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수 없지
방 하나가 온통 발광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구로 돌아오기 전, 던전을 훑어보다가 발견한 것이다.
아마도 과거 이곳엔 발광석을 수집하는 몬스터라도 살았던 것 같다.
나에게는 개이득이다.
발광석은 마석에 비하자면 흔한 광물이지만, 이 정도 양을 다 팔면 몇천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것들을 팔기보다는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한다.
“인테리어도 중요하니까.”
중얼거리며 챙겨온 가방에 발광석을 쓸어 담고 있을 때였다.
처벅처벅처벅.
두텁게 울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 녀석이군.’
앞으로의 계획에 들떠서 잠시 까먹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애절하게 우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휘익!
날렵하게 몸을 돌려 나에게 달려드는 덩어리를 낚아챘다.
“베로!”
“끼이이잉······.”
“그래그래. 어제 들어와 놓고 안 보고 가서 섭섭했어?”
“이이이이잉···.”
맞다는 듯 불쌍하게 찡찡거리다가 내 얼굴을 핥는 녀석.
늑대보다 클 것 같은 이 거대한 검은 개는 사실 평범한 개가 아니다.
‘따지자면 개가 아닌 건 또 아닌데··· 솔직히 개보다는 몬스터 쪽으로 봐야겠
지.’
이 애교 많은 강아지의 이름은 베로.
지옥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케르베로스다.
왜 머리가 하나냐고?
그야 나머지 둘은 죽었으니까.
양쪽에 붙어있던 머리인 케르와 로스는 죽었고, 베로는 살아남은 가운데 머리다.
잘 보면 죽은 두 개의 머리를 떼어낸 흉터가 남아있을 거다.
복슬복슬한 털에 다 가려졌지만.
“히이이이잉···.”
자기를 봐달라는 건지 품에 머리를 마구 비빈다.
나니까 이렇게 들고 있지 보통 사람이면 무거워서 자빠졌을 거다.
“자, 베로. 이제 내려가자. 형 일 해야 돼.”
“끼잉!”
쿠웅!
땅에 내려놓는데 무슨 돌덩어리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덩치는 거대하지만, 은근히 귀엽게 생긴 녀석의 얼굴를 양손으로 마구 뭉개주
었다.
짜부가 되어도 좋은지 헥헥거리기만 한다.
나는 충분히 베로를 쓰다듬어준 다음에 허리를 폈다.
발광석끼리 찰그랑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들으며, 한 보따리 가방을 들고
옮겼다.
베로가 처벅처벅 발 소리를 내며 뒤따라온다.
“일에 집중할 거니까 얌전히 보고만 있어야 된다?”
“웍···!”
입을 동그랗게 만들어 작게 대답하는 베로.
이 녀석이 동굴에서 짖으면 너무 소리가 울리기에 조용히 대답하도록 교육시
킨 것이다.
“읏차!”
홀에 도착한 나는 발광석이 든 가방을 짊어진 채로 도약했다.
타앗!
암벽 등반하듯 동굴 벽에 붙었다.
발을 딛거나 잡을 만한 부분이 아주 약간만 있어도 편안히 몸을 지탱할 수 있다.
등에 짊어진 가방에서 발광석 하나를 꺼냈다.
콰직!
알맞아 보이는 자리에 힘으로 끼워 넣었다.
나쁘지 않다.
울퉁불퉁하기만 하던 벽에서 은은한 흰 빛이 퍼지니 괜찮은 벽등을 달아둔 것
처럼 보인다.
나는 같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혼자 이러고 있는 게 지루할 법도 한데 오히려 즐겁다.
“역시, 싸우는 것 보다 이런 게 훨씬 재밌단 말이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가는 내 공간.
던전 내부에 빛이 생겨날수록 점점 애착이 더해진다.
수백 개의 발광석을 꼼꼼하게 박아넣은 후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덩달아 베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껏 벽에 붙어 작업하는 나를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베로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홀 전체를 둘러보았다.
한데 모여있을 때는 너무 밝은 감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이렇게 따로 붙이니
은은한 느낌이다.
자연 발광석이다보니 종종 다른 빛깔도 섞여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생각보다 그럴싸하긴 한데···.
“조금 모자란가?”
붙일 때는 몰랐는데, 아래에 내려와서 보니 빛이 모자란 부분이 꽤 보인다.
마지막으로 작업한 한쪽 구석은 어두컴컴하기까지 하다.
좀 더 붙이면 좋겠는데···. 발광석을 사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패스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 식당 구색을 좀 갖추어야 봐야지.
나는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펜과 종이를 준비하고 구닥다리 컴퓨터를 켰다.
예산이 많지 않은 만큼 계획을 잘 짜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워낙에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열심히 레이드 다니면서 번 돈은 생활비로 거의 다 나갔다.
알뜰살뜰 아껴서 모은 돈조차, 부상을 입으면 병원비로 나가고, 다칠 때마다
일을 하지도 못해서 결국 수중에 남는 돈은 없었다.
악순환의 반복.
약해서 서러웠던 시절이었다.
이래저래 머리를 싸매봤으나···.
‘···이거 안 되겠는데.’
남은 발광석을 다 팔아도 예산이 모자랄 듯하다.
솔직히 돈 버는 법은 어렵지 않다.
내키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다시 얻은 것과 같은 인생.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하는 수 없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일을 한 번만 더 하기로 했다.
뭐··· 필요하면 해야지 어쩌겠나.
다 중고로 사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몽땅 최고급으로 맞춰야겠다.’
나는 예산 때문에 접어뒀던 이상적인 주방의 모습을 그리며 흐뭇하게 미소 지
었다.
굳이 싸우기 싫긴 한데, 돈 벌어서 뭔가 할 생각을 하니 의욕이 좀 생기는 것
도 사실이었다.
* * *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한성 길드.
바쁘게 일하는 평직원들과 레이드를 마치고 휴식 중인 헌터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때, 평화로운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
삐- 삐- 삐- 삐-
“뭐야, 돌발 게이트인가 본데?”
휴게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단발머리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뒤집어진 얼굴을 마주한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설마 A급은 아니겠지? 지금은 진짜 나가기 싫은데.”
남자의 말에 동의하며 여자가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B급이나 C급이어라! A급은 안 돼. B급이나 C급···!”
이들은 한성 길드의 A급 던전 담당 헌터들이었다.
방금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겨우 휴식하려던 참이었다.
때문에 이번 던전이 다른 헌터들이 감당할 수 있는 B급 이하 던전이기를 바랐다.
경고음 이후, 벽에 붙은 스피커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국역 S급 돌발 게이트 발생. 안국역 S급 돌발 게이트 발생.]
“뭐?”
슬라임처럼 누워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바닥에 앉아 장비를 정리하던 남자도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주변의 다른 헌터들도 제각기 하던 일을 중단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방금··· S급이라고 했지?”
“···나도 그렇게 들었어.”
소파에 누워있던 여자, 유희진이 쏜살같이 휴게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턱수염의 남자, 고영한도 뒤따라 그녀를 쫓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성 길드의 게이트 관리팀.
벌컥 문을 열며 유희진이 소리쳤다.
“방금 방송, 진짜야?!”
게이트 관리팀의 팀장이 헤드셋을 벗으며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국역에 돌발 게이트가 발생했고, S급 던전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당장
출동해야 해요. 액티브 타임이 4시간밖에 안 됩니다.”
“아니 잠깐. 진짜 S급 맞아? 잘못 본 건 아니고?”
유희진이 못 믿겠다는 듯 다가오자 팀장이 몸을 틀어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의 말대로 지도상의 안국역에 붉은빛이 깜빡이고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유희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S급 던전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미 이 구역에 S급 던전이 하나 더 생성된 상태라는 거다.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다른 던전과 달리 S급 던전은 활성화 주기가 상당히
길었다.
또한 일정 범위 안에서 동시에 생성되지도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연구 중이나, 이 현상에 예외는 없었기에 통상적인 상식
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동시간 대에 두 개의 S급 던전이 이렇게 인접하게 나타난다고?
안정기에 들어선 이후로는,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하루에 S급 던전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상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액티브 타임 4시간.’
액티브 타임이란 던전의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던전 브레이크까지 걸리
는 시간.
던전마다 다양해서 짧게는 4~5시간, 길면 일주일에서 한달이 넘게 측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종잡을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난이도가 높을수록 액티브 타임도 길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 발생한 S급 던전은 여러모로 예외적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해두지 않았다.
현시점 한성 길드의 최고 능력자는 길드장 한성진과 S급 헌터 성민혁.
두 사람은 S급 전담 헌터들로 이미 오늘 오전, 삼청동 S급 던전으로 진입한
상황이다.
그들이 부재중인 지금, 한성 길드의 최고 결정권자는 유희진이었다.
길드 내에 A급은 여럿 있었으나, 그녀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강했다.
상위 등급으로 갈수록 능력의 격차가 커진다.
같은 A급, 같은 S급 간에도 차이가 상당했기에, A급과 S급 사이 정도로 보이
는 사람들은 SA급으로 불렸다.
유희진은 한성의 한명뿐인 SA급이었다.
‘우리끼리 뭘 어떻게 해야···.’
유희진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졌다.
그녀 또한 S급 던전 레이드에 종종 참가하곤 했다.
하지만 단지 서포터의 역할을 맡았을 뿐, S급 몬스터와 제대로 싸운 경험은
없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미 죽어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영웅 길드와는 구역이 인접해있는 만큼, 여러모로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다.
웬만하면 부탁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그런데, 고영한의 표정이 어둡다.
그만큼 S급과 A급의 차이는 크다.
A급이 10명이든 100명이든, S급 헌터 한 명도 없이 던전에 들어가는 건 그냥
목숨을 버리러 다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거나 다름없다.
유희진은 뒤따라온 고영한에게 말했다.
“일단은 영웅 길드에 도움 청해 봐. 거기 S급 이우석한테 바로 와달라고.”
“불가능해. 아까 영웅 길드 친구한테 들었는데, 지금 이우석 부산에 있을 거
야. 오늘 오전에 출발했다고 들었었으니, 이미 도착했겠지.”
“뭐? 왜 하필 지금···! 아니, 그럼 가온 길드는? 그쪽에라도 연락해봐.”
“그쪽은 강원도 A급 던전 지원 갔어. 연락은 해보겠는데 이미 던전 안에 있을
테니 언제 소식이 닿을지는 몰라. 언제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이런 미친, 완전 개판이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백호진은 얼마 전에 부상
당했고, 아직 회복 안 됐겠지?”
또 다른 S급 헌터를 떠올리며 혹시나 말을 꺼내는 유희진에게 고영한이 고개
를 저었다.
“하···.”
유희진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망했네. 일단 협회랑 다른 길드에 연락은 다 돌리자. 그리고 재난경보 울리
고, 주민들 대피시키고.”
“알겠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평직원이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우린···.”
항상 우직한 고영한이 드물게 불안한 표정 유희진을 보았다.
“우리끼리라도 들어가자. S급 던전.”
유희진이 결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