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용호상박
* * *
뉘엿뉘엿 떨어지는 태양, 하늘이 노을에 잠긴다.
아무도 없는 교실 밖을 나가. 복도를 걷고 있으면 저 멀리서 인영 둘이 손을 흔든다. 잠깐... 한 명이 아니네?
회색과 푸른색.
한설아와 이아린이 복도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이지만 발을 동동 구르며, 얼굴을 붉힌 채로 나를 기다리는 이아린이 눈을 마주치자,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돌린다. 얘는 또 왜 이러지?
터벅터벅. 앞으로 다가가니, 천천히 손을 흔들던 한설아가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제 가자아...."
한설아가 나를 보며 옅게 웃는다. 이아린은... 어째서인지 나와 멀찍이 떨어져서 같이 걷기를 시작한다. 아니, 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아린과 시선을 마주친다. 또 내 시선을 피한다.
"왜 피하냐?"
"으, 응!? 아닌데? 피하는 거 아닌데!?"
이아린이 얼굴을 붉힌 채로 손바닥을 펼친채 부끄러운 듯 이리저리 흔든다. 그러다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뭐지...?
"아린아아...."
한설아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아린을 바라본다. 한설아가 내 곁에서 떨어져 이아린의 손목을 붙잡는다.
"흣!?"
이아린의 손목을 붙잡고 내 쪽으로 끌고 온다.
평소처럼 느릿느릿한 움직임이 아닌, 크고 널찍널찍한 움직임. 내가 오른쪽, 가운데가 한설아, 왼쪽이 이아린. 자리가 잡힌다. 한설아가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이제... 가자아... 떡볶이 먹을래...."
한설아가 내 손과 이아린의 손을 붙잡는다.
그러곤, 우리 둘을 끌고 가기 시작한다. 한설아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나... 떡볶이... 엄청 좋아하거드은...."
어쩐지 조금은 신난 표정으로. 나와 이아린을 잡은 팔을 앞뒤로 흔들며, 빠르게 걸어간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이아린을 바라보니, 여전히 부끄러워하지만. 조금은 진정된 얼굴이 보인다. 이아린이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이아린이 시선을 한설아에게로 돌린다.
"설아야, 너 떡볶이 좋아했어?"
한설아가 걸음을 천천히 한다. 한설아가 이아린과 시선을 마주친다.
"어어어엄청! 좋아해... 떡볶이 없으면... 죽어...."
다시, 한설아가 걸음을 빨리한다. 한설아가 나를 본다.
조금이지만, 흥분한 듯 붉어진 얼굴. 한설아가 내 손을 보다 꽈악 붙잡는다.
"빠, 빨리... 먹으러 가자아...."
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한설아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급해 보인다. 그렇게 걷는 듯 뛰는 듯 앞으로 가다 보니, 저 멀리서 분식집이 보인다. 약간 허름해 보이는, 평범한 분식집. 한설아가 분식집의 문을 연다.
한설아가 대충 가계 주인에게 인사를 한다.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에 한설아가 우리 둘을 이끌고 자리에 앉는다.
"여기가... 제일 맛있어어...."
한설아가 벌써 기쁜듯 탁상을 손으로 탁탁 친다. 나는, 옆에 있는 메뉴판을 잡고 펼친다.
"뭐 먹을 거야?"
차분해진 이아린이 나를 바라본다. 뭐 먹을 거냐고?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킨다.
"튀김."
"튀김 좋아하냐?"
말이 끝나자마자 이아린이 메뉴판을 가져간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하긴."
이아린도 손으로 메뉴를 가리킨다. 메뉴는 떡볶이. 이아린이 한설아를 바라본다.
"나도 떡볶이 좋아하는데.... 같이 먹을래?"
"으응...."
한설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기쁜듯 몸을 꼼지락거린다. 이아린이 싱긋 웃는다.
"그럼 떡볶이는 치즈로...."
"잠깐."
갑자기, 한설아가 끼어든다.
조금이지만 냉랭한 목소리. 아까 전의 싱긋싱긋 웃고 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약간의 짜증이 느껴진다. 뭐, 뭐지?
"치즈는, 절대 안 돼."
늘어지던 말투는 죽고. 한설아가 또박또박, 이아린을 바라보며 말한다. 한설아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어... 왜? 치즈가 제일 맛있지 않아?"
이아린이 멋쩍게 웃는다. 한설아 쒸익쒸익 입김을 뿜기 시작한다. 마치,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 느낌. 한설아가 신경질적으로 탁상을 탁탁 친다. 이 느낌은 마치...
"나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도! 떡볶이에 '치즈'는 용납 못해!"
역린을 건드린 느낌이다.
나와 이아린이 당황한다. 아니, 그, 그냥 치즈 하나 넣는 건데 이렇게까지 반응한다고?
"어, 그, 왜 넣으면 안 되는데?"
이아린이 당황에 땀을 삐질 흘리며 물어본다.
"그게... 치즈를 넣으면...."
국물이 탁해져.
그렇다고 한다. 음... 그렇구나.
아니 겨우 그런 이유로 이렇게 쒸익쒸익 화를 낸다고?
"근데, 넣는 게 더 맛있지 않"
"아니!! 전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설아가 탁상을 쾅쾅치며 반론한다.
이전의 낯가리고 느릿느릿 물 흐르듯 사는 한설아가. 지금, 180도 바뀌었다. 불같이 타오르며 나를 바라본다.
"태호야. 내가아... 알려줄게."
왜, 떡볶이에 치즈를 넣으면 안 되는지.
한설아가 진지한 듯 나를 바라본다. 아아... 저 눈빛은 '진심'이다. 여기서,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설아는... 수상할 정도로 떡볶이에 '진심'이다. 아니.
떡볶이에 미쳐 있다는 것을.
"자, 들어봐... '치즈'를 넣는 다는 것은 떡볶이의 '근본'을 거스르는 거야."
한설아가 운을 뗀다.
그러면서, 자신의 개똥철학을 우리에게 설파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냥 대충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 내용은 대충... 옛날 밖에서 사 먹던 1000원짜리 떡볶이가 근본이며, 별별 이상한 치즈니 간장이니 같은 걸 넣어 만드니 '전통'을 잃고 있다고. 옛날의 그 맛이 최고인데, 자꾸만 달라지려 한다고. 쒸익쒸익 화를 낸다.
"으음... 잘 들었어 설아야."
이아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략 30분간 진행된 개지랄. 이아린의 볼이 살짝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게, 배가 고파 보인다. 씨발 언제 먹는 거야. 이제 슬슬 시켜야 하는데...
"그런데...."
잠깐. 그런데? 내 이마에 땀이, 삐질하고 흐른다.
"역시 '치즈'를 넣어 먹는 게 제일 맛있지 않냐?"
이아린이 한설아를 보며. 정면 돌파한다. 잠시만 이러면...
"뭐라고...?"
한설아가 찌릿, 이아린을 바라본다. 둘 사이에 불꽃이 튄다.
가슴께부터 올라오는 착잡한 심정에, 손으로 이마를 탁 친다.
"내가. 다시. 말해 줄게."
씨발 그 망할 떡볶이는 언제 시키는 거냐고!
배고프다. 얘들아 그냥 싸우지 말고 밥이나 시키
"아니, 다시 말해 줄 필요 없어."
이아린이 진지한 듯 한설아를 쳐다본다.
"뭐?"
이아린이 숨을 들이쉰 다음. 한설아와 눈을 마주친다.
"근본은, 떡볶이에 있지 않거든."
근본은, 치즈야.
숨을 들이킨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아린은
'치즈'에 진심이다.
마치, 물과 기름. 절대 섞이지 않는 입맛 차이다.
그래서 떡볶이는 대체 언제...
하아.
그렇게. 다시 20분 정도를 싸웠을까.
보다 못한 주인아주머니가 끼어들어 겨우겨우... 싸움을 멈췄다.
떡볶이는... 시키지 않았다.
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튀김들.
튀김만, 시켰다.
"근데... 야."
"응?"
이제 얼추, 싸움을 멈추니 둘 다 진정된 모습을 보인다. 이아린이 나를 바라본다.
"넌 뭐 좋아하는 음식 있어?"
싸움을 멈추고. 서로 이것저것을 물어 봤다.
한설아는... 떡볶이. 오직 떡볶이 밖에 안 말했고. 이아린은 대부분, '치즈'가 메인이거나 사이드로 들어가 있는 음식을 선호했다. 나는... 뭘 좋아하냐고?
"닭가슴살."
닭가슴살을 좋아한다.
"으응...?"
"왜?"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할 때 먹거든."
나는 사실상. 주식이 닭가슴살이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기도하고, 또 아카데미를 가기 위해서 숨 쉬듯 운동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닭가슴살과 나는 뗼레야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아니, 운동할 때 먹는 게 아니라... 평소에 먹는 거."
이아린이 나를 조금, 당황스럽게 바라본다. 아니 이게 평소에 먹는 건데?
"말했잖아."
"응?"
이아린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아린과 눈을 마주친다.
"닭가슴살."
"..."
이아린과 한설아가 나를 미친놈 보듯 바라본다.
아니... 왜?
*
*
*
맛있는걸 먹어서 기분이 풀렸는지, 이아린이 나와 한설아의 팔에 팔짱을 끼고, 저 앞에 있는 리무진을 향해 걸어간다.
"2차는 저기로 가자!"
싱글벙글 웃으며 이아린이 저 멀리 있는 전광판을 가리킨다. 저기가... 어디냐?
"저기가 어딘데?"
이아린이 나를 바라본다. 여전히 싱글벙글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입을 연다.
"탁구장이야!"
이아린이 기분 좋은 듯 자리에서 방방 뛴다. 빨리 가자 빨리! 라며, 우리 둘을 이끌고 리무진에 탑승한다.
탁구장에 도착했다.
"아니... 뭔?"
"크지? 진짜 존나 크지!"
이게... 탁구장?
어쩐지 멀리서 봐도 전광판이 잘 보이더니, 이건 탁구장이 아니라... 무슨 백화점을 보는 것 같다. 진짜, 존나게 크다.
"빨리빨리 들어가자!"
나와 한설아의 팔짱을 끼고, 백화점. 아니, 탁구장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 사람이 미친 듯이 많다. 북적이는 말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탁구장이라고 탁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러 가지 운동이 많다. 배구, 농구, 축구, 피구, 배드민턴. 기타 등등. 하여튼, 뭔가 엄청 많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탁구였다.
이 백화점. 아니, 탁구장은 복층구조로 총 6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3층이... 오직 탁구인들을 위한, '탁구대'로만 가득 차 있어. 탁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들려보고 싶은 대한민국의 대표 명소로도 통한다고 한다.
아니 이런 건물이 한국에 있었다고?
대한민국에 살면서 살아생전 처음 듣는 장소다. 온 갓 사람들이 한대모여 오로지 '운동'만 한다니... 이거 완전...
천국 아니야?
내 얼굴이 점차, 붉게 상기되기 시작한다. 팔다리의 근육이 움찔움찔, 경쟁에 반응한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1층. 2층을 올라가면서 엘리베이터의 창문으로, 보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다들 마법과 초능력을... 쓰고 있었다.
3층에 도착하고. 탁구대 앞까지 걸어간다. 딱, 건물의 중앙에 있는 탁구대.
주변에,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탁구공이 오가는 경쾌한 소리를 불규칙적으로 낸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 방송국에서 왔는지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가 하나둘 보인다. 인터넷방송하는지, 자꾸만 뭘 찍는 사람들도... 널려 있다. 진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자, 누가 나랑 할래?"
이아린이 자신 있게 나와 한설아를 번갈아 바라본다. 한설아는 고개를 옆으로 휘젓는다. 그렇다면...
"..."
이아린의 반대편으로 간다. 오른손으로 라켓을 잡는다. 이아린이 나를 보며 웃는다.
"여기 오면서 뭐 하나 느낀 거 없어?"
"뭘?"
"이상하게... 여기 사람들. '이능'을 쓰고 있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확실히... 사람들이 '마법'이니 '초능력'이니 같은 이능을 쓰고 있다. 그것도 탁구하면서.
"여기는 국가공인 '이능을 써도 좋은 장소'중 하나야."
이아린이 운을 땐다.
"공정성때문에 스포츠에 능력을 쓰지 못하니, 거기에 지친사람들이 기분을 풀겠답시고 오는... 대표적인 장소야."
이아린이 나와 눈을 마주친다.
"대충, 내가 하는 말이 뭔지는 알겠지?"
이아린이 싱긋 웃는다.
"'마법'을 써."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새하얗게 얼려진 탁구공이.
팡 하고.
내 옆 볼을 스친다.
"덤벼."
이아린이 나를 보고, 눈웃음을 짓는다.
"총 11점 내기야. 세트는 3세트로 하자. 다음에 노래방 갈 거니까, 지는사람이 전부 쏘는 걸로 하자. 오케이?"
"오케이."
"좋아, 그럼...."
첫판은 연습판이야.
이아린이 이전처럼, 얼려진 탁구공을 내게로 쏜다. 두 번은 안 당한다. 재빨리 마나로 강화한 라켓으로 탁구공을 친다.
세차게 탁구공이 각 테이블을 이리저리 정신없게, 라켓과 라켓을 거치고 거쳐 간다.
핑
하고.
퐁
이 아닌.
쾅
하고.
퍽
소름 끼치는 소리가 탁구대를 괴롭힌다.
"하앗!"
실수다. 공이 높게 뛰었다. 이아린이 기합을 넣고 높이 뜬 공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러다가
우두득 뚜둑 하고 한기로 가득 찬 라켓으로 강하게, 탁구공을 친다. 잠시만
쿠쾅 하고, 탁구대의 끝부분이 움푹 패이다가. 이내 부서져 버린다.
"아자!"
이아린이 환호성을 지른다. 아니 저걸 어떻게 막아. 결국 1점을 내주고 말았다.
"1저어엄...."
한설아가 천천히, 왼손을 든다. 이아린이 이겼다는 신호다.
겨우 1점이지만, 졌다는 사실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안 된다. 집중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 주마.
라켓을 쥔 오른손이.
꾸득하고, 강하게 쥐어진다.
쿵 콱 퍽 쾅
이곳은, 서울공공체육관. 탁구를 사랑하는 탁구인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들리는. 꿈의 명소다.
쾅 퍽 쿵 퍽
3층. 사람들이 모두모여 탁구를 치는, 메인 플로어. 평소라면 너도나도 모여 탁구를 치고 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퍽 쿵 쾅 콱
탁구장의 중앙에서 울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 너도 나도 하던 탁구를 멈추고, 그 소리의 진원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소리가...."
"야, 일단 멈춰 봐... 저게 대체...."
"누구야?"
"이아린...?"
그곳에는, 검게 태워진 피부와 삐죽삐죽 솟은 금발이 인상적인 청년과.
푸른 단발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여성이 있었다.
끝나지 않는 세트.
움푹움푹 탁구대가 패이고 휘는 소리가 주변을 잡아먹는다. 탁구를 하던 모든 사람의 이목이 두 사람에게 집중된다.
사람들이 서서히,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1세트.
"으아아아아!"
1세트는, 청년이 패배했다. 이유는
"라켓 존나 약하네! 야!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단단히 얼려진 탁구공에 라켓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절규하는 청년을 보고 여성이 짜증 나는 웃음을 짓는다.
"그러게 강화를 제대로 했어야지. 프흐흐. 야! 이게 탁구로 보이냐? 이건 씨발"
이능배틀이라고!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탄복한다.
그래, 저게 진짜 '탁구'일리가 없다. 이게 정녕 '탁구'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하던 탁구는 뭐가 되겠는가?
바로, 애새끼들이 하는 공놀이로 격하된다.
"1저어엄.... 세트끄읏...."
중간에 있는 회색빛 소녀가, 왼손을 든다. 동시에.
"좋았어어어!"
"야! 내가 득점이라고 했지!"
"으아아아아!"
주변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이 절규하고, 절반이 행복에 뛴다.
고작 1세트. 그 1세트만에 사람이 둘로 나뉘어,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철저한, 강자들의 싸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2세트.
"이, 개, 씨이이이발!"
2세트는, 여성이 패배했다. 이유는
"거기서 폭발마법을 왜 쓰냐고오오!"
청년이 폭발마법으로 탁구공을 총알처럼 쏘고 탁구대를 박살 냈기 때문이다.
절규하는 여성을 보고 청년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다.
"야, 이능배틀이라메? 그래서 이능 썼는데? 크흐흫. 그러게 씨발 대처를 제대로 했어야지!"
어느덧 몰려든 사람이 구름처럼 인산인해를 이룬다.
넓고 넓은 탁구장의 3분의 1을 채우는 사람들이. 청년과 여성을 바라본다. 뜨겁게 달궈진 열기, 그러나 침묵. 사람들은 전부, 작은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회색빛 소녀가. 오른손을 든다.
"1저어엄... 세트끄으읏...."
그와 동시에, 오른쪽에 모인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일제히
"믿고 있었다고오오!"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우오오오오오오!"
환호성을 지른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청년을 응원하고 있다. 청년의 라켓 위로, 몽실몽실. 연기가 피어오른다.
드륵드륵, 무언가가. 청년과 여성 쪽으로 다가온다.
"야 저게 뭐냐...?"
한 남성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지미짐.
그곳에는 지미짐이 있었다. 위에 달린 카메라가, 청년과 여성을 지켜본다. 동시에
육중한 카메라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온다.
그 주변으로 캠코더를 들은 사람들도, 그 앞으로 다가간다. 모습을 보아하니, 방송국. 그리고 인터넷 방송이다.
땀에 젖은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청년 앞으로 다가간다.
"하아하아... 저기 죄송하지만 이름좀...."
청년은, 앞에 사람이 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탁구를 계속하려고 하고 있다. 미칠 듯한 집중력. 지금 둘의 사이에는 오직, 탁구대와 라켓. 그리고 탁구공 밖에 없다. 마이크를 든 여성이 청년을 건드리자 그때야.
"우웃, 웟, 뭔... 예?"
청년이 반응한다.
"죄송하지만 인터뷰...."
청년은 그때야,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 사람. 사람. 오직 사람들밖에 없다. 위를 올려다 보니, 지미짐까지 있다.
청년은, 당황한다.
"아니... 이게... 뭔...."
일이야?
청년의 입이 바보같이 벌어진다. 이런 반응하는것은, 청년뿐만이 아니었다.
"뭔 사람이...."
여성도, 똑같이 반응한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한 소녀를 바라본다.
"그... 설아야...."
"으응...?"
"그, 모자는... 왜 쓴 거야?"
회색빛 소녀는 지금.
새빨간 모자.
멋진 썬글라스.
은색 호루라기.
검은 정장.
빨간 넥타이.
완벽한, 심판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상한... 아저씨가 줬어어...."
회색빛 소녀가 어색하게 모자를 만지작거린다.
"그래...?"
여성이 당황한 듯 볼을 글적인다. 그리고 청년을 바라본다. 청년은 지금.
"어쨌든, 제가 이길겁니다."
인터뷰하고 있었다. 전부 끝냈는지, 마이크를 든 여성이 카메라와 함께 여성에게로 다가온다.
"인터뷰 괜찮을까요?"
인터뷰? 여성의 얼굴이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다. 여성이 한동안 고민을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이름부터...."
"이아린."
"...예?"
여성의 입에서 '이제가'의 이름이 나왔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이아린이라고?"
"어쩐지...."
"이제야 이해가 가네, 이제가니까 강한 거임"
"와 씨, 이제가?"
"뭐? 이아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이아린이야?"
이후, 간단히 인터뷰를 끝낸 뒤. 다시, 여성. 아니, 이아린이 탁구공을 잡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겠습니다.'
이아린이 말했다. 이제, 마지막세트. 이번 승부로
'그래야, 노래방에 돈을 안내거든요.'
노래방에 누가 돈을 쓰는지. 결정 되기 때문이다.
청년과 여성이 꼴깍. 침을 삼킨다.
둘이 시선을 교환한다. 동시에.
삐익!
회색빛 소녀가 호루라기를 분다.
쾅 하고.
여성의 라켓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얼려진 탁구공. 사실상, 얼음공이다. 청년이 능숙하게 탁구공을 쳐 낸다.
쿵 콱 쿵 콱
안정적인 렐리. 공방을 주고받는 정석이다.
점차, 공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강하게 주고받는 렐리에, 이미 한번 바꾼 탁구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둘 다. 조금의 틈도 없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 관중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아주 조금만 실수해도. 승패는 결정 난다.
마치, 외줄타기같은 승부다. 쿵 콱 쿵 콱 박자를 타던 탁구공이, 점차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핑
청년이 실수로, 탁구공을 놓쳐 버린다.
"아자아아아!"
1점의 득실이 결정되었다. 여성이 환호성을 지른다.
회색빛 소녀가 왼손을 든다.
"1저어엄...."
동시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우오오오오오!"
"그래! 이래야 이제가지!"
"이겼다아! 이겼다!"
청년의 표정이 굳어진다.
"괜찮다! 아직 1점이다!"
"겨우 1점가지고 쫄지마라!"
"기죽지 마라! 노래방에 돈 쓰기 싫잖아!"
"이겨라! 이길 수 있다!"
그러자, 뒤에서 사람들이 청년을 응원한다. 청년이 쥔 라켓이. 부들부들 떨린다.
겨우, 1점이다.
이길 수 있다.
청년이, 마음을 다잡는다.
1:1
"이겼다아아!"
청년이 환호성을 지른다.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발을 동동 구른다.
1:2
"우아아아!"
여성이 환호성을 지른다. 다시 득점했다는 기쁨에, 미소를 짓는다.
2:2
2:3
2:4
3:4
4:4
.
.
.
11:10
끝이 다가온다.
여성의 손에 쥐인 탁구공이, 한기를 머금고 떨린다. 이번에 여성이 진다면.
노래방에 모든 돈을 내야 한다.
여성이 꾸득, 세게 라켓을 쥔다..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여성의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다.
퍽
렐리가 시작된다.
쉭 쉭 꾸직 하고. 탁구대에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탁구공이 청년의 라켓에 맞다 동시에.
쾅 하고. 폭발음이 들린다. 이전과 같은 전략. 여성이 눈을 번뜩 뜬다.
흡 하고. 몸에 힘을 줘 순식간에 다가오는 탁구공을 쳐 낸다. 똑같은 속도로, 청년에게 다가오는 탁구공이 간신히, 청년의 라켓에 맞는다. 그리고.
공이 공중에, 높에 떠 버린다. 긴 활공시간.
청년이, 여성을 바라본다. 그러자.
울끈하고, 청년의 몸에서 혈관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청년이, 가속마법을 썼다.
"...씨발!"
분명 공을 쳐서 보내면, 필패한다. 가속마법을 썼는데, 공을 치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공을 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필패한다. 스코어가 11:10이니까. 놓치면 진다.
여성의 머리에 의문이 떠오른다.
어째서, 이제서야 가속마법을 쓴 거지?
여성이, 청년과 눈을 마주친다.
붉게 충혈된 눈.
아.
시야 때문에... 그런 건가?
저 상태라면 분명, 제대로 앞을 보기 힘들 터.
마지막까지, 수를 남겨두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려오는 탁구공을 라켓으로 친다.
퍽 하고 날아가는 탁구공이 여성의 손을 떠나 청년으로 날아간다. 동시에
쿠콰광 하고.
청년의 라켓에 닿은 탁구공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뚫는다.
회색빛 소녀가 오른손을 든다.
"1저엄... 세트끄읏...."
동시에,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탁구장을 가득 채운다.
*
*
*
같은 시각.
인터넷 커뮤니티.
[일반] 오늘자 서울공공체육관
(영상)
니네들 이거봄?
ㄹㅇ이새끼들인간인지 모르겠슴;
ㅇㅇ(119.194) 본인 눈앞에서 직관함. 내가볼 때 인간은 아님.
ㅇㅇ(119.248) 안 본 새끼도 있음?
ㅇㅇ(211.177) 나 안봄
ㅇㅇ(177.241) 이게 뭔데 씨발
ㅇㅇ(119.873) 링크좀
[일반] 씹련아 이거 이아린이잖아ㅋㅋㅋㅋㅋ
탁구 존나 잘하누ㅋㅋㅋㅋ 근데 같이 하는 새끼는 누구임?
ㅇㅇ(188.772) 나도 잘 몰?루
ㅇㅇ(201.331)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것만 앎
이제가면 인터뷰 보면 이름은 알려줌. 노래방 말하는 거 보니 친구 같은데?
ㄴㄴ(155.702) 그래서 이름이 뭐임?
[일반] 뭔 씨발 탁구공이 안보이냐;;;
프레임단위로 끊어서 봐야함;
ㅇㅇ(231.222) 중간에 사람 하나 끼워 넣으면 다짐육 만들기 쌉가능ㄷㄷ
ㅇㅇ(119.031)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122.451) 씨발련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314.221) ㅋㅋㅋㅋㅋㅋ
ㅇㅇ(123.541) 다짐육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112.331) 저걸 어케맞춤;
[일반] 옆에있던 꼬마신상뜸ㅋㅋㅋ
한설아임...
ㅇㅇ(199.221) 지랄ㄴ
ㅇㅇ(311.205) ㄹㅇ임;;
ㄴㄴ(233.023) 한설아가 누구임??
ㅇㅇ(311.205) 병신임? 아님 간첩임?
ㅇㅇ(199.221) 이건 간첩새끼도 아는 거임
ㄴㄴ(233.023) 그래서 누군데 씨발;
ㅇㅇ(311.205) 뉴스봄? 아카데미에서 볼케이노 쏜 새끼임
ㄴㄴ(233.023) 아ㅏ 이제 알겠음ㄳ
ㅇㅇ(199.221)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일반] 이아린이 누구임?
이소천 딸임?
ㅇㅇ(119.223) 벌써 임신했누;;
ㅇㅇ(432.631) 동생 병신아
ㅇㅇ(111.065) 동생
ㅇㅇ(134.443) 그거앎? 나 저기서 이소천봄ㅋㅋㅋㅋㅋ
ㅇㅇ(119.552) 구라ㄴ
ㅇㅇ(134.443) ㄹㅇ인데...
ㅇㅇ(556.993) 그래서 이소천 임신함??
ㅇㅇ(345.223) ㅂ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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