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애액
* * *
오해가 풀렸다.
주혁이는... 그냥 내가 걱정돼서 그랬던것뿐이고, 서, 선배가... 나를 꼬실까 봐... 경계했을 뿐이다.
'주혁이가... 나를 걱정해줬어...'
안도감에 다리가 풀릴 것 같다.
주혁이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볼에 홍조가 올라온다. 내가... 내가 그냥 과민반응 했을 뿐이야. 옆에서 우물쭈물 괜히 먼 곳을 바라보며 짝다리를 짚는 주혁이를 보니,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전부 돌아왔다.
이제, 전부 좋은데...
"...흐읍."
찬 바람에 한숨이 섞여 들어간다.
오해가 풀려서, 전부, 전부 좋은데...
자꾸만 시선이 선배에게 꽂힌다.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아니, 아니 아니... 아니예요..."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한다.
중후하게 울리는 목소리, 듣기만 해도 안정적인 목소리. 낮게 깔리는 저음에 하반신이 먹혀들어 간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보지 사이에서 뜨거운 물이 조금씩 새버린다.
자, 잠깐 선배...! 아니, 이게 아닌데... 뭔가, 기분이...
기분이 좋다.
올라오는 열기에 살짝 볼이 상기된다. 미안한걸 알고 있다. 선배랑 억지로 섹스했으니까. 그것도 내 자살을 빌미로, 선배님의 자, 자지를... 내 보지에 담았다.
'으앗앗...! 또, 또 생각하니까...!'
본능적으로 팬티가 젖어 들어간다.
나, 남자들은... 다 거기가 큰걸까? 아니, 아니야... 영상으로 봤을 때는 그보다 작았는걸.
선배는 몇 배나 큰데.
'으으윽...! 이,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저항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머리를 턴다. 아니야, 안 돼. 이러면 선배한테도 미안 하고 주혁이한테도 미안... 한걸.
아니, 아니... 애조에 주, 주혁이는 나를 좋아하고 있을까?
나 같이 음침한 여자를... 좋아할까?
'네 여자 빼앗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참에 그냥 이 자리에서 사귀는 거 어때? 둘 다 마음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선배가 말했던 것처럼...
볼이 씨뻘겋게 달아오른다.
주, 주혁이는 그냥... 그때 아무런 말도... 아니, 그전에 내가 아, 아니라고... 으읏.
아닐 거야.
나같은 거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냥, 친구니까... 친구니까 도와주는 거겠지.
머릿속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다. 언제나 이랬다. 좋은 생각은 나랑 인연이 없으니까. 결국 좋게 떠오른 상상도 종국에는 회의적이고 염세적으로 변한다.
...주혁이가 나를 좋아할리 없어.
시선이 자연스럽게 선배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흐읏."
자연스럽게 하반신이 저려오며, 자궁이 반응한다.
이러,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를 떠올리니, 자궁이 녹아내릴 거 같아. 서서히 거칠어지는 숨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겨우겨우 시선을 돌린다. 야동같은 거, 본적만 있고 자위는 해 본적도 없다. 본능적으로 문대는 추잡한행위도, 전부 그때 처음 해본 것.
처음 겪은 압도적인 쾌락.
"아, 버스왔다."
"내, 내일 봐요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
"오냐."
태호 선배가 버스를 타며 이쪽으로 손을 흔드신다. 헐떡거리는 숨을 억지로 참은 채 웃으며 선배를 따라 손을 흔든다.
보지가 젖어온다.
눅진눅진, 끈적끈적, 질척질척.
허벅지가 움찔거린다. 숨은 뜨거워지고, 볼은 달아오른다.
위험, 위험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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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 해결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약간 불길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크흠."
별일 없겠지. 둘 다 사이 좋고, 끈끈하니까.
집으로 돌아가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대체 어떤 마물이길래 설아가 그렇게 반응하는 거지?'
다른 건 동공이 원형이라는 것 하나뿐. 심지어 사진을 가져온 것도 아니고 내가 그린 몽타주를 보여줬을 뿐이다.
설아가 그토록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본 건 처음이다.
'하수구때랑은 비교도 안 돼.'
융합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 벌벌 떨던 것과 비교해 보면 또 틀리다. 지금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느낌.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화물차를 멍하니 바라보는 세살배기 어린아이.
딱 그런 느낌이다.
대체...
"후우..."
적어도 이번 일로 그 고양이 마물이 설아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뿐. 어째서 관련이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하는 말도 중구난방.
익숙하다고 하면서도 처음 봤다 그러고, 그게 또 아니라고 하면서 맞다고 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아..."
생각을 그만둔다.
이 이상 고민해봤자 답은 안 나온다. 그냥, 머리만 아플 뿐이다. 주어진게 너무나도 적으니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걸 다시 설아에게 보여 줘서 뭔가를 알아낼 수도 없다. 그러다가 설아가 돌아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한반도가 뒤집힐테니.
마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펜리르를 죽이기 위한 첫걸음이니까.뭐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중에 잔나리 기사님한테 한번 물어볼까.'
허언증에 의심만 한가득이지만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도 위험해.'
열심히 관련 서적을 뒤지며 펜리르 죽이기에 칼을갈고 있다지만, 이게 나만 모르는 정보라면 말이 달라진다.
잔나리는 초고위기사다.
나라 몇 잃고 고전은 하겠지만 기어코 설아를 잡아내겠지. 이걸 말한다는 건 친구에게 죽으라 무덤을 파주는 것과 같다.
핸드폰을 꺼내서 한예린에게 문자를 보낸다.
마물 관련 서적들 싹 다 긁어서 택배로 붙여 줘 필요 없는 거 빼고
순식간에 1이 사라진다.
알겠습니다 주이ㄴ님
이참에 싹 다 공부 하자.
수업범위를 넘어 논문수준까지 가면 뭐라도 나오겠지. 이후에 물어보면 된다. 아직 시간은 많다.
펜리르의 약점이라도 알 수 있다면, 뭐라도 할 거다.
밤이 깊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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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산운수가 빠르다고는 들었어도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최고등급 프리미엄으로 보내겠다고 하길래 내일쯤 오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집에 오기 전에 먼저 도착할 줄은 몰랐지.'
초고속이 괜히 초고속이 아니다.
물산그룹이 돈을 쓸어 담는 이유를 피부로 체감한다. 이런 게 온 유라시아에 걸쳐 있다고? 이러면 뒷목잡을 경쟁사도 남지 않는다. 실제로 없기도하고.
'그러고 보니... 한예린은 김석현이랑 계속 가는 건가?'
당장 갈라져도 상관없는 수준이다.
이미 둘의 관계는 거기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봤는데...
'아니요, 그 빌어먹을 쓰레기랑은 계속 연인 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주,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당장 헤어질 테지만. 혹시... 원하고 계신가요?'
한석주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순애보니까. 자기 딸이 별다른 이유 없이 김석현과 헤어진다면 아마 의심부터 할 거라고 한다.
"하아..."
"주인님. 잠깐... 주무실래요?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아니."
고개를 흔든다. 오자마자 바로 각 잡고 공부를 했더니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수업 시간.
피곤에 쩔어 정신이 반쯤 혼미하지만 그래도 버틸 만 하다. 수석도 유지 중이고, 모든 게 완벽하다.
한번 기지개를 켜니, 종이 친다.
"주인님..."
"따라오지 마."
"네에..."
한예린이 고개를 숙인다. 고작 하루 쉬었다고 허리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한예린의 붉게 물든 홍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일주일이 지나면 알몸에 개 목줄만 묶고 달밤산책을 나가야지. 별빛 아래 자위하며 동상에 오줌을 누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복도 밖으로 나간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던 찰나, 최시윤을 만난다.
"안녕."
"서, 선배님... 안녕하세요오..."
최시윤이 부들부들 허리를 떨며 이쪽을 바라본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러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찜찜하고 불길한 느낌.
"..."
서둘러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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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플 정도로 두근거린다.
선배를 볼 때마다 하반신이 저려오고, 눈이 마주치면 다리가 떨린다. 자궁 아래부터 올라오는 흥분에 잡아먹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자꾸만 그때 했던 섹스가 떠오른다.
"하아... 하아...♡"
첫 애무.
첫 섹스.
첫 절정.
모든 게 머릿속에서 아른 거린다. 마치, 마약처럼. 엄마가 했던 마약처럼 하반신을 고양감에 빠뜨린다. 집으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자위까지 해봤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절정은커녕 그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다. 엄마한테 들켜서 처맞기만하고, 욕만 들었다. 아팠다. 다시 멍이 들었다.
"하아... 하아아...♡"
다시... 기분 좋은걸 하고 싶다.
허벅지 사이로 애액이 흘러내린다.
당장, 지금 당장... 하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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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서적을 뒤진다.
이미 웬만한 책들은 다 읽어서 의미가 없지만 새로 들어온 책들은 아직이니, 신간 위주로 도서를 대여한다.
"의외로 얼마 없네."
물갈이가 좀 됐을 줄 알았는데 몇 권을 빼곤 제자리걸음이다. 몇 년째 먼지만 쌓여 있는 퇴물도 한두 개 보이는 게 아카데미가 고여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꿍시렁대며 빌린 책들을 들고 반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없어 휑한 교실. 가방에 대충 책들을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간다.
교실처럼 복도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다들 돈 많고 권력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한 번쯤은 무시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밥은 또 잘 챙겨 먹어 매번 이렇게 복도가 휑하다.
"후우..."
화장실이나 가자.
한숨을 쉬며 복도를 걷던 그때.
턱.
누가 내 어깨를 잡는다.
"하아... 하아...♡"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최시윤이 혼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붉게 달아오른 숨소리. 뜨거운 손. 허벅지를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는...
애액?
"엇."
몸이 중심을 잃는다. 최시윤이 갑자기 나를 화장실 안으로 끌고들어간다.
"자, 잠깐만 시윤아?!"
"서, 선배님... 하아... 하아...♡"
남자 화장실 안.
최시윤이 나를 구석에 밀어 넣곤 도망치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벽을 친다.
잠깐.
"하, 한 번만 더 해요...♡ 거, 거절하시면..."
저, 자살할거예요.
정신이 아득해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