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습니다
압구정역 앞에 발생한 초급 던전 게이트.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안쪽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작업
에 한창이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동굴형 던전의 자연 붕괴라는 흔치 않은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제보에 따르면 이 안에는 아직 생존자가 있다.
첫 던전 붕괴가 발생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 여진이 남아있고, 추가붕괴의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이트가 닫히기까지는 이제 겨우 3일 정도 남은 상황.
일렁이는 게이트 앞에, 한 여자가 손바닥을 대고 눈을 감고 있다.
모두가 숨죽이고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다.
마침내 여자가 눈을 떴다.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네요.”
“진동이 멈춘 게 확실합니까?”
던전 구조 전담반의 헌터가 반색하며 되묻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세한 진동조차 감지되지 않아요. 완전히 안정됐어요. 이제 들어가도
됩니다.”
S급 헌터다운 자신 있는 미소.
송혜연의 말에 던전 구조 전담반의 구조 헌터들이 먼저 게이트로 입장했다.
사실 던전 안의 생존자가 아직까지 온전히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수 차례 추가적인 진동이 있었고, 고립된 상태에서 한 달이 지난 상황.
아공간 창고가 없다면 한 달간 버틸 식량과 물을 소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반 헌터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생존자는 초급 던전에서 사냥을 하던 F급
헌터.
아무리 헌터라지만 F급의 신체능력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
‘···죽어있을 확률이 높겠지.’
안정기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몬스터가 없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세상
이다.
사냥하던 헌터가 사망하는 일이야 종종 일어닌다.
그럼에도 구조 헌터 김일영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만에 하나 숨이 붙어있을 수도 있어. 그럼, 반드시 구해낼 거다.’
각성하고도 돈벌이에 가장 좋은 사냥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그다운 생각이었다.
“여기인가?”
던전 내부로 깊숙이 들어간 구조 헌터 3명이 신고자들이 제보했던 장소에 도
착했다.
무너진 돌무더기로 꽉 막혀있다는 말과 달리 위쪽에 어느 정도 틈이 보인다.
아마도 여러 번의 진동 이후로 생긴 틈일 것이다.
한 사람 정도는 기어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김일영이 나서서 돌무더기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틈 사이로 손을 넣어 아래쪽에 불빛을 비춰보았다.
우두커니 선 인영이 하나 보인다.
놀란 김일영이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여기,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어요!”
다른 대원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김일영은 아예 반대편으로 몸을 넘겼다.
오늘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뭔가 좀 이상하다.
구조대가 왔는데 조난자는 조금도 기뻐하지도 않고, 이상하게 힘들어 보이지
도 않는다.
“저, 최현호씨?”
구조 헌터 김일영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몸··· 괜찮습니다. 그보다, 지금이 몇 년도죠?”
이상한 질문이었다.
역시 정상처럼 보여도 상태가 안 좋은 게 틀림없다.
“20XX년입니다.”
김일영의 대답에 무표정했던 남자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설마··· 말도 안 돼···. 그럼 날짜는? 오늘이 며칠이죠?”
혼자 오랜 시간 버텨야 했으니 시간 감각이 흐려졌을 것이다.
김일영은 이번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5월 7일입니다! 우선 이리로 오시죠!”
김일영이 멍하니 선 남자의 팔을 들어 올려 부축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사실 부축 따윈 필요 없는, 누구보다 건강한 상태였으나 잠자코 그에
게 기대어 따라갔다.
“한 달간 버티느라 기력이 많이 약해지셨을 겁니다. 병원으로 바로 가셔서 검
사를 받고···.”
“······.”
구조 헌터의 말에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한 달이 아니었다.
남자는 머나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