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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하려고 (4/125)

      식당하려고

“뭐냐니?”

생뚱맞은 소리에 되물었더니 오히려 최지수가 황당해한다.

“칼질을 어떻게 그렇게 해? 무슨··· 묘기 부리는 것 같아.”

타타타타탓!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엄청난 기세로 두부와 양파를 썰고 있다는 것을.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확실히 평범한 사람의 칼질은 아니다.

안력을 돋워야만 움직임이 보일 정도의 속도.

이 정도면 최지수의 눈에는 잔상만 보이는 상태일 것이다.

‘이런.’

은근슬쩍 속도를 살짝 줄이며 대답했다.

“나 칼질 원래 잘했거든.”

“그건 맞는데, 이 정도로 빠른 건 말도 안 되잖아! 무슨 서커스 보는 줄 알았

어. 혹시 혼자 연습한 거야? 아니, 이게 연습한다고 해서 가능한 건가?”

굳이 따지자면 연습이 아니라, 실전을 통해 익힌 거라 해야겠지.

나는 그곳에서 수십 년 내내 검을 다뤘고, 마침내 평범한 인간은 닿을 수 없

는 경지에 도달했다.

나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장검이건 단검이건 식칼이건 모두 내 몸의 일부처럼

다룰 수 있게 된다.

검아일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나 이래 봬도 헌터다. 암만 F급이라도 일반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그게 아니라 각성한 후부터 여태까지 내가 계속 봐왔는데···.”

“쓰읍. 네가 모르는 헌터들의 세계가 있어.”

“그게 무슨···.”

그럴싸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대충 정색하며 우기기로 했다.

미간에 주름을 잡자 지수가 말을 멈췄다.

“알았어. 그렇다고 치자.”

뭐,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살아 돌아온 내 기분을 굳이 상하지 않게 하

려는 걸 거다.

이 눈치 빠른 녀석이 더 이상한 점을 찾아내기 전에 우선 거리를 좀 둬야겠다.

“최지수. 부엌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방에 들어가 있어. 다 되면 부를 테니까.

아, 밥 먼저 올려놓고.”

“다 했어. 쌀 씻고 올려놨다고.”

“그럼 저리 가 있어.”

“아니··· 걱정되니까 그러지.”

최지수는 입을 비죽거리면서 부엌에서 나갔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가진 않고 거실에 죽치고 앉아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여전히 내가 괜찮은 게 맞는지 긴가민가하는 것 같다.

나는 뒤통수에 느껴지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그럴 만하지.’

던전에 한 달간 조난했다가 돌아온 오빠가, 구조 직후 집으로 돌아와 멀쩡하

게 요리나 하고 있으니.

입장 바꿔서, 지수가 그랬으면 나는 그냥 들쳐업고 병원에 입원시켰을 거다.

그나마 나이 차이가 나는 편이라 내 말이 조금이라도 먹힌 거지.

‘그 얘긴 절대 하지 말아야지.’

이세계에서 수십 년 혼자 싸우다 왔다는 얘기 말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도 힘들 거고, 오히려 던전에 혼자 갇혀있다가 정신에 이

상이 생겼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능력을 보여주며 설득하면 믿을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괴로워하고 슬퍼할 테니.

이미 다 지나간 일로 동생에게까지 상처를 줄 필요는 없다.

그러니 이건 나 혼자만이 안고 갈 기억이다.

거짓말을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라 말을 꾸며내기보다 아예 그런 일이 없는

척하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미심쩍어하는 지수의 시선을 모른 척하며 나는 요리를 계속 했다.

* * *

취이이이익-!

밥솥이 시원하게 김을 내뿜었다.

“다 됐다. 밥 먹자.”

드디어 두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았다.

지수에게는 한 달만, 나에게는 50년 만의 따뜻한 식사.

메뉴는 아주 단출했다.

갓 지은 쌀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김치.

남들 눈에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진수성찬도 이런 진수성찬이 없다.

“나 없을 때 맨날 라면만 끓여 먹었지? 제대로 밥 챙겨 먹는 것도 오랜만이겠

네. 많이 먹어.”

“······.”

나를 보는 지수의 눈에 황당함이 가득 담겨있다.

최지수가 실소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한 달 동안 던전에 갇혀있던 사람이 할 말 맞아? 오빠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이렇게 멀쩡해? 던전 안에 먹고 마실 게 있었던 거야?”

참았던 질문을 쏟아내듯 퍼붓는다.

“딱 그날 뭔가 감이 안 좋아서 비상식량을 배낭에 빵빵하게 채워서 들어갔었

지. 아껴 먹었더니 딱 마지막 식량 먹는 날에 구조대가 오더라고. 던전 안쪽

에 고인 물이 있어서 그거 마셨고.”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아니, 진짜 딱 그날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

당연히 거짓말이지만 우기면 뭐 어쩌겠나.

거짓말이라는 증거가 없는데.

“···감이 안 좋았으면 사냥을 가지 말았어야지.”

지수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갑자기 분위기가 다운될 것 같아 빠르게 숟가락을 들고 말했다.

“자자, 그만하고 먹자. 궁금한 거 있으면 먹고 대답해줄게. 찌개 식겠다.”

드디어 첫술을 떴다.

밥과 된장찌개를 함께 입에 넣었다.

‘와···. 진짜 살 것 같다.’

입안에 퍼지는 구수한 한국의 맛.

이 평범한 맛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지수가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다니까, 진짜. 왜 내가 하는 거랑 맛이 다르지? 똑같이 만드는 것 같

은데.”

“이게 바로 손맛이라는 거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원래 내 기준에서는 특별히 대단한 맛이 아니었다.

있는 걸로 대충 만든 데다가, 심지어 50년 만에 처음 해보는 한식이었으니.

그럼에도 이 조촐한 식사가 나에게는 천국의 만찬처럼 느껴졌다.

돈도, 힘도, 권력도 아닌, 따뜻한 밥 한 끼와 평범한 일상.

이게 바로 죽음을 앞둔 순간 내가 가장 원했던 거였다.

밥그릇이 어느 정도 비워졌을 때, 최지수가 수저를 놓았다.

“잠깐만. 나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어쩐지 결의에 찬 눈빛이다.

“뭔데? 얘기해 봐.”

“이제 헌터 일 하지 마.”

말투가 제법 단호하다.

“오빠가 이 말 싫어하는 거 알고 있거든? 돌아온 첫날부터 싸우긴 싫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자꾸 멀쩡하다고 하는 거 보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사냥

가겠다고 할 것 같아서 지금 말하는 거야.”

“그래. 그만둘게.”

“아니, 이번에는 뭐라고 해도 안 물러날 거야. ··· 어?”

“그만둔다고.”

“내가 잘 못 들었나? 방금 그만둔다고 한 것 같은데?”

최지수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안 그래도 인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적성에 안 맞는데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아. 솔직히 이런 일 겪고도 또 사냥 가겠다고 하는 건 바

보 아니냐.”

“난 오빠가 또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할 줄 알았어···.”

내가 그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보였나?

하긴, 당시에는 썩은 동아줄이란 걸 알면서도 놓지 못했었다.

그 썩은 줄을 놓으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막연한 두

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예상과 다른 답변에 놀란 것도 잠시, 지수는 반색하며 되물었다.

“아무튼 그만둔다는 거 진짜지? 말 바꾸는 거 아니지?”

“그래. 진짜다.”

내가 오늘 진짜라는 말을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얘는 내가 돌아오면 헌터 일 관두게 하려고 아주 벼르고 있었나 보다.

“진짜 잘 생각했어! 내가 맨날 말했잖아. 안전한 일 하라고. 괴물이랑 싸우는

건 다른 헌터들이 잘 주고 있어! 굳이 오빠가 나서서 그런 위험한 일 하지 않

아도 세상은 잘 굴러가고 있다고!”

최지수가 손뼉까지 치며 신나게 말했다.

늘상 그만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녀석이다.

드디어 내 입으로 직접 헌터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순간이 왔으니 기쁠 수밖

에 없겠지.

나는 지수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열심히 밥을 먹었다.

지수 어느새 수저를 놓은 채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열심히 계

속 입안을 채워 넣고 있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다시 꽉꽉 채운 고봉밥을 담아와서 또 먹었다.

찌개는 이제 바닥을 보이지만, 김치만 먹어도 몇 공기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배 많이 고팠구나. 하긴 비상식량을 아무리 많이 챙겼어도 배부르게 먹

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많이 먹어.”

지수가 나를 짠하게 보았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많이 먹는 건 배고파서가 아니다.

그저 이 음식들, 이 분위기가 너무나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거나 저거나 다 불쌍해 보이기는 하네.’

그렇게 세 번째 밥그릇이 비어갈 때쯤, 지수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앞으로 뭐 할건지도 생각해놨어? 헌터 그만두고.”

“생각해놨지.”

“뭐할 건데?”

“식당하려고.”

망설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종종 꿈을 꿨다.

이 모든 현실이 모두 거짓인 꿈.

꿈에서 나는 3년간 승급 못 하는 머저리 F급 헌터가 아니었다.

애초에 각성조차 하지 않아서 붕괴된 던전에 갇히지도, 이세계에서 끝이 보이

지 않는 전투를 치를 일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실 진짜 나는 원래 계획대로 식당을 차리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중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의 모습에 작은 기쁨을 느꼈고, 돌아

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지수가 있었다.

그런 꿈을 꾸다 깨어나면 가슴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허망했다.

그땐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꿈을 직접 이룰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가 왔다.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식당!”

“그래. 예전에 하려다 말았었잖아. 기억 안 나?”

“당연히 기억하지! 좋아 좋아. 솔직히 헌터 일만 아니면 다 좋아! 일손 필요

하면 내가 도와줄게! 아, 그런데···.”

말을 꺼내다 말고 잠깐 망설인다.

계속 얘기하라는 눈짓을 보내니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근데 가게 열 밑천은 있는 거야? 예전에 모아놓은 돈은 다 썼잖아.”

그랬다.

당시 식당 차리기 위해 뼈 빠지게 모아뒀던 초기 자금은, 각성하자마자 이런

저런 헌터용 장비 맞추는 데 다 털어 넣었다.

3년 전 각성 당시에는 정말 로또라도 맞은 줄 알았다.

시작은 비록 F급이지만 D급, C급 정도만 되어도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훨씬 많

이 벌 수 있으니까.

좋은 장비로 최대한 빨리 성장해서 등급을 올리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어차피 가게를 여는 대신 헌터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헌터용은 다 비싸서 그렇게 대단한 것들을 산 건 아니었지만.

현실을 짚어내는 지수의 눈빛에 또다시 걱정하는 기색이 보인다.

드디어 내가 헌터 그만두겠다고 결정했는데,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변심이라

도 하면 어쩌나 싶은 모양이다.

“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겠냐.”

나는 목소리를 밝게 내며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그게 나 도와주는

거야.”

“그래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가게를 차려.”

“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무슨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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