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대로네 (9/125)

      제대로네

‘가, 강하다···. 너무 강해···!’

대장은 온 힘을 다해 메이스를 움직이려 했으나 이상하게 옴짝달싹도 하지 않

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리던 메이스를 수상한 남자가 검지손가락 하나로

살짝 눌렀다.

메이스는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하고 아래로 툭 떨구어졌다.

“허, 허억···.”

그제야 깨달았다.

이 정체 모를 몬스터는 그와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뭘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대장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어리석게 분수에 안 맞는 욕심을 부리다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되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미안하다, 정희야, 정호야, 그리고 여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의 어깨를 무언가가 툭툭 쳤다.

슬그머니 실눈을 뜨자 부드러운 표정의 남자가 보였다.

그가 잔뜩 쫄아버린 대장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긴장 좀 푸세요. 뭐, 이런 건 처음 봤을 테니 놀랄 수야 있겠지만··· 생각보

다 반응이 더 격하네요.”

“주··· 죽이지 않는 겁니까?”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내가 손님을 왜 죽입니까?”

남자는 대장 헌터의 뒤쪽에 서더니 양어깨를 자연스럽게 붙들고 식탁 앞으로

이끌었다.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히기까지 했다.

“크흑···.”

어깨를 은근히 짓누르는 힘이 장난 아니어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대장을 자리에 앉힌 남자가 파티원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다들 이리로 와서 앉으세요!”

조금 전부터 그들은 식당 홀과 연결된 복도에서 어쩔 줄 모르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들의 각도에서는 대장의 뒷모습과 남자의 평온한 얼굴만 보였다.

때문에 대장이 메이스를 휘두르다 스스로 동작을 멈춘 거라 생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고, 둘 사이가 가까워서 섣불리

공격했다가 오히려 대장을 다치게 할지도 몰랐다.

그들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어느새 그들의 뒤에 집채만 한 검은 짐승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벅, 처벅, 처벅.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터운 소리가 땅을 울렸다.

차마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때문에 오들오들 떨던 그들은 남자가 부르는 대로 식탁으로 걸어가 자리에 착

석할 수밖에 없었다.

“다섯 명인데 나눠 앉으실래요?”

“아, 아뇨. 그냥 다 같이···.”

“그럼 그러세요.”

남자는 모자란 의자를 옆자리에서 가져오며 중얼거렸다.

“식탁을 좀 큰 거로 살 걸 그랬나. 그냥 다 4인용으로 통일해버렸는데···.”

그리고는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면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장, 괜찮아요?”

안경을 쓴 남자 헌터가 소곤소곤 물었다.

“왜 공격을 멈춘 거예요?”

“그, 그게···.”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대장의 대장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파티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건드렸던 가시덤불의 마비 독이 뒤늦게 퍼진 거 아니에요?”

“아까 해독해서 괜찮을 텐데···. 혹시 모르니까 해독제를 한 번 더 먹는 게

좋겠어요.”

노란 머리 여자가 가방을 뒤적였다.

‘···그런가?’

그 말을 들은 대장 헌터도 귀가 솔깃해졌다.

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그렇게 손가락 까딱 못한다는 건 좀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분명 강한 상대이지만, 마비 독의 영향도 있긴 했겠지.’

그렇게 결론 내린 대장은 비상용 해독제를 하나 꺼내 꿀꺽 마셨다.

물론 그러고도 다시 덤벼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되는데요. 여긴 대체 뭘까요? 우리가 생각한 이중

던전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저놈이 우리가 처치해야 할 몬스터일까요? 저

남자를 죽이면 아티팩트가 나온다든지··· 그런 거려나?”

막내 헌터의 질문에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다. 가까이서 보기에는 완전히 사람처럼 보이긴 했어. 그런데 분

위기는···.”

아까의 대치 상황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힘은 마비독의 영향 때문에 더 강하게 느껴졌다 치더라도, 눈을 마주쳤을 때

의 섬뜩한 감각이 완전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대장은 팔을 쓸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인간은 아닌 것 같아.”

“그럼 마족이나, 뭐 그런 인간형 몬스터인 걸까요? 어디서 듣기로, 인간과 구

분이 어려울 정도로 똑 닮은 놈들도 있다고 했어요. 물론 본 적은 없지만.”

그 정도의 몬스터라면 S급 던전에서나 나올 테니 C~D급 헌터인 그들이 마주친

적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만약 저자가 인간형 몬스터가 맞다면, 그들 수준에서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전혀 아니었다.

“우리가 사방에서 동시에 공격해보면···.”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통할 상대가 아닌 것 같아. 괜히 자극했다가 더 큰 일 날 수

도 있어.”

“그 정도예요? 보기엔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우리보다 강한 건 확실해.”

가장 가까이서 본 대장이 그렇다고 하니 다른 헌터들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

었다.

“근데 진짜 사람 아닌가?”

“사람이 이중 던전 안에서 식당을 하는 게 말이 되냐?”

“몬스터가 이중 던전에서 식당 하는 것도 말 안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

“···그러네.”

혼란에 빠져 이야기하는 헌터들을 제지시기코, 대장이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당장 뭔가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는 모

르겠지만, 일단 당장 우릴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장단 맞춰주자고.

운 좋으면 빠져나갈 틈을 찾을 수도 있겠지.”

그의 머릿속에 남자를 공격한다는 선택지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때, 자리를 떠났던 남자가 돌아왔다.

손에는 노트와 물통이 쥐어져 있었다.

터억! 턱!

그는 식탁 위에 물통과 노트를 올리고 입을 열었다.

“메뉴판입니다. 좀 허접한데··· 이해해주세요. 사실, 여러분이 제 첫 손님이

거든요.”

“아, 아하하···. 그, 그렇군요···.”

헌터들이 어색하게 맞장구쳤다.

“그럼, 편하게 보시고 주문하세요. 아, 1인 1메뉴입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남자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헌터들이 함께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노트에는 사인펜으로 큼직큼직하게 글자가 쓰여 있다.

<오늘의 메뉴>

제육볶음 정식

김치찌개 정식

“두 개밖에 없잖아?”

“누가 봐도 방금 급조해온 것 같은데요?”

“일단은··· 시켜야 되겠죠?”

빡빡이 헌터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시켜야 할까요?”

“나는 제육···.”

“저도 제육 정식이요.”

“전 김치찌개가 땡기네요.”

진지하게 메뉴를 고르는 헌터들에게 대장이 눈을 부라렸다.

“지금 진짜 식당 온 건 줄 알아? 그냥 제육 정식으로 통일해!”

대장의 지시에 막내가 눈치껏 손을 들며 말했다.

“저, 사장님?”

어색하게 부르자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사장님이라는 말 처음 듣는데, 듣기 좋네요. 메뉴는 정하셨습니까?

“제육볶음 정식 5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남자가 주방으로 돌아갔다.

주방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물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개방형인지라 헌터들의 주의가 어쩔 수 없이 그리로 쏠렸다.

열린 공간으로 남자가 칼을 집어 들었고, 곧 빠른 속도로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탁!

“진짜 요리를 하고 있어요.”

“몬스터도 요리를 하나? 그러고 보니, 몬스터는 뭘 먹지?”

“종마다 다르겠죠. 그런데 마족은 뭘 먹는지 들어본 적이 없네요.”

헌터들이 주방을 보며 소곤댔다.

파와 양파를 깔끔하게 썰어낸 남자가 주섬주섬 양념에 재워진 고기를 꺼냈다.

미리 달궈둔 팬 위에 고기를 듬뿍 올린다.

치이이이익!

듣기 좋은 소리가 헌터들의 귀로 들어왔다.

그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헌터들의 코를 자극했다.

꼬로로로록.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헌터들이 한 사람을 보았다.

범인은 막내 헌터였다.

“하하···. 그게, 이런 건 제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막내가 머쓱하게 변명했다.

“너 아까 전투식량 3개나 먹었잖아.”

“그거론 부족하죠···. 혹시나 해서 아껴먹은 거였다고요. 그리고 맛도 없고.

뭘 먹은 것 같지도 않아요.”

“뭐, 그건 맞는 말이지.”

파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이 던전에서 먹는 식량은 오직 효율성에만 초점을 둔 것이었다.

나름 맛을 생각한 식량들도 많았지만, 후각이 예민한 몬스터들 때문에 실제

던전에서 섭취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자칫 잘못하면 밥 먹는 중에 습격당할 수도 있었다.

결국 헌터들은 영양소 섭취에만 초점을 둔 전투식량을 먹어야 했다.

종류는 다양했으나 맛은 그게 그거였다.

헌터들은 늘상 건조하기만 한 식량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물과 함께

삼켜야 했다.

자동차에 연료를 채우듯 기계적인 행위였다.

“그나저나 이쯤 되니 여기 진짜 식당 같은데요. 입구에 간판도 있었잖아요.”

노란 머리 여자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경계 놓지마. 던전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니까. 정체를 알 수 없으

니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지.”

식당으로 들어오기 직전 완전히 잃었던 이성이 돌아와 있었다.

그 사이, 요리가 완성되었다.

식당 주인(?)이 둥글넓적한 트레이에 뭔가 한가득 담아 들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타악! 탁! 탁!

그는 공깃밥과 반찬 그릇들을 열심히 상으로 옮겼다.

헌터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상차림을 도왔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남자는 트레이를 들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비어있던 식탁은 갖은 음식들로 채워졌다.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김치 같은 기본 밑반찬들과 메인 메뉴인 제육볶음 다

섯 접시, 공깃밥까지.

식탁에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킁킁.

제육볶음의 매콤달달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고기 위에는 통깨가 솔솔 뿌려져 있었고, 붉은 양념에 초록색 파가 섞여 보기

에도 좋았다.

달그락.

공깃밥 뚜껑을 열자 인심 좋게 꽉 찬 쌀밥이 드러났다.

고슬고슬 윤기가 나는 것이 갓 만든 것 같았다.

“너무 그럴싸한데요?”

“완전 제대로네···.”

헌터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속닥였다.

“이제 어쩌죠? 먹으면 안 되겠죠? 뭐가 들었을지 모르는 일인데.”

“요리 과정에서 별다른 수상한 점은 없었는데···.”

막내가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희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 말대로 주방에서 남자가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먹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노란 머리 여자가 가방에서 작은 기계를 꺼냈다.

“마석으로 만든 독성 감지기예요. 한번 써보죠. 100%는 아닌데 그래도 꽤 신

뢰성 있어요. 이럴 때 쓰려고 가져온 건 아니지만.”

여자는 길쭉한 프로브 같은 것을 은근슬쩍 음식을 찔러보았다.

“일단은 문제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100%가 아니면 불안한데···.”

“일단 먹는 척만 하자. 이렇게 차려줬는데 그냥 나가겠다고 하면 또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거니까.”

대장은 아까 저 남자의 힘을 직접 느꼈기 때문에, 어찌 됐건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꼬르르르륵!

막내의 배가 다시 한번 요동쳤다.

“저는 나쁜 몬스터는 아닌 것 같아요. 진짜 사람인 것도 같고. 그리고···. 이

제 못 참겠어요.

중얼거리던 막내가 밥 위에 제육볶음을 듬뿍 올리더니 크게 한술 떠 입에 넣

었다.

“삼키지 말고, 먹는 척만 하라니까!”

“몰래 뱉으라고!”

불안한 그의 행동에 주변 헌터들이 긴박하게 손짓했다.

막내는 미간을 찌푸리고 우물우물 음식을 씹었다.

그러더니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음··· 으응?”

“왜! 몸이 이상해? 빨리 뱉어!”

꼴깍!

“사, 삼킨 거야? 이 자식이, 미쳤어?”

“허, 허억! 이거 너무···.”

“너무?”

“너무 맛있는데요? 제육볶음이 어떻게 이렇지?”

대장이 막내의 뒤통수를 퍽 때리며 작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깜짝 놀랐잖아! 무슨 일 난 줄 알았네!”

“아니···. 속이려고 그랬던 건 아니고···.”

막내는 밥을 한술 크게 뜨면서 중얼거렸다.

“먹어봐요. 미쳤어요. 진짜.”

그러고는 붉은 양념이 벤 돼지고기와 양파를 함께 집어 와앙 입에 넣었다.

꼬르르르륵!

꼬르르륵!

꾸르르르르!

헌터들의 위장이 앞다투어 소리쳤다.

안 그래도 출출한 상태인데 너무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니 더더욱

배가 고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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