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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비밀 (11/125)

      영업 비밀

어쨌든, 나는 새로 적은 메뉴판을 손님들에게 건네주었다.

흥미로워하며 메뉴판을 받아든 헌터들이 깜짝 놀란다.

“헉, 비싸요!”

“던전에서 이렇게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데 그 정도 값어치는 있지 않나요?

맛은 보장합니다.”

자신만만한 내 말에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한다.

3년간 F급 헌터로 살면서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등급별 헌터들 벌이는 대충

알고 있다.

D, F급 정도만 아니면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 끼 식사에 이 정도는 쓸 수 있겠지.

그래도 지나치게 아깝게 느껴지면 아예 먹지 않을 거고 만족감도 덜 할 테니,

이 정도가 적정 가격이 아닐까 싶다.

맛은 자신있지만 사실 메뉴 자체가 엄청 특별한 건 아니니까.

“하긴··· 이런 신기한 경험에 7만 원 정도는···.”

“음··· 그럼, 나는 김치찌개.”

“나는 제육볶음.”

“나도 김치찌개로. 얼큰한 게 너무 먹고 싶었어.”

“그럼 김치찌개 둘, 제육 하나 하시는 거죠?”

“네! 그렇게 주세요.”

주방에 돌아가 벗어뒀던 앞치마를 둘렀다.

“흠흠~”

요리할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먼저 냄비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돼지고기 앞다릿살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익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 사이, 나는 김치찌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꺼낸다.

바로 잘 익은 묵은지 한 포기.

심지에 칼집을 내고 양손으로 가르자 이파리 부분이 부드럽게 찢어진다.

반 토막 난 묵은지 두 개를 도마에 가지런히 놓고 서걱서걱 썰어주었다.

밥 한술에 얹어 먹기 딱 좋은 크기로.

그리고 냄비에 도마 위의 김치를 쭉 쓸어 넣었다.

‘김칫국물도 조금 추가하고···.’

쪼륵.

국물이 자작해졌다.

이 상태에서 김치와 돼지고기를 적당히 볶아주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지만, 지금 하려는 건 볶음이 아닌 찌개.

내용물이 물이 잠길 정도로 냄비에 육수를 부어준다.

“보자···. 이제 빨리 제육볶음을···.”

혼자 중얼거리며 빠르게 제육볶음을 만드는 사이, 귀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

온다.

보글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간다.

요리를 완성해 맛있게 먹는 것도 좋다.

하지만 조리 과정에서 칼질하는 소리나 국물이 끓는 소리, 아직 완전하지 않

은 상태의 냄새 같은 것도 참 좋단 말이지.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닌 모양인지, 카운터 너머의 헌터들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나를 구경 중이다.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기대된다.”

“자꾸 주방으로 눈이 가네요. 요리를 너무 시원시원하게 하셔서 그런가?”

듣기 좋은 칭찬에 옅은 미소로 답했다.

마지막으로 끓는 찌개에 야채와 두부, 야채와 두부 약간, 국간장, 고춧가루

등의 조미료를 조금 더 추가했다.

매운 맛을 살리기 위해 청양고추도 살짝.

잠깐 더 끓는 사이, 밥과 밑반찬들을 정갈하게 그릇에 담아 손님들에게 가져

다주었다.

마지막으로 제육볶음과 김치찌개까지 건네주는 와중에 헌터들이 이런저런 질

문을 한다.

“사장님, 여기 정체가 뭐예요? 어떻게 여기서 식당을 해요?”

나는 검지손가락을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미소 지었다.

“영업 비밀이죠. 그걸 말해주면 다 따라 할 텐데 저는 뭘 먹고 살아요.”

“에이, 이런 걸 누가 어떻게 따라 해요. 이거 특수 능력인 거죠? 여기로는 몬

스터들이 못 들어오는 거예요?”

“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안심하고 식사하세요.”

“와, 진짜 대박이다! ”

감탄하는 어린 헌터들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네! 잘 먹겠습니다.”

뒤로 살짝 물러서자마자, 달그락거리며 수저를 든다.

젊은 남자 헌터가 새빨간 찌개를 급하게 한술 뜬다.

저러다 데는 거 아닐까 했지만 다행히 후후 불고 나서 입에 넣었다.

후릅.

“오···!”

입맛을 다시더니 눈을 크게 뜨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야, 찌개 진짜 맛있다. 한번 먹어 봐.”

“그래? 그럼 나 한 입만···.”

제육볶음 정식을 시킨 다른 헌터가 찌개를 덜어 먹었다.

“우와! 진짜네? 맛이 엄청 깊은데요?”

나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맛있게 드세요.”

리액션이 후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기분이다.’

나는 빠르게 계란 3개를 꺼내 한 손으로 가볍게 깨트렸다.

톡, 톡, 톡.

뚝배기에 담긴 계란을 휘휘 휘젓고, 화구에 올렸다.

물과 소금, 잘게 다진 당근과 대파 등을 넣고, 그리고 새우젓도 한 큰술 넣어

주었다.

이제 적당히 저어주면서 불 조절만 해주면 된다.

차츰 부풀어 오르는 계란찜.

벌써 완성이다.

나는 연노란빛을 띤 채 포슬포슬하게 흔들리는 계란찜을 뚝배기째로 옮겨 손

님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와아! 감사합니다!”

“맛있겠다!”

앞 팀에는 내놓지 않은 메뉴였다.

뭐, 어차피 서로 비교할 손님도 없고, 서비스 주고 말고는 내 맘이지.

어차피 매일 하고 싶은 요리로 메뉴도 바꿀 건데.

“으으음···!”

“이야~ 진짜 솜씨 좋으시네요.”

“어쩜 이렇게 포슬포슬하죠? 입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젊은 헌터들은 원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편히 식사하도록 자리를 피하려 하는데 여자 헌터가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사실은···.”

계속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주방 안의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로 끌

어당겨 앉았다.

조리대 너머로 대화하는 모양이 되었다.

헌터가 입 안의 밥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저희가 3일째 사냥 중이었거든요. 비상식량 말고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눈앞에 던전 식당 간판이 딱 보이는 거예요.”

“진짜 헛것인 줄 알았어요.”

동료 헌터가 거들었다.

“그럼 운이 좋았네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던전 식당의 게이트는 내가 거의 랜덤하게 지정하는 것.

딱 필요한 손님의 앞에 나타난 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니 운이 좋았다고 봐야

겠지.

“사장님, 이 식당은 항상 이 던전에 있어요?”

게이트와 던전은 특성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에 수년째 유지되고 있는 던전을 일반 던전이라고 부른다.

보통 같은 게이트에는 같은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나지만, 가끔 내부 환경이나

몬스터가 리셋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런 일반 던전이고, 때때로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랜덤하게 나타

나는 돌발 던전도 있다.

‘항상 이 던전’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이 헌터들은 일반 던전에서 사냥하다

넘어온 모양이다.

“아뇨. 오늘만 여기서 영업하는 거예요.”

내 말에 남자 헌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럼 이 던전 통째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게이트만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거지만 그런 자세한 설

명까지 할 생각은 없다.

“아니, 그게 가능해요?”

“지금 가능한 걸 보고 계시잖아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더니, 더욱 놀란 눈으로 던전을 훑어본다.

믿기 어려울 만도 하다.

각성자 중에는 독특한 스킬을 가진 자들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 해도 인간으로서의 한계는 있다.

특히 공간에 관한 것은 일개 인간이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차원의 능력.

때문에 헌터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능력은 작은 아공간 창고 정도였다.

이 헌터들이 놀라는 건 이런 세세한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이런 던전을 소유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 했고, 그냥 듣기에도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다는 정도는 알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겠지.

“와, 너무 신기해요!”

“그럼 또 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는데.”

“에이, 알려줘요. 사냥할 때마다 여기 오면 너무 좋을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단골 할 테니까 알려주세요!”

세 헌터들이 앞다투어 졸라댔다.

내 음식을 인정 받은 것 같아 뿌듯하긴 했다.

사실 요리보다 이 사냥 중 쉴 수 있는 이 던전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는 게 크

겠지만.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죠.”

“그런 게 어딨어요~”

장난처럼 실랑이하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별 내용도 없는 소소한 대화가 꽤 재밌었다.

원래 이런 스몰 토크를 딱히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외로웠던 세월이 나

에게 영향을 주긴 했나 보다.

“소문 많이 낼게요!”

끝까지 발랄하게 떠들던 헌터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양념으로 인해 셋 다 입술이 새빨갛다.

“소문내봤자 못 찾아올 건데요?”

씨익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던졌다.

“에이, 그래도 이런 신기한 경험 했다고 자랑할 거예요! 아, 혹시 그럼 안 되

는 거예요?”

던전에 신기하고 맛도 좋은 식당이 가게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좋지만, 그렇

게 되면 결국 헌터 관리국에서 나설 것이다.

귀찮아지겠지만 입막음한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지.

“상관 없어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사냥 마무리 잘하시고요!”

“넵! 그럼, 다음에 꼭 또 봬요!”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헌터들이 뒤돌았다.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나 너무 잘 먹어서 막 힘이 솟는 것 같은데?

“나도. 이것들 이제 다 뒤졌다!”

그들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시끌벅적하던 홀이 조용해졌다.

그들이 던전을 완전히 떠났다는 게 느껴진다.

‘자, 그럼 다음···.’

게이트를 다른 던전으로 연결하자, 이번에는 곧바로 기척이 느껴졌다.

세 번째로 들어온 헌터들.

심하게 경계하며 들어온 그들은 첫 번째 손님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몬스터냐면서 덤벼들다가 제압당하고 얌전히 주문 후 밥을 먹었다.

이런 부류는 패턴이 다 비슷한 건지.

어쨌든 반강제로 시켜 먹은 음식에는 매우 만족한 것 같았다.

마석을 내미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긴 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하고 끝내자.’

한가롭고 만족스러운 영업 첫날이었다.

물론 이래저래 부족한 점도 보였다.

음료수도 사다 놔야겠고, 메뉴판에도 신경 써야겠고, 자잘하게 정리할 게 많

았다.

경쟁 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할 것도 아니니 차츰 보완하면 되겠지.

“어디 보자···.”

나는 주방 서랍에 잘 챙겨둔 마석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짤그랑.

탁자 위에 부어 개수를 확인해보았다.

총 3팀에 정식 13개, 공깃밥 4개를 팔았다.

그러니까 오늘의 매출은 95만 원.

손님들에게서 받은 마석과 체력 포션, 그리고 거슬러준 현금을 계산해보니 정

확히 숫자가 맞아떨어졌다.

인건비도 안 들고 내 던전이니 임대료도 없고, 재료비와 자잘한 지출은 얼마

되지도 않으니 이게 거의 순수익이나 마찬가지.

다만, 현금화는 암시장에서 할 생각이다.

나는 F급 헌터로 등록되어 있다.

갑자기 마석 획득량이 열 배도 넘게 늘어나면 당연히 의심받을 거다.

가격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지만, 나에 대해 전혀 밝힐 필요 없는 암시장이

당연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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