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아웃 파이팅으로 타격전이라···.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은지는 영상속의 태클을 다시 한 번 보면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 태클은 엄청나게 빨라. 찬형이가 공격을 하는 타이밍에 계속 시도하다 보면 결국은 잡힐 텐데····.’
이민우의 의견은 일단 현실성이 좀 없었다.
어지간한 레슬러라면 혹 모른다.
하지만 이충호 정도의 엘리트 레슬러를 상대하면서 테이크다운을 모두 막아낸다고 가정하고 시합 플랜을 세우는 것은 너무 안이했다.
‘부르노 삼촌의 의견도 마찬가지야. 니킥으로 카운터? 그거야 타이밍이 맞기만 하면 한 방에 침물 시킬 수 있겠지. 하지만 안 맞으면?’
모 아니면 도 식의 도박에 승산을 맡기고 케이지 위에 오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럴거면 작전을 짜는 의미가 하나도 없었다.
“음····, 찬형아. 넌 어떻게 생각해?”
은지는 문득 생각난 듯이 찬형이에게 의도를 물었다. 사실 찬형이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격투기에 대한 이해도는 가장 떨어졌다.
하지만, 직접 저 남자와 싸우는 것은 찬형이다.
당연히 찬형이의 의견도 중요했다.
“음, 잘 모르겠는데? 굳이 말하면 부르노 코치님 말대로 들어오는 타이밍에 니킥으로 잡는게 좋을 것 같아.”
“그렇지? 맞지? 내 말이?”
부르노는 자신의 의견이 맞다는 듯이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그런 부르노를 보고 이민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약 니킥이 안 맞으면요?”
“안 맞아? 맞춰야지. 무조건.”
“아니 그러니까···, 안 맞으면 어떻게 되냐고요?”
“안 된다니까? 안 맞으면?”
“아아··· 정말···.”
한국어 이전에 부르노의 고집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고집은 타격가로서의 프라이드에서 나오고 있었다.
부르노의 현역 커리어를 보면···.
MMA시합을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킥복서로서의 경력이 더 길었다.
브라질 출신 치고는 드물게 태국 본고장에서 무에타이 시합도 했을 정도로 타격 스페셜 리스트였다.
가끔 처음 투심관에 들어온 사람들은 부르노의 국적이 브라질인 것을 보고 주짓수가 특기가 아니냐? 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정작 부르노는 주짓수를 정식으로 배운적이 없는 골수 타격가였다.
그래서일까? 선수를 코치할 때도 타격가로서의 고집이 종종 두드러질 때가 있다.
“일단, 두 사람의 작전을 적당히 조합해서 대책을 수립하죠.”
결국 은지가 중간에 중재를 했다.
“일단 기본 전략은 민우 오빠의 말대로 리치의 우위성을 살려서 아웃파이팅. 그러다가 상대의 태클이 들어오면 그때는 니킥으로 받아치는 방식으로 해 봐요.”
은지의 말에 찬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해서 잘 도 이기겠다.”
이제까지 이 자리에 없는 줄 알았던 제 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빠?”
은지의 아빠이자 이 투심관의 관장인 박진호 관장이었다.
박진호 관장은 언제 체육관에 들어왔는지 옷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말했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장담하건데 그렇게 하면 열에 아홉은 질 걸?”
“아빠, 언제부터 있었어요?”
은지의 말에 박진호 관장은 심드렁하게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조금 전부터. 그런데····, 너희들 도대체 뭐 하냐?”
박진호 관장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민우. 너 같으면 저 레슬러 상대로 시합하는 내내 테이크다운 안 당하게 아웃 파이팅 할 수 있겠냐?”
“그건·····.”
자신 없어 보이는 이민우에게 박진호 관장의 말에 자신있게 예라고 할 수 없었다.
태클을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하긴 했지만···.
엄청나게 빠른 태클이었다.
저 거구가 저공을 스치면서 마치 제비가 날아오는 것처럼 다가왔다.
거리가 약간만 가까워지면 저 태클이 날아올 것이다.
솔직히 세 번에 두 번 정도 막아내면 잘 막아낼까?
반드시 잡힐 것이다.
“거 봐라. 너도 못하는데 너보다 경력이 짧은 찬형이가 잘도 하겠다.”
“···············.”
할 말이 없는 이민우였다.
“그리고 부르노.”
“왜요?”
“태클 들어오는 타이밍에 니킥으로 요격이라···. 그게 도대체 언제적 트랜드야?”
“··············.”
“네가 현역 시절에나 타격가들이 그라운더를 그렇게 상대했지. 한 10년 전의 일이군. 요새는 아무도 그렇게 안 해.”
“뭐 그거야····.”
MMA격투기는 역사가 길지 않은 대신 그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단적인 예를 들어서 한때 60억분의 1이라고 불렸던 그 효도르 조차 최강에서 표준으로 그리고 이제는 구형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잠시 쉬어가는 말을 하자면·····.
효도르가 약한 것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그는 틀림없이 60억분의 1로 최강이었다.
타격이면 타격, 그라운드면 그라운드.
그렇게 한쪽으로 편중된 파이터들이 MMA를 활보하던 시절 컴뱃삼보를 익힌 효도르는 타격과 그라운드를 모두 구사하는 1세대 올라운더로 등장했다.
그리고 타격가들은 그라운드에서, 그라운드는 타격으로 잡아내면서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파이터들이 효도르 만큼이나, 아니 그때의 효도르보다 더 강력한 올라운더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MMA의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이다.
10년 전의 올드한 전략을 들고 와서 저런 엘리트 레슬러를 이긴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럼 아빠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글쎄? 상대가 레슬러라면·····, 그냥 그라운드에서 정면승부하지 그래?”
“관장님·····.”
“말도 안 돼요.”
이민우와 부르노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엘리트 레슬러가 대전 상대라서 어떻게든 그라운드로 가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라운드에서 정면 승부를 하라니?
“싫으면 말아라. 전에도 말했지만 난 프로 키울 생각은 없어.”
박진호 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라운드 정면 승부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이민우와 부르노는 그렇게 중얼 거렸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정면 승부·····.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은지는 뭔가 생각난 것처럼 중얼 거렸다.
“은지야. 너 설마 관장님 말을 들을 생각이니? 저건 관장님이 그냥 막 말하신 거야.”
이민우의 말에 은지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리 아빠는 조언을 아주 안 하면 안 했지. 절대로 막 말하지는 않아요.”
“아니 그거야·····.”
“그리고, 어쩌면 아빠가 한 말이 유일한 활로가 될 지도 모르고요.”
은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그림을 그렸다.
‘그 방법 밖에 없어···. 그 방법 밖에···.’
생각을 정리한 은지는 찬형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찬형아. 날 믿어?”
“응. 물론이지.”
찬형이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다음 시합에서는 말이야. ······.”
그리고 은지는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찬형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은지의 격투 센스에서 나온 작전.
그리고 그런 은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찬형이는 절대적으로 은지의 지시를 실행할 것이다.
좋은 팀과 선수의 신뢰관계라는 것은 몇 배의 상승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 법이다.
“원투!! 원투!! 원투쓰리!!!”
퍼퍽!! 퍼퍽!! 퍼퍼퍽!!!
코치의 신호에 따라서 부지런히 미트를 치는 이충호의 펀치는 빠르지는 않지만 상당히 묵직했다.
삐이익!!
“좋아. 여기까지···. 후우··. 지친다. 지쳐.”
이충호의 코치는 시간이 다 되자 자신부터가 숨을 몰아쉬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쿨 다운하고 쉬어.”
“예.”
여기저기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장소는 버팔로 짐.
투심관 처럼 한국에있는 수많은 MMA 체육관 중에 하나였다.
체육관 이름을 버팔로 짐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이 체육관의 관장인 이제훈 관장의 현역 시절 링네임이 버팔로였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의 그는 링네임대로 절대 물러서지 않고 두 주먹을 뿔 삼아서 전진에 전진을 계속하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그만큼 화끈한 시합을 많이 했고 승리와 패배를 반보하면서 벨트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그래도 명승부를 많이 만들어서 팬이 많은 파이터였다.
하지만 난타전을 너무 많이 반복했기 때문일까? 몸에 대미지가 쌓이는 것도 다른 선수들 보다 더 빨랐다.
결국 그는 건강을 위해서 조금 이른 시기에 은퇴하고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격투기 철학은 현역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따.
그는 체육관 관주가 된 지금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물러나지 않고 저돌적인 파이팅을 지도하고 있었다.
너무 일변도적인 스타일이라서 안 맞는다고 도중에 체육관을 옮기는 파이터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화끈한 스타일에 매료되어서 오히려 멀리서 찾아와서 지도를 부탁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버팔로 짐에 오랜만에 들어온 헤비급 신예가 바로 이충호인 것이다.
원래 엘리트 레슬링 선수였지만 레슬링을 MMA의 케이지 위에서 써보고 싶어서 전향한 이충호였다.
그는 최근 타격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레슬링 커리어는 충분하니 상대적으로 부족한 타격을 많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훈 관장은 한쪽에서 정리체조를 하고 있는 이충호에게 말했다.
“충호야. 다음 상대는 타격으로 한 번 잡아봐라.”
“타격으로요? 괜찮을까요?”
이제훈 관장의 말에 이충호는 조금 설레는 얼굴을 하면서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번 시합에서는 가능하면 타격은 하지 말고 탐색하다가 레슬링 테크닉으로 뭉케 버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자신의 타격이 몸에 익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여러 가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이충호로서는 아쉬운 지시였다.
그런데 이번 시합에는 이제훈 관장이 타격을 해도 좋다고 하는 것이다.
“저번 시합 상대는 입식시합 경력이 있는 타격 전문가였지. 그런 놈하고 갑자기 타격을 해서는 리듬만 망가져.”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훈 관장의 지시대로 충실하게 레슬링 테크닉으로 압살했던 이충호였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틀리다. 다음 시합 상대는 고등학생이라고 하더라.”
“고등학생요?”
“그래. 거기다 아직 운동 경력도 반년 정도 뿐이지. 그렇다면 시험 삼아서 타격전을 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예. 알겠습니다.”
이충호는 기쁘게 대답했다.
그런 제자를 보면서 이제훈 관장은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네.’
이제훈 관장이 이충호를 가다듬어서 만들고 싶은 형태는 펀치를 깊숙하게 휘두르면서 주저 없이 전진하는 스타일이었다.
위협적인 펀치를 휘두르며 맞으면 좋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접근해서 완전 접근 거리로 들어가면 그때는 레슬링 테크닉으로 적을 압도.
소위 말하는 복슬러(복서+레슬러) 스타일의 선수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충호가 엘리트 레슬러라고 해도, 그리고 레슬링이 아무리 MMA의 룰에 적응하기 쉬운 격투기라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타격은 필수인 것이다.
이제훈 관장이 이충호에게 장착한 타격은 날카로운 잽과 스트레이트 계열의 펀치가 아니었다.
뭐, 그것도 연습은 시키고 있지만 진짜 주력 무기로 장착한 것은 훅과 어퍼컷, 그리고 오버핸드 스트레이트였다.
모두 비슷하게 위어지면서 들어가는 펀치인데, 레슬러의 신체 능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타격이 아니라 묵직하고 폭발적인 타격을 장착하려는 것이다.
‘아직 스타일이 장착 되려면 좀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어차피 실전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제 반년 정도 운동한 고등학생이면 연습 상대로를 딱이지.’
훌륭한 소재와 그 소재를 잘 이해하고 살려가려고 하고 있는 지도자.
실로 좋은 콤비였다.
큰 사고 없이 성실하게 훈련만 한다면 이충호는 틀림없이 강해질 것이다.
다만, 이번 시합의 상대를 그저 운동신경만 좀 좋은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콤비는 꽤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 작품 후기 ============================
가끔은 소설속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타고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체육관에 새로온 사람이 있었는데 처음 온 사람답지 않게 엄청 잘 했습니다.
키락이 제대로 걸린것도 아닌데 순전히 힘으로 꺾어서 제 팔꿈치가 살짝 나갔네요.
완전 부러진건 아니고 약간 아픈 정도인데...
뭐, 일단 며칠 쉬다가 다시 체육관에 가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