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이민우의 화끈한 승리>
“수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진 촬영을 끝내고 찬형이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상태로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조금 해보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 라운드 걸들이 떨어져 나가자 살짝 아쉽기도 한 찬혀이었다.
“예··· 수고 하셨습니다. 누나들도요.”
“꺄!! 누나래?”
“예. 귀엽다···. 착하기도 하지.”
찬형이에게 누나 소리를 들은 라운드걸들은 웃으면서 찬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찬형이의 키가 크다 보니까 까치발을 들고 손을 높이 들어야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쑥맥 같은 찬형이의 순진한 태도가 라운드 걸들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그녀들은 찬형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꼬집으면서 남동생 대하듯이 귀여워 했다.
그리고 찬형이는 찬형이대로 아름답고 섹시한 누나들이 귀엽게 봐주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찬형이가 이 순간 깜빡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찬형아. 수.고.했.어.”
“!!!!!!!!!”
뒤에서 들려온 은지의 목소리에 찬형이는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흠칫,’ 이라는 리액션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찬형이가 뒤를 돌아보니 은지는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웃음의 의미가 엄청나게 무서웠다.
‘어째서 시합이 끝났는데 이런 공포를··. 아니 그보다 은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니 아무 말도 안 하는게 더 무서워.’
찬형이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은지의 시선이 따갑다 못해 아팠다.
얼마나 아픈가 하면 좀 전에 맞은 김준호의 펀치보다 더 아픈 것 같았다.
“어··? 저기 은지야?”
“왜?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아니면 구차하게 변. 명. 이라도?”
“어···. 그게·····?”
“그게 뭐?”
“···그러니까·····.”
절체절명의 위기.
찬형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좋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때···.
“뭐 해? 안 가? 빨리?”
그런 찬형이를 구해 준 것은 부르노였다.
찬형이로서는 중간에 끼어든 부르노의 목소리가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아!! 가야죠. 그럼 빨리 가죠.”
찬형이는 살았다는 듯이 부르노를 따라 나갔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났다.
‘은지가 화 났나? 왜 화 났지? 내가 라운드걸 누나들하고 사진 찍어서? 아니 하지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아 모르겠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하지만 시합장을 나가면서도 걱정이 한 가득인 찬형이었다.
그리고 은지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 나갔다.
그리고 나가는 은지에게 부르노가 슬쩍 말했다.
“은지야.”
“왜요? 부르노 삼촌.”
나 지금 기분 나쁜데 왜 불러요? 라는 의미가 팍팍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지였다.
그런 은지에게 부르노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글쎄요··. 일단 정신교육을 다시 시켜야죠. 시합에서 이겼다고 라운드걸 언니들하고 시시덕 시시덕··. 정말이지 파이터로서의 멘탈이 아직···.”
“아니 말고, 그거.”
“····그거 뭐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은지에게 부르노가 핵심을 찔러서 말했다.
“더 찐한 것.”
“··········!!?”
그제야 생각난 것일까?
은지의 얼굴이 사과처럼 확 붉어졌다.
“그··. 그··· 그건······.”
사람의 얼굴이 폭탄처럼 터질 수 있다면 지금 은지의 얼굴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얼굴이 빠개진 은지였다.
‘···진짜 어떻게 하지?’
피차간에 이리저리 고민이 많은 은지와 찬형이었다.
찬형이의 시합 후.
몇 번의 시합이 더 있었지만··, 찬형이와 김준호의 시합만큼 확 달아오른 시합은 없었다.
그리고 언더리그의 시합이 모두 끝나고···.
이제 진짜 메인 카드들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는 모든 시합들이 전부 생중계되는 것들이었다.
언더카드의 시합은 다음날 녹화중계 되기는 하지만 사실 시청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생중계되는 장면이야 말로 진짜 국내 격투팬들이 주목하는 시합들이 것이다.
그리고 그 스타트를 끊는 것이, 바로 투심관의 이민우였다.
“민우형, 화끈하게 끝내요.”
“걱정하지 마라. 네가 이겼는데 나만 질 수야 없지.”
짝!!
어느새 치료를 마친 찬형이와 이민우가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이민우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후우우우·····.”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야.’
이민우로서도 이 시합은 메인 카드로서 첫 번째 시합이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은 이민우는 크게 외쳤다.
“가자!!!!”
그리고 이민우를 따라서 부르노, 은지, 그리고 이전에 시합을 마친 찬형이까지 따라 나왔다.
원래 시합이 끝난 직후의 선수가 세컨드로 따라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투심관읜 경우 워낙에 스텝이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민우를 선두로 해서 다시 한 번 투심관의 스텝들이 경기장으로 나갔다.
“와아!! 은지야!!”
“어!? 강찬형 또 나왔네?”
“한 시합 더해라!!!”
워낙 인상 깊은 시합을 했기 때문일까? 관중들 중에는 찬형이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민우가 케이지 위에 올라가자 이미 거기에는 상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카무라 요시키.
이번이 코리아FC의 데뷔전인 그는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의외라는 듯이 중얼 거렸다.
“환호성이 큰 걸? 전적은 별것 아니었는데 말이야?”
“여기는 어웨이야. 이 정도는 당연하지.”
나카무라 요시키와 그 세컨드는 담담하게 대화를 했다. 이민우의 지난 시합의 영상을 구해서 연구를 해본 결과···.
큰 이변이 없다면 자신들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평가를 했다.
그래서 어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퍼를 받은 것이다.
사실 나카무라 요시키에게는 지금부터의 한 시합 한 시합이 엄청나게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는 중소단체에 정착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WFC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카무라 요시키는 일본에서 이미 6승1패의 전적을 가지고 있는 기대주였다.
일본 내에서는 이미 라이트급의 강자들을 모두 꺾은 상태였다.
그런 그가 WFC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신을 어필해야 할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전적이다.
중위권 강자들과의 시합을 계속하면서 연승을 쌓아가면 WFC에서 콜이 올 것이다.
한 때는 일본의 격투기 시장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얘기일 뿐이다.
일본의 파이터들도 WFC 진출을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한국 파이터드과 다를바 없었다.
보통, 아시아권의 파이터들이 WFC에서 콜을 받기 위해서는 9연승, 혹은 10연승 정도가 필요하다.
나카무라 요시키의 경우 데뷔전에서 패배를 하기는 했지만 그 후에는 6연승을 하고 있었다.
즉, 단순하게 생각하면 앞으로 세 번 정도만 더 임팩트 있게 승리하면 WFC에서의 콜도 꿈은 아닌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시합의 상대인 이민우도 전적과 시합 영상을 보고 신중하게 시합 오퍼를 받은 것이다.
웰터급에서 이민우의 전적은 2승1패.
지극히 평범한 전적이었다.
나카무라 요시키와 그 팀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정작 이민우는 강적을 눈 앞에 두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민우는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내 심판은 두 선수를 앞으로 부르고 주의 사항을 설명했다.
“철장 잡지 말고, 로우블로 금지, 수직 엘보우 금지, 사점 포지션 킥 금지. ···· 터치 글러브!!!”
탁!!
양 선수가 서로 터치 글러브를 하고 양쪽으로 떨어졌다.
“민우 오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요.”
“·············.”
은지의 지시에 이민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긴장해서?
아니다. 입가가 슬쩍 올라가 있는 이민우는 지금 온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렇게 컨디션 좋은게 얼마만이지? 미치겠다!!’
전신의 근육이 어서 써 달라는 듯이 근질근질 거리고 있었다.
관절에는 마치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부드럽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웰터급에서 라이트급으로 전향한 이후 두 번째 시합.
이제 몸이 완전히 이 체급에 적응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민우의 피지컬을 생각하면 웰터급에 있는 것이 무리였다.
라이트급이야 말로 그가 있어야 할 진짜 체급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민우는 라이트급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이전 시합에서는 아직 몸이 라이트급에서의 몸이 아니었다면···.
이제는 완벽하게 라이트급에 몸을 적응 시킨 상태였다.
이 순간, 이민우는 더 할 나위 없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이트!!”
심판의 콜이 떨어지기 무섭게···.
타타탁!!!
이민우는 일직선으로 적에게 ‘달려’갔다. 스텝을 밟으면서 이동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육상 선수가 스타트를 끊듯이 달려간 것이다.
그리고 당황한 선수의 지척에 접근해서 바로 힘차게 점프했다.
그리고 상대의 당황한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다.
‘넉 놓으면 쓰나?’
퍼억!!!
힘껏 뻗은 이민우의 스트레이트가 나카무라 요시키의 안면에 작렬했다.
[“슈퍼맨 펀치!! 아, 시작하자마자 큰게 들어갔습니다.”]
[“나카무라 선수, 대미지 있습니다. 대미지 있어요. 휘청 거리고 있거든요!! 파운딩 이어집니다. 이어집니다!!!”]
“와아아아!!!!!”
“좋다!! 끝내 버려!!!”
“죽여!!! 거기서 끝내는 거야!!”
화끈한 전개에 해설자들과 관중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민우는 다리가 풀려서 반쯤 숙이고 있는 나카무라 요시키에게 파운딩을 꽂아 넣었다.
가드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
가드 너머로 뭉게 버리겠다는 각오의 파운딩이 무차별적으로 폭격 되었다.
퍽퍽퍽퍽퍽!!!!!!
“스톱!!”
결국 심판이 끼어들었다. 나카무라 요시키가 아무런 방어를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만 있는 것을 보고 결국 끼어든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이민우는 자신의 승리에 두 손을 크게 들고 포효했다.
시합이 시작되고 20초도 되지 않아서 순식간에 결정 난 승리였다.
[“대···. 아, 대단합니다. 나카무라 요시키 선수, 우리 코리아FC에서는 데뷔전이었지만, 일본 라이트급의 최고 기대주였거든요.”]
[“맞습니다. 딱 한 번의 패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 6연승, 지금 일본의 라이트급에서 WFC에 가장 가까운 선수라고 평가 받던 강자였습니다.”]
[“현지 일본에서는 기대가 무척 큰 파이터였죠?”]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자를···. 거의 구겨버리듯이 초살로 끝장냈거든요. 아, 지금 영상 나오는 군요. 시작하자마자 달려와서··. 여기 이 슈퍼맨 펀치가 정말 제대로 들어갔죠. 이때 이미 상대는 다리가 풀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운딩에··. 심판이 끼어들었고, 시합 종료··. 아, 이민우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예. 그럼 저는 멋진 시합을 보여준 이민우 선수에게 인터뷰 타임을 가져보겠습니다.”]
해설자들도 이민우의 승리에 크게 감탄했다.
사실 대부분의 격투기 전문가는 이민우보다 나카무라 요시키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국내 라이트급 무대에서 나카무라 요시키를 이기기 위해서는 코리아FC의 챔피언인 이민석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최측에서 봤을 때 이민우는 나카무라 요시키의 코리아FC 데뷔전을 위한 일종의 떡밥으로 던져준 선수였다.
그런데, 웰터급에서 라이트급으로 내려온 이민우가 마치 너와 나는 수준이 다르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면서 순식간에 끝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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