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식당인가요
게다가 이놈의 막내는 무슨 먹방이라도 찍는지 참 맛깔나게도 먹는다.
결국 참지 못한 노랑머리 여자 헌터가 결심한 듯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
었다.
그리고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와, 맛있어요···!”
조용히 있던 남자와 빡빡이 마저 결심한 듯 숟가락을 들었다.
“오오오···.”
“대장, 빨리 먹어 보세요!”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대장이 결국 젓가락을 쥐었다.
“그래,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못 참겠다. 먹자! 먹어!”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맛에 헌터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젓가락들이 앞다투어 반찬을 집어 갔다.
헌터들 중 두 사람은 공깃밥까지 추가해 싹싹 긁어먹었다.
“와아···.”
“배불러요···.”
각자의 양을 초과해서 먹은 다섯 헌터가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기대어 중얼거
렸다.
포만감에 모두의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대장이 한없이 늘어지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이제 일어나도 되겠지? 자연스럽게 나가보자고.”
다른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를 살폈다.
때마침 주방에서 남자가 나왔다.
아닌 척하면서 그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식사는 어떠셨어요?”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도 최근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요.”
“진짜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남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좋은 말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칭찬에 남자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저, 그럼 저희는 이만···.”
“잠깐만요.”
이대로 자연스럽게 던전을 탈출하려는 헌터들을 남자가 불러세웠다.
흠칫 놀라며 뒤돌아보자, 남자가 웃으며 말한다.
“계산은 하고 가셔야죠.”
“아? 아, 그, 그렇죠. 얼마···.”
‘설마 목숨으로 값을 치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어, 대장은 홀로 움찔했다.
남자가 아까보다 더 밝은 톤으로 말했다.
“제육 정식 5개에 공깃밥 세 개 추가해서, 38만 원입니다.”
“······네?”
“뭐요?”
“아니, 가격이 너무···.”
일반적인 금액을 훨씬 초월한 숫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가 태연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메뉴판에 적혀있었는데, 음, 제대로 안 보신 겁니까?”
그 말에 막내가 후다닥 옆으로 치워뒀던 노트를 보았다.
잘 보니 큼지막한 메뉴 이름 옆에 가느다란 펜으로 좀 작게 적어놓은 글자들
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메뉴>
제육볶음 정식 (70,000원)
김치찌개 정식 (70,000원)
(공깃밥 10,000원)
아예 못읽을 글씨는 아니었다.
다들 너무 긴장한 탓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을 뿐.
대장이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현금이 없는데, 혹시 카드는···.”
“안 됩니다. 대신, 마석이나 포션, 아티팩트로 계산 가능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발광석도 괜찮고요.”
“아···.”
아직 바깥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혹시 모를 부상이 생길지 모르니 포션을 줄 수는 없었다.
망설이던 대장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마석 두 개였다.
마석은 던전 몬스터를 죽이고 얻을 수 있는, 마나가 담긴 돌이었다.
모든 몬스터에게서 다 나오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운이 필요하다.
당연히 몬스터가 강할수록 더 질 좋은 마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마석은 보통은 각종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크기나 품질에 따라
다양하게 등급이 나누어진다.
그만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던전에서 사냥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또 던전에 입장하는 헌터들이 한두 개
씩은 지니고 있는 필수품이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강한 몬스터가 나왔을 때, 마석을 미끼로 해서 도망칠 기회를 만
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 헌터는 입을 달싹거리다 겨우 소리내어 말했다.
“이거 두 개면··· 40만 원 정도는 될 겁니다.”
“흐음, 그래 보이네요.”
생각보다 심한 큰 지출에 대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마석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남자는 얄미울 정도로 쉽게 마석을 쏙 빼갔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주머니에서 현금 2만 원을 꺼내 거슬러주었다.
그리고는 팔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들어오셨던 입구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헌터들은 이대로 가면 되는 건가 긴가민가하며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던전 통로를 어슬렁거리던 검은 괴수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얼떨떨한 상태로 동굴을 지나가자 곧 게이트가 보였고, 그 바깥으로 나가자,
아까의 숲이 나타났다.
“살았다···.”
대장이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남자의 힘을 직접 마주했던 그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 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노랑머리 여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짜 그냥 식당이었네요··· 전투도 없고, 아티팩트도, 보물도 없고.”
그때 빡빡이 헌터가 뒤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어? 사라졌어요!”
모두가 놀라 홱 뒤돌았다.
그의 말대로 <던전 식당>의 게이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헌터들이 멍하니 이야기를 나눴다.
“저 꿈 꿨던 거 아니죠? 아니, 지금 꿈 속인 건가? 너무 이상한 일을 겪은 것
같은데.”
“아니야. 나도 분명히 봤었어. 들어가서 먹기도 했다고.”
“환영 마법 같은 거에 걸린 거 아닐까? 우리가 모르는 몬스터가 여기 더 있다
거나···.”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잘 먹었는데요.”
막내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진짜로 마석도 뜯겼지···.”
대장이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주머니에 마석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 헌터들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아까 그건 N빵이다. 나가서 꼭 줘야 돼.”
“···얼마였죠?”
“7만 원씩. 너네 둘은 만원, 2만 원 추가.”
“공깃밥이 만 원이라니··· 천원이 국룰 아닙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추가 안
했을 텐데···.”
빡빡이가 뒤늦게 후회했다.
그 와중에 막내 헌터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솔직히 진짜로 맛있었어요.”
그 말에는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여자 헌터가 목소리를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작게 말했다.
“잠깐, 저기 발자국이 보여요! 2시 방향으로 이동했네요. 상태로 봐서 조금
전인 것 같고요.”
눈을 마주친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이 앞서나가며 말했다.
“가자, 이제 클리어해야지.”
든든한 한 끼 식사에 몸에 힘이 넘쳐나고 있다.
무기를 쥔 헌터들이 앞으로 쏘듯이 달려 나갔다.
* * *
드디어 첫 손님을 맞았다.
맛있게 잘 먹고 밥도 추가로 시키는 걸 보니 아주 뿌듯했다.
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나에게 참 큰 가치인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건···.
“왜 저렇게 식당인 줄 모르고 온 것처럼 굴지? 간판도 잘 보이게 해놨는데.”
뭐, 이런 식당은 처음 봤을 테니 경계할 수야 있겠지만 의심이 지나친 첫 손
님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친절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뭐
그렇게 겁이 많은 건지.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손바닥 위에 마석을 올려두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등급에 비해 꽤 좋은 물건을 가지고 다닌다.
아까 그 헌터가 말한 것처럼 충분히 40만 원의 가치를 할 것이다.
“내가 또 마석에는 빠삭하지.”
과거, F급 헌터 일만으로는 돈이 너무 부족해서 시간 날 때마다 여러 가지 알
바를 했었다.
그중 제일 오래 했던 것이 대형 길드에서 모집하는 마석 분류 알바.
크기와 품질에 따라 규격과 등급을 나누는 작업이었는데 기준이 복잡해서 수
당이 꽤 좋았다.
그 경험이 지금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
F급이었던 내 수준에서 만지기 힘든 고급 마석이나, 아예 가공되지 않은 마석
도 눈대중으로 그 가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니까.
내 눈을 속이려 들면 손님이건 뭐건 가만두지 않을 거다.
“후후후···.”
나는 흡족한 미소를 띤 채 마석을 챙겨 넣고 다음 손님을 맞기 위해 뒷정리했다.
그리고 방에서 사인펜을 가지고 와서 메뉴판 글씨도 다시 예쁘게 적었다.
아까는 사인펜이 안 나오길래 다른 펜으로 급하게 쓴 건데, 마지막에 가격 듣
고 놀란 것 같아 좀 민망했다.
그래도 희소성를 따지자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나?
혼자 생각하는 중에 아래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헥헥.
어느새 다가온 베로가 나를 올려다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칭찬해달라는 거다.
아마 아까의 손님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길을 막았던 게 나를 위해 한 일이었
던 것 같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꾹꾹 눌러 쓰다듬으며 말했다.
“베로야. 안 그래도 돼. 나도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강매할 생각은 없다고.”
베로의 꼬리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고개가 조금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래도 잘했어. 생각해줘서 고맙다. 자, 간식 하나 줄게.”
나는 아직 익지 않은 돼지 생고기 덩어리 하나를 베로에게 내밀었다.
“웡!”
입에 돼지고기를 문 베로가 작게 짖고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다른 통로로
달려갔다.
허리를 펴고 어깨를 풀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음 손님을 받아볼까?”
나는 요리에는 자신 있지만, 가게 운영에 관해서는 완전 초짜다.
혼자 여러 손님을 동시에 관리할 자신이 아직 없어서 당분간은 한 타임에 한
팀씩만 받아볼 생각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그렇다고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싶진 않다.
소소하게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면서, 내가 손님 수를 조절하며 최대의 돈을 벌
수 있으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던전을 활용한 건 참 좋은 생각이었다고 스스로 감탄하며 눈을 감았다.
게이트를 또 다른 던전 근처에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 게이트를 발견한 헌터들이 반드시 이곳에 들어올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상관은 없지.’
한 타임 쉬는 걸로 하고 다음 손님들을 찾아보면 되는 거니까.
나는 그릇들을 치우고, 주방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추가로 구입해야 할 것
들을 정리해 보았다.
잠시 후, 던전 안에 인간의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던져둔 게이트로 헌터들이 들어온 것이다.
다시 일어서서 홀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 했다.
“어서 오세요!”
이번에 등장한 헌터들은 여자 둘에 남자 하나로 세 사람이었다.
사냥 파티치고는 좀 적은 인원이다.
“어, 안녕하세요? 여기 진짜 식당인가요?”
“그럼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세 명의 헌터들이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와, 신기하다. 뭐 이런 데가 다 있지?”
첫 손님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처음 보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또 흥미로워하는 듯하다.
아까보다 나이대도 한참 어려 보인다.
20대 초중반 정도?
‘그렇다고 완전히 방심한 건 또 아니군.’
의식적으로 손을 무기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고 있다.
언제든 무기를 빼 들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능력에 자신 있어 보이고, 기운도 앞의 사람들보다 강하다.
인원도 적은 걸 보니, B급 정도 되려나?
하지만 그래도 경계보다는 호기심이 커 보이긴 한다.
헌터들은 아까 손님들과 달리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자리 잡았다.
분명 같은 상황인데 아까와는 너무 다른 반응인 게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