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멍
* * *
이걸로는 부족해.
이틀이 지났다.
곁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도, 부족해, 그동안 태호랑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곁에, 곁에 있어도 안심되지 않아. 조금 더, 조금 더 큰게 필요해. 우리 집 지하실에 가둔다거나... 아니, 안 돼... 그러면, 그러면 태호가 괴로워하잖아. 태호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지금 하는 협박도 하고 싶지 않아 억지로 하는 건데... 그 이상은 불가능해.
불안 해서 미칠거 같아.
여친이 돌아오면... 모든 게 끝나는데. 떨어지고 싶지 않아. 마음 같이선... 평생 곁에 있고 싶어.
"하아..."
수업 시간.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초침 소리. 왼손으로 태호의 손을 꽉 붙잡고 있지만, 그래서, 떨어지지 않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태호를 보고 있으니, 자기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손을 잡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행복하다. 그러나 불안하다. 여친을 붙잡고 협박하는 이상, 도망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결국, 나는 여친을 죽일 수 없기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끝나기에.
저 시계초침처럼 째깍째깍. 해아릴수 없는 불안 함이 끊이질 않는다.
불안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불과 어제전까지만 해도 억지로 웃던 태호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달라붙어도 무표정, 어떤짓을 하건 무표정. 마치 저번처럼 반응없는 모습에 미치기 직전이다.
질척하게 달라붙어도 별다른 말없이 그냥 '이러지 말아 달라' 한마디 뿐.
수업이 끝나고 잠시 화장실로 도망친다.
곁에 있음에도, 여전히 불안하다. 그럴 때면 항상 물건을 꺼낸다.
"우읏..."
태호가 돌려 준 아티팩트를 바라본다. 태호랑 했던 문자를 정독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정독한다.
"차라리... 차라리 이때가 좋았는데."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가장 행복했던 시기. 다시 마음에 따듯해진다. 태호의 행동하나하나에 민감한 나로서 그 특유의 '괴로워하는' 표정은 쥐약이나 다름없다.
"태호의 고통스러운 모습, 보고 싶지 않은데..."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다.
서로 웃고, 서로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그런 걸 원했는데. 고통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잠시 버티는 것뿐.
"그냥, 사랑하고 싶었을 뿐인데..."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했을 뿐이다.
...평생 태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물리적으로나마 가까워지려는 발악이다. 그래, 이건 발악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발악이 태호를 괴롭게 만드니까. 내 마음도 찢어질 거 같아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처럼 다시 떨어지는것보다는 나으니까.
"이 길 말고는 없어..."
'잠깐 쫄았지마안... 그래도, 태호 돌아갔으니까 재차 말할게.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Null그룹이랑 너까지 합쳐서 통째로 불태워 줄 테니까.'
어제 저녁, 마녀가 나를 불러 협박했다. 잊고 있던 두려움이 뭉개뭉개 올라온다. 완전히 질려하면서도, 물러서질 않는다. 물론,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저, 저도 장난치는 줄 아세요? 손가락이라도 까딱했다간... 전부, 전부 퍼뜨릴거예요. 그 입 뻥끗 안 하시는걸 추천드려요. 평생 후회할 테니까.'
이제가는 물러섰다고 쳐도, 한설아는 끊임없이 물고 늘어져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한국에서 Null그룹을 뿌리뽑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
이 녀석도 얼마나 태호에게 진심인지 뼛속까지 느낀다. 힘든 상대다.
경쟁자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언제 여친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관계 자체의 불안감.
불안 함이 레이어처럼 겹치고 겹쳐 눈덩이처럼 굴러간다.
심호흡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서니 태호가 근처에서 대기 중인걸 발견한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으면... 도망갈 수 있으니까. 꼭, 꼭 곁에 붙어 있어야지.
이토록 사랑하고 있음에도, 마음은 평생 얻을 수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태호."
억지로 웃으며 곁에 붇으니, 자연스럽게 나를 밀쳐 내려고 한다.
"밀쳐 내지 마세요. 여친,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태호가 멈칫하다, 이내 손을 내린다. 나를 정면에서 쳐다보고는, 입술을 달싹인다.
"...이제, 그만하면 안 돼?"
"네?"
협박이후 처음 듣는 반항에.
내 표정이 바보같이, 당황에 일그러진다.
*
*
*
오늘내로 끝낸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긴장되기는 매 한 가지다.
결국 목표는 하나.
한예린의 돌발행동과 공격성을 총채적으로 줄이는 것. 이것 말고는 없다.
정신이 끝에 몰려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웬만큼 자극은 피해야 한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건드리지 않고 고분고분 말읃 듣는 게 여친의 안위에도, 내 정신 건강에도 좋겠지만...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한예린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굳이 있다면 별동대 입단이지만, 아카데미에 있는 이상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곁에 있으려 하겠지.
그렇다면,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안전해야 한다.
"뭐, 라고요?"
한예린이 억지로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달라붙는다. 저절로 소름이 돋지만, 애써 무시한다.
"말 그대로야. 그만"
"머, 멈춰요. 아니, 안 되요 절대 안 되요. 그만할 수 없어요. 절대, 절대 떨어질 생각 없으니까 그 이상 말하지 마세요."
한예린이 당황하며 내 입을 손으로 막는다. 조금 숨 쉬기 힘들 정도로 꽉. 겨우겨우 손에 힘을 뺀 한예린이 한껏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는다.
'진짜 무서워 죽겠네 진짜, 씨발...'
이건 도박이다. 실패하면 뒤는 없다. 보다 절박하게, 불안 하게만 만들 뿐인데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 점심시간이니까, 같이 먹아요. 떠, 떨어질 생각 마세요."
"..."
중간에 톡톡 터뜨려주기만 하면 된다. 다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마지막에 해결책을 던져 주면 된다.
'...태호, 뭐를 찾고 있다고? 아니, 이제가에 있기는 한데... 서, 설마 나한테 쓰려고?!'
...소천선배한테 받은 게 있다. 듣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가격에, 잠깐 그만둘까 고민했을 정도로 비싼 물건. 그게 지금 내 가방 안에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물건 두 개면 충분하다.
"태호는, 닭가슴살을 좋아했죠. 열심히 배웠으니까... 제발. 거르지 말아 주세요."
한예린이 조금 울먹이며 나를 바라본다. 도시락을 펼치니 별별 음식들이 튀어나온다.
"일단, 먹으면서 생각해요. 네?"
어색하게 웃으며 닭가슴살 한 조각을 내 입술에 들이댄다. 포크를 치우며, 천천히. 또박또박 거절한다.
"아니. 괜찮아."
한예린이 절망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조금만 기다려라 씨발련아.
*
*
*
"하아... 하아..."
머리가 아프다.
어느덧 종례 시간.
처음으로.
협박을 했는데도, 나를 거절했다.
이 사실은 나를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그렇게 협박했는데도... 아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들켰나? 갖가지 생각이 범람하며 뇌를 어지러이 해친다.
인생사 이토록 불편한 식사는 처음이다. 서둘러 도시락을 비우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태호 곁에 붙어 있었음에도. 불안은 조금도 떨쳐지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면 안 돼?'
그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강하게 붙잡고 있음에도 끝도 없이 불안 해지는 관계에. 자꾸만 태호의 표정을 살핀다.
다시 멀어지는 게 아닌가.
그것만큼은 싫다.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안 된다. 죽어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것만큼은 안 돼. 절대, 싫어... 태호 곁에 있을 거야. 사랑, 사랑하는데...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불안 해. 불안 해서 미칠거 같아.
고작 한마디.
협박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정신이 나갈 거 같다. 그대로, 죽어버릴 거 같아.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 이 느낌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종례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일어서며 집으로 돌아간다. 태호도 따라 일어서려 하자.
불안에, 서둘러 손깍지를 강하게 낀다. 아플 정도로 강하게.
"자, 잠깐..."
"소, 손 놓지마요. 안 돼요."
태호가 손을 놓으려고 한다. 아니, 안 돼. 절대 안 돼...
항상, 항상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떨어지려고? 차, 차라리 나를 죽여. 떨어지지 않을 거야. 이대로 쭉
여기, 여기 있을 거야...
종례가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일어서며 교실밖으로 나간다. 태호가 따라 일어서려 하자,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절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귓가에 속삭인다.
"...움직이지 마."
여친, 죽일 거야.
절대 움직이지 마.
태호가 마른침을 삼키며 눈을 마주친다. 안 돼, 안 돼... 움직이지 마.
이번에는 진심이 통했는지, 태호가 얌전히 자리에 앉아. 학생이 전부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교수님도 교실밖으로 나가고, 아카데미가 한껏 적적해지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태호가 나를 바라본다. 치솟아 오르는 긴장감. 그때.
"한예린."
"네?"
"그만, 손 놔."
태호가 억지로 손깍지를 푼다.
아.
고작 손이 풀렸음에도, 질척한 절망감이 시야를 흐린다. 심장이 북처럼 쿵쾅거려 웅웅 소리가 울린다. 일어서서,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태호가 아득히도 멀게 느껴진다.
이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유지할 수 없다.
이제, 이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자...
끝에 몰린 정신이 조금씩 부서진다.
아아.
안 돼.
그때로 돌아가 버려.
"...태, 태호야?"
"..."
태호가 손목을 털며 점차, 점차 내 곁에서 멀어진다. 아니, 안 돼. 제발, 그러지 마...
아무도 없는 방과 후 교실.
태호의 손목을 억지로 붙잡는다.
그대로 멀어져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불안감이 정신을 끝으로 내몬다.
"태호, 집으로 돌아가지 마. 돌아가지 말고, 곁에 있어 줘. 움직이면... 여친 진짜, 진짜, 죽일 거니까...!"
당장에라도 쏟아질거 같은 눈물에, 시야가 흐릿해진다. 귓가는 자꾸만 웅웅거리고.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춥다.
마음이 망가질거 같아.
통하지 않아.
자꾸만 멀어져.
모든 걸 잃는 느낌. 오직 절망만이 나를 반긴다. 태호는, 무슨 수를 써서든 멀어지는구나. 안 돼, 안 돼, 이 이상 멀어지고 싶지 않아. 여기서 놓치면, 평생 떨어져 버려.
"이제 협박같은 거 그만해. 이럴 수록 멀어지기만 한다는거, 잘 알고 있잖아."
마음이 꺾인다.
태호가 나를 바라본다. 서로 눈이 마주친다. 동시에.
가슴에 묵혀두고 있던 감정이 일제히 폭발한다.
"나도, 알고 있어...!"
"나도 알아...! 태호야. 네가 이렇게 하면 싫어하는 거... 전부, 전부다 알고 있어...!"
"그래도 멈출 수 없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떠날꺼잖아. 나는 너에게 있어 악녀고, 미친년이고, 곁에 있기도 싫은 쓰레기니까."
"그래서 두려워. 너무나도 두려워.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그래도..."
"이기적인 만큼 너를 사랑하는 걸."
"더없이 이기적인 만큼 너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걸. 이제 네가 없으면... 네가 사라진다면. 버틸 수 없어."
"네가 없는 하루하루가 미친 듯이 괴로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가 나를 싫어하기에. 그 사실을 사무치도록 알고 있기에. 이러는 거야."
"죽어도 네 마음을 얻을 수 없으니까."
"그 어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없으니까. 이건 오직 나만이 하는 '반쪽짜리 사랑'이니까."
"그러니까, 협박을 멈출 수 없어. 나도 하고 싶지 않아...! 하면 할 수록 네가 괴로워하니까. 태호야. 네가 괴로워하면 나도 괴로워. 진짜, 괴로워서 미칠거 같아...!"
"하지만 멈출 수 없어. 멈췄다가는, 네가 영영 내 곁에서 떠나버리니까. 그러니, 이것만큼은 멈출 수 없어. 이별에 비하면 이런 고통따위 아무것도 아니니까."
"태호야. 사랑해..."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미안 해."
"사랑해서... 흐읏, 미안 해..."
"너무, 미안 해... 미안 해..."
"받아 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이것 하나만 있으면 돼."
"네 곁에 있게 해 줘."
"...조금이라도 더."
"네 곁에."
단지 그것뿐.
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태호의 품에 고개를 처박은 채, 바보같이 흐느낀다. 제발... 제발 네 곁에 있게 해 줘. 멈출 수 없어. 사랑해서, 미안 해. 안 돼, 그렇게, 그렇게 싫다고, 거절하고, 거절해도... 멈출 생각 없어.
멈추면 네가 떠나버리니까.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흐느끼며 태호의 교복을 눈물로 적시고 있으면, 머리 위에 손이 올려진다.
"흐윽... 읏, 흐윽..."
"...알았어."
태호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결심한 듯, 나를 내려다본다.
"곁에 있게 해 줄게."
"...네?"
눈이 크게 뜨여진다. 부들부들 떨리던 어깨가 잦아들고, 질척하게 흐르던 눈물이 일순 멎는다. 내가,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눈물로 범벅된 와이셔츠에서 천천히 떨어진다음. 믿기지 않아, 다시 물어본다.
"...뭐, 뭐라고요?"
"곁에 있어 준다고."
내가 잘못들은 건가?
"곁에... 있어 준다고요?"
"응."
이, 이거... 꿈이지?
꿈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제발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안 된다고...
"곁에 있어 줄게. 이제, 피하지도 않을게."
"거, 거짓말이죠? 자, 장난치지 마세요... 일부러, 일부러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절망으로 가득한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다. 곁에 있어 준다는 고작 한마디에 표정이 풀어진다. 고양되는 감정에 숨결이 거칠어진다.
"아니, 진심이야."
"네, 네?"
"다만, 조건이 있어."
*
*
*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다. 대체, 대체... 어째서. 태호가, 태호가. 내 곁에 있어 준다고...
조건이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좋아.'
태호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계속, 계속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전부... 전부 상관없어.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거다.
익숙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태호랑 틈만 나면 섹스하던 장소. 저택의 맨 끝방. 은은한 향기가 폐부를 자극한다.
태호가 가방을 한 손에 쥔 채, 침대에 앉는다.
"...한예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그러곤, 가방에서.
개 목줄과 음문각인기를 꺼낸다.
"내 개가 돼라. 그럼, 곁에 있어줄게."
아.
아아...
기쁨에 빠져 있던 심장이, 추적추적 식어 버린다. 그보다 끈적한 감정이 가슴을 휘몰아친다. 개가 되라고?
이제, 주인이 아니라... 개가 되라고?
치욕스럽고 절망스럽다.
새빨간 개 목줄이 나를 기다린다. 아아... 상관없어. 이미, 이미 전부 잃었는걸. 태호의 마음도, 무엇도,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더 이상 멀어지고 싶지 않아. 음문이 박힌다면 돌이킬 수 없다. 아아... 귀속. 귀속이다.
내가, 태호에게 귀속당한다.
불안 하던 관계가 다시, 주종관계로. 그것도, 내가 노예고 태호가 주인인...
역전된 관계로.
"하아... 하아..."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이렇게 해서... 네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할, 게..."
나는, 강아지.
너의... 강아지.
"흐읏, 하아..."
새빨간 개 목줄을 목에 차자,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부족함과 불안감이 물에 빠진 솜사탕처럼 사그라 든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인님을 바라본다.
"...멍."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