르테아 언니나 찾자고.”
다시 우리는 르테아 언니가 이 쁘띠 아이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찾아보았다.
위치는 북서쪽, 아마 이 병사들이 에크렌스 병이 맞다면 전선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간들의 영토로 송환되었다거나…… 언니가 감각 공유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일단 여기에서 있을 수만도 없으니 들어가자. 냄새도 나고.”
“언니를 찾고 싶어, 마스터.”
타피가 나에게 애원하듯 바라본다. 하지만 당장 전략 없이 보낼 수도 없는 법……
하지만, 타피라면 홀로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각 공유도 걸 수 있고.
타피는 지금 당장 보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타피, 그러면 조심이 다녀와야 해. 감각 공유를 걸면 꼭 받고?”
“응응, 나를 믿어!”
“주인님, 나도……”
“아니, 시엘은 던전을 청소해야지, 소멜도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너도 할 일이 있으니까.”
불러주지 않은 리파는 꼬리와 귀가 축 늘어졌다.
물론 리파도 이번에 할 일이 있다.
“리파, 혹시 둔갑도 할 수 있니?”
“그거야 내 종족은 다 가능한 걸, 주인. 무시하지 마!”
그러면서 리파는 한 바퀴 주제를 넘더니 병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불여우는 구미호의 하위 종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놀랐다.
“리파, 그러면 잠시 후에 나와 같이 인간들에게 가자.”
“응? 무슨 소리, 주인?”
“주인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일단 내 던전에서 벌레들부터 치워야지.”
내 던전에서 지금 DMP를 생성하는 발전기가 되어가는 인간들부터 치우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던전에 있으면 점점 우울해지며 죽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올려보내고, 나중을 위해 마을을 키워 내 DMP 셔틀이 되는 게 낫다.
일단 엘타리스는 반쯤 쓰러진 상태로 감각 공유를 걸어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석굴로 돌아왔고, 리파에게 엘타리스로 변신하라고 시켰다.
“주인, 설마. 나를 그 타락인간으로?”
“리파, 이번 언니 일만 해결하면 시간의 정수를 줄 게.”
“정말이지! 꼭이다?”
리파는 입술을 한번 꼭 깨물더니 분홍색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땋은 엘타리스로 변신했다.
시엘과 소멜은 놀라서 리파를 바라보고, 나는 엘타리스로 변한 리파와 함께 인간들이 있는 자연 필드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