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첫 손님 (8/125)

      첫 손님

첫째,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둘째, 마계의 기운을 느낀다.

셋째, 어딘가 이질적인 위치를 찾아낸다. 그곳이 현재 던전 영역으로 지정되

어 헌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장소라 보면 될 것이다.

이질적인 가운데서도 그나마 친숙한 느낌이 드는 곳을 고르면 한국인 헌터가

있을 가능성이 몇 배는 더 높아진다.

그리고 넷째, 발견한 위치에 던전 내부에 간판을 꽂아뒀던 게이트를 연결해준다.

끝이다.

이렇게 낚시줄 던지듯이 게이트를 던져놓고, 헌터들이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

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게이트를 여러 개 동시에 열 수 있는데, 그렇다고 제한이 없는

건 아니다.

게이트 개수에는 던전 자체가 허용하는 마나의 총량과 내 능력치가 복합적으

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던전이 지구에 열 수 있는 게이트는 딱 한 개.

마계에는 총 12개의 게이트를 한꺼번에 열 수 있다.

그리고 또다른 이세계, 내가 넘어갔다 돌아왔던 아스키나 대륙에 총 3개까지.

이걸 다 쓸 일이 있겠나 싶지만, 일단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실험해본 결과

였다.

“언제쯤 오려나~”

나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첫 손님을 기다리며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대전의 한 C급 던전.

숲의 모습을 한 필드형 던전에서, 5명의 헌터들이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고 있다.

“이놈들은 대체 어디 숨은 거야.”

“설마 아까 잡은 게 다는 아니겠죠?”

“그럴 리가, 아직 클리어되려면 멀었어. 또 보스도 잡아야지.”

“그렇긴 하죠···.”

금방 끝낼 줄 알았던 레이드가 점점 길어지면서 그들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자자, 조금만 더 힘내보자. 놈들이 바라는 게 우리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거

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꼼꼼히 보자고!”

“넵!”

“다들 힘냅시다!”

대장의 다독임에 헌터들이 힘을 내어 대답했다.

그때, 조용히 걸음만 옮기던 막내 헌터가 작게 소리쳤다.

“대장, 저기 수상한 게 보입니다!”

그는 각성 후 시력이 몽골인 수준으로 발달했기에 다른 헌터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볼 수 있었다.

“몬스터야?”

“아뇨, 그건 아니고···. 뭔가···.”

"뭔가가 뭔데? 정확히 말해.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저도 정확히는···.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쯧, 확인한 다음에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예정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모두가 까칠해진 상태였다.

“어···?”

“왜! 보스가 있는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이상하다···.”

막내 헌터가 눈을 계속 비비며 고개만 갸웃댔다.

주변에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빨리 말해! 뭐 하자는 거야!”

“이게···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 모르겠어서요···.”

“야, 이 자식아! 우리 속 터지게 하지 말고, 뭘 봤든 간에 빨리 설명해봐!”

머뭇거리던 막내 헌터는 거친 욕설이 쏟아지기 직전에서야 제가 본 것을 털어

놓았다.

“식당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파티원들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곧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지금 우리 놀리는 거냐?”

“그렇게 안 봤는데, 때와 장소는 가려서 장난쳐야지.”

평소 친절하기만 하던 빡빡 머리 선배 헌터까지 엄한 얼굴로 그를 나무랐다.

막내는 억울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던 거다.

뭐, 본인도 누가 던전에서 식당을 발견했다고 하면 장난하냐며 코웃음 쳤겠지

만 그래도 이런 취급은 억울하다.

막내가 자신이 보았던 식당을 가리키며 떼쓰듯 소리쳤다.

“진짜예요! 진짜 저기 간판이 있다고요! 던전 식당이라고 적힌!”

“얘가, 뭐 잘못 먹었나? 왜 이러는 거야?”

“가 봐요!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되잖아요!”

그러고는 씩씩대며 앞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니, 갑자기 왜 저러는 거냐고.”

“모르겠어요···.”

평소 순하기만 한 막내가 저러는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다들 황당해하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막내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헌터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던전 식당>

붓글씨로 적힌 나무 간판에 떡하니 한글이 적혀있었다.

게다가 간판은 게이트에서 비죽 삐져나와 있다.

“이게··· 진짜네?”

“···던전에 왜 이런 게 있어? 진짜 던전··· 식당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글자

가 좀 이상하긴 한데.”

황당해하는 헌터들에게 막내 헌터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맞잖아요! 제가 분명 여기 식당이 있다고 했는데 내 말은 안 믿고! 너무들

하십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믿겠냐고···.”

한 걸음 내디뎌 가까이에 다가간 노란 머리 여자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간판

을 살펴보았다.

“···진짜 그냥 나무 팻말인데요? 우리 앞에 누가 들어왔던 걸까요? 장난치는

건가?”

“글쎄요. 그럴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누가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겠

어요?”

“그렇지? 보통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하지만 이건 분명 사람이 한 일이잖아요. 몬스터가 한글을 썼을 리도 없고.”

“함정 같은 건 아닐까?”

“다른 헌터가 한글로 함정을 파뒀다고요? 그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요.”

간판의 정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헌터들 사이에서 대장이 손을 들었다.

“잠깐.”

헌터들이 입을 다물고 대장을 주시했다.

“그 이상한 간판에 정신 팔리지 말고, 본질을 봐봐. 이게 뭐로 보이냐?”

“식당?”

“게이트요?”

“이중 던전! 이중 던전이잖아!”

“엇!”

그제야 나머지 헌터들이 지금 상황을 깨달았다.

이건 그냥 요상한 장난으로 넘길 것이 아니었다.

던전 속의 던전, 이중 던전.

이런 게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헌터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중 던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드문 현상이었다.

특히 이런 평범한 C급 던전에서 발견할 확률은 더더욱 낮고.

“어떻게 하죠? 들어가 볼까요?”

“지금 당장? 그건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요.”

이중 던전의 특성상 현재 들어온 던전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하고 희귀한, 즉, 값비싼 아티팩트를 얻을 가능성도 있었다.

운이 정말 좋다면 몬스터 없이 아티팩트만 있을지도 모를 일.

이중 던전에서 어마어마한 보물과 아티팩트를 발견해 인생 역전 스토리는 헌

터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이중 던전에 들어간 동료 헌터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대장 헌터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들어가 보자.”

“대장! 잠깐 다시 생각해보는 게···! 잘못하면 큰일 날지도 몰라요. 들어가더

라도 제대로 준비하고 다시 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시 돌아오면? 이게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나?”

“······.”

“우물쭈물하다 사라지면 우린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대장의 말에 안경 쓴 남자와 노란 머리 여자 헌터는 마음을 정한 듯 빠르게

가방을 확인했다.

“아직 포션은 넉넉해요. 혹시 너무 위험하거나 부상 당하면 이걸로 응급처치

하고 빨리 도망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맞아. 아니다 싶으면 바로 튀면 되는 거지. 나도 포션은 가방에 가득

있어. 따로 더 준비할 게 뭐 있겠어? 잘 생각해. 다시 안 올 기회일지도 몰

라. 어쩌면 오늘만 잘 해내면 평생 이런 위험한 일 안 하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걸?”

“전에 이중 던전에서 주운 건틀릿이 경매로 몇백억에 팔렸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아요.”

대장의 설득과 다른 헌터 맞장구에, 망설이던 나머지 두 헌터도 조금씩 마음

이 기울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행운이 온 걸지도 모른다고. 그래. 우리 들어가

기 전에 미리 약속하자. 뭘 얻든 간에 모두 똑같이 분배하는 거로. 수백억이

면 다섯 등분을 해도 평생 먹고살 돈이잖아. 어때?”

헌터들의 눈빛에 점점 탐욕이 차올랐다.

실전에서 헌터들이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마주쳤을 때, 무사히 도망치는 건

거의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이 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두의 동의 하에 다섯 헌터가 <던전 식당>이라 적힌 게이트로 들어섰다.

“동굴형이네요.”

“입구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천천히 들어가 보자. 흩어지면 절대 안

된다.”

대장의 말에 헌터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천장에는 발광석이 줄지어 박혀있었는데, 마치 그들을 안쪽으로 인도하

는 듯했다.

막내 헌터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뭔가··· 인위적인 느낌인데요.”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모두 동의했다.

함정에 빠져드는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

그리고 복도처럼 이어지던 동굴 공간이 갑자기 확 넓어졌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다섯 헌터가 동시에 우뚝 멈춰 섰다.

다섯 헌터들의 눈이 최대치로 커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게··· 뭐지?’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만큼 황당한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쪽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남자의 목소리.

‘어서 오라고?’

이중 던전에 어서 오라며 반기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

아니, 그 전에 이게 다 무슨 광경인가···.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누가 뭐라 해도 식당이었다.

너덧 개의 식탁과 의자가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심지어 식탁은 옆에 수저통 서랍이 달린 업소용인데다, 그 위에는 뒤집어 겹

쳐진 물컵들이 놓여있다.

넓은 공간의 절반은 오픈형으로 된 주방이었다.

안쪽으로 보이는 널찍한 조리대와 화구, 그릇들.

그사이에 서 있는, 깔끔한 앞치마와 조리 두건을 착용한 채 미소 짓고 있는

남자.

배경이 동굴형 던전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영락없는 식당인 것이다.

잠시 얼떨떨 순간이 지나고···.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린 리더가, 보기만 해도 살벌한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당신 누구야! 정체가 뭐냐!”

그를 따라, 나머지 헌터들도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둘은 검을 빼 들고, 다른 둘은 당장에 마법 스킬을 쓸 기세였다.

“저는 당연히 이 식당의 주인입니다. 가게가 엉망이 되는 건 원치 않아요.”

자칭 식당 주인이 주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다섯 헌터에게 금방이라도 공격당할 위기인데, 전혀 겁을 먹지도, 긴장하지도

않은 듯했다.

홀로 걸어 나온 남자는 태연하게 팔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자자, 그렇게 다리 아프게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으세요. 원하는 곳에.”

“이 사악한 몬스터! 어디서 인간의 흉내를 내느냐! 대체 무슨 꿍꿍이냐!”

휘익!

대장 헌터가 메이스를 강하게 휘둘렀다.

정확히 남자의 머리를 겨냥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메이스가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대장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그의 온 힘을 다한 일격을, 눈앞의 남자는 손끝 하나로 막아내고 있었다.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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