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난장판
* * *
"선배니이이임..."
최시윤이 내게 몸을 마구 비빈다. 주변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가득하고 이제 막 나가려던 교수님이 벙찐 표정으로 나와 후배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던 때.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건가요!"
한예린이 입안 가득 화를 머금고는 내 쪽으로 달려온다. 그대로 최시윤의 뒷덜미를 붙잡고는 억지로 잡아당긴다.
"떨어져요. 지금 당장 떨어지라고!"
"네? 싫은데요."
최시윤이 껄렁하게 귀를 후비적거리며 거절한다.
두 눈이 번뜩 뜨인다. 아니, 잠깐, 뭐라고?
한예린이 울그락 풀그락 당장에라도 터져 버릴 거 같은 화를 씹어 넘기며 최시윤을 노려본다.
"뭐?"
"싫다고요. 선배님."
"...나, 누군지 몰라?"
"알아서 뭐 하게요?"
최시윤이 내게 볼때기를 비비면서, 피식하고 웃는다.
전혀 밀리지 않는다. 나랑 같은 서민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상 용호상박을 이뤄내고 있으니, 도저히 얼굴에서 당황이 풀리지 않는다.
너... 진짜 최시윤 맞냐?
"당장, 당장 태호곁에서 떨어져. 이건 명령이야."
"시른 데요."
후배가 세침떼기 표정을 지으며 한예린을 바라본다.
내가 억지로 떼어내려고 발버둥 쳐도 꿈적조차 안 한다. 무슨 자석같다. 포승줄에 묶인 거 같기도하고, 매미처럼 들러붙어 미동조차 안 하니 돌아버릴 거 같다.
주변에서 시선이 화살처럼 꽂힌다.
"후우우... 너, '지금 당장' 떨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부모가 한 사람식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떨어지라고."
"고마워요 선배. 대신 치워준다고 하셔서. 이거, 혹시 돈 내야 하나요?"
"...뭐?"
한예린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최시윤이 이때다 싶어 피식 웃고는 나불대기 시작한다.
"어머머! 선배는 그런 가정에 살고계셔서 잘 모르시겠구나! 죄송하지만 저는 서민이 아니라 천민이거든요? 제게 가족을 죽인다는 말은 통하지 않아요! 제게 가족은 인간이 아니라, 조금 큰 벌레일 뿐이거든요."
"...이상한 말 그만하고, 떨어져. 떨어지라고!"
한예린이 참다 못해 달려들어 최시윤을 끌어낸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이이익...! 끼이익...! 왜, 왜 안 떨어지는 거야!!"
"선배님 말은 그렇게 하시더니 생각보다 연약하시네요. 헬스장 추천해 드릴까요?"
"닥쳐!!"
"..."
씨발.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전부 도망친지 오래다. 한예린이 입에 험악한 말을 담았을 때부터, 이미 생도들은 반을 나간지 오래. 아마 운 나쁘게 말려들어갈 거 같아서 그런거겠지.
"시, 시윤아... 시윤아 이제 좀 떨어지자."
"눼."
최시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 곁에서 떨어진다. 갑자기 일어나니, 진땀을 흘리면서 후배를 끌어내던 한예린이 내동댕이 쳐진다.
최시윤이 한예린을 내려다보며 툭툭. 치마의 먼지를 턴다.
"너, 앞으로 아카데미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거야."
한예린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네? 그럼 저는 자살할게요. 괜찮죠? 선배님."
"뭐?"
두 눈이 번뜩 뜨인다. 뭐 씨발?
"한예린. 하, 하지 마. 멈춰."
"느, 네?"
양손을 펼치며 한예린을 저지한다.
전화를 걸고 있던 한예린이 힘빠지는 소리를 내며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 안 된다. 말투가 저렇지만 자살하겠다는 말은 진심이니까.
"왜, 왜요? 주인님...?"
"헉! 주인님이요? 어쩐지... 둘이 너무 가깝더라니!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요? 선배님, 새 노예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저, 자살특공대는 자신 있습니다!"
최시윤이 생기 발랄하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브이를 만든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좀! 아니 씨이, 닥치라고요! 닥쳐!!"
"뭐요."
"주, 주인님이 대답하시려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어쩌라고요."
짝!
한예린이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며 분노로 깊게 응어리진 한숨을 내쉰다.
"쓰으으으으읍... 후우우..."
곧 있으면 터질, 끓어오르는 찻주전자 같은 한숨에. 한예린의 어깨를 붙잡는다.
"으헿?!"
"자, 자 진정해. 한예린. 내가... 씨발. 다 설명할 테니까..."
"제가 설명해도 되나요?"
"시윤이는 조용히."
"눼에..."
"자, 한예린. 잘 들"
끼이이익!
"무, 무슨 일이야 태호야!"
"태호야아...?! 스, 습격받은 거야아...?!"
"갑자기 폭발 소리가 들려서 달려왔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매서운 바람이 교실 안을 해집는다. 커튼이 이리저리 나부끼며 야트막한 그림자를 만든다.
셋이 동시에 달려오며 내 안위를 살핀다. 동시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누, 누구야? 그 여자아이는?"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이아린이 당황하며 후배에게 손가락질 하자. 최시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냅다 문 앞으로 다가간다.
"잠깐, 시윤... 최시윤? 대체 몰골이 왜 이모양"
"아니 아니! 아린선배님. 제 모습이 달라진 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제 제가 태호선배의 하렘에 들어왔다는 거죠!"
네?
"뭐?"
"뭐어어...?"
"뭐라고?"
폭탄 선언에 셋이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니 눈치 없는 후배가 방방 뛰며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선배님!'같은 말을 씨부린다.
아니야! 씨발 아니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아...?!"
"제발 지랄하지 마, 시윤아. 아니, 진짜, 씨발..."
"태호. 이 경박한 아이는 대체 누구인가?"
"..."
내가 아무말없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고 있으면, 설아가 울그락 풀그락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애초에 이건 하렘같은 게 아니라고오...! 처음부터 태호는 내꺼였는데에... 별 시정잡배들이 들러붙어서 이건네꺼 저건네꺼 그러는 게 말이 돼? 그리고 태호야아. 내가 말했잖아아...! 불길한 기분이 든다고! 그러니까 태호, 태호야아... 지금이라도 치우자아...!"
설아가 부글거리는 화를 가슴에 욱여넣곤 천천히 후배한테 다가간다.
그러자, 최시윤이 손바닥으로 눈가에 그늘막을 만들곤, 저 멀리 창문 밖을 바라본다.
"참 죽기 좋은 날씨네요."
씨발.
"...안 돼! 설아야 머, 멈춰. 안 돼. 하지 마."
"으그으으으윽...!"
설아가 짜증 나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발작한다. 다들 새로 나타난 적에 짜증과 화를 삭히고 있다.
"더는 못 참겠다. 야, 최시윤. 우리가 개 좆으로 보이냐?"
이아린이 어깨를 풀며 다른 손으로는 얼음을 만든다. 바로 옆에 있던 소천선배도 얼음으로 권투글러브를 만들며 대응한다.
"후배라고 안 봐준다."
"선배님들 너무해요! 그냥 하렘에 끼워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요!"
"당연하지!"
"당연."
셋이서 신경전을 벌이며 번개 같은 스파크가 튄다.
그 와중에 한예린은 은그슬쩍 내 옆에 붙어 스킨쉽을 하고 있고. 설아는 이게 해결법이 아니라는걸 아는지 복도에 쭈그린 채 멍하니 '그래서 안 된다고 했는데에...'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다들 그만... 씨발."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난장판.
개판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뒷목을 잡는다.
'도망치자.'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러던 때였다.
"으아앗, 아악?!"
"복도에 소란 피우지 마라."
지나가던 교수님과 검은 양복을 입은 여러 사용인들이 겹처들어와 최시윤을 끌고 간다. 버둥거리면서 탈출하려고 하니, 내가 서둘러 눈치를 준다. 나중에 보자고 입 모양으로 말하니, 그제야 움직임을 멈추고 순순히 끌려간다.
당장에라도 맞붙을 거 같았던 분위기가 빠르게 식어 버린다. 당황하며 한예린을 바라보니, 퇴학은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일단, 사람을 조금 썼어요. 교무실에서 잠깐 머리 좀 식히라고 하죠. 쓰으으읍... 후우. 진짜 짜증 나네."
"아니, 진짜 조금만, 조금만...!"
"그만 하세요. 그래 봤자 풀리는 건 없어요. 다들 잠깐 진정하시고, 심호흡 하세요."
못 참고 뛰쳐나가려던 이아린을 한예린이 붙잡는다. 이아린이 아랫입술을 짓씹으면서 머리를 벅벅 긁는다.
"..."
"..."
"..."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아무도 없는 복도에 정적이 깔린다.
시선이 자연스레 내게로 쏠린다.
"태호,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맞아요 주인님,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요?"
짧게 심호흡한다.
"설아랑 아린이는 대충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직이지?"
설아와 이아린이 짜증 나는 듯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후우... 잘 들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달싹이던 입술을 연다.
*
*
*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이여야만 한다.
최시윤이, 시윤, 시윤이가... 그럴 리가 없다. 점심시간 전까지 아카데미에 오지 않던 그녀가, 갑자기...
금태양이 돼서 돌아왔다.
"자, 장난이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들어오는데 외부인인 줄 알고 두 번이나 돌려보내졌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시종일관 웃으며 모든 행동이 털털해졌다.
내가 알던 시윤이가 아니다. 달라졌다. 그것도 완전히.
"하아... 하아... 거짓말이야. 아니야, 아니야..."
과호흡에 살결이 떨린다.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
'어, 어째서 바뀐 거야? 대체, 왜'
'선배가 좋아하시니까.'
'...뭐?'
'태호선배가... 좋아하시는 스타일이니까♡'
강렬한 배신감에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대체... 대체 언제부터..."
폭발할 거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생각을 정리한다. 대체 언제부터 그랬던 거지? 언제부터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서...
"아."
처음부터다.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접근한 거다.
도와 준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단지 나를 놀리기 위해... 시윤이를 내게서 뺏기 위해, 처음부터 준비를 한 거다. 하수구 마물을 때려잡아서 이미지가 좋아지니까, 그걸 적극 활용해서...
"아아... 아... 아..."
유린당했다.
몰아치는 감정의 파도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시윤이는 내게 소중한 존재다. 아니, 한낱 '소중'이 아닌. 그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사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뺏기게 생겼다. 아니, 이미...
"안 돼..."
당장 따져야 한다... 지금, 당장...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며 선배에게로 향한다.
*
*
*
"...그렇게 된 거야."
"후우..."
"하아..."
"진짜, 하아..."
"쓰으읍... 후우."
모든 설명이 끝나자 일동 전원 약속이라도 한듯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저 자살한다는 게 진심이라고? 태호."
"네."
"주인님, 그냥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사지를"
"안 돼."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저지하자 한예린이 혀를 찬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나아...? 나도 마음 같아선 우주로 보내버리고 싶은데에..."
"그거 마법으로 어떻게 못 해요? 아예 자살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그게 됐으면 바로 했지이... 뇌는 정교해서 나도 잘못 건드리면 위험하다고오..."
"자아를 완전히 없애는 건 가능한데, 어떤가?"
"Null이랑 이제가랑 합치면 아주 약간의 소문도 막을 수 있어요."
"아니, 안 돼... 안 된다고. 언니.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생각해 보니 걔, 실기 1등이었지이...? 막을 수는 있는 거야아...?"
"잠깐, 실기 1등이면 피해를 입히기도 힘들지 않은가?"
"아니예요. 관련 자료가 왔는데... '공격'은 압도적이나, '방어'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고 하네요. 충분히 자살 가능한 신체예요."
"거짓말이 아니었군."
"그리고... 잠깐. 최고속도가... 음속을 돌파하는데요?"
"뭐?"
"괜히 실기 1등이 아니예요. 음속도 그냥 음속이 아니예요. 초음속. 그 이상도 넘어요. 아마 마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
"으끄이이익...! 짜증 나아아...!!"
설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신음한다.
다른 여자들이 괜찮냐며 설아의 등을 두드려 준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잠깐 싸움을 내려놓은 채 후배 문제를 두고 토론한다.
슬그머니 복도 밖으로 빠져나간다. 열띤 토론속에 나를 신경 쓸 시간따위는 없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걸 확인한 후, 건물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는다.
"...하아."
후배의 몸통 박치기에 아직도 배가 얼얼하다. 대체 왜,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바뀐 건지, 갑자기 또 나는 왜 사랑한다고 하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서어언배니임!! 여기서 뭐 하세요옷?!"
아 씨발.
"아무것도 안 한다."
"정말요?! 그럼 선배님 곁에 붙어 있어도 괜찮은 거죠? 거절하면 자살할거예요!"
내게 선택지는 없다.
"그래라..."
"야호! 선배님 사랑해요오..."
최시윤이 끈적하게 곁에 붙어 몸을 밀착한다. 나갈거 같은 정신에 시야가 아득해지기도 잠시. 근처에 발소리가 들린다.
"...선배."
그곳에는.
"이게... 대체..."
울그락 풀그락.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석주혁이 있었다.
"아."
미치겠네 진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