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깔끔한 파열음이 났다. 테이블 위 목걸이는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제이슨이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치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에, 에슬린 로즈벨!”
에슬린은 목걸이의 잔해를 손으로 쓸었다.
“내, 내가 어떻게 구한 다이아몬드인데!”
“다이아몬드?”
비웃음이 튀어나왔다.
“고작 돌멩이에 부서지는 다이아몬드라니. 생전 처음 듣는데?”
어디선가 풉, 하고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이슨은 발작적으로 그 웃음의 행방을 찾기 위해 몸을 두리번거렸다.
“이익! 에슬리인!”
“제이슨, 아쉽지만 약속했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네 고백은 들어주기 어렵겠어.”
탕! 제이슨이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
“젠장! 용서 못 해! 감히 날 이렇게 창피를 줘?”
회색 눈동자가 솟구치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에슬린이 그 광기를 마주하고 살짝 뒷걸음질 쳤다.
작은 어깨를 움츠리자 제이슨이 테이블을 엎어 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제이슨, 그만해.”
그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어디선가 하인 하나가 다가와 막아섰다. 지켜보던 사용인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에슬린, 괜찮아? 그냥 가자.”
세피아가 에슬린의 어깨를 감싸 쥐고 식당 바깥으로 이끌었다. 앤과 레나가 그녀를 보호하듯 에워쌌다.
“네가 이대로 이 저택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야! 거기 서!”
제이슨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제이슨.”
그를 막아서는 손길이 늘어났다.
에슬린은 하녀들의 보호를 받으며 테이블을 벗어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주었다.
“네가 이러고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냐고오옥!”
우당탕탕! 등 뒤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 미친놈아! 그만 좀 하라고!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는 것도 같았다.
* * *
“제이슨 그놈, 단단히 눈이 돌았어.”
세피아가 분노에 차 중얼거렸다.
식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에슬린은 걸음을 멈췄다.
사용인들이 많이 쓰는 통로 한가운데였다. 지나다니던 사용인들이 에슬린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괜찮아?”
레나가 물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에슬린은 짧게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에슬린!”
세 사람이 한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피아는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에슬린의 안색을 살폈다. 하얗게 질린 낯이 몹시 애처로워 보였다.
에슬린이 자기 팔을 감싸 쥐며 가느다랗게 중얼거렸다.
“괜찮, 괜찮아. 사실…… 꾹 참고 제이슨에게 맞서긴 했는데, 막상 저렇게 소리치는 걸 보니까 조금 무서워서.”
“에슬린…….”
레나와 앤이 안쓰럽다는 듯 에슬린을 보았다. 세피아가 그녀의 마른 등을 쓸어 주었다. 차가워진 체온이 안쓰러웠다.
“나에게 해코지할까?”
에슬린이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부수던 기세는 그때뿐이었던 건지, 그녀는 곧 떨어지려는 가련한 꽃 같았다.
그래서 세피아는 깜빡 잊고야 말았다.
잠깐 본 것만으로 어떻게 가짜 다이아몬드라는 걸 알아챈 거야?
그렇게 물으려 했던 것을.
“걱정하지 마. 무조건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세피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제이슨 저놈이 네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할게!”
“에슬린, 우리만 믿어.”
레나와 앤 또한 덧붙였다.
에슬린이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어딘지 모르게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마워, 얘들아. 난…….”
“에슬린, 네가 우릴 도와준 게 얼만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럼! 우린 네 친구잖아. 게다가 제이슨은 원래 좀 이상했고.”
“그래. 걘 신경 쓰지 마.”
세 사람은 합심하여 에슬린을 다독였다. 사용인들이 바쁘게 통로를 지나다니며 그 모습을 힐끔거렸다.
에슬린은 슬쩍 주변을 보았다.
“고마워…….”
친구들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악귀 같은 얼굴로 소리치던 제이슨의 얼굴이 떠올랐다.
‘멍청한 제이슨.’
에슬린은 속으로 조소했다.
제이슨 발론의 평판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식당에서 보인 저 태도라니.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볼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작은 불씨는 조금만 장작을 넣어 줘도 금방 몸집을 키울 테니.
공작저에는 아직 더 머물러야 했다. 가장 골치 아프던 공작은, 당분간이겠지만 에슬린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에슬린이 짧게 눈을 빛냈다. 신경에 거슬리던 거스러미를 이젠 잘라 낼 때였다.
* * *
“에슬린, 며칠 전 식당에서 험한 일이 있었다며?”
“아, 주방장님.”
에슬린은 주방장을 돌아보았다.
며칠 전부터 그녀는 주방 보조 하녀로 업무를 바꿔 일하고 있었다. 식재료 정리, 설거지나 청소, 식사 시중 등이 주된 일이었다.
텅! 커다란 식칼이 나무 도마에 내리꽂혔다. 주방장은 손으로 수북이 난 턱수염을 쓸었다. 주름진 눈가에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쯧쯧. 제이슨 그놈이 결국 사고 칠 줄 알았지.”
에슬린은 밀가루를 옮겨 담던 손을 멈추었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깐 채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그 이후론 억지로 찾아오지도 않고…….”
“뭐어? 그놈이 억지로 찾아오기도 했어?”
옆에서 채소를 다듬던 중년의 여인이 꽥 소리쳤다. 그녀의 목청은 이 저택 내에서도 알아주는 편이었다.
금세 주방 내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에슬린은 꼬물꼬물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 제 뒤를 밟곤 해서…….”
“세에상에. 몹쓸 놈이네, 제이슨 그놈!”
여인이 거칠게 소리치며 채소를 팍 패대기쳤다. 어린 하녀와 하인들이 속닥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빠르면 오늘, 늦으면 내일 오전쯤이려나?’
에슬린은 소문이 퍼져 나갈 시간을 대략 가늠해 보았다.
크흠! 주방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헛기침하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나마 주방으로 와서 다행이다. 정원하고는 거리가 있으니까. 여차하면 내가 혼쭐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 감사해요.”
커다란 덩치를 한 주방장이 진심으로 믿음직스러웠다.
에슬린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밀가루를 소분했다. 이 이상 더 말을 보태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는 언제나 씨앗만 던져 줄 뿐.
거기에 물을 주고 열매를 맺게 하는 건 주변인들의 역할이었다.
“에슬린은 그런 일을 겪고도 참 씩씩하고 대견하구나.”
자신은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으면 충분했기에.
“이런, 벌써 가주님의 식사 시간이잖아!”
주방장이 내부를 슥 훑으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그만 떠들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해?”
불호령이 떨어지자 빗자루 맞은 생쥐들처럼 모두 빠르게 흩어졌다.
“…….”
에슬린 또한 밀가루 묻은 손을 탁탁 털었다. 옷을 깔끔하게 정돈한 뒤, 트롤리를 밀어 왔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식사가 겹겹이 채워졌다.
오늘 공작의 식사 당번은 에슬린이었다.
공작은 그날 이후, 정말 에슬린에게서 모든 관심을 뚝 끊었다. 그가 먼저 찾지 않으니 머리카락 하나 보기가 어려웠다.
‘이게 정상이지.’
에슬린은 짧게 웃으며 트롤리를 밀었다.
“가주님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식당 앞에 서서 그렇게 고하자, 집사장이 눈썹을 들어 슥 그녀를 보았다.
“들어가 보거라.”
아주 넓고 커다란 직사각형의 식탁에 공작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 산더미 같은 서류는 이곳을 집무실로 착각하게 할 정도였다.
집사장이 그에게 가서 말했다.
“가주님,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별다른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서류를 들여다보느라 바쁜 듯했다. 사락, 사락.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만 실내를 메웠다.
집사장이 짧게 눈짓했다. 에슬린은 다른 하녀들과 함께 벨벳보를 깐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렸다.
“…….”
뚫어져라 서류를 보던 공작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묵묵히 음식을 정리하던 에슬린의 옆 시야에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집사장, 요새 저택에 별일은 없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류를 쥔 그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걱정하실 만한 일은 없습니다.”
집사장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에슬린은 마지막 접시를 놓고 빠르게 몸을 물렸다. 칼처럼 박혀 있던 시선이 그제야 떨어져 나갔다.
늘 그렇듯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 * *
오후엔 주방장의 심부름으로 식품 창고에 다녀왔다.
‘왜 쟤가 지금 여기 있지?’
돌아오는 길, 에슬린은 달갑지 않은 인물의 등장에 눈살을 찌푸렸다.
“야!”
정원을 손질하다 부랴부랴 달려온 건지, 제이슨은 한 손에 수목 손질용 가위를 들고 있었다.
‘오늘 서쪽 정원 담당은 휴고였을 텐데.’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찼다. 모처럼 돌아가는 길을 택했건만, 아무 쓸모 없는 짓이었다.
“아직도 나랑 할 얘기가 남았어?”
그녀가 삐딱하게 물었다.
자세히 보니 제이슨의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허옇게 뜬 입술이며, 지나치게 탁한 눈빛이며…….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할 말이 많은데. 널 보려고 구역까지 바꿨다고.”
“진짜 정성이네.”
“날 그렇게 개쪽을 주다니…….”
“또 창피한 꼴 당하기 싫으면 그만 덤벼. 넌 내 상대가 안 돼.”
에슬린은 팔짱을 꼈다. 제이슨이 뿌득 이를 갈며 한 발자국 다가섰다.
“너 때문에 요즘 내 평판이 어떤 줄이나 알아?”
그가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저택 놈들이 나만 보면 쑥덕거리는데, 아주 주제도 모르는 파렴치한이 됐다고!”
그랬겠지. 내가 그렇게 되도록 했으니까.
에슬린은 그 말을 삼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기소개 잘 들었어.”
“에슬린!”
“그만 불러. 누가 본다면 또 네가 날 괴롭히는 줄 알 것 같은데, 괜찮겠어?”
짐짓 안타까운 듯 고개를 기울이며 말하자, 제이슨이 또다시 콧김을 씩씩 뿜어냈다.
“아아악! 진짜!”
그가 분한 듯 발을 구르며 에슬린을 노려보았다.
‘말 상대도 제대로 안 되는 게.’
에슬린은 제이슨보다 말싸움에 능숙한 자를 최소 스무 명쯤은 더 알았다.
모략과 음모가 일상이었던 그녀에게, 솔직히 제이슨의 반응은 귀여운 편이었다.
“더 할 말 없으면 갈게.”
짧은 기분 전환을 마친 에슬린이 가볍게 웃으며 제이슨을 지나쳤다.
“젠장! 거기 못 서?”
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눈이 확 뒤집힌 건 그 순간이었다.
에슬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짧은 신음이 흘렀다. 시선이 느릿하게 아래를 향했다.
“어? 아, 아니. 나는 그냥…….”
뒤에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널 잡으려고 한 건데…….”
왜 저 가위가 저기 있지? 그것도 피가 묻은 채…….
깨닫자 오른쪽 다리에 고통이 밀려든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니까 황녀였던 에슬린은 잘 알지 못했다.
그녀가 지금껏 상대했던 인물들과 제이슨의 차이를.
에슬린은 화가 난다고 들고 있던 가위를 냅다 집어 던지는 행동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자신이 범인이라는 걸 뻔히 드러내는 짓을 대체 왜 한단 말인가?
그녀가 아는 살인의 기술이란 약이 든 술잔을 바꿔치기한다거나, 독을 바른 바늘을 목뒤에 꽂거나, 뒤에서 모함해 교수대에 올리는…….
“어머! 에슬린!”
“제이슨 발론! 대체 에슬린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디선가 하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 일을 도와준 적 있던 얼굴이었다.
에슬린은 숨을 몰아쉬었다. 바닥으로 몸이 무너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긴 치마가 찢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가로로 길게 벌어진 상처가 보였다.
붉은 피가 하얀 종아리 위를 흘러 바닥을 적셨다. 에슬린은 순간 자신이 입으로 피를 토하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야 했다.
입에서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에슬린!”
독배를 마신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근데 왜 그때처럼 이렇게 어지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