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식당 (7/125)

      던전 식당

“잠깐, 우리끼리? 그건 안 돼.”

고영한이 앞을 막았지만, 유희진이 그를 밀어내고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다른 방법이 없잖아. 성민혁이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

어. 액티브 타임이 너무 짧다고. 이러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질 거야. S급 던

전 브레이크는 진짜 재난이야. 알잖아. 이 일대가 흔적도 없이 날아갈 거라고.”

“······.”

“목숨을 버려서라도 막아야 해. 우리가 힘이라도 빼놔야 막을 가능성이 있어.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고영한은 대답 없이 유희진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던전브레이크가 발생한 건 3년도 더 된 일이다.

A급 던전이었는데도 사망자만 수백, 사상자는 수천에 이르렀다.

그런데 A급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S급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도 끔찍하다.

최소한의 피해를 가정하더라도, 이 일대는 초토화될 것이다.

근방에 사는 가족, 친지들은 모두 죽을 거고.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유희진의 호출 하에 한성 길드의 A급 헌터들이 모두 모였다.

“이번 레이드에서는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 죽으

러 들어가는 겁니다. 빠질 사람은 빠져도 됩니다. 탓하지 않을 테니 살고 싶

으면 당장 도망쳐요. 최대한 멀리.”

유희진의 경고에도 아무도 돌아서지 않았다.

한성 길드에 그런 헌터는 없었다.

씨익 미소지은 유희진이 크게 소리쳤다.

“갑시다!”

휘익!

유희진과 고영한이 4층 창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른 A급 헌터들도 뒤따라 밖으로 몸을 던졌다.

긴급 상황에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는 사치다.

뛰어내린 헌터 모두가 가볍게 땅으로 착지했다.

그때였다.

“잠깐만요오오오!”

머리 위쪽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헌터들이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팔과 머리를 내민 게이트 관리팀 팀장이 목청껏 소리친다.

“클리어어어어!”

“삼청동 던전 클리어됐다고? 그럼 길드장님이랑 성민혁 빨리 오라 그래!”

유희진이 위를 향해 외쳤다.

팀장이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손으로 X자 표시를 한다.

“거기 말고 좀 전에 열린 안국역 S급 던전 클리어됐습니다! 안 가도 돼요오!”

고영한과 유희진이 눈을 마주쳤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라오세요오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헌터들이 급히 건물 안으로 되돌아갔다.

먼지 날리게 달려가 팀장 앞에 도착한 유희진이 소리쳤다.

“아까 그거 무슨 말인데! 뭐가 어떻게 된 일이야?”

“방금 전에 안국역 S급 던전이 클리어됐어요. 더 이상은 이상 파동이 감지되

지 않는 상태입니다. 재난경보랑 주민대피 요청도 철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뭔가 잘못 안 거 아니야?”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까 최고점에 달했던 특수파동이 지금은 거의 0에 가까워요. 진짜 클리어

직후에만 나타나는 수치입니다.”

“아니면 감지기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건 아닐 겁니다. 게이트 감지 기술은 개발 이후 단 한 번의 오류도 발생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틀린 걸 수도 있잖아.”

“매일 관리국과 길드에서 크로스 체크하고 있습니다.

유희진의 계속되는 의심에도 팀장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그걸 누가 클리어했다는 건데? 그냥 던전도 아니고 S급인데.”

“그건 저도 모르죠. 지나가던 S급 헌터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말도 안 돼! S급 헌터가 지나가는 똥개도 아니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우리

길드 구역인데 아무 얘기도 없이 들어갔을 리는 없어. 그리고···.”

유희진이 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던전 발생 소식을 들은 지 이제 막 15분 정도 지났어. 그 어떤 S급 헌터라도

이렇게 빨리 클리어하지는 못한다고.”

이번에는 팀장의 말문이 막혔다.

그때 길드 직원 한 명이 달려왔다.

“유 헌터님! 관리국에서 연락 왔습니다! 그쪽에서도 안국역 S급 던전 감지했

고, 지금 클리어 상태인 것까지 확인했대요!”

이렇게 되면, 한성 길드에서 뭔가 잘못 본 건 아니란 말이다.

정말로 누군가 15분 만에 S급 몬스터를 처치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대체···.”

“그리고 더 이상한 건, 게이트 목격자가 여럿 있는데 누가 들어가거나 나오는

걸 보지는 못했다네요.”

이어진 말에 유희진을 포함한 한성 길드의 헌터들이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후 며칠간 던전을 조사하고, 다른 S급 헌터들이 한 일이 아닌지 수소문했지

만 진실을 밝혀내진 못했다.

이 사건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 * *

“요즘 뭐 하고 있어? 뭘 바쁘게 하는 것 같던데.”

최지수가 슬쩍 떠보듯이 묻는다.

눈빛에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만둔다고 말해놓고 또 던전에 사냥 나가는 거 아닌가 의심하는 걸 거다.

“그냥 한 달 동안 갇혀있다 나왔더니 좋아서 매일 산책도 가고, 여기저기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하는 거야. 일은 마음 좀 안정되고 천천히 시작하려고.”

내 말에 지수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나를 안쓰러워하는 기색까지 보인다.

“그래. 그 안에서 얼마나 갑갑했겠어. 많이 돌아다니고 좋은 공기 마시고 해

야지. 혹시 이상하다 싶으면 꼭 병원 가고.”

“그 정도까진 아니라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너 공부나 열심히 해.”

“걱정해줘도 저러네. 내 공부야말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늦은 거 아니야? 55분인데?”

“아씨, 진짜네. 나 간다!”

최지수가 시계를 보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좀 치사하지만 요즘 자주 써먹고 있는 방법이다.

잔소리를 하려다가도 던전 붕괴 사고 얘길 꺼내면 눈빛이 바뀌고,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이것도 계속 써먹으면 안 먹히겠지만, 현재로서는 아주 만능이다.

요 며칠간, 지수가 알아챌 정도로 꽤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마룡 부산물을 암시장에 팔고, 식당에 필요한 크고 작은 물건들을 구입했다.

나머지는 모자란 발광석을 사서 빈 천장에 박아넣었다.

사고 보니 발광석 추가 구입에 제일 많은 예산이 들었더라.

그러고도 돈이 살짝 남는다.

‘마음 같아서는 오랜만에 최지수 용돈 좀 넉넉하게 주고 싶은데···.’

하지만 그러면 또 요즘 일도 안 하는데 어디서 난 돈이냐고, 몰래 사냥 나가

는 거 아니냐는 의심이 돌아오겠지.

언젠가는 얘기해줘야 하겠지만 던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하는 애라 말 꺼

낼 엄두가 안 난다.

안전하다고 말해도 안 들을 거고, 설득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래도 지금은 아니야. 한참 있다가 살짝 말 꺼내 보자.’

지수도 던전 사고에 대한 충격이 좀 가시고 나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이이이잉.

배송 완료됐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얼른 바깥에서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와 개봉했다.

상자에서 큼지막한 나무판과 날카로운 말뚝을 꺼냈다.

두 개를 조립하니 그럴싸한 팻말이 완성되었다.

나는 팻말을 바닥에 두고, 그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정갈한 자세로 벼루에 먹을 갈았다.

서랍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들이었다.

왜 이런 게 집에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침 잘 됐다.

스윽. 슥.

붓을 들고, 종이에 연습 삼아 몇 번 써보았다.

다음은 팻말 위.

심혈을 기울여 일필휘지로 글씨를 썼다.

<던전 식당>

“그럴싸한데?”

나무 간판에 적힌 검은 붓글씨.

유서 깊은 맛집에 이런 간판이 달려있었던 것 같다.

서예 같은 건 배운 적도 없는데, 이 정도 썼으면 잘 쓴 거 아닌가.

느낌을 제대로 보기 위해 나무 팻말을 세워 들었다.

“이런.”

덜 마른 먹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던전 식당이라는 글자에 기괴함이 더해졌다.

이거 무슨 귀신의 집도 아니고···.

“···귀찮다. 그냥 이렇게 가자.”

빨간 글씨도 아니고, 검은 글씨인데 뭐 어떤가.

간판을 챙겨 들고 식당에서 가장 가까운 복도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이곳에 마계와 통하는 게이트를 하나 설치해두었다.

나는 게이트 앞에 서서 바닥의 위치를 가늠했다.

주의를 기울여 조준한 후, 팻말을 한 번에 바닥에 꽂아 넣었다.

푸욱!

말뚝이 던전 입구의 돌바닥에 깊고 깔끔하게 박혔다.

던전 식당이라 적힌 부분은 게이트 바깥으로 삐죽 삐져나가 안쪽에서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잘 됐는지 볼까하~”

콧노래를 부르며 게이트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연결된 곳은 내 방이 아닌 다른 세계였다.

게이트 앞에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을 뛰어넘었다.

던전 입구에서 더 멀리 걸어간 다음 뒤돌아보았다.

꽤 먼 거리인데도 <던전 식당>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각성한 헌터라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후후···.”

흡족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제, 개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쿠르르르! 콰르르르릉!

그때 고막이 터질 듯한 큰 소리와 함께 하늘이 번쩍거린다.

내 웃음을 꾸짖는 듯하다.

번쩍이는 빛이 잦아들자, 피처럼 검붉은 하늘이 드러난다.

“난리네, 난리.”

주인을 잃은 땅이 애통하게 울부짖는 것이다.

이곳은 수많은 생명들을 앗아가고 착취한 악독하고 사악한 정복자, 마룡의 영

역이다.

몇 시간 전까지 이 땅의 주인이었던 그 마룡은, 내 던전에 산산이 해체되어

부위별로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S급 마룡의 부산물은 상당히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원래 S급 던전을 클리어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적당한 B급 던전 하나 클리어하는 정도에 만족하려고 했었다.

그 정도만 해도 식당 인테리어는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을 테니.

그런데, 임의로 연결한 게이트가 마침 활성화된 S급 던전과 연결된 것이다.

나가자마자 울부짖는 마룡을 발견하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당장에 잡아버리

고 말았다.

막상 잡아놓고 보니 이거, 의도치 않게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한 게 아닌가

싶다.

‘S급 던전이라 티가 나겠지?’

확실히 이상하게 여길 거다.

S급 던전을 놓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닥칠 테니 항상 예의주시

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값비싼 부산물 때문에 길드 간 경쟁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클리어했으니 자기들끼리 싸움이 날지도 모르겠다.

뭐, 그것까진 내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 부산물은 암시장에 팔 생각이다.

그때, 마룡이 있던 S급 던전 영역에 무언가 들어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또 들어오네.’

나는 잽싸게 내 던전으로 들어가 게이트를 닫아버렸다.

있어야 할 몬스터가 보이지 않으니 계속 조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다고 내가 처치했다는 걸 알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냥 던전에서 일어난 여러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겠지.’

나는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던전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팻말을 몇 개 더 만들어 다른 게이트 입구에도 착착 꽂아

넣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늘은 역사적인 개업일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손님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지.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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