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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터-114화 (114/157)

114화

잔뜩 긴장했던 은지의 우려는 쓸데없는 것이었다. 찬형이의 엄마는 은지가 몹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어쩜···. 운동한다는 여자애가 이렇게 순하고 착할까?’

찬형이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갈 만도 했다.

집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남편과 아들 뿐이니···. 듬직하다면 듬직하지만 역시 마음 한구석으로는 귀여운 딸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은지는 딱이었다.

예쁘고, 귀엽고, 예의바르고···.

마사지 해 준다고 조물조물 주물러주는 손이 보통 야물딱진게 아니었다.

여자애치고는 힘이 있다보니 부드러운 손길 하나하나가 온 몸을 풀어주는 느낌에 그냥 녹아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찬형이의 어머니는 거기에 답례를 하고 싶었다.

“은지야. 밥 먹고 갈 거지?”

“예. 먹고 갈게요.”

은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조금만 도와주지 않을래? 아줌마가 딸하고 같이 부엌에서 뭐 만드는게 소원이었단다.”

“예. 저도 요리하는 것 좋아해요.”

찬형이의 엄마가 요리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이전에 생일 선물을 고르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지 역시 평소에 집에서 가사를 맡아서 하다 보니 보통의 여고생들 보다는 그럭저럭 요리를 하는 편이었다.

두 사람이 부엌에 들어가서 저녁을 만드는 동안. 찬형이는 어정쩡하게 거실에 혼자 있었다.

‘왜지? 왜 우리 집인데 내가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걸까?’

찬형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녀왔다.”

문이 열리고 찬형이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 아버지.”

“왔구나. 그리고·····.”

찬형이 아버지는 발밑에 있는 익숙하지 못한 신발을 흘깃 보더니 말했다.

“걔도 왔냐?”

“걔가 누군데요?”

딱!!

“앗··· 아파라···.”

“몰라서 묻냐? 그냥 순순히 대답이나 해.”

“예. ·····지금 부엌에서 엄마하고 같이 있어요.”

“흠·····.”

찬형이의 아버지는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부엌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때마침 부엌에서는 손 씻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치마를 매고 있는 은지가 손에 물기를 닦으면서 쪼르르 달려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은지라고 합니다.”

“그래···. 직접 보니까 좋구나.”

찬형이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에게는 보인적도 없는 환한 미소와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하나 밖에 없던 그에게도 어여쁜 딸내미 같은 은지의 존재는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것 같았다.

‘나 혹시 주워 왔던 걸까? 아니 그러기에는 아버지하고 너무 닮았는데····.’

이제는 반대로 찬형이가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식탁에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긴장이 풀린 은지는 자연스럽게 찬형이의 부모님에게 말을 걸면서 분위기를 풀어갔다.

은지를 이미 인터넷이나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고 있던 찬형이의 부모님은 은지의 실제 성격이 밟고 명량하다는 것에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은지야. 은지 너도 격투기 하는 거지?”

“예. 배운지 오래 됐어요.”

“그래. 많이 힘들지 않니?”

찬형이의 엄마는 막상 이렇게 가녀린 아이가 케이지에서 주먹질을 하면서 싸운다는 것이 의외였다.

사실 아들인 찬형이의 시합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으니 은지의 시합도 봤을 리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 잘만 싸우더구만····.”

찬형이의 아버지는 은지가 싸우는 것을 본적 있는지 오히려 두둔했지만 그래도 찬형이의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여자애가 그렇게 험한 운동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찬형이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은지는 쓰게 웃었다.

“전 괜찮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어차피 여성 격투기에 관해서 즉각적인 이해를 구하는 것은 무리다.

여성이 치고 받고 싸운다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은지는 굳이 설득하는 것 보다는 그냥 말을 돌렸다.

“그보다··. 찬형이가 다음 시합에서 큰 기회를 잡았으니 그게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은지의 말에 찬형이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듣긴 들었지만···. 무슨 시합을 준비하는 것 때문에 합숙까지 하는 건지····.”

“그런 프로그램이거든요.”

은지의 말에 찬형이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냥 군대 조금 미리 보내본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가서 징징거리지 말고 잘 해봐라.”

찬형이는 아버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아버지, 군대하고는 조금 달라요.”

“집 떠나서 먹고 자면서 빡세게 구른다며? 그럼 비슷한 거야.”

“·············.”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 찬형이었다.

“크흠···. 저기 아버님, 사실 찬형이가 이번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는 WFC에 입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은지는 격투기를 잘 모르는 찬형이의 부모님을 위해서 WFC가 무엇인지? 그리고 TUF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곡차곡 설명하고 나서야 찬형이의 부모님에게 이번에 도전하는 TUF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해 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아시아에서 강한 사람들은 다 나온다는 것 아니니? 찬형이 너 정말 괜찮겠니? 그냥 기권하지 않을래?”

설명을 다 들은 찬형이의 어머니는 살짝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찬형이의 아버지는 의견이 달랐다.

“거, 남자가 큰 물에서 놀아야지. 당신은 왜 사서 걱정이야. 걱정하지 말고 잘 해봐라. 이왕 하는 것 우승해서 WFC라는 곳에 진출까지 하면 좋겠네.”

타고난 상남자인 찬형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찬형이었지만 그 정도 나이면 자기 앞가림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찬형이의 아버지였다.

은지는 그런 찬형이의 아버지 의견에 동조하고 한편으로는 찬형이 어머니를 안심 시키면서 찬형이가 격투기를 계속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많은 말들을 했다.

사실 가족의 반대로 격투기를 접는 파이터들도 의외로 많다.

한 번 매력에 푹 빠지면 마약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게 격투기라고 한다.

원시적일 정도로 순수한 투쟁의 장에서 상대를 누르고 승리할 때의 그 짜릿함.

어떻게 보면 동물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그 매력은 세계 최고의 거부라고 해도 체감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투쟁의 장에 몸을 던져본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게 격투기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격투기의 격렬한 소모로 인해서 몸을 망치고, 그걸 염려해서 만류하는 가족들도 있다.

그리고 많은 선수들이 그런 가족의 염려와 만류를 걱정해서 모든걸 불태우지 못하고 이 바닥에서 먼저 발을 빼기도 한다.

사실, 은퇴의 시기는 모두 제각각이고 누가 언제까지 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제법 늦은 시간까지 찬형이의 집에 있었던 은지는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하다고 말하면서 나갔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자주자주 오렴.”

“큼···. 언제든지 편하게 와라.”

찬형이의 부모님은 은지가 무척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귀엽고 애교도 많고 요리도 잘하고···.

찬형이가 나이만 좀 많았다면 빨리 결혼 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전 은지 바래다주고 올게요.”

“그렇게 해라. 밤길에 여자 혼자 가게 하는 것 아니다.”

은지의 경우 보통 여자들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혼자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찬형이었다.

그렇게 은지를 바래다주면서 찬형이는 은지에게 말했다.

“오늘 고마워. 많이 귀찮게 했지?”

“아니야. 부모님 모두 좋은 분들이던 걸?”

“뭐···. 그냥 평범한 만큼 좋은 분들이야.”

찬형이는 쑥스럽게 말했지만 은지로서는 찬형이의 집 분위기가 부러울 정도였다.

은지의 집에서는 어려서부터 은지 혼자 있는 시기가 많았다.

아빠는 도장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고, 무엇보다 딸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이 홀아비에게는 많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박진호 관장이 은지에게 다가 갔다기 보다는 은지가 박진호 관장에게 다가갔다.

어려서부터 도장에 드나들면서 어느새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언제 부터인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성부 훈련을 자기가 도맡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투심관의 간판선수로서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제 커리어만 조금 더 쌓이면 은지가 WFC에 진출하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시 집안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오늘 은지는 찬형이의 어머니와 같이 요리를 하면서 실제로 엄마가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한 구석이 촉촉하게 젖어왔다.

자신이 격투기를 하는 것을 보고 걱정해 주는 것도 어쩐지 쑥스러우면서 기분이 좋았고 말이다.

“좋구나. 이런거····.”

“응? 뭐가?”

무의식중에 혼잣말이 흘러나온 은지의 말을 듣고 찬형이가 되물었다.

하지만 은지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찬형아. TUF 준비 잘 해야 되. 알았지?”

“걱정하지 마. 반드시 이길 테니까.”

찬형이가 그렇게 말을 하자 은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찬형이를 꼭 끌어안았다.

“············.”

찬형이는 갑작스런 은지의 포옹에 살짝 당황했다.

그라운드 연습을 하면서 클로즈 가드를 당하거나 백 포지션을 잡히는 경우와는 달랐다.

분명 밀착도는 그게 더 높을지 몰라도 그때는 이렇게 은지의 부드러운 느낌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립을 잡아서 서브미션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언제 그런 여유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자기 품안에 쏙 들어오는 은지의 가냘프고 부드러운 느낌이 따듯한 체온과 함께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힘 내. 찬형아.”

“··········알았어. 걱정하지 마.”

은지는 그렇게 찬형이를 격려한 다음에 싱긋 웃고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힘···. 내야지.”

TUF 아시아라는 최고의 도전을 눈앞에 두고 은지의 격려는 찬형이에게 더 할 나위 없는 힘을 주었다.

TUF 아시아가 드디어 시작 되었다.

이전에 벌어졌던 TUF 차이나의 처참한 실패를 지우기 위해서 WFC에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

일단 추천 선수들은 마카오에 WFC에서 트레이닝 센터에 모였다.

“여기인가?”

찬형이는 트리이닝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어인이 벙벙했다.

TV로 볼 때도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직접 찾아와서 보니 훨씬 더 대단한 느낌이었다.

투심관이 열 개는 들어갈 것 같은 넓은 공간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최신식 기구들이 즐비했다.

‘으와···. 저건 아이스 캡슐이잖아? 저거 하나만 해도 도대체 얼마냐?’

훈련 직후 선수의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급냉 세켜주는 아이스 캐슐. 그것도 최신식이 사람 수대로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일반 관원들이 여기서 운동을 하려면 못해도 한 달에 일이백은 주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최신식 설비들이 오로지 16인 만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찬형이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모두 주변 설비를 돌아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수들이 실컷 감탄하고 난 후에 세 명의 남자가 트레이닝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김준성과 데이비스 쿠퍼.

그리고 그 둘을 거느리듯이 다가오는 남자는 WFC의 수장인 데이나 화이트였다.

거의 망해가던 WFC를 인수해서 세계 최고의 격투기 단체로 키워낸 걸물로 실질적으로 격투계의 최고 대부라고 해도 좋은 인물이었다.

“오케이!! 가이즈, 컴 히얼!!”

데이나 화이트는 들어오자마자 선수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한쪽에 대고 뭐라뭐라 말하더니 또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척 봐도 격투기 선수 같지는 않은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찬형 선수. 전 당신 직속 통역관입니다.”

“통역관요?”

“예.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당신 이외의 선수들에게도 모두 통역관이 붙을 겁니다.”

“아아····.”

============================ 작품 후기 ============================

실제로 UFC에서도 TUF 코리아는 몰라도 TUF 한일전은 생각해 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면 시청률은 대박일것 같은데 말이죠.

여러분들의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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