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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속 서큐버스-90화 (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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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멜이 덮어준 이불, 나는 아직도 여기서 못 나오고 있다.

따뜻해서 못 나오는 게 아니라, 그저 무거워서 못 나오고 있다는 느낌.

마력을 한계까지 짜낸 탓에 나는 또다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혼절하지 않은 게 어딘가.

지금은 리파가 내려와 나를 보살펴주고 있다.

“주인, 또 마나를 짜낸 거지? 저 아이는 뭐야?”

“그러게 말이야.”

“흥, 주인. 대체 몇 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야?”

“……”

새침하게 삐진 상태로 입술을 쭉쭉 내밀며 리파는 내 몸에 흐르던 땀을 닦아준다.

이불을 너무 오래 덮고 있던 탓인지 땀이 너무 많이 흘렀다. 리파가 등 뒤에서 잡아 앉히고 닦아주고는, 꼬리를 다시 내 무릎 위에 올린다.

그리고, 여전히 르테아 언니는 감각 공유를 받지 않는다. 바깥은 얼마나 되었을지, 저 잠탱이가 일어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저거 왜 저렇게 많이 자?”

“몰라, 몬스터는 원래 잠이 적은 거 아니던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주인이 더 오래 살았거든?”

리파는 왠지 모든 걸 다 알 듯한 이미지였는데 실망이다.

그런데 정말 옆에서 툭툭 건드려도, 꿈쩍하지 않고 그저 잠만 잔다.

눈을 감고 있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으로 잔다. 어쩔 수 없이 쁘띠 아이로 인간 세상을 지켜보면서, 밤이 될 때까지 리파의 수발을 받았다.

“리파는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 주인, 맞고 싶지?”

“아니.”

리파가 보살펴 준 덕분에 오히려 상쾌한 감각을 느낀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위쪽으로는 쁘띠 아이가 보내오는 시각 정보를 띄운 창.

그리고 아래쪽으로는 살랑살랑, 기분에 따라 털이 곤두섰다가 다시 가라앉는 리파의 꼬리.

저 복슬복슬한 꼬리를 보면 쓸어주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샘솟지만 지금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당초 계획은, 새로 태어난 두뇌 좋은 네임드에게 스켈레톤 3000기를 쥐여주고 통솔해 인간들을 치고, 문을 열어 경험이 쌓여 진화한 스켈레톤 상급 병사, 스켈레톤 킹을 이용해 라크리스의 던전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온 건 저 잠탱이 미라.

수지가 안 맞는 상황에 머리 아프게 다른 방식을 생각하는 중이다.

“주인, 저 미라, 꿈이 이상하네.”

“응? 무슨 소리?”

“꿈에서도 자고 있어.”

“……”

리파는 ‘꿈의 판단’이라는 나의 능력과 비슷한 스킬이 있었다.

그것으로 본 것 같다.

그런데 꿈속에서도 자는 거면 대체 얼마나 잠에 대한 욕망이 큰 걸까?

다른 쪽의 능력은 보여주지 않은 채 저렇게 잠만 자는 아이를 보면 나도 덩달아 졸리는 느낌이 든다. 마스터는 잠이 없는 개체인데도 말이다.

슬슬 어두워질 시각, 인간들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 일부를 복구하고, 성벽은 대략 인간 한 명쯤 높이로 쌓았다.

여전히 멀리에서 오는 인간들의 반응은 없으며, 척후병이나 정찰병 따위도 나타나지 않았다. 증원병이 올 시기가 지나긴 했는데, 오지 않는 걸 봐선 이미 지나갔거나 오는 중인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슈로미는 깨지 않는다. 리파는 다시 불 필드로 돌아간다.

나는 타피가 일어나 주는 감각 공유를 받았다.

‘타피, 지금은 좀 괜찮아?’

‘으응…… 그래, 마스터.’

하지만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타피의 온몸이 쑤시고 괴로운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래도 타피는 일어난다. 르테아 언니를 찾기 위해서, 하늘색 머리카락에 보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언니를 찾기 위해서 다른 막사 군집으로 날아간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능력 없는 인간들이 가득하다. 문득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여전히 이 에크렌스 군대는 프란시아 왕국과 대치 중이다.

‘타피, 혹시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들이나, 치유사용 막사는 없을까?’

‘고급 막사? 그러면 거기에 르테아 언니가 있을까?’

‘그렇지, 일단 중앙으로 가 보자.’

‘알겠어, 마스터.’

이런 날개 쪽부터 찾느니, 차라리 중앙 쪽으로 가 보면 뭔가 있지는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중앙 쪽에 가자, 왼쪽에는 전쟁 마법사 중대의 천막이, 오른쪽에는 치유사 일부가 쓰고 있는 막사가 나타난다.

병들고 사지가 잘린 병사들이 누워있는 막사에서 나는 끙끙대는 인간들의 소리가 진혼곡처럼 들려 아름답다. 타피는 그쪽으로 먼저 날아갔다.

‘치유사 중에 언니가 있겠지? 그런데 여기도 썩은 냄새 때문에 언니 냄새가 안 나는데……’

‘그러네……’

타피가 대놓고 낙담하는 가운데, 눈앞에서 치유사가 헐레벌떡 달려간다.

입은 옷을 보면, 자연의 힘을 이용해 치유하는 드루이드인 것 같다.

손발이 자연의 힘에 녹색으로 침식되어가면서도 치유하는, 마나 물약에 중독되어 목 주변은 푸른색으로 물든 불쌍하디불쌍한 인간이다.

“여기 치유사 한 명, 제발!”

“여기도 부족해!”

멀리서 들리는 고함소리, 아마 복원 마법사로 생각된다.

당장 전쟁 마법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데도 여기 있는 걸 보면, 아마 전쟁 마법사 중에서 복원 스킬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와 일하게 하는 거겠지.

이 사람도 목 주변이 푸르게 물든 걸 봐선 마나 물약 중독이 의심된다.

전장의 광기에 시달리면서도,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마스터, 우리 영원한 안식을 안겨다 줄까?’

‘빛의 힘을 찾아봐, 어디 있는 거야? 그리고 기다려, 안정해.’

‘마스터, 나는 여기 있는 쓰레기들의 목숨을 빨리 끊고 싶네.’

‘타피, 조금만 더 참아.’

타피는 금방이라도 그림자를 퍼트릴 듯하더니, 다시 안정한 듯 은신한다.

옆으로 거대한 빛의 마력을 지닌 프리스트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프리스트와 뱀파이어의 마력은 상극, 프리스트가 [대규모 치유]를 걸자, 주변 인간들이 동시에 회복된다.

그 프리스트는 주교급으로 보인다. 레벨로 치면 100은 넘을까?

다소 지긋한 장년층의 남성이 호호 웃으며 마력을 지어내 치유하는 모습은 다소 두렵기까지 하다.

‘언니는…… 없지?’

‘후, 하, 저 녀석 뭐야?’

타피는 저 프리스트를 경계한다. 순간 [은신]이 풀릴 법도 했다.

그 프리스트의 주변에는 빛의 막 같은 것이 싸여있다. 상당한 실력자로 보인다.

물론 100레벨이 넘는 타피도 그와 싸울 순 있겠으나, 주교는 마치 보스처럼 이 군대를 이끄는 이 중 하나로 보인다.

그가 차고 있는 완장은 거꾸로 된 에크렌스 완장. 평범한 병사들이 차고 있는 제대로 된 에크렌스 완장과는 다르다.

‘일단 후퇴, 타피.’

‘아, 알았어, 마스터.’

타피가 이렇게까지 적의를 드러낸 건 아리에타 언니 이후로 처음이다.

타피에게는 상당한 강적이다. 인상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주교는 또 다른 공간에 가서 [대규모 치유]를 걸고 이동한다.

그에게서 살아난 병사들은 모두 감화된 듯 그에게 은총을 내려 줘서 고맙다고 전한다. 심지어 병력 중에는 내 던전 위 마을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도 보였다.

‘세뇌일까?’

‘마스터, 무슨 소리야?’

‘타피, 조심하는 게 좋겠어, 치유 막사를 찾아보고 없다면 다른 쪽을 찾아보는 수밖에.’

‘알았어, 마스터.’

그 주교는 분명히 라크라스의 휘하에 있을 법한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던전 마스터와 인간이 손을 잡은 건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타피의 감각을 통해 치유 막사를 전부 들춰보았으나 르테아 언니의 르 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주변에 서린 성스러운 마법, 맹독과도 같은 그 마법이 몸을 옥죄는 느낌을 자꾸만 받는다.

‘히잇, 후, 후……’

‘타피, 방금 뭐야?’

‘몰라…… 무서운 게 눈앞에 지나갔어.’

타피가 이렇게 동요하는 건 치유막사 근처에서 몸을 옥죄는 빛의 마법진 때문이다.

대체 누가 이렇게 강한 마법진을 걸어둔 건지, 아마 약한 르테아 언니가 있었다면 죽는 건 물론이고 소멸될 염려까지 있다.

마지막 막사를 보고 밖으로 나오자, 눈앞에 주교가 지팡이를 나에게 들이민다. 아니 타피에게 들이민다.

“여기 있구나, 어린 양이여. 아니, 날개가 있으니 박쥐양인가?”

“무슨 소리지?”

“네 어둠 마법은 마법진에 의해 봉인된 터, 창조신님의 어린 양은 우리에게 오지 않겠는가?”

“으아악……!”

다음 순간 나는 다리 한 짝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타피가 고개를 숙이자, 거기에 있어야 할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젠장…… [죽음의]…… 끄아악……!”

타피가 마력을 짜내자, 머리가 깨지는 느낌이 느껴지낟.

“이 어린 양은 창조신님의 의지에 반하는 군요, 그리고 그 뒤에 보는 당신도요?”

주교의 눈이 타피 뒤에 숨은 나를 노려보는 듯하다.

“흐읏…….”

다음 순간에 빛의 마력이 강하게 반짝 빛나며, 타피의 다른 다리도 잘려나갔다.

곧바로 타피가 기절한 건지, 타피와의 감각 공유가 끊겼다.

“……”

잃어버린 몸은 정수와 마법으로 되살릴 수 있다.

심지어 죽은 몸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피가 그대로 죽어 마력석의 상태로 마력이 뽑히면 되살리는 게 불가능하다.

그 주교의 얼굴을 보니 뭔가 생각나는 건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가 갈리고 그 주교를 죽이고 생명력을 갈취하고 싶다는 생각뿐.

그때 마침, 아리에타 언니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언니……?”

“하아, 세이나 마스터가 또 정수를 내어 네임드를 소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그거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

분노를 억누르며 외쳤다.

아리에타 언니는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말씀하신다.

“아니, 마스터님의 회복기가 끝났다는 소리입니다. 지금까지 밖에 못 나가게 한 건 회복기라서 그렇지만, 지금처럼 혼절하지 않은 상태라면 확실히 회복기가 끝났다고 볼 수 있겠네요.”

“뭐……?”

“다시 한번 말할게요, 세이나 마스터님. 마스터님 때문에 위험해진 타피. 구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타피는…….”

“살아 있습니다. 그 다크 프리스트 쪽도 살아있지요.”

“그런데 왜 보고 있었으면서 말리지 않은 거야!”

아리에타 언니도 밉다.

그래서 소리를 내질렀더니, 달려와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

“왜긴, 마스터의 성장을 위해서지요. 위험한 적진에 네임드 하나만 보내면 안 됩니다. 이전에도 설명드린 적이 있지요?”

아무리 강한 개체여도 수의 앞에선 체력이 달려 위험하다.

텔레르나 씨에게도, 아리에타 언니에게도, 수없이 배운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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