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수정)
사실, 사회에서 식당을 영업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허가가 필요하다.
영업 신고도 해야 되고 사업자 등록증도 받아야 하고,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내 던전 식당은 그런 어떠한 허가도 받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이유는 없다
고 생각한다.
‘헌터 관리국의 판단은 다르겠지.’
그들 입장에서는 던전과 헌터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관리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들이 없으면 던전이 무법지대가 될 테니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워낙 범위가 크고 예상을 벗어나는 부분이 많아, 관리국의 존재가 던전의 모
든 부분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쨌든 통제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굳이 내가 나서서 내 던전에 대해 밝히고 식당 영업을 허가해달라
고 요청할 생각은 없다.
던전을 이렇게 통째로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고 밝히고 식당을 하겠다고 하면,
그게 먹혀들까?
당연히 거절당할 것이다.
상상해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나라도 안 된다고 하겠다.’
어느 던전으로든 연결 가능한 안전한 장소.
사냥 시 발생하는 사고율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꿈의 능력이다.
이런 능력으로 식당을 하겠다고 하면 어이없는 농담 정도로 듣겠지.
도리어 공적으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을 가장해 압박할 거다.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이렇게 몰래 영업을 시작하는 게 훨씬 낫다.
어차피 이런 눈에 띄는 일은 소문이 나게 되어 있으니 언젠가는 관리국에서
찾아올 테고, 그때 타협을 하든 말든 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 할 일 바쁜 헌터들이 딱히 남들에게 피해될 것도 없는 이 식당의 범법
유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일도 없고···.
‘헌터 관리국에서 여길 찾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뭐, 내 게이트가 그들을 걸러낼 수는 없으니 모를 일이긴 하다.
그리고 또 하나.
게이트는 웬만하면 D급 이상 던전에 연결할 생각이다.
E, F급은 헌터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들은 한 끼에 이 정도 식사를 사 먹는 게 많이 부담스러울 테니 애초에 내
손님 타겟에서 제외다.
또 나는 오로지 기운을 느끼고 연결하는 거니 시스템의 기준과 달라 생각보다
급이 높거나 낮은 던전에 연결될 수도 있는 일이다.
달그락.
꺼냈던 마석들을 다시 챙겨 넣었다.
조금 더 모아서 현금화하면 될 것 같다.
“흐흐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첫날 하루, 슬렁슬렁 즐겁게 일하며 번 돈이다.
웃긴 게 마룡을 잡고 손에 쥐었던 거금보다, 이렇게 번 100만 원이 더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로 번 돈이라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거겠지.
“베로!”
“웡!”
아까 돼지고기를 물고 사라졌던 베로가 돌아왔다.
녀석의 검은 털을 슥슥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형 오늘은 들어가 볼게. 뭐 건드리지 말고 얌전히 놀아야 된다?
“끼잉···.”
위를 향하던 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살짝 숙였던 허리를 펴며 쓰다듬던 손을 뗐다.
그러자 베로가 우는 소리를 내며 그 큰 덩치로 배를 보이며 누워버렸다.
“끼이이잉···!”
가지 말고 더 귀여워해달라는 강력한 의사 표현.
‘원래 이렇게 어리광쟁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뒤집어진 채 자기를 좀 봐달라고 온 몸을 뒤튼다.
“알았어, 알았어. 하하.”
나는 한참이나 더 베로의 배를 쓰다듬어 준 다음에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 * *
“깔끔하고 좋네.”
만족스럽게 뒷짐을 지고 던전의 한공간을 둘러보았다.
내 던전에 속한 수많은 방들 중에는 생뚱맞게 느껴질 정도로 다른 분위기와
기운을 가진 곳들이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꽁꽁 언 얼음벽에서 한기가 흘러나오는 공간이다.
이곳을 냉동 창고로 쓸 생각이다.
이름하여 냉동방.
재료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팬트리를 넣어줬더니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한기가 조금 덜한 냉장방이 있다.
모든 식료품은 던전 내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따로 냉장고가 필요 없었다.
던전에서는 전기 사용이 어려우니 게이트를 드나들며 집 냉장고를 써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이걸로 쉽게 해결되었다.
손님을 많이 받는 게 아니니 내가 쓰는 공간은 냉동방의 일부일 것 같다.
‘그래도 좁은 것보다는 훨씬 낫지.’
냉동방에서 나오자, 헥헥거리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베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단호하게 주의를 줬다.
“베로. 넌 여긴 들어오면 안 돼. 알고 있지?”
“끼이잉···.”
일반 개도 아니고 명색이 케르베로스다.
베로는 뿌리가 억센 건지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는 털을 가지고 있다.
음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내 안의 고정관념을 완전
히 없애기는 어렵다.
만약의 상황을 막기 위해 베로에게는 이렇게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대해
단단히 일러두었다.
‘최대한 위생적으로 관리해야지.’
베로는 이런 내 태도에 조금 시무룩해하는 것 같지만 이해한 이상 철저히 지
킬 것이다.
오늘은 던전 식당 개업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벌써 20팀 가까이 손님을 받았다.
손님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극도로 경계하는 부류.
그들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적어둔 간판을 아예 보지 않은 건지 무시하는 건
지, 이곳이 식당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들어온다.
그 중 특별히 판단력 부족한 손님은 나를 몬스터처럼 대하며 다짜고짜 공격하
는데···.
물론 내가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면 꼬리 내리고 자리에 착석한다.
그래도 다들 지속적으로 몬스터와 싸움을 해왔던 자들이라, 내가 이길 수 없
을 상대라는 건 무의식중에라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둘째는 경계는 하는데 호기심이 더 큰 부류.
자기 능력에 나름 자신있는 헌터들이 이런 것 같다.
이 경우에는 특별한 경험과 식사를 즐기고 떠난다.
나에게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좀 부담스럽지만 적당히 쳐내고 있다.
다 장단점이 있는 법이지.
셋째는 들어왔다가 뭔가 두려운 건지 그냥 도망가버리는 헌터들.
이게 생각보다 허탈해서 베로에게 다시 퇴로를 막으라고 할까 생각 중이다.
“어, 벌써 시간이···.”
시계를 확인한 나는 서둘러 게이트를 모두 닫고 방으로 돌아왔다.
외출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 * *
딸랑!
유리문을 밀자 위에 달린 종이 맑게 울린다.
카페 안쪽 자리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 나를 부른다.
“현호 씨!”
아예 발걸음을 옮겨 이쪽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아저씨, 정연 씨, 오랜만이에요!”
“그래. 오랜만이다!”
박현배 아저씨와 이정연 씨가 웃으며 인사하는 내 얼굴을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참 오랜만이다.
이들이 말하는 오랜만과 내 오랜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50년 만에,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두 달만의 만남인 것이다.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그럼요. 거기서 나온 지도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요. 멀쩡해도 너
무 멀쩡하죠.”
“얼굴이 생각보다 좋아 보이긴 하는데···.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한 느
낌이에요.”
이정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과거의 내 몸과 현재의 내 몸은 아예 새로 태어났다고 봐야 할 정도로 달랐으
니까.
당연히 대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몇 년 만에 푹 쉬고 잘 먹고 했더니 그런가 봐요. 우리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앉죠.”
“그래. 그래. 주문도 하고 해야지.”
그렇게 각자 앞에 음료를 하나씩 두고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달달한 딸기라떼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오, 이거 괜찮은데? 후식으로 이런 음료수도 팔아볼까···.’
진지하게 생각하려던 참에, 박 씨 아저씨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은 얼굴 보던 놈이 없으니 얼마나 허전했는지 아냐?”
“정말요?”
“그래! 내가 말로만 이러는 게 아니라 진짜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싱숭
생숭했다니까. 진짜로!”
지나친 과장 같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솔직히 이 상황이 조금은 어색했다.
나로서는 수십 년만에 만나는 거고, 사실 당시에도 이렇게까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박 씨 아저씨는 항상 던전에서만 마주쳤었고, 이정연은 한 달 전 사고 날 처
음 만났으니까.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심성이 선한 사람들이다.
고마운 마음에 어색함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과거 사람들에게 스스로 벽을 치게 했던 열등감이 사라진 것도 영향이 있겠지.
갖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 씨 아저씨가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보
였다.
입을 옴짝달싹하며 뭔가 말을 꺼낼랑 말랑···.
“아저씨,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 , 하하···. 그게···.”
계속 망설이는 박 씨 아저씨.
뭔지 알겠다.
아저씨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과 미묘하게 다르다.