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컴뱃삼보라고 하면 모든 격투기 팬들은 한 남자의 이름을 떠 올린다.
예멜리야넨코 효도르.
굳이 격투기 팬이 아니라고 해도 이름 정도는 모두 들어봤을 남자다.
한때 최강이라는 이름을 굳건하게 하며 60억분의 1이라고 불리던 명실상부한 전설의 파이터.
원래 효도르가 MMA에 끼어들었을 때 전체적인 전황은 스페셜리스트들의 싸움이었다.
타격가인 복서나 킥복서, 그라운더인 레슬러와 주짓떼로, 유도가 등등.
그런 한 분야에서 1류의 능력을 지니고 있던 자들이 무규칙 파이트에 가까운 MMA에서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합의 페이스를 먼저 잡는 사람이 이기는게 보통이었다.
타격가가 먼저 꽂아 넣느냐?
혹은 그라운더가 먼저 넘기느냐?
이 두 가지가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여기에 효도르는 컴뱃 삼보라는 다소 생소한 격투기를 장착하고 MMA에 들어왔다.
삼보는 스포츠 삼보와 컴뱃 삼보로 나뉘는데 컴뱃 삼보의 경우 타격과 초킹을 허용한다.
즉, 컴뱃 삼보는 타격과 그라운드를 두 가지 다 수련하는 올라운더였다는 것이다.
효도르는 그런 자신의 만능적인 장점을 살려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했다.
타격가들에게는 그라운드 기술을 살려서, 그라운더들에게는 타격을 살려서···.
물론 이런 만능성 이외에도 효도르의 부드러운 유연성과 섬광 같은 핸드 스피드 등등.
하지만, 초창기 효도르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그라운드와 타격을 모두 높은 수준으로 구사한다는 만능성이었다.
그리고, 효도르에게 그 만능성을 부여한 격투기.
그게 바로 컴뱃 삼보인 것이다.
땡!!
“파이트!!”
은지와 미지수는 서로 거리를 두고 일단 거리를 탐색하고 있었다.
은지는 흘깃 케이지 밖에 있는 다음 상대인 이성지를 보더니 다시 눈 앞에 있는 미지수에게 집중했다.
‘실질적으로 B조 상대 중에서 가장 강한게 이 사람이지? 이번 산만 넘으면 다음은 좀 쉬워.’
다음 상대인 이성지는 나영아와 마찬가지로 골수 복싱 베이스의 파이터였다.
사실 제대로 된 MMA 수련을 하지도 않은 복싱은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이 전의 나영아와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까다로운 것은 이번에 나온 미지수였다.
김하이도 그랬지만, 테스트 상대가 남자 선수들이다 보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었던 경우인 것이다.
기술을 발휘하기에는 너무나 절망적인 완력의 차이가 나다보니 결국 어쩔 수 없이 제 실력의 반의 반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남자 프로 선수를 상대로 탭을 받아낸 은지와 유도여제 민지선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쨌든, MMA 스타일과 컴뱃 삼보 스타일.
타입은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만능형의 파이터들끼리 시합이 붙은 것이다.
“훗!!”
먼저 첫 수를 날린 것은 미지수였다. 그녀는 기습적으로 잽을 날리고 바로 다음 동작으로 밑으로 내려가서 발목 태클을 걸었다.
은지는 발목이 잡히기 전에 뒤로 몸을 돌리면서 다리를 뽑아 뿌리쳤다.
“······쯧.”
미지수는 발목 태클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다지 깊게 추격하지 않고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전진 스텝을 밟으면서 은지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흡!!!”
퍼퍽! 촤아악!!
원투에 이어서 태클 시도.
은지는 가볍게 상대의 겨드랑이를 파서 몸을 밀어내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과연···. 대강 알겠어.’
은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도 컴뱃 삼보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효도르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효도르를 뭔가의 표준으로 삼기에는 그는 너무나 특별한 파이터였다.
그래서 미지수가 과연 어떤 타입의 파이터인지 알기 위해서 약간의 탐색을 해 봤다.
그리고 두 번의 공방 후에 은지는 대강 적의 타입을 알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그라운더라고 봐야 하나?’
타격을 하기는 하지만 타격에 무게가 실려있지 않았다.
오로지 그라운드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타격을 사용하고 있었다.
타격에는 무게가 실려있지 않았고 대신 은지가 조금만 틈을 보이면 바로 그라운드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초반에 보였던 발목 태클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아마도, 시합을 그라운드에서 풀어가고 싶은 모양인데. 타격은 패턴이 생각보다 단조로워. 다채로운 콤비네이션이 없어.’
은지의 정찰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사실 컴뱃 삼보의 시합에서 타격을 허용하기는 하지만, 타격에 포인트를 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때린다고 해도 판정에 영향은 없다. 오로지 다운을 뺏어야 점수로 인정이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컴뱃 삼보 파이터에게 타격이란 그라운드로 적을 데리고 가기 위한 일종의 밑밥에 가까웠다.
사실 효도르의 경우 어마어마하게 빠르고 절도있는 펀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때 크로캅의 킥과 효도르의 펀치가 가장 완벽한 기술이라고 평가 도리 때고 있었다.
하지만 효도르의 그 펀치는 컴뱃 삼보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효도르라는 개인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모든 컴뱃 삼보 파이터들이 그렇게 날카로운 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좋아···. 그렇다면.’
은지의 장점은 격투기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냉철한 판단력이었다.
정찰을 해서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으면 이제 은지가 여기에 맞춰서 뭔가를 할 차례였다.
‘좋은 기회긴 한데···. 그걸 시험해 볼까?’
은지는 슬쩍 가드를 내렸다. 하지만 이내 쓰게 웃으며 다시 가드를 올리고 표준 자세로 바꿨다.
‘시험 운행이라면 다음에 해도 되니까···. 지금은 그냥 평범하게 해서 이기자.’
은지의 그런 변화에 상대방인 미지수는 의아했다.
‘뭔가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읏!!?’
미지수가 그렇게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은지의 날카로운 잽이 뻗어 나왔다.
퍽!!
“음···.”
체중이 거의 실리지 않은 미지수의 잽과 달리 은지의 잽은 제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은지는 다시 잽을 뻗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퍼퍽!!
원투 콤비네이션이 아니라 잽 이연타가 깔끔하게 들어갔다.
누가 보면 복서로 착각할 정도로 깔금한 잽이었다.
“칫!!”
훙!!
미지수는 갚아주기 위해서 다시 펀치를 뻗었지만 은지는 이미 뒤로 백 스텝을 밟아서 물러난 후였고 미지수의 펀치는 허공만 갈랐다.
그리고 다시 미지수의 펀치가 거둬지는 타이밍에 은지가 사뿐한 스텝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다시 한 번 날카롭게 뻗어간 잽···.
퍽!!
“윽!!”
잽은 대미지가 별로 없다.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은지가 지금 치고 있는 잽은 스텝과 연동 시켜서 제대로 체중을 실고 있었다.
타점도 정확하게 터지고 있었고 타이밍도 맞았다.
은지의 잽은 착실하게 대미지를 추가하고 있었다.
연달아서 잽으로 타격을 먹은 미지수는 조바심을 냈다.
리드블로의 공방에서 상대의 타이밍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분하긴 하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더 능숙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리드 블로의 공방은 버리자.’
미지수는 집중력을 날카롭게 갈고 닦았다. 은지가 잽을 찔러서 들어오는 타이밍에 태클을 넣어서 테이크다운 시킬 생각인 것이다.
스트레이트나 혹이 아닌 잽에 카운터 태클을 넣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훅이나 스트레이트 같은 파괴력 있는 펀치와 달리 잽은 날카롭고 빨랐기 때문에 펀치의 호흡이 짧았기 때문이다.
그 WFC의 레벨에서도 잽 간격에 카운터 태클을 성공 시킬 수 있는 확률은 다섯 번에 한 번 정도이다.
유일한 예외를 말하자면 WFC의 전설의 웰터급 챔리언 조르쥬 생피에르.
그 전설의 챔피언 만큼은 상대의 잽 간격에 태클을 높은 확률로 성공 시켰다.
그런 그의 시합을 보면, 상대의 잽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태클이 들어가는게 아니라 상대가 잽을 뻗긷 전에 이미 태클을 시작한 상태인 경우가 종종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집중력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미지수가 시도하려는 카운터 태클은 그런 고난이도의 기술인 것이다.
퍽!! 퍽퍽!!
은지는 서서히 템포를 올려가며 잽을 연속으로 찔러 넣었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했다.
작은 오픈 핑거 글러브를 끼고 날카로운 잽을 반복하면서 상대의 안면을 정확하게 두드린다.
날카로운 스텝인을 살려서 치는 잽은 미지수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들어 갔다.
‘아직····. 아직··.’
미지수는 몇 번이나 태클을 시도 하려고 했지만 무분별하게 시도했다가는 자신의 목적이 탄로 날 것 같아서 참았다.
참고 참으면서 은지의 타이밍과 호흡을 읽으려고 했다. 거의 1분 정도를 은지의 치고 빠지는 잽에 일방적으로 난타 당하던 미지수는 기어코 뒤로 크게 밀렸다.
퍽!!
“으읏····.”
잽의 대미지가 이제 중첩 되어서 더 이상은 버티는 것도 버거웠다.
안면은 쓰라리고 머리는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그때! 그런 위기 상황에서 미지수의 감각 만큼은 너무나 뚜렷하게 날카로워 졌다.
‘지금!!!’
은지가 비틀 거리는 자신에게 다시 잽을 찔러 넣기 위해서 다가온 순간!!!
미지수는 그림같이 머리를 숙이면서 잽의 아래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테이크다운을 성공 시키려는 찰나···.
뻐억!!!
미지수의 안면에 화끈한 충격이 가해졌다.
은지의 레프트 잽을 피하고 파고든 미지수의 태클이 성공하기 직전.
은지의 체중을 잔뜩 실은 라이트 어퍼컷이 미지수의 안면에 작렬한 것이다.
‘아····. 안··되나?’
미지수는 그대로 시야가 까맣게 물드는 것은 느끼고는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스톱!!!”
심판은 서둘러서 시합을 중지 시켰다.
은지의 삼연승인 것이다
“아!!! 이거···, 정말 대단합니다. 전 테이크다운이 분명 성공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예···.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지금 보면 이건 미지수 선수가 꾹 참으면서 타이밍을 재고 들어간 회심의 태클이었거든요. 그런데 은지 선수가 이걸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남겨둔 오른손의 어퍼컷으로 요격 했습니다.”
“이건 정말····. 아, 천재 맞네요. 박은지 선수.”
“예. 두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미지수 선수도 상당히 좋은 선수인데····. 은지 선수가 너무 대단하네요. 정말···. 아, 말이 안 나옵니다. 정말 그림 같은 어퍼컷이 들어갔네요. 이거 보십시오.”
해설자들은 슬로우 화면을 보면서 은지의 결정타를 다시 해석했다.
“여기 잽이 나오는 타이밍하고 미지수 선수가 태클을 넣는 타이밍이 거의 일치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은지 선수의 뒤발 무릎이 자연스럽게 숙여지면서 어퍼컷에 체중을 실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태클이 들어오는 순간 정확하게 작렬. 이건···. 아!! 거의 묘기인데요? 마치 예전 WFC에서 안더슨 실바가 프레스 그리핀을 잡았을 때처럼 치밀한 타격입니다. 대단하네요.”
은지의 한 방에 해설자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심지어 현대 MMA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중에 한 명인 전 WFC 미들급 챔피언 안더슨 실바에 비유하면서 은지으 어퍼컷을 크게 평가했다.
그만큼 은지의 어퍼컷이 대단했던 것이다.
타이밍이 조금만 느렸어도 오히려 한쪽 손이 묶인 상태로 최악의 테이크다운을 당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고난이도의 기술을 성공시킨 은지의 얼굴은 너무나 태연했다.
마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이 담담한 얼굴이었다.
“저 녀석···. 상상 이상의 괴물인지도···.”
같은 팀의 코치인 이민석 코치도 그제야 은지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 이상의 거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 명을 상대했지만···.
아직도 제 실력을 발휘한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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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의 실력은...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말했다 시피 이 소설의 거의 유일한 먼치킨이니까요.
어떤 분이 비유한 것 처럼 켄이치의 미우 정도로 보면 될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의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