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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87화 (87/95)

00087 <-- 폐허가 된 세이나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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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정수를 들이켠 리파는 어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변화도 없었고, 그저 한 번 눈을 깜박였을 정도.

하지만 주변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나,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기운이 변화하고, 불같이 붉던 꼬리가 살짝 황금빛으로 물들어 투톤으로 변했다.

리파의 정보 창을 열자, 확실히 종족 명이 바뀌었다.

이름: 리파

종족: 시간과 꿈의 불여우

레벨: 85

특수 스킬: 꿈의 판단, 둔갑, 화염의 시선, 정적, 시간 정지, 시간 감속

그런데 리파는 항상 쉬는 것 같았는데 어디서 경험을 쌓고 레벨을 올린 걸까?

가장 쉬운 시간 감속과, 그다음 단계인 시간 정지를 얻은 걸 봐선 확실히 레벨이 오를수록 정수를 먹었을 때 효율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리파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꼬리 끝이 살짝 눌린 느낌이 들었는데 괜찮겠지?

“주인, 나, 뜨거워.”

“무무무, 무슨 소리니?”

“열이 올라, 주인이 식혀줘.”

“너 이런 성격 아니었잖아?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꼬리 만져 줘.”

리파는 새침하게 뒤돌아 꼬리를 내 무릎 위에 내민다.

확실히 부드럽기는 하지만, 상당히 꼬리가 뜨거워 보인다.

거의 몸통크기만큼이나 큰 이런 꼬리를 매달고 다니려면 엉덩이 뒤쪽 근육이 매우 아플 것 같다.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주자, 리파는 부르르 떨면서 손가락으로 입술을 깨문다.

정수를 먹으면 민감해지는 건지? 생각하기 싫어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도를 닦는 듯한 기분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손으로 내 무릎 위에 올라온 리파의 꼬리를 쓰다듬는다.

“주인…….”

“응?”

“…… 고, 고맙다고!”

“그래, 리파.”

역시 평소의 리파로 돌아왔다.

어째서 힘을 좋아하는 불여우가 저런 성격이 되었는지는 신기하지만, 리파도 소중한 내 네임드이다.

그치만…… 소중한 네임드 한 명은 대체 어디 있는 건지, 감각 공유를 걸어도 또다시 허공에서만 맴돌 뿐이다.

그리고 아까 하려던 일을 위해 던전 맵을 연다.

광맥을 자연 필드 입구 근처의 석굴 쪽으로 연결해 인간들의 장비 수준을 올린다.

지금 그들이 입는 옷은 상당히 레벨이 낮다. 아마 본국에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거로 보이고, 인간들이 흘러들어오기는 해도 교류를 한다는 느낌은 적었다.

게다가 뒤쪽에서 본국과 길이 막혀있는 형국이라 더더욱 그렇다. 뭐, 이건 정말 그들이 에크렌스 왕국의 병력이라고 생각할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음, 광맥이…….”

돌 필드를 꾸미는 메뉴로 들어가면…….

“주인, 뭐해?”

“으와아앗!”

갑자기 리파가 뒤에 와서 내 어깨를 잡길래 놀랐다.

리파는 시간 마법을 벌써 자유자재로 쓰는 것 같다.

소리를 죽이고 큭큭 웃는 리파에게 괜히 소리 지르고, 내 할 일을 다시 한다.

어디까지 했더라, 메뉴가……

“흥, 그래 주인 난 돌아간다.”

“고생했어, 리파.”

그래도 돌아간다는 말에는 반응해 주니, 리파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일단 당장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간다. 광맥을 찾으니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DMP를 요구한다.

철 광맥 - 200000 DMP

금 광맥 - 500000 DMP

“……이건 너무한데”

물론 던전의 회복성에 기대는 것이지만, 날마다 회복되는 금은보화 상자가 1500 DMP다. 왜 저런 가격대를 형성하는지 모르겠다.

설명을 보니, 그 주변 지대 100칸을 순도 25% 이상의 광맥 지대로 설정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생각해보면 이 가격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이쪽은 던전의 회복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적혀 있다.

게다가 분할판매는 안 된다. 할 수만 있다면 분할판매로 반반씩 놓고 싶다.

심심풀이로 살 수 없는 수준까지 쭉 내려보았다.

다이아몬드 광맥 - 1500000 DMP

미스랄 광맥 - 12000000 DMP

아다만티움 광맥 - 25000000 DMP

아래쪽으로 가면 갈수록 DMP의 요구량이 미쳐 돌아간다.

하긴 저런 광맥을 형성하느니, 차라리 금은보화 상자에서 랜덤하게 등장하는 녀석들을 살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바라보니, 보석 광맥도 꽤 보인다.

루비 광맥 - 800000 DMP

에메랄드 광맥 - 1200000 DMP

그래도 너무 비싸서, 철 광맥만 입구 쪽에 있던 돌 필드에 연결했다.

남은 DMP는 859536 DMP.

인간들이 떠나는 동안에도 꽤나 많은 DMP를 내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구멍이 숭숭 뚫리고, 높낮이가 이상하게 왜곡된 자연 필드를 선배님의 던전처럼 만들고 싶어 더 투자했다.

[250000 DMP를 이용하여 250칸의 자연 필드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뭐, 여전히 구멍도 많고 눈속임도 많다. 빈 공간의 5%도 채우지 못했다.

역시나, 시엘에게서 감각 공유를 신청하기에 받았다.

‘주인님! 대체 뭔가요? 왜 제 필드가 늘어났어요?’

‘응, 시엘을 위한 선물이야.’

‘주인님……! 저를 행복사시킬 작전인가요?’

‘아냐, 르테아 언니를 찾을 때까지 시엘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맞다…… 언니…… 흑.’

시엘은 언니에 대해 말하자 눈물을 뚝 떨어트린다. 곁에 있던 야생 엘프 촌장이 시엘의 눈물을 닦아준다.

다행히도 시엘의 눈으로 보기에 자연 필드의 몬스터들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꽤 많이 살아남고 진화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DMP는 시엘이 회복하는 데 쓰라고 내버려 두고, 돌아와 엘타리스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세이나 마스터님!’

‘응응, 엘타리스. 지금은 좀 괜찮지?’

‘좋다마다요. 지금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석굴 필드에서 돌과 철을 캐서 장비 수준을 올리고 성벽을 쌓아.’

‘알겠습니다!’

잠시 뒤에 맵을 보니 인간들이 석굴 필드로 들어와 벽을 파내기 시작한다.

붉은 점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에, 나는 한시름 덜고 눈을 감았다.

“후…… 이제 이 주변은 끝난 건가?”

이제 남은 건 르테아 언니를 구출하는 일뿐이다.

지금쯤이면 인간들에게 다다랐을 타피에게 감각 공유를 걸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타피의 시각 정보, 높은 하늘 위에서 인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프란시아 군과 대치하고 있다. 전투가 막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임시 돌벽과 막사를 쌓고 농성할 준비를 시작한다.

‘타피, 언니는 저 녀석들 중에 있어?’

‘아니, 언니의 머리카락 냄새가 안 나.’

타피의 후각 정보에서는 너무 다양한 냄새, 특히 인간들이 쓰는 마법의 잔향과 철 냄새, 그리고 강한 피의 냄새만이 나기에 모르겠다.

‘타피는 어떻게 머리카락 냄새를 아는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머리카락에는 모공에서 나온 땀이 배기 쉽지? 땀에서는 피의 향이 나. 우리 뱀파이어들은 땀의 냄새를 맡고 피를 찾아가거든! 그러니까 머리카락 냄새에서는 피를 부르는 향이 나는 거지.’

‘……’

이상한 타피의 궤변에 설득당해버렸다.

‘그리고 여기, 그 더러운 마스터의 던전이 있는 것 같네.’

‘…… 타락한 인간들의 동향은 어때?’

‘예상하던 대로는 아니야, 아무도 그 던전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어. 왜냐면 아직 저 푸른 인간들이 막고 있거든.’

타피가 바라본 푸른 군대. 그들은 푸른 인간들이 아니라, 성벽 위에서 농성하는 프란시아 군이다.

이렇게 공중에 뜬 상태로, 멀리서 보면 군사 인형들로 하는 군사 게임이 생각날 정도로 전쟁이 비현실적이게 보인다.

‘언니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일단 저 녀석들을 죽이면 되지 않을까?’

‘으……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인간들과 싸우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들이라고 정말 정예병만 득실득실한 건 아니고, 일반 병사들은 스켈레톤 수준도 안 된다.

전쟁은 다수의 체력으로 하는 것이지, 일반 영웅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피, 수는 1600 정도 되겠지?’

‘음, 내 생각은 4000쯤 될 것 같은데?’

‘그 녀석들을 죽이고, 라크리스를 꺾으면 르테아 언니의 행방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스터, 그건 아니야…… 일단 르테아 언니를 구출하고 나서 생각해야지.’

하긴 타피의 말도 맞다.

저렇게 많은 인간을 보니 나도 모르게 본성이 튀어나오고, 모두 학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내가 소유한 DMP로는 대군을 만드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들이 던전 밖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싸울지는 모른다. 적어도 밤에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상대가 약할 때 친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상대가 우리가 약할 때 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타피, 그럼 르테아 언니는 어디 있을까?’

‘…… 오면서 한 무리를 찾았는데, 이 녀석들일지는 모르겠어. 언니 냄새가 안 나서 무시했는데, 그 녀석들이 언니에게 이상한 걸 뿌렸을지도……’

‘……’

차마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르테아 언니는 소중한 치유사다.

적군이고, 아군이고, 치유사는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다면 매우 쉽게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과연 저들에게 숨어 들어가 타피에게 검사를 시킬지, 조금 전에 도망갔다는 녀석들을 쫓을 지 생각하다가, 작은 확률에 걸어보기로 한다.

‘타피, 그 무리를 쫓아 가 보자.’

‘알겠어, 마스터.’

========== 작품 후기 ==========

미스랄은 오타가 아닙니다.

미x릴이라는 단어 자체에 톨킨의 저작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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